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과 멋이 숨 쉬는 옹기
옹기는 예로부터 한반도 각지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온 그릇입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한국인이 옹기를 이용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357년에 만든 고구려(37 BCE–668 CE)의 무덤 벽화에도 옹기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흙으로 빚은 뒤 잿물을 입혀 구운 도자기에 속하는 옹기는 신분이 높거나 돈이 많아야만 가질 수 있었던 백자, 청자와는 달리 서민들의 실생활 여러 곳에서 부담 없이 활용됐습니다. 쌀을 보관하는 쌀독, 젓갈류를 보관하는 젓 독, 김치나 장을 보관하는 알배기, 불을 밝히는 등잔, 붓을 보관하는 필통 등 전통 옹기의 쓰임새는 다양하며, 한국인의 생활 곳곳에서 숨 쉬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공기와 소통하는 그릇
다소 투박하게 보일 수 있는 옹기의 원재료, 흙은 놀라운 효능을 보이며 한 걸음 앞선 선조들의 지혜를 느끼게 합니다. 주원료인 도기토는 알갱이가 매우 굵어 불에 구우면 옹기의 표면에 아주 작은 구멍을 만듭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구멍을 통해 공기가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순환하며, 안에 담긴 음식을 알맞게 익혀줍니다. 간장, 된장, 김치, 젓갈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발효식품은 모두 이 옹기 안에서 가장 맛있게 숙성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씨앗이나 쌀과 같은 장기간 저장해야 하는 곡식과 옷감, 책, 약재 등을 옹기에 넣어두면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습니다. 옹기를 구울 때 연료인 나무가 타면서 발생한 검댕이(탄소덩어리)가 옹기에 입혀지면서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옹기의 이점은 옹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됐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옹기의 주원료인 찰흙은 산에서 얻는 것이고, 진흙을 굽기 전에 바르는 잿물의 재료는 나뭇잎이 썩어서 만들어지는 부엽토와 재입니다. 그렇기에 사용하다가 그릇에 금이 가거나 깨지더라도 산자락이나 들판에 한데 모아두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옹기는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소멸하기까지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우리가 쓰는 그릇 중 가장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를 마주하는 옹기
오늘날 옹기는 컵, 주전자, 접시, 냄비, 냉장고 단지, 꽃병 등 현대인의 삶에 적합한 생활 도구로 새롭게 제작되고 있습니다.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류에 밀려 예전만큼 쓰이지는 않아도, 달라진 주거 환경에 맞는 규격과 디자인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웰빙문화의 흐름을 타고 옹기의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는데, 이는 옹기의 뛰어난 통기성과 보존성이 과학적으로도 그 진가를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옹기는 단순히 ‘옛날의 것’이 아닌 현대인의 삶에 자연과 건강을 회복시켜줄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청자와 백자에 비해 투박하고 수수하지만, 한국인의 식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온 옹기. 오늘 우리 식탁에 전통과 멋이 숨 쉬는 옹기 그릇 하나 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글 박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