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클래식의 ‘이유 있는’ 반란
황효원(이투데이 기자)
클래식 음악의 변방에 가까웠던 한국 클래식이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K-클래식’의 인기를 분석한 다큐가 나왔을 정도니 이제는 클래식에도 접두어 ‘K’(케이)를 붙이는 것이 낯설지 않다.
이러한 배경에는 세계적 권위의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잇달아 낭보를 전한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있다. 지난해 6월 세계 3대 음악 경연 대회인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바리톤 김태한이 아시아권 남성 음악가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적 권위의 국제 음악 콩쿠르인 2022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자 임윤찬, 한국인 최초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자 양인모 등 손에 꼽기도 벅찰 정도다.
기악, 성악 부문 대표 콩쿠르 석권에 이어 지휘 부문 콩쿠르에서 들려온 우승 소식은 다시금 K-클래식의 저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젊은 지휘자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에서 우승한 윤한결은 한국인 지휘자 최초로 이 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해 11월 영국 클래식 아티스트 전문 매니지먼트사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 계약을 맺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이다. 한국 클래식 시장의 높아진 위상에 지난해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허바우 등 세계 3대 오케스트라가 잇달아 내한해 클래식 대전을 펼쳤고, 올해도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의 내한이 연중 이어진다.
물론 지금의 K-클래식 호황이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다. 지난 50여 년간 대한민국 연주가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성과의 토대 위에 탄생한 결과다. 단연 K-클래식의 시초는 세계적 성악가 반열에 오른 조수미와 지휘자 정명훈이다. 이어 2015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K-클래식의 열풍을 잇는 기수로 떠올랐다.
클래식의 변방이었던 대한민국이 이처럼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벨기에 클래식 음악 전문 프로듀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티에리 로로는 다큐를 통해 외국인의 시각으로 그 비결을 살펴봤다. 그가 제작한 다큐 ‘K-클래식 제너레이션’은 K-팝에 이어 K-클래식을 이끈 요인으로 클래식 연주자와 함께 한국의 젊은 관객들을 꼽았다. 로로 감독은 한국 음악가들에 대해 풍부한 감정을 바탕으로 이를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며 이탈리아 ‘시칠리아인’에 비유했다. 최근 등장한 K-클래식 세대가 음악을 통해 내면의 이야기를 발산하는 에너지와 표현력까지 갖췄다는 것이다. 한국 관객의 열정적인 반응도 빼놓을 수 없다. 클래식 음악의 발상지인 유럽에서는 관객 대부분이 노년층이지만, 한국은 이와 달리 클래식 음악가를 마치 록스타처럼 받아들여 클래식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데 한몫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부모의 헌신까지 더해져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휩쓸고 있다.
유례없는 K-클래식의 흥행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클래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됐지만, 빛에 가려진 그림자도 살펴봐야 한다. 국제 콩쿠르 우승자를 중심으로 한 팬덤이 한국 클래식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세계 1등’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 연주자가 설 수 있는 무대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한국의 클래식 공연은 티켓 파워를 갖춘 소수 ‘클래식 스타’의 명성에 기대고 있다. 아티스트의 명성에 기댄 공연 향유는 마치 명품 소비 성향과 닮아 있어 애호가가 아닌 대중들까지 한 번쯤 나를 위한 문화 활동으로 여겨 클래식 공연에 유입되도록 한다. 반면 세계 1등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 한국의 음악 영재들에게 주어지는 무대의 숫자와 관심은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클래식계에서 심화된 스타 연주자 의존 현상을 줄이고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인재 양성을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이 더욱 중요한 때다. 국내 유수 음악제를 K-클래식 해외 확산 거점이자 문화 관광자원으로 성장시키는 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언론과 대중은 신동, 영재 등의 타이틀에 주목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연주자의 뛰어난 음악을 더 많은 이들에게 퍼뜨릴 무대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