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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 우편함] 스페인 말라가에서

[KF 우편함] 스페인 말라가에서

어다은(스페인 말라가대학교 객원교수)


팬데믹으로 인한 오랜 온라인 수업 후 학교로 다시 돌아간 첫날을 기억한다.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주문한 후 계산하려는데 5센트가 모자랐다. 지갑을 탈탈 털어 동전을 모으던 중 옆에 있던 한 학생이 동전을 쓱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빌려 드릴까요?” 마침 모은 동전이 딱 5센트가 되어 “괜찮아요. 고마워요”라고 대답하고는 학생과 서로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직전 한국어 수업에서 ‘~어 드릴까요?’를 공부하면서 똑같은 상황을 연습했기 때문이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현실에서 완벽하게 적용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다니, 온라인 수업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대면 수업의 즐거움이다.

지난 5월, 스페인에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며 말라가대학교에서도 드디어 마스크를 벗고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때까지 학생들의 얼굴은 컴퓨터 화면상으로만 볼 수 있었고, 대면 수업으로 돌아간 후에는 마스크를 써야 했기 때문에 온전한 얼굴을 보는 것은 낯설고 설렜다. 가장 좋은 건 수업 중 마스크 속에 가려진 학생들의 표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답하기 전 긴장하는 표정, 잘 말하고 뿌듯해하는 표정, 궁금한 것이 해소되어 시원하다는 표정, 내가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수업의 강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정하듯 학생들도 내 표정을 읽으며 반응할 것이다.

이렇게 서서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가고 있다. 학기 말에는 동아시아학과 3학년 학생들과 함께 한식집에 갔다. 스페인에 와서 팬데믹 바로 전 학기 학생들과 한식집에 간 이후로 2년만이었다. 잔뜩 차려 입고 나온 학생들은 꼭 결혼식 피로연 자리 같다며 깔깔거리고, 신중하게 메뉴를 골랐다. 이미 한식집에 여러 번 온 적이 있는 학생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양념치킨과 잡채, 혹은 양념치킨과 비빔밥의 조합으로 익숙하게 메뉴 선정을 마치고는 한국인 사장님께 직접 한국어로 주문했다. 얼마 전 수업에서 메뉴판을 보며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어떻게 먹는지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을 공부한 터였다. 식사 후에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달고나 게임을 함께 하고 아시아 마트 구경 후 초코파이를 나눠 먹으며 곧 한국에 가는 학생들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다음 학기에는 3학년 학생들 절반 이상이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간다. 팬데믹으로 인해 이미 여러 학기 미뤄진 한국행이라 학생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 또 하나 기쁜 소식은 말라가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 한국어 상급 과정에 해당하는 한국어 9, 10 수업이 개설되는 것이다. 2011년 말라가대학교에 동아시아학 전공이 생기고 한국어 수업이 개설된 후 꾸준히 상급 레벨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있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다음 과정이 열렸다. 더불어 그 다음 학기에는 한-서 번역 수업도 개설된다. 동아시아학과의 다수 학생이 한국 문학, 영화, 게임, 웹툰과 같은 콘텐츠 번역에 관심이 많고 진로로 삼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에 가는 학생들도, 말라가에 남아서 상급 과정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남은 한 해 원하는 것들을 모두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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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을 가르친 학생들의 졸업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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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간 한식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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