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만나는 한국문화: 이탈리아 파브리아노 종이박물관
“한국에서 불어온 동양의 바람” 전시회
전시된 한지 작품을 흥미롭게 감상하고 있는 이탈리아 시민들 | 사진출처: 주이탈리아한국문화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이 즐겨 썼다는 종이 ‘파브리아노’를 아시나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이 1200년대부터 미술 종이 분야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는데, 그것이 바로 파브리아노입니다. 요즘 지폐에 흔히 쓰이는 워터마크가 오래 전 이곳에서 제작자의 상표로 활용되었다고 하니 당시의 제지 기술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탈리아 파브리아노에서 한지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지난 6월 10일부터 8월 31일 까지 파브리아노 종이박물관에서 '한국에서 불어온 동양의 바람'(Vento d'Oriente dalla Corea)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펼쳐진 것인데요. 파브리아노 종이박물관은 7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박물관이자 혁신적인 제지술의 본산지로 알려져 있어 이곳에서 한지 전시회가 열린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한지 문화제의 일환으로 한지 패션쇼, 한지 뜨기 시연, 워크숍 등이 열렸는데 특히 패션쇼에는 유네스코 180개 도시 관계자들을 비롯해 4,000여 명의 관람객들이 참석했습니다. 한지와 한지 직물로 제작된 한복 및 혼례복, 한국의 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지 의상 50여 점을 선보였고, 이 모습이 이탈리아 국영방송을 통해 TV로 생중계되었습니다.
또 하나 반가운 소식은 2022년까지 파브리아노 종이박물관에 한지 전시관이 조성될 예정이라는 것인데요. 닥종이 인형, 한지 유물, 전통공예, 현대조형작품 등이 전시되어 유럽에 본격적으로 한지 문화를 알리는 창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파브리아노 시도 내년 국내에서 열릴 한지문화제에 홍보관을 설치할 계획이어서 이탈리아의 제지 기술과 문화를 국내에서 접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 고유의 제조법으로 만드는 종이 '한지'의 매력이 널리 전해져 아시아는 물론 미주와 유럽에서도 현지인들과 다양하게 교류 중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우리가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자성의 마음도 가져봅니다. 오래된 문화 소품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단아하고 세련된 멋을 지닌 ‘한국의 종이’, ‘한국인의 종이’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글 김신영
한지로 만들어진 수공예품, 인형 등의 전시물 | 사진출처: 주이탈리아한국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