기획 특집

21세기 한국영화: 꿈과 역동성 기획 특집 1 한국의 영화제에서 체험하는 푸짐한 ‘영화 문화’

한국의 영화인들은 이야기와 생각거리로 관객들과 만나고 때때로 불편할 수 있는 토론을 촉발하고 퍼뜨린다. 아마도 이런 능력이 한국 영화의 역동성을 가져온 주요 원천일 것이다. 관객은 열정과 헌신으로 이에 응대한다. 영화제는 영화인들과 관객이 활발하게 교류하는 장으로 여기에서 좋은 영화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고 이에 열광하게 만든다.

10월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화 <그물>의 김기덕 감독과 배우 안지혜, 최귀화, 황건이 레드카펫을 걸어 들어오고 있다.

때로는 전혀 기대치 않은 일상적 상황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내게는 부산국제영화제 관련해 강렬한 추억이 하나 있다. 2007년 해운대에서의 일이다.
두 명의 여성 배우와 함께 야외에서 진행된 오픈토크 때였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주연하고 그해 봄 칸 영화제에서 최고여자연기상을 받은 전도연과 19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최고여자연기상을 받은 강수연이 함께하는 토크였다. 한국 영화배우 중 최고의 영예라 할 수상 경력에 빛나는 두 배우와의 대화가 아주 궁금했지만 난 해변에 너무 늦게 도착했고, 이미 그곳은 관중들로 넘쳐났다. 관중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배우의 얼굴을 보려고 몇 분 동안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확성기를 통해서 그들의 대화를 들어야 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무대의 모퉁이조차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맨 앞쪽 줄에 앉은 관객들의 얼굴은 잘 보였다.
곧 무대를 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건 무대 위의 스타를 보는 것만큼이나 관객의 얼굴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화롯불 앞에 모여 앉은 군중처럼 그들의 얼굴은 경애와 영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여배우들이 성취한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해 있었고 따스함과 열광으로 이에 응대했다.
내가 그 순간에 목격한 것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의 주도적 영화제가 될 수 있게 만든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좀 더 확대해서 말하면, 관람객들이 보여준 이 같은 관심과 열정이 한국 영화 산업의 성공을 가져온 주요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지난 20년 간 한국 영화가 폭발적 성장을 하는 데에 한국 대기업의 규모에서에서부터 한국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1990년대 이후 강력해진 영화 문화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 문화’는 추상적 개념이지만 한국에 거주하게 되거나 한국의 주요 영화제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자신을 둘러싼 주위에서 늘 느끼게 되는 어떤 것이다. 영화 문화는 일반인들이 영화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과 열정, 그리고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표현하고 발언하는 방식 모두를 포함한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는 2007년과 상당히 달랐다. 그 한 가지 예로 배우 강수연이 BIFF의 집행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녀는 영화제의 독립과 미래에 대한 치열한 논란의 와중에 있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BIFF는 여전히 한국의 영화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주요한 장소로 남아 있다.

2016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으로 선정된 이란 감독 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7월 타계)를 대신해서 아들 아흐마드 키아로스타미가 개막식에서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 영화를 찍겠다는 꿈
나는 남연우의 긴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그가 메가박스 극장 로비에 서 있었다. 감독 데뷔작인 <분장>(영문 제목 Lost to Shame)의 배우들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영화가 곧 처음으로 상영될 참이었다. 2년에 걸친 준비와 촬영, 편집과 후반 작업 후 이제 그는 마침내 관객들의 평가를 받게 되었다.
데뷔 감독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이 그에게 아주 새롭지는 않았다. 그는 2012년 삼백만 원(미화 2800 달러)이 든 놀랄 만한 저예산 영화 <가시꽃>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고 젊은 아시아 신인 감독에게 주는 ‘뉴 커런츠’(New Currents)상을 수상했다. 인물들이 기억에 남는 이 독특한 영화는 세계 곳곳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더 많은 상을 수상했다. 나중에 영화는 한국의 극장에서도 개봉되었는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의 고예산 상업영화들과 경쟁하면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16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영화배우 강수연 씨가 이번 영화제의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한 말리의 영화감독 술레이만 시세(Souleymane Cisse 사진 가운데)의 아내이자 영화배우인 아미나타 시세 Aminata Cisse)와 폐막식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맨 왼쪽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다.

<분장>은 트렌스젠더 역을 맡게 되는 연극배우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아주 개방적인 사람이라 믿지만 나중에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편견과 대면하게 된다. 인물들이 기억에 남는, 독특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를 위해 남 감독은 아는 배우들로 팀을 꾸린 후 자신이 직접 주연을 하고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찍었다. 촬영이 끝난 후 BIFF는 아시아시네마펀드 지원금을 제공해 후반 작업을 보조했다.
<분장>이 부산에서 처음 관객 앞에 선보였을 때, 마치 영화관 안에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영화가 언제 관객의 주의를 확 잡아끄는지 느낄 수 있다. 상영 후 감독과 배우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많은 관람객들이 찬사를 쏟아내며 자신들의 느낌을 열광적으로 표현했다. 관객 중에는 칸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영화제 프로그래머도 있었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남 감독을 찾아와 격려했다. 그 사이 시네마 로비에서는 팬들이 사인을 받거나 남감독이나 배우들과 스냅 사진을 찍으려고 길게 줄을 섰다.

적어도 이 날 만큼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남연우가 스타였다.
한국에는 남연우가 경험한 것을 꿈꾸는 많은 젊은 감독들이 있다. 영화상을 수상한 <무산일기>(2010)와 <산다>(2013) 덕분에 지금은 주요 독립영화 감독으로 인정받는 박정범 감독은 자신의 청년 시절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던 경험에 대해 얘기한다. 거기서 그는 시네마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슴에 품게 되었고 언젠가 자신의 영화를 찍어 부산의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할리우드가 때때로 ‘꿈의 도시’라 불리지만 한국에서 젊은 영화인들은 부산과 전주, 그리고 부천에서 종종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 이 영화제들의 관객은 평범한 관람객이 아니다. 이들은 영화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새 영화를 보기 위해 매년 모인다.

할리우드가 때때로 ‘꿈의 도시’라 불리지만 한국에서 젊은 영화인들은 부산과 전주, 그리고 부천에서 종종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

실제로 부산이 시네마를 향한 열정을 부추기는 한국의 유일한 영화제가 아니다. 매년 5월 초에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는 표가 매진되고 열정적인 관중이 모인다는 점에서 부산과 견줄 만하다. 비주류 영화와 독립 영화에 초점을 둠에도 불구하고 전주영화제는 매년 많은 관객을 동원한다(전주의 유명한 음식문화가 영화제를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장르 영화의 팬들이 집결하는 곳이다. 저예산 장르 영화를 만드는 젊은 한국의 감독 수가 많지 않지만 BiFan은 작품들과 이를 응원하는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영화인 집단이 유지되도록 도와왔다.
오랜 기간 무명으로 지내면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힘들게 작업하는 영화인들에게 꿈을 갖는 건 중요하다. 그것뿐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 결정적이다. BIFF나 전주의 관객들은 평범한 관람객이 아니다. 시네마에 특별히 강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매년 새로운 영화를 보기 위해 모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발견하면 입소문을 내고 코멘트와 짧은 리뷰를 온라인에 올린다. 감독의 명성이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영화인이 곧바로 극장 개봉을 통해 영화를 선보인다고 상상해보라. 작은 영화들에겐 한없이 불리한, 가차 없는 경쟁으로 치열한 유통 환경에서 <분장>과 같은 영화는 어떤 주의도 끌지 못하고 바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제와 이를 지원하는 영화 문화가 영화인들에겐 그토록 중요하다.

대화로서의 영화
남연우가 자신의 장편 영화를 선보이는 동안 그곳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해운대 해변에서는 다른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주요 영화 투자배급사인 N.E.W.가 히트작 <부산행> 판권을 산 세계 각지의 배급사를 위해 파티를 열었다. 초고속열차 KTX에서 통제를 벗어나 미쳐 날뛰는 원인 미상의 좀비 바이러스 이야기인 <부산행>은 한국에서 1,1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올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하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싱가포르, 호주, 홍콩, 대만, 프랑스 같은 외국에서 누리게 된 전례 없는 성공이다. 부산에서 벌어진 파티의 분위기는 흥겨웠다. 파티에 모인 많은 배급사들이 이 영화로 큰돈을 벌어들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부산시 중구 남포동 BIFF광장은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명소이다. 사진은 2014년 10월 1일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광경이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없지 않다. 학교 왕따 문제를 다룬 그의 첫 장편 영화 <돼지의 왕>은 저예산 애니메이션 영화로 2011년 BIFF에서 세 개의 상을 수상했고 그 다음 해 칸영화제 감독주간 섹션에서 상영되었다. 어둡고 철학적인 그의 두 번째 애니 장편영화인 <사이비>는 2012년 BIFF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 중 하나였다. 이 초기작들에서 그의 스타일은 주류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N.E.W.는 그의 재능을 믿었고 고예산 영화 <부산행>에 투자했다. 좀비 영화는 한국에서 결코 성공 못한다는 영화산업계의 미신에도 불구하고. 도박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대박을 가져왔다.
하지만 <부산행>이 올해 BIFF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이다. 정치적 압력에서 영화제의 독립을 지켜내기로 공언한 영화인들의 일부가 영화제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2014) 다큐 영화 상영을 둘러싸고 부산시와 2년 동안 지속된 갈등으로 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용관이 해임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작년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노골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불편한’ 영화들의 버팀목으로 기능해왔던 BIFF의 정체성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영화인들이 응원군인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인 것만큼이나 영화제는 사회적 의식이 있는 영화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 역시 영화 문화의 한 요소이다. 이를 통해 영화감독, 관객, 평론가, 문화비평가들 간에 벌어지는 우리 시대의 주요 이슈에 대한 대화는 확산되고 끊임없이 진화한다.
거의 10년 전에 나는 성공한 홍콩 감독 천커신(<명장>, <첨밀밀>을 만듦)을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 동안에 그는 한국의 영화 관객이 아주 부럽다고 했다. “한국의 관객은 아주 똑똑합니다. 영화를 보는 안목이 대단하고 새롭고 잘 만든 영화를 응원하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때 이후로 한국의 관객은 더욱 세분화되었다. 나이든 관객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극장을 찾는다. <부산행>의 히트나 <분장>과 같은 작은 독립영화들을 통해 영화가 한국의 문화 담론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런 현상이 어느 나라에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가 지배적이어서 자국의 영화는 시장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는 곳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부산시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열린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사도> 야외무대 행사에 참석한 이준익 감독과 출연진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
1997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한국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전무했다. 도착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서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했는데 관객들의 영화를 향한 열정에 압도당하고 전율을 느꼈다. 그때 이후로 영화제에 매번 참가했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한국 영화에 대해 강의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가끔 사람들은 한국 영화에 집중하도록 영감을 준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다. 진실을 말하자면 처음에 나를 끌어당긴 것은 부산에서 경험한 영화 문화였다. 어떤 특정한 영화라기보다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영화에 대한 활기찬 토론이었다.
현재의 한국 영화가 어떻게 이처럼 역동적이 되었는지 사람들이 의아해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영화와 영화인들 너머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한국의 강력한 영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대체로 강력한 영화 문화는 결국 강력한 자국 영화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영화 문화가 중요한 이유이며 그것이 수호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달시 파켓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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