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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식 바로 알리기의 주역,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인터뷰]한식 바로 알리기의 주역,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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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음식 평론가, 경향신문사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35년간 음식과 맛집을 찾아다녔고 지금도 예전의 기록 등을 보며 공부하는 중인 황광해라고 합니다.


2. 기자에서 음식칼럼니스트가 되셨습니다.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자 생활하는 중에도 음식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습니다. 기자 생활 중에도 전국의 맛집들을 다니며 취재하고 소개했습니다. 1980, 90년대 다녔던 식당들은 지금 대부분 노포가 되어 있습니다.


3. 설을 앞두고 있어서 우리 한식 중에서도 설음식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설음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떡국인데, 이 떡국에 대한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루를 뜻합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니 나름 의미가 깊습니다. 모든 음식은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제사를 받들어 모시고,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는 유교적 덕목)’에서 비롯됩니다. 제사 모시고, 손님맞이 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음식입니다. 설날도 당연히 조상에 대한 제사 혹은 제사 비슷한 행사를 치러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일마다 모시는 기제사와 더불어 추석, 설날에 제사 음식을 차리는 것도 오래전부터 조상에 대한 제사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떡국은 쌀 등으로 곱게 뺀 가래떡을 말린 후, 잘게 썰어서 끊인 국물 음식입니다. 제사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갓 나오는 신선한 식재료도 내놓았습니다. 그러데 겨울에는 새로운 식재료가 나오지 않아 지난가을 수확한 쌀로 귀한 떡을 만들고, 그 떡을 이용하여 탕반음식을 만들어 정성을 보였던 것입니다.
남쪽은 떡국, 북쪽은 만두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반도는 밀 생산이 많지 않습니다. 밀은 대부분 누룩을 만드는 데 사용했고, 음식에 사용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 밀가루가 조금씩 흔해지면서 한반도 북쪽 지역에서는 중국의 영향으로 만두를 먹었을 뿐입니다. 떡국은 ‘떡+국’입니다. 제사 등에나 사용하는 귀한 떡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국물음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고명 등은 소고기, 닭고기, 꿩고기 등을 사용했습니다.


4. 떡국 외에 다른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흔히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부르며 ‘작은 설날’로 여겼습니다. 동지는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입니다. 이날부터 밤은 조금씩 짧아지고, 낮은 조금씩 길어집니다. 낮은 양(陽)이고 밤은 음(陰)입니다. 동짓날을 기점으로 양이 늘어나고, 음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짓날을 작은 설날이라고 불렀고 새로운 시작으로 여겼습니다.
팥죽은 색깔이 붉습니다. 붉은 것은 곧 태양, 불을 의미하고 양으로 여겼습니다. 팥, 팥죽은 양의 기운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이유입니다. 떡국이나 팥죽 모두 새알심을 넣습니다. 새알심이 나이를 의미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속일 뿐입니다.
영조대왕은 팥죽이 벽사(闢邪)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팥죽을 대문이나 담벼락에 바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미신”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5. 새해 계획이나 바람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음식에 관한 자료들 보면서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도 한식 바로 알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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