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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콘텐츠] 한국 영화가 칸의 구애를 받기까지

[디지털콘텐츠] 한국 영화가 칸의 구애를 받기까지

윤성은(영화평론가)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년 만에 완전 정상화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 두 편이 초청됐을 때부터 국내 언론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약 40개의 매체가 칸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고, 가기 전부터 두 사람의 수상 가능성을 점쳤다. 3년 전 한국 영화가 가장 큰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이번에는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배우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됐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정말 칸 트로피를 들고 금의환향했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한국 영화가 두 개의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찬욱과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칸영화제에서 각별히 애정을 갖고 있는 감독들로, 신작의 초청이 놀라운 것은 아니지만 초청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작품들이 배정되는 경쟁 부문에서 한국 영화라는 국적을 달고 함께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는 데 의의가 크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 <박쥐> 등으로 이미 수상의 영예를 안은 적이 있지만, 송강호는 <박쥐>(박찬욱, 2009)와 <기생충>(봉준호, 2019) 초청 당시에도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됐으나 아쉽게 상을 놓친 바 있다. 지난해 비경쟁 부문 진출작이었던 <비상선언>(한재림, 2021)의 주연배우이자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맹활약하다가 올해에는 남우주연상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아시아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칸영화제 75년 역사상 다섯 번째라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송강호의 이번 수상은 우리 영화계의 기쁨일 뿐 아니라 칸영화제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의 구애를 받게 되기까지는 오랜 잠복기가 있었다. 최초의 한국 영화로 공식 기록된 <의리적 구토>(김도산, 1919)의 개봉 이후, 일제의 탄압과 전쟁의 화마, 군부정권의 검열이 계속된 20세기 초·중반은 우리 영화인들에게 고난의 시간이었다. 물론 암담한 시기에도 뛰어난 작가들이 종종 등장해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명작들을 내놓았지만, 해외에서 특히 서구사회에서 한국 영화는 생소한 것이었다. 칸은 3대 국제영화제 중 베를린이나 베니스보다 더 늦게 한국 영화에 눈을 떴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2002)이 한국 영화 처음으로 칸에서 수상했을 때가 겨우 20년 전이라는 사실이 MZ세대들에게는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부터는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임상수, 봉준호 등이 끊임없이 칸영화제 레드카펫를 밟았고, <올드보이>(심사위원대상), <밀양>(여우주연상), <박쥐>(심사위원상), <시>(각본상) 등이 수상에 성공하면서 해외에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밑거름이 됐다.


2019년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까지 석권했을 때, 한국 영화인들은 비로소 영화도 ‘한류’ 콘텐츠에 합류하게 됐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은 오랫동안 관객들의 발을 집 안에 묶어 놓았고, 한국 영화계와 극장가는 끝을 알 수 없는 터널로 들어섰다. 놀랍게도 이 시기에 OTT 플랫폼에서 오픈된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극장에 풀리지 못하고 OTT로 간 영화부터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중에서도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불릴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오징어 게임>(황동혁, 2021)이었다. 이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이정재가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자신이 연출한 <헌트>(2022)로 초청되어 레드카펫을 밟은 것은 이러한 배경 없이 설명할 수 없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이미 완성된 영화들은 개봉을 늦췄지만, 한편에서는 K-콘텐츠 열풍에 힘입어 마스크를 쓴 채로 프로덕션을 계속했는데,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도 이러한 혼돈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칸영화제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역학 속에 놓여 있는 하나의 이벤트일 뿐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영화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구축이나 해외 세일즈 면에서의 프리미엄 등 그 이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문화 콘텐츠 분야에 뜻을 둔 어린 세대들에게 올해 우리 영화인들이 칸에서 가져온 두 개의 트로피는 꽤 자극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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