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21세기 한국영화: 꿈과 역동성 기획 특집 5 한국인이 사랑하는 영화배우들

영화배우는 시대의 거울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중은 어떤 특정 배우에게 자신의 취향과 열망을 투사하고 있을까? 세 사람을 선택했다.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스크린을 장악해왔고, 장악하고 있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배우들이다

송강호

20년 전 일으킨 지각변동
얼마 전 송강호가 최근작 <밀정>의 흥행에 힘입어 주연작으로 누적관객 1억 명을 돌파한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배우로 등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치로만 환산해서 그의 배우로서의 성과를 치하하자는 건 아니지만, 데뷔 후 20년 동안 총 22편의 영화에서 주역으로 연기한 송강호의 영향력을 입증하는 지표인 것만은 틀림없다.
송강호는 변화의 시대가 빚어낸 우리 시대의 얼굴이다. 1997년 <넘버3>의 삼류 건달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배우의 영화 속 비중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가 좁은 여관방에서 부산 사투리를 내뱉으며 보여주는 특유의 코믹 연기는 관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지만 당시는 코믹과 액션이 결합된 한국형 건달인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한참 기획되고 흥행했던 때였고, 송강호도 그런 영화들의 조연배우 대열에서 다소 두각을 보이는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송강호는 이미 그때부터 한국 영화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맡을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것이
 그런 쪽에서
 가장 풍성하게
 들어오는 것 같다.
 다른 쪽은
 잘 안 어울리잖나.
 럭셔리하고
 인텔리적이고
 멜랑콜리한
 쪽과는
 안 어울리니까
 당연히...”

“내가 맡을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것이 그런 쪽에서 가장 풍성하게 들어오는 것 같다. 다른 쪽은 잘 안 어울리잖나. 럭셔리하고 인텔리적이고 멜랑콜리한 쪽과는 안 어울리니까 당연히...”

그는 그때 기준으로 전혀 ‘스타’가 될 재목이 아니었다. 당시 스크린에서 주연배우로 활약하던 다른 배우들처럼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지지도 않았고, 사투리가 섞인 말투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도 그가 영화 <괴물>(2006), <변호인>(2013)으로 천만 관객을 모으고, <설국열차>(2013)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극 무대에서 다진 단단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특유의 말투와 몸짓을 굳이 교정하지 않은 채 극화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구사하는 그의 모습은 기존 배우들의 것과는 온전히 달랐다. 북한군 오경필 중사로 페이소스 넘치는 색다른 연기를 보여 송강호의 대중적 입지를 굳혀준 작품 <공동경비구역 JSA>(2000)과 <복수는 나의 것>(2002), <박쥐>(2009)에서 함께 작업한 박찬욱 감독은 송강호의 연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한국영화 20년을 통해 배우 송강호의 의미를 찾는다면 ‘모더니티’가 아닐까 싶다. 연기에 있어서의 현대성이랄까, 장르영화로 시작했지만 그 외연을 한국영화 전체로 확장했다. . . 송강호의 특별함이라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송강호는 신인감독들과의 작업에도 적극적이었다. 자신의 두 번째 작품 <우아한 세계>(2007)를 송강호와 함께 만든 한재림 감독은 이미 쟁쟁한 감독들과 일했던 송강호가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선뜻 출연을 승낙한 점을 기억한다. 송강호의 작품 선택 기준은 하나다. 반복되고 소모되는 이미지를 탈피하자는 것이다. 그런 그의 연기를 수렴하는 키워드는 ‘소시민’이다. 그 자신은 “내가 맡을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것이 그런 쪽에서 가장 풍성하게 들어오는 것 같다. 다른 쪽은 잘 안 어울리잖나. (웃음) 럭셔리하고 인텔리적이고 멜랑콜리한 쪽과는 안 어울리니까 당연히. . . (웃음)”라고 유머러스하게 넘기지만 그는 항상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에 닿았다. 조폭 2인자를 연기한 <우아한 세계>에서 그는 그 이면에 숨겨진 중년 가장의 고충이 묻어나는 생활 연기를 잊지 않았고, 시골 형사를 연기한 <살인의 추억>에서는 연쇄살인범 용의자에게 던진 "밥은 먹고 다니냐?”는 즉흥대사로 형사도 사람임을 표현해냈다. 한강 둔치에서 가족과 함께 매점을 운영하던 한 아버지가 괴물에게 딸을 잃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괴물>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송강호는 이 같은 소시민적 얼굴을 극대화해 준다. 민중을 대변하는 그의 얼굴이 정점에 달한 건 <변호인>에서였다. 인권 변호사 출신 고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삼았다고 알려진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의 입을 통해 그가 법정에서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은 스크린 안에 가두어 둘 수 없는 송강호 연기의 생명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표적 예였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살인의 추억> 마지막에 나오는 송강호 클로즈업 장면을 “한 시대를 요약하는 표정”이라 칭하며 송강호를 “어떤 역을 맡아도 자기화해서 송강호적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그 직업, 계층, 성격의 인물에 맞는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창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미세한 일상적인 결에서 감성을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촬영중인 차기작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목숨을 걸고 현장을 기록한 독일기자를 우연히 태워 광주로 가게 된 서울의 택시 운전기사 만섭 역으로 분해, 또 한 번 대한민국 소시민의 활약을 보여줄 예정이다.

전도연

배우들이 믿는 월드 스타
2007년 5월 27일,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 이날 전도연은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이를 잃고 찢어질 듯한 가슴을 안고 사는 여자 신애의 고통을 표현함으로써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낸 것이다. 알랭 들롱에게서 트로피를 건네 받은 전도연은 환하게 웃었다. 칸 국제영화제는 ‘칸의 미래를 책임질 배우’로 전도연과 함께 출연한 송강호를 꼽았고 전도연을 수식하는 언어는 이후 ‘월드 스타’가 되었다.

“전작과 다른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생각처럼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그저 순간순간
 최선의 기회에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전작과 다른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생각처럼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그저 순간순간 최선의 기회에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고등학교 시절 잡지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녀는 영화 이전 TV 드라마에서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화려한 여배우들 사이에서 그저 앳되고 평범한, ‘연기를 안정적으로 하는 조연급 여배우’ 정도로 인식되었다. 명필름에서 제작한 <접속>(1997)은 이 배우의 숨겨진 가능성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스타일링부터 남 달랐다. 예쁘게 보이려는 욕심을 덜고, 자연스러운 화장에 평범한 단발 펌 머리를 감행했다. 이는 당시 그 어떤 주연 여배우도 시도하지 않았던 파격이었다. 모던한 연출 스타일로 한국형 멜로 영화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한 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그 새로움에 일조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전도연의 연기 이력은 간추리기 쉽지 않다. <약속>(1998), <내 마음의 풍금>(1999), <해피 엔드>(1999),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피도 눈물도 없이>(2002년),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인어공주>(2004), <너는 내 운명>(2005) <멋진 하루>(2008) <하녀>(2010), <협녀, 칼의 기억>(2015)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대표작을 돌아보면 다음 작품 결정 행위에 어떤 특정한 패턴이나, 영리한 계산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노출 연기를 감행하며 파격을 선사했던 작품이자, 그 스스로 연기 인생에서 2막을 연 작품으로 꼽는 <해피 엔드>에 출연할 당시 “그런 영화 찍으면 시집가기 어렵다”고 걱정하는 부모님을 “딸 시집 잘 보내려고 배우 시킨 건 아니잖아요”라는 말로 설득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이창동 감독과 송강호와 한다는 이유로 선뜻 작품을 선택한 <밀양>을 제외하고, 그녀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언제나 “좋은 시나리오”이다. 시나리오에만 집중하고, 시나리오에 설득되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딱히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다는 기준은 없다. 그때그때 내 감성과 맞아떨어지는 작품을 선택했다. 전작과 다른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생각처럼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그저 순간순간 최선의 기회에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접속> 이래로 그녀의 연기에는 어느 하나 잘 보이려고, 예뻐 보이려고 하는 거짓 연기가 없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라운드걸 ‘선글라스’를 연기하며 액션을 선보이기 위해 하루 푸쉬업을 3천 번씩 했고, <인어공주>에서는 제주도 해녀 역을 연기하기 위해 수영도 못하면서 잠수 연기를 감행했다.
전도연은 배우들의 신뢰를 받는 배우이기도 하다. 최근 <남과 여>(2015)로 전도연과 함께 호흡을 맞춘 공유는 “그녀는 섬세하고, 함께 호흡하면서 상대 배우에게 굉장한 에너지를 주는 배우다”라고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지난 여름 그녀는 <굿 와이프>로 11년 간 떠나있던 TV드라마에 복귀해 화제를 낳았다. 다음 걸음은 어디로 향할지, 드라마를 마치고 긴 휴식중인 그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하정우

저돌적 흥행 배우
작년 여름 1,270만 관객을 동원한 <암살>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확실히 보여준 하정우는 올해 최고의 화제작인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와 김성훈 감독의 <터널>에서 다시 한 번 ‘믿고 보는’ 흥행 배우로서의 저력을 과시했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 받지 못한 자>(2005)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김기덕 감독의 <시간>(2006), <숨>(2007),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를 통해 변신을 거듭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구축해 왔다. 그는 윤종빈 감독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생생한 페르소나(<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군도: 민란의 시대>(2014))였고, 나홍진 감독의 징글징글한 장르(<추격자>(2008), <황해>(2010))를 구현해낸 아이콘이었고,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2)이나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서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선보인 동력이었다. <더 테러 라이브>(2013)로 신인감독 김병우의 지지자 역할을 자처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대형 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가리지 않을 뿐더러 신인감독과의 작업에도 열려 있다.

<추격자>의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과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카리스마 넘치는 조직 보스, <러브픽션>(2012)의 연애 초보 소설가 사이의 간극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 뒷심은 하정우 특유의 기죽지 않는 도전, 뻔뻔할 정도의 자신감과 유머이다. 관객들은 극을 리드하는 하정우의 강렬한 색깔에 반응한다.
윤종빈 감독의 대학교 졸업작품이기도 한 <용서받지 못한 자>는 2000만원의 적은 제작비로 한국 군대의 모순을 드러낸 수작이었으며, 그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주목 받았다. 이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두 사람은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함께 하며 파트너십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하대세’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이 배우의 계획은 원대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뭐든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뭐든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그는 하루하루 다음날 일을 결정하여 열심히 뛰는 자칭 ‘생활형 연기자’이다. “뭐든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는 지론을 가진 그는 벽돌을 쌓기보다 쌓아놓은 벽돌을 무너뜨리고 도전하는 저돌적인 배우다. 그는 연기뿐만 아니라 <577 프로젝트>(2012)의 기획자로,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4)의 연출자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왔으며, 그림을 그리는 일에도 푹 빠져 있다.

이화정 (Lee Hwa-jung, 李和貞) 씨네21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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