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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1]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마지막 요람 ‘아리랑요양원’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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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1]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마지막 요람 ‘아리랑요양원’에 가다

문영숙(사단법인 독립운동가 최재형 기념사업회 이사장)


2019년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한완상) 대표단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방문했을 때였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여러 일정 중에 마지막 일정이 ‘아리랑요양원’ 방문이었다.

아리랑요양원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 중심에서 동남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아흐마드야사위’ 마을의 ‘알리셰르나보이’ 거리에 있었다. 타쉬켄트 시내 롯데 호텔을 떠나 아리랑 요양원으로 가는 길 좌우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한 체리 농장이 펼쳐져 있었고, 가끔은 황금색으로 물든 밀밭도 눈에 띄었다. 필자의 눈에는 저 광활한 옥토도 고려인들이 일군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랑요양원은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운영하고 있었다. 2006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양국 정부가,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을 앞두고 ‘고려인 독거노인 양로원 건립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고, 이 합의가 4년 만에 열매를 맺어 2010년 3월 아리랑요양원이 문을 열었다. 이때 우리나라 재외동포재단에서 60여만 달러를 들여 우즈베키스탄 최고의 요양원으로 꾸몄다고 한다.

아리랑요양원에 도착하자 김나영 원장이 우리를 반겼다. 김나영 원장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사회복지사로서 서울 등 한국의 사회복지센터에서 일을 하다가 2009년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독거노인요양원 자원봉사자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30대에 왔는데 어느새 마흔이 넘었다며 웃는 모습이 씩씩하고 쾌활해서 노인들을 즐겁게 보살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요양원 입구 도로는 새로 포장한 듯 깔끔했고 내부의 집기들도 새것들이 많았으며 CCTV 등 첨단 시설들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김나영 원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그해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했을 때,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아리랑요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에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부인이 직접 나서서 타슈켄트 시 정부가 요양원의 모든 시설들을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김나영 원장은 정원에도 아름다운 꽃들을 가득 심어 요양원 어르신들의 삶의 질은 물론 행복지수까지 높아졌다고 기뻐했다.

요양원에는 고려인 1세대 38명(할머니 25명, 할아버지 13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평균 나이가 86세였고 할머니 두 분은 96세였다. 96세 된 두 분은 강제이주 당시 열네 살이었다니 이주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 같았다.

대표단 위원장이 “여러분이 열심히 살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자 할머니들은 기다렸다는 듯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소. 우리는 짐짝처럼 버려졌더랬소. 많은 사람이 죽었고 산 사람은 뿔뿔이 흩어진 채 죽지 못해 살았소.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으니 자랑 아니오? 우릴 잊지 않고 찾아와주니 정말 고맙소”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나영 원장이 고령의 두 할머니에게 노래를 부탁했다. 두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소녀 같은 감성과 떨리는 목소리로 선뜻 노래를 불렀다. 노랫말에는 고려인들의 고단한 삶과 조국을 향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달 밝다. 달이 밝다. 하늘 청천에 달이 밝다.
저 달은 나와 같이 늙을 줄 모르는가?
나는 어이 이리 늙었는가?
달 밝다. 달이 밝다. 하늘 청천에 달이 밝다.
꽃은 피어 열흘 가고 나도 바로 늙었구나.
달 밝다. 달이 밝아. 하늘 청천에 달이 밝아.


할머니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역시 96세의 할머니가 노래를 이어 불렀다. 콜호즈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르던 노동요였다.


씨를 활활 뿌려라.
즐거운 마을에 새봄이 와
파종 시절을 재촉한다.
뜨락또르 뜨르릉 밭을 갈아라.
큰드름 잔드름 빨리 짓자.
에헤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 먹고 왓싹 왓싹 자라나게.
이 넓은 논판에 씨 뿌려
풍년의 가을이 돌아오면
누렇게 누렇게 벼 이삭
우거 우거져 파도 치지.
에헤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먹고 왓싹 왓싹 자라나게.’


할머니들은 놀랄 만큼 생생한 기억력으로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정확하게 노래를 불렀다. 김 원장에게 어르신들의 건강 비결을 물었다. 김 원장은 노인들의 건강은 예측할 수 없다며 늘 함께 웃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처럼, 딸처럼 곁에 있어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억 속에 남아있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모두 채록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마을에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서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문득 생각나서 아리랑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이 오래오래 사시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지금도 그분들이 부르던 노랫말이 귓가에 맴도는데 강제이주 84년째인 2021년 올해 안타깝게도 두 어르신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고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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