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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의 한국 체류를 통해 느낀 새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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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 발전을 통해 몽골의 미래를 꿈꾸다 5년 만의 한국 체류를 통해 느낀 새로움 한국어를 전공하여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도 배우고 한국 사람들도 많이 만나 보았다.몽골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임강사로 취직하게 된 나는 2010년 한국국제교류재단 체한연구 펠로에 선발되어 한국을 다시 찾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한국을 좀 더 배우고 한국을 깊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많은 추억을 남겨 주었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오해와 함께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

나는 1992년 몽골 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몽골은 사회주의 체제를 벗어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각 국가와의 수교가 이루어졌고, 외국어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외국어는 인기학과였다. 마침 외국어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를 설치해 1회 신입생을 뽑는데 나도 그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입학하게 되었다. 처음 한국어를 배울 때 나는 북한밖에 몰랐기 때문에 북한 사람에게 배우는 줄로 알고 있었다. 한국어를 한달 쯤 배우고 나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자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서 온 것을 알고 우리는 모두 의아했다. 우리가 듣고 상상했던 한국인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우린 중학교 때 자본주의 국가는 사람들한테 일을 많이 시키고 돈도 안 주며 가난한 사람이 엄청 많다고 배웠기에 그렇게 일 많이 하는 사람은 당연히 얼굴이 새카맣게 타서 지저분할 것으로 상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가르친 한국인 선생님은 뽀얀 얼굴의 깨끗한 사람이어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정말 무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한국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싶었던 나는 2000년 한국국제교육진흥원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경희대학교에서 6개월의 어학연수를 마친 후 2001년 3월에 서울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의 발전과 변화

지난 2005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나는 귀국해 몽골 인문대학교에서 5년 동안 근무했다. 이후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체한연구 펠로로 선정되어 다시 5년 만에 한국에서 체류하게 되었다. 한국은 그 동안 달라진 것이 너무나 많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외국인에 대한 행정관리였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신속하고 친절한 서비스부터 국민건강보험의 외국인 가입까지 ‘외국인은 안 된다’라는 제약이 많았던 2000년대 초기와는 달리 이젠 ‘외국인도 되는’ 2010년대가 된 것이다. 방송국도 다문화 가정, 외국 문화 소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화의 이해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외에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 IT, 신기술의 끊임 없는 등장, 의학의 발전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대학교 연구실에 있으면서 연구와 관련된 자료를 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 직접 갈 필요 없이 바로 대학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었고, 필요한 부분도 프린트할 수 있어서 ‘세상이 이렇게 편해졌구나’ 싶었다. 패션 문화도 많이 바뀌어 여성들의 옷차림 또한 많이 개방화 된 것 같다. 처음 한국 유학 시절에는 짧은 치마나 롱부츠,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은 찾아보기 어려운 옷차림이었으니 말이다.

잊지 못할 한국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

한국 전통 악기 체험한국국제교류재단은 펠로들을 위해 한국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가을 문화체험에서 10개국에서 온 16명의 펠로가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 깊었던 것은 안동 하회마을과 빗내농악전수관 체험이었다. 안동 하회마을은 옛 유명 양반들이 살았던, 현재 전통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민속마을로 민박 체험도 가능하다는 것을 외국인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우리 일행은 안동에서 보물 제182호 임청각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태어난 집에 묵었다. 유명한 양반 집에 묵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자부심과 자랑거리가 생긴 듯했다.
문화체험의 셋째 날에 김천에 올라가 빗내농악전수관에 들렀다. 담당 선생님이 한국 농악의 역사를 잠깐 설명해 주시면서 꽹과리, 징, 북 치는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는 농악놀이를 20 여 분간 배우고 나서 꽹과리, 징, 북의 박자를 맞추어 3분간의 공연을 훌륭하게 해내 잘 배웠다는 칭찬을 들었다. 참으로 즐거운 체험이었다.
몽골에도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학문적인 지원 및 문화답사 지원 덕에 5년만의 한국 체류 체험은 나에게 한국 문화 뿐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의 변화를 다시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국의 문화유산 보존 방법, 한국을 세계에 소개하고 알리는 여러 프로그램, 한국의 서비스 문화, 한국의 신기술 개발 등 정신문화의 발달은 우리 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몽골의 풍부한 지하 자원과 함께 개발한다면 몽골의 발전도 머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에르데네수렝 다야아상뷰(Erdenesuren Davaasambuu)
몽골 인문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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