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포커스 백남준을 다시 움직이기

1984년 새해 첫날 뉴욕과 파리를 인공위성으로 연결한 실시간 퍼포먼스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그의 10주기를 맞은 2016년 한 해 동안 펼쳐진 다양한 추모 행사들은 철학적 사변을 하이테크로 번안하여 대중에게 전달하기를 즐겼던 탈경계적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업이 지닌 현재성을 입증해주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2016년 7월 20일부터 10월 30일까지 열렸던 백남준 10주기 기념 특별 전시 ‘백남준 쇼’에 백남준의 1993년 작 <거북>이 3차원의 미디어월 퍼포먼스에 둘러싸여 전시되어 있다. 모니터 166개가 가로 6m 세로 10m 높이 1.5 미터 규모의 대형 거북형상을 이루었다.

“나의 실험 TV는 항상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항상 흥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마치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변하기 때문인 것처럼.” 백남준, “실험 TV 전시회의 후주곡”, 1963.

1989월 7월의 백남준. 배경은 201개의 모니터로 이뤄진 4채널 비디오 설치물 <세기 말II Fin de Siecle II>(1989. 1220x327x152 cm)이다.

10주기 추모 행사들
백남준 10주기인 2016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는 백남준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국내 컬렉터들이 갖고 있는 백남준 작품을 중심으로 백남준과 함께 활동했던 플럭서스 아티스트들을 소개한 <백남준 ∞ 플럭서스>(서울시립미술관)를 비롯한 일련의 전시들은 각기 다른 시각으로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조망하였다. 추모 전시는 백남준이 청년시절을 보냈던 일본에서도 열렸다. 2006년 백남준의 타계를 추모하며 <바이 바이, 백남준> 전시를 기획했던 도쿄의 와타리움에서는 <로봇 K-456>, <요셉 보이스> 등의 소장품과 일본에서 간행된 백남준 관련 출판물, 자료들을 모은 10주기 추모 전시를 열었다.
전시 이외에도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열린 백남준 추모 10주기 리스펙트 음악공연과 패션쇼부터 백남준과 협업했던 테크니션들의 강연으로 구성된 백남준문화재단의 워크숍에 이르기까지, 백남준을 기리는 다양한 형식의 추모 행사들이 펼쳐져 왔다. 이러한 행사들은 추모의 의미를 넘어, 백남준이라는 예술가가, 그리고 그가 구축한 예술 세계가 사후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변화하는 ‘흥미로운 무엇’임을 입증해주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30주년을 맞아 2014년 7월 17일부터 11월 16일까지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열렸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30년 전의 기념비적인 인공위성 생방송 프로젝트의 주요 장면들을 대형 프로젝션으로 다시 만났다.

예언했던 TV 유토피아의 도래
백남준은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인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트센터의 건립을 경기도와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2008년 개관한 백남준 아트센터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는 미션 아래, 백남준의 사유와 예술을 조명하고 대중화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다양한 연구와 행사, ‘탈경계적’ 전시의 한 구심점으로 기능해 왔다. 아트센터가 주관한 첫 추모 행사는 백남준의 타계일인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 동안 진행된 <유토피안 레이저 TV 스테이션>이었다.

백남준, , 1974(2002).

일찍이 백남준은 정보통신을 통한 자유의 증대가 강한 자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며 1965년 “유토피안 레이저 TV 방송국”이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백남준은 레이저의 고주파 진동을 이용하면 수천 개의 방송국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방송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고, 플럭서스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로 구성된 레이저 방송국의 편성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미래의 인터넷 다채널 방송국을 예견한 듯한 이 글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텔레비전 방송국들의 등장이 거대한 상업 방송국에 의한 정보통신 분야의 독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유토피아적인 견해가 담겨 있다.
사흘에 걸친 위 추모 행사 기간 동안 아트센터는 그의 예술을 송출하는 방송국으로 변신하였다.

봉은사의 추모제와 백남준 지인들의 인터뷰를 사전 녹화하거나 생방송으로 전달한 온라인 추모식, 전 세계 2,500만 명이 시청한 위성방송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을 포함한 주요 영상 작업의 스크리닝, 백남준에게 헌정하는 아티스트와 DJ들의 퍼포먼스 등 각각의 프로그램들은 백남준 식으로 말하자면 각기 어엿한 하나의 ‘방송국’의 의미를 띠었던 것이다.

국제 협업 프로젝트 <다중시간>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로 인한 미디어의 발전이 인류의 소통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백남준의 유토피아적인 상상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바이 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등 ‘위성 3부작’으로 불리는, 당시에는 무모해 보이기도 했던 위성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추진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1984년 1월 1일, 뉴욕과 파리에서 동시에 진행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는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대중예술가와 아방가르드 예술가 백여 명이 참여하였고 백남준은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방송을 총괄하였다. 그는 텔레비전과 위성 기술을 이용한 50여 분의 공연이 “보잘것없는 우리 삶에서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얻을 수 있는 신비스러움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이러한 예기치 못한 만남이 새로운 내용을 낳고, 새로운 내용이 다시 새로운 접촉을 낳는 피드백을 개발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6월 14일부터 7월 31일까지 열린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백남준∞플럭서스>에 전시된 백남준의 1995년 작 <이지라이더>(164x148x180cm).

위성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맞춰서 구현한 <손에 손잡고> 역시 수평적 네트워크가 가능한 상생의 미래를 표현한 프로젝트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동서양의 다양한 국가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냉전시대의 종말을 고하며 서로 다른 장르,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경계를 해체시킨 시도였다.
<유토피안 레이저 TV 스테이션>과 함께 아트센터가 백남준 기일에 맞춰 기획한 추모 특별전 <다중시간>은 <손에 손잡고>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일본, 미국, 중국, 한국의 큐레이터, 비평가, 학자들이 아트센터의 소장품을 선택하여 그에 대해 연구하고, 그 연구와 맞닿은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거나 본인이 추천한 아티스트에게 신작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다중시간>전은 전시를 구현하기에 앞서 백남준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도출한 협업 프로젝트였다.

인간과 세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평가한 낙관주의자 백남준. 상식을 파괴하고 기존의 가치에 도전한 백남준의 작품들. 그 앞에서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준비를 하게 된다. 당신은 그를 되돌아보면서 어떤 노스탤지어를 느끼는가?

예술가 백남준의 출발점
텔레비전을 기반으로 방송과 위성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텔레비전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제작했던 백남준을 많은 사람들은 ‘비디오 아티스트’ 또는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기억한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백남준의 출발은 음악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0년 일본으로 간 백남준은 1956년 현대 음악가 쇤베르크에 대한 논문으로 도쿄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 WDR 방송국에서 전자음악 작업을 담당하였다. 이 시기 동안 백남준은 방송 장비들과 텔레비전을 접하게 되고, 이후 텔레비전의 기계적 속성을 어떻게 이용하여 이를 예술적 매체로 변화시킬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거기에 있는 무엇을 포착하는 매체가 아니라 ‘항상 어떤 되기’의 상태인 매체”였다. 그 당시 과학기술의 새로운 창조물인 텔레비전의 매력에 도취되어 있던 다수의 예술가들은 브라운관이 전달하는 이미지를 마음대로 제어하거나 고정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반면 백남준은 텔레비전 수상기의 회로에 개입함으로써, 또는 관람객들을 참여하게 함으로써 텔레비전을 쌍방향 매체로 전환시키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1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열린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다중시간 Wrap Around the Time>에 전시된 조이스 힌터딩의 관객 참여형 그라피티 드로잉 <단조로운 직선의 소리(초장파 주파수 안테나)>(2016)에 한 관객이 참여하고 있다.

음악, 퍼포먼스, 영화, 비디오 아트, 조각, 레이저라는 서로 다른 예술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미지와 사운드, 정지된 이미지와 움직이는 이미지, 추상적 이미지와 구상적 이미지와 같이 상반적으로 인식되는 형태들을 구현한 백남준을 ‘비디오 아티스트’로 한정해서 부를 수만은 없다. 실제로 백남준은 1970년대 초반에 쓴 짧은 글에서 “1958년 이후 나의 주요 과제는 다양한 영역들 사이의 경계지대들, 그리고 음악과 시각예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자기기와 인문학 등 서로 다른 미디어들과 요소들을 인터페이싱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조사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백남준이 사용한 ‘인터페이스’라는 용어는 예술들 사이의 관계, 예술과 인간, 예술과 기술, 예술과 자연 사이의 관계들에 대한 그의 다양한 생각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또한 백남준의 이러한 생각들이 동시대 디지털 예술과 문화의 주요한 특성들에 미친 영향에 대해 새롭게 되짚어보게 만든다.

백남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피아노와 편지>, 1960년대.

노스탤지어의 힘
아트센터에서는 지난 9월 국제학술심포지엄 ‘백남준의 선물’의 여덟 번째 시리즈인 을 열었다. 이 심포지엄은 백남준의 작업과 글, 즉 백남준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들에 암시된 ‘인터페이스들’을 조명하고, 그것들이 미디어 예술과 문화의 역사적, 현재적 경로들과 어떻게 연관을 맺게 되는지를 탐색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백남준의 작품들 중 비교적 널리 알려진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와 <글로벌 그루브>는 물론,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이루어진 벨 연구소에서의 실험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발표된 심포지엄은 백남준의 작업에 새로운 이미지와 ‘운동’을 부여하는, 백남준을 다시 움직이기 위한 자리였다.
지난 8년 동안 아트센터에서는 과거의 백남준을 현재에 되살리며 그의 시각으로 미래를 사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앞으로도 한 해, 한 해가 그를 기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데 백남준을, 그의 예술을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백남준의 탄생 80주년인 2012년에도 국내외에서 올해처럼 백남준을 주제로 한 행사들이 열렸다. 아트센터에서는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1992)이라는 백남준의 글에서 제목을 빌린 특별전을 준비하였고, 이 전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다. “... 백남준의 80주년 탄생일인 2012년 7월 20일에 개막한 본 전시는 그의 전 생애나 특정 시기의 작품을 전시하는 회고전이 아니라 사이버네틱스라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백남준의 사상에서 출발한 작품들로 이뤄진 주제전으로 구성되었다... ” 백남준은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품게 되는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기억을 끄집어내는 행위와 느낌이 아니라, 마치 타인이 우리에게 주는 피드백 못지않은, 혹은 그 피드백보다 훨씬 더 큰 깨달음을 일깨울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과 세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평가한 낙관주의자 백남준. 상식을 파괴하고 기존의 가치에 도전한 백남준의 작품들. 그 앞에서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준비를 하게 된다. 당신은 백남준이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를 되돌아보면서 어떤 노스탤지어를 느끼는가?

안경화 (Ahn Kyung-hwa, 安卿華)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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