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헝가리대사 임기를 마치며
초머 모세(Dr. Csoma Mozes, 주한 헝가리대사)
저와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의 인연은 지난 2000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KF 장학생으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는 부다페스트의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습니다. 1989년에 헝가리가 사회주의 국가 중 최초로 대한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지만, 1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한국은 중부 유럽에서 중국, 일본에 비해 미지의 나라였습니다. 당시 헝가리에는 한국어 전공이나 한국학과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1970년대 초 북한에서 유학한 가보르 오슈바트(Gabor Osvath) 선생님에게 따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많은 헝가리 사람들은 역사학도이자 정치학도인 제가 왜 그렇게 멀리 떨어진 미지의 나라의 언어와 역사를 공부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 중의 하나이며,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 아시아 국가는 처음이었지만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었기에 많이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KF의 장학생으로 6개월 동안 한국어를 공부하고, 책으로만 접했던 한국의 명소들을 직접 방문한 경험은 아직까지 제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연세어학당에서 처음 본 한국 영화 <쉬리>, KF 주최 만찬, 지리산 등으로 현장 학습을 간 일 그리고 다양한 한국 문화 체험은 한국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나아가 지금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한국학자의 길로 들어선 후에는 두 차례에 걸쳐 체한 연구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헝가리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국학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문헌 조사를 하는 등 한국학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처음 장학생으로 시작한 저와 KF와의 인연은 제 개인적인 관계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8년 최초로 헝가리 국립대학에 한국학 학사과정 설치, 2013년 한국학 석사과정 설치 그리고 2017년 한국학 박사과정을 설치하기까지 저의 한국학 연구 활동 중 KF를 통한 경험과 지원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10여 년 동안 많은 제자를 KF 장학생으로 추천해 한국에서 수학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저는 지난 2018년 주한 헝가리대사로 부임하면서 최초의 KF 장학생 출신 외국 대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한국-헝가리 관계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해 왔습니다. 이제는 4년간의 대사 임기를 마치고 8월에 헝가리 대학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다시 제자들을 장학생으로 보내 한국학 인재로 키우는 일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KF와의 인연은 저에게서 끝나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처음 장학생으로 한국에 왔을 때 송별 만찬에서 작별 인사를 했던 이방복 부장을 20여 년 만에 KF 행사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서로 이름을 잊지 않고 당시를 기억하고 있어, 시간이 지나도 인연이란 참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헝가리대사로 부임한 후부터 KF 장학생 출신 최초의 주한 외국 대사로서 후배 장학생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후배들도 미래에 주한 외국 대사가 될 수 있고, 외교관이 되지 않더라도 재단의 장학생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본국과 한국의 발전에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비롯한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공부하고 연구할 기회를 주는 KF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방복 부장을 비롯해 재단의 모든 관계자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향후에도 해외 한국학 및 미래의 한국학 인재 양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KF의 활약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