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21세기 한국영화: 꿈과 역동성 기획 특집 3 힘센 감독들의 시대

흥행과 작가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기적’을 이뤄내는 감독들이 드물지 않다. 해외의 권위 있는 영화제가 간혹 흥행을 등진 작가주의 감독의 국내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지금 한국 영화판은 힘센 감독들의 시대이다.

같은 주제로 계속 다른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데뷔 20년 차의 동갑내기 중견 영화감독 홍상수와 김기덕.

한국의 영화 감독은 현장의 그 누구보다 힘이 세다. 물론 모든 감독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니 일반화의 위험이 따르지만, 거대 기업에서 운영하는 회사가 투자, 배급, 상영의 수직계열화를 이룬 현 상황에서도 여전히 감독들은 힘이 세다.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은 자신이 직접 영화사를 차려 영화를 만든다. 부인에게 제작사의 대표 역할을 맡기고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다음, 캐스팅에서 편집과 후반 작업에 이르기까지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시 말해 영화의 전 과정에 감독이 존재한다. 영화 지망생 가운데도 감독을 지망하는 이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주의(Auteurism)는 현재 활약중인 한국의 감독 거의 전부를 수식하는 말이 되었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여기서는 중요 감독 몇 사람을 짝패 지어서 한국영화의 대략적 지형도를 그려보려 한다.

거대 기업에서 운영하는 회사가 투자, 배급, 상영의 수직계열화를 이룬 현 상황에서도 여전히 감독들은 힘이 세다.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은 자신이 직접 영화사를 차려 영화를 만든다. 작가주의(Auteurism)는 현재 활약중인 한국의 감독 거의 전부를 수식하는 말이 되었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김기덕과 홍상수
김기덕(Kim Ki-duk)과 홍상수(Hong Sang-soo)는 똑같이 1960년에 출생했고, 1996년에 데뷔했다. 김기덕의 데뷔작인 <악어 Crocodile>, 홍상수의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The day a pig fell into a well>은 모두 영화적 이슈가 되었고, 이후 두 감독은 거의 매년 영화를 연출했으며, 그 영화를 들고 해외에 나가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두 감독은 확고한 영화적 세계관을 지닌 작가로 평가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해외에서의 지지에 힘입어 지위와 명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김기덕 영화의 전제는 ‘병든 자본주의’이다. 주로 피폐해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물적 삶을 이어가는 하층민 남자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 왔다. <피에타 Pieta>(2012)는 그 지난 작업을 집약하고 한 걸음 나아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민족적 리얼리즘 계열 영화의 수장 임권택과 그 계열의 적자 이창동.

한때는 산업화의 현신이었지만 지금은 철거 위기에 놓인 서울 청계천의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악덕 사채업자들이 채무자에게서 끔찍한 방법으로 돈을 받아내는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타인을 협박하고 폭행하고 갈취해며 살아가는, 자본주의가 낳은 악마이며 괴물임에 분명한 한 남자. 김기덕은 이 인물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뉘우치게 만드는데, 심지어 영화의 엔딩에서는 그에게 예수 희생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자본주의의 밑바닥을 주시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야생적인 한 남성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 자비와 구원의 문제로 나아갔다.
홍상수는 계속 철저하리만큼 비슷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완벽한 작가주의의 실현 또는 매너리즘의 지속이다. 그의 영화에는 남성과 여성의 연애가 낭만이나 화려한 상상이 제거된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술자리에서 술자리로, 여관으로 이어지는 지독히도 세속적인 연애에서 사랑의 감정보다 앞서는 것은 욕망의 현시와 충족이다. 홍상수는 이 욕망의 여러 얼굴을 스타일적 실험으로 재현한다. 2015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Locarno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Right Now, Wrong Then> 를 보자. 영화감독인 주인공이 우연히 수원에 가서 한 여성을 만나 술자리를 가진 과정을 1부와 2부 두 벌의 이야기로 병치해 놓았다. 이 구성의 절묘한 댓구와 운율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삶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박찬욱과 봉준호 박찬욱과 봉준호는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를 한국적 상황 속에 안고 와 토착화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리하게 하는 감독들이다. 그래서 두 감독은 김기덕과 홍상수보다 대중적이고 널리 알려져 있다. 박찬욱이 스릴러와 미스터리라는 장르에서 죄의식과 복수를 꾸준히 이야기한다면, 봉준호는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이야기 안에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외형적으로는 장르 영화의 컨벤션을 따르는 듯하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독창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도 이 두 감독이 만든 영화들의 공통점이다.
한국의 어떤 감독보다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박찬욱은, 흥미롭게도 B급 영화의 정서에 강하게 기대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B급 영화는 완성도가 덜한 영화가 아니라, A급 영화가 할 수 없는 전복적인 상상력을 갖추거나, 부족한 시간과 돈을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메우는 장르이다. 박찬욱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올드 보이 Old Boy>(2003)에는 그의 영화 세계가 집약되어 있다. 누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 아내와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복수를 불러오지만 그 복수는 결국 성공하지 못한 채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오게 된다는 이야기 구조 안에 근친상간 요소를 절묘하게 녹여 놓았다.
자신의 영화 안에 기괴한 유머를 곧잘 섞는 봉준호는 뭔가 모자라는 인물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이야기를 자주 그린다. 이런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민낯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2003)이라는 기묘한 제목의 영화에서 봉준호는 여성이 연쇄적으로 살해되어도 범인을 잡을 수 없었던 1980년대라는 이상한 시대의 치안 시스템을 치밀한 디테일로 그려냈다.

임권택과 이창동
임권택과 이창동은 누구보다 진중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들이다.
1960년대 초반에 데뷔해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권택은 연출한 영화가 100편이 넘는 감독이다. 1993년에 개봉해 그의 이전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서편제Sopyonje>는 영화라는 서구적인 그릇에 판소리라는 전통 주제를 본격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주목 받았다.

박찬욱과 봉준호는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를 한국적 상황 속에 안고 와 토착화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리하게 하는 감독들이다.

이창동은 소설가에서 영화 감독으로 이직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리얼리즘 소설을 썼던 작가답게 그는 현대사의 불행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거나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단한 모습을 다룬다. 봉준호의 영화가 사회구조적인 모순에 직접적으로 다가간다면 이창동은 한발 물러서서 차분히 관조하듯이 재현한다. <시 Poetry>(2010)는 이창동의 대표작이다. 영화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강가에 여중생의 시체가 떠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녀가 왜 죽었는지, 그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좇으며 영화는 소녀의 죽음과 연관된 할머니의 죽음을 시라는 문학 장치와 결합해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나홍진과 연상호 끝으로 한국영화의 미래를 가늠케 해주는 뉴웨이브와 독립영화 진영 감독의 선두주자로는 나홍진과 연상호(Yeon Sang-ho 延尙昊)를 들 수 있다. 자신의 영화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으면서 대중적 사랑도 받는 나홍진 감독은 가혹한 영화를 만든다. 극한적 상황에 처한 인간이 어떻게 동물처럼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폭력과 살해가 난무하는 영화들이다. <곡성(哭聲) The Wailing>(2016)에서 그는 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폐쇄된 시골공동체에 퍼지는 알 수 없는 죽음의 물결, 정체 모를 존재의 등장과 난무하는 괴소문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악령이라는 오컬트적 요소와 무속의 병행 구조. . . 곳곳에 상징과 복선을 배치하면서 나홍진은 관객과의 한판 두뇌 싸움을 재미나게 벌인다.
연상호는 <부산행 Train to Busan>(2016)이 천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감독이 되었지만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여전히 흥행이 쉽지 않은 감독이다. <부산행> 이후 곧바로 <서울역 Seoul Station>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거니와, 원래 연상호는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문제적 애니메이션을 연이어 내놓은 감독이었다. 학교, 군대, 종교 같은 조직을 배경으로 한 그 애니메이션들에서 그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괴물들을 묘사했다. 그러던 그가 <부산행>에서는 아예 좀비의 나라를 만들어 엄청난 흥행을 거두고 담론을 만들어냈다.

흥미롭게도 위 두 주목할 만한 감독들의 최근 연출작이 모두 좀비영화다. 한국에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던 좀비 장르로 이 두 감독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뉴웨이브, 비주류적 감수성으로 독창적 영화를 만들고 있는 독립 영화 진영에서,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 끝없이 추적해 오는 좀비로 가득한 영화를 만들고, 이것이 흥행한 것은 우리 시대의 어떤 징후를 말하는 것일까?

강성률 (Kang Seung-ryul, 姜聲律)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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