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아트리뷰 김수자, 바늘이 되어 인류의 마음을 꿰매다

김수자(Kim Soo-ja, 金守子)는 1999년 ‘천으로 삶을 표현한 보따리 작가’로 미국 뉴욕에 발판을 마련한 뒤 늘 길 위에 있었다. 세계 곳곳을 떠돌며 ‘제 몸을 바늘 삼아’ 사람과 삶의 궤적을 직조하며 살아왔다. 그가 4년 만에 고향에서 여는 전시회 제목은 “김수자-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풀어놓은 9점의 작품들은 작가의 바느질이 인류의 근원에 더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음의 기하학>, 2016, 관객 참여 퍼포먼스와 설치, 19m 타원형 테이블. 16 채널사운드 퍼포먼스 <구의 궤적>을 들으며 관람객들이 테이블 위에서 찰흙을 빚는다.

김수자는 어느 장소에서나 그 실루엣만으로 눈에 잘 띈다. 승려나 사제가 입을 법한 검고 긴 옷에 하나로 질끈 묶은 긴 생머리는 그에게 선(禪)을 탐구하는 도인의 이미지를 입혔다. 예순을 바라보도록 여일한 그 심플 스타일은 그의 일관된 예술 세계를 드러낸다. 김수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보따리(Bottari)’ 더미 위에 저 모습을 하고 앉아 지구 수십 바퀴를 돌며 주요 도시를 선승처럼 유랑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마련한 개인전에서 그는 지난 30년 걸어온 행위의 흔적을 정리했다. 특히 관람객이 자연스레 작품에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고심한 듯 보인다. 해외 곳곳에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이어가며 종종걸음 쳤던 국제적 작가의 위상을 잠시 내려놓고 무엇이 ‘나를 그렇게 몰두하게 했을까’ 함께 생각해보자고 관객에게 손을 내밀었다.

보따리 위에 올라앉아
김수자를 국제 미술 무대에 각인시킨 첫 작업은 보따리 트럭이었다. 알록달록 갖가지 색채 꽃무늬로 장식된 큼직한 보따리 위에 올라앉은 그의 뒤태를 처음 찍어 세상에 알린 사람은 사진작가 주명덕이었다. 그 사진은 한 여성 미술가의 시도를 평범한 물체 싸기에서 사람을 엮는 비범한 예술 개념으로 승화시켰다. 천(fabric)을 매개체로 사람들을 그리는 김수자에게 바늘은 손의 연장이자 몸의 늘림이었고, 실은 마음의 연장이었다. 작가는 바늘과 만났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어머니와 이불보를 꿰매다 문득 천의 앞뒤를 오가는 바느질에서 삶과 죽음, 들숨과 날숨, 음양의 이치를 보았다.”
홍익대 미대 회화과 시절부터 그는 남다른 고민으로 조숙했던 작가였다. “오래도록 삶을 관조하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미술 입문의 이유다. 세계의 구조를 수직과 수평으로 파악해 그걸 어떻게 2차원 평면에서 보여줄까 고민했던 그에게 바느질과의 만남은 일순에 과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펼치면 2차원 평면이요, 싸면 3차원 입체가 되는 보따리의 포용성과 융통성, 가변성은 인류의 모든 것을 품고 싶었던 김수자에게 맞춤한 도구이자 개념으로 들어앉았다.
그의 이름 ‘수자’는 힌디어로 바늘이라는 뜻이다. 운명적인 선택이었을까. 그는 분쟁과 불화의 도시 한복판에서 인파를 꿰뚫고 지나가는 그 자신을 바늘의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보따리’ 연작에 이어 ‘바늘 여인(A Needle Woman)’ ‘거울 여인(A Mirror Woman)’ 시리즈로 진화한 행보는 그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바쁜 국제미술계의 스타 작가 중 하나로 만들었다.

떠돌지 않을 수 없는 삶
오늘날 국제적인 유명 작가를 가늠하는 조건으로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는 무엇일까. 한때 그 답은 경매나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가격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잣대가 생겼다. 비행기 탑승 마일리지다. 각국에서 주최하는 비엔날레 참여나 유명 미술관 초대 등으로 1년 내 어디론가 떠도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작가는 그 유목민의 숙명으로 이미 작품 세계에 방랑의 기운을 품기 마련이다.
김수자도 1999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뒤 1년 중 다섯 달은 뉴욕, 한 달씩은 서울과 파리에서, 나머지는 개인전이나 초대전을 위해 도시에서 도시로 움직여야 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해왔다.

김수자 씨가 영상물 <지-수-화-풍> 앞에 섰다. 그는 2010년 이 시리즈 중 6점을 영광 원자력발전소(현 한빛원자력발전소) 방유제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술 담당 기자 이메일 함에는 1주일이 멀다 하고 김수자 스튜디오에서 보낸 새로운 전시회 소식이 도착한다. 여행 와중에 새 아이디어를 내고 짬짬이 실행의 도구를 챙기며 만들어가는 작품 세계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이 핵심이기 마련이다.
김수자 역시 사람을 매개로 진화해왔다. 자신의 작품 세계 특징을 ‘장소성, 정신성, 정체성’으로 잡지만 그 중심 동력은 인간이고, 그들이 움직여가는 인간의 미래다. 2010년 9월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선보였던 설치 프로젝트 <지-수-화-풍(地水火風)>은 핵폭탄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반도의 현실을 영상물로 다룬 작품이었다. 원자력의 폭력성을 품은 동시에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시켜 줄 미래 대안의 이중적 성격을 지닌 원자력발전소에서 작가는 유목민의 시각을 드러낸다.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이 순환하는 자연 속에 자신을 맡기라고.

마음의 모서리를 깎는 자리
<마음의 기하학>(2016년 7월 27일-2017년 2월 5일)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이 만나는 건 긴 지름 19m에 이르는 거대한 타원형 탁자다. 실내에서 만나기에는 너무나 큰 그 테이블은 보는 이에 따라 심상(心象)일 수도 있고 은하계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대형 탁자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토를 주물러 구(球)를 만든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찰흙의 질감을 느끼며 반죽을 손바닥에서 굴려 원형을 일군다. 동그랗게 흙을 동글리며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원형만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까?’ 워크숍 참여 방법에 김수자의 마음이 들어있다.

<연역적 오브제>, 2016, 철, 페인트, 거울, 지름: 1.5m x높이: 2.45m(조각), 10 x10 m (거울).

작가는 작품 설명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의 모서리를 깎는 자리입니다.” 인간사에 모난 모서리는 얼마나 많은가. 분쟁과 분열의 모서리 탓에 테러가 터지고 전쟁이 발발한다. 손으로 찰흙을 감싸며 굴리는 순환 행위는 관객이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두 손바닥에서 마찰하는 힘 사이에서 뭔가를 느끼게 한다. 원초적인 촉각을 자각하며 허(虛)를 감싸는 손짓을 반복하면서 문득 무(無)의 둥근 환영을 접한다. “인도에는 검은 돌을 갈고 닦아 거울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작가가 한마디 덧붙였다.
이 전시 표제작과 함께 전시되는 사운드 퍼포먼스 신작 <구의 궤적 Unfolding Sphere〉은 구형 찰흙이 흩뿌려진 타원형 탁자 표면의 이미지와 조응하여 관객을 우주적 조형성에 휩싸이게 한다.

<몸의 연구>, 1981, 작가의 퍼포먼스 사진에 의한 실크스크린 연작, 각 54.5 x 55.5.

몸의 흔적
<몸의 기하학(Geometry of Body)>은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온 몸을 던져 정진했던 요가용 깔개를 벽에 붙여놓은 작품이다. 손과 발이 닿은 흔적, 땀과 눈물로 적셔진 물질의 변화가 드러난 일종의 ‘몸 회화(body painting)’다. 여기서 매트는 기존의 미술이 오랫동안 받들어온 기성품 오브제가 아니다. 몸의 흔적이 마음에 투영돼 나타난 ‘사용된 오브제(used object)’다. 몸의 흔적이 새로운 개념의 회화를 창조했다.
김수자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평생 수직과 수평의 문제에 집착해왔다. 1981년 작 <몸의 연구(A Study on Body)>는 그 초심을 보여주는 시각 자료다. 여기에서 작가는 스스로 행한 퍼포먼스 사진으로 45점 실크스크린 연작을 떴다. 몸은 그가 자신과 세계를 자각한 출발이자 그의 작품 세계의 밑둥치처럼 보인다.
<숨(One Breath)>은 들숨과 날숨이 만들어낸 파동을 기록한 디지털 자수다. 작가는 인간의 생존 조건인 숨쉬기의 구조와 형식을 직물 사이를 누비는 바느질로 형상화했다. 새틴 위에 수 놓인 숨의 순환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생각하게 된다. 2004년에 발표했던 호흡 사운드 퍼포먼스 <직물공장(The Weaving Factory)>의 음파 그래픽이 기초가 됐다.
나무 탁자 위에 두 팔만 덩그러니 놓인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는 문득 외로워 보인다. 허(void)를 표상하고 있어서일까. 석고로 본뜬 작가의 양 손에서 엄지와 검지는 서로 맞닿아 있다.

김수자는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에 올라 앉아 방랑하는 퍼포먼스로 처음 주목 받았기에 여전히 국내외에서 '보따리 작가'로 불린다.

전시의 대단원은 영상 작품 시리즈 “실의 궤적(Thread Routes)>”의 새로운 챕터(Chapter V) 첫 공개다.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직조, 직물 문화에 대한 탐구가 21분 48초 영상물에 담겼다. 평론가들은 그의 영상작업을 “내러티브가 없는 시각적 시”, “시각적 인류학”이라고 명명했다.

<실의 궤적 V>, 2016, 스틸 이미지, 16mm 필름, 사운드, 21분 48초.

보따리에서 인류학으로
전시의 대단원은 영상 작품 시리즈 “실의 궤적(Thread Routes)”의 새로운 챕터(Chapter V) 첫 공개다. 김수자는 2010년부터 전 세계를 무대로 16mm 기록영화 “실의 궤적”을 찍고 있는데 6편 중 5번째 편이 완성된 것이다.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직조, 직물 문화에 대한 탐구가 21분 48초 영상물에 담겼다.
화면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나바호족과 호피족이 살아가는 인디언 보호구역과 뉴멕시코 지역에서 촬영됐다. 평론가들은 그의 영상작업을 “내러티브가 없는 시각적 시” “시각적 인류학”으로 이름지었다.
인류의 시원을 더듬게 하는 아득한 평원, 석기 시대를 연상시키는 거친 폐허, 우뚝한 돌산과 끝없는 지평선이 캔버스의 밑칠처럼 떠오른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짜고 풀고 또 짜고 있는 여인들이 도톰한 바느질처럼 질감을 드러낸다. 인간이 걸어온 길은 저것이 다일 수 있다.

자연 속에 바느질되어 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며 허(虛)로 스며들기.
보따리를 바느질하던 작은 바늘 여인은 지구를 바느질하는 큰 바늘 여인이 되어 오늘도 은하계를 여행한다.

정재숙 (Chung Jae-suk, 鄭在淑)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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