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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호주, ‘미들 파워’ 간의 만남

한국과 호주의 각계 지도급 인사들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으로 양국 관계를 보다 심화, 발전시키고자 기획된 ‘제1차 한-호 리더스 포럼’이 호주 캔버라에서 개최되었다. 포럼에서 논의되었던 핵심 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10월 14~15일 이틀에 걸쳐서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 ‘제1차 한-호 리더스 포럼’이 개최되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후원하에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이숙종)과 호주국립대학(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총장: Ian Chubb)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포럼에 한국 측에서는 김진현 전 과학기술부장관, 김우상 주호주 대사, 김병국 전 외교안보수석, 조현 에너지대사, 권영태 포항제철 사장, 박웅서 UI 에너지 명예회장, 배명복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 각계의 대표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 학계에서는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장, 이경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성극제 경희대 국제대학원장이 참석했고, 필자도 한국 측 참석자의 일원으로 함께했다. 호주 측 역시 김형아 교수를 비롯한 호주국립대학 교수들 외에도 사이몬 크린(Simon Crean) 재무장관, 마이클 레스트랑제(Michael L’Estrange) 외무차관, 맥 윌리엄스(Mack Williams) 전 주한 호주대사 등의 정부 인사와 매쿼리 그룹의 존 워커(John Walker) 회장, <더 오스트레일리안(The Australian)>지의 폴 켈리(Paul Kelly) 편집장, 로위(Lowy Institute) 연구소의 앨런 진젤(Allan Gyngell) 소장 등 호주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들이 참여해 ‘번영을 위한 파트너십’이라는 주제하에 양국의 외교정책, 지역안보 및 협력, 그리고 무역 및 경제관계 등의 현안 이슈들에 대해서 열띤 논의를 펼쳤다.



공동의 외교정책 목표 확인
한국과 호주 양국은 외교정책 목표와 지향점에서 놀라울 정도의 일치성을 보인다. 지난 2007년 말 출범한 호주 노동당 신정부의 외교정책은 ‘미국과의 동맹관계 중시’, ‘UN을 통한 다자협력 강화’, 그리고 ‘아태 지역과의 포괄적 협력’이라는 3대 축을 기반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추구해온 외교정책의 주안점과 큰 틀에서 합치한다. 특히 한국 측 발제자(김병국 교수)는 한국의 신정부에 대해 과거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총체적으로 거부한다는, 이른바 ‘Anything But Roh(ABR)’식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며, 오히려 대북정책을 포함한 신정부의 외교정책은 노무현 정부가 추구한 정책들을 수단과 매개로 추진되는 실용주의임을 강조했다. 양국이 공유하는 외교정책상의 큰 틀은 당연히 한국과 호주의 협력 가능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전제가 되며, 양국 참가자들은 이러한 공유된 전제하에 북한 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 차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차원 그리고 기후변화, 반테러리즘, 군축 등 글로벌 차원의 현안 문제에 대한 한국과 호주 양국 간의 구체적인 공조 및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 부상에 대한 협력 필요
특히 양국 간 지역 협력의 차원에서 회의에서 제기된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가 ‘중국의 부상’ 문제였다.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주요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동시에 중국과 긴밀한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과 호주 양국에게는 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약화, 그리고 이로 인한 중미 양국 간의 미묘한 긴장관계, 나아가서는 대립관계가 상당히 불편한 현실이 될 수 있음이 지적되었다. 중국의 부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모두 존재했지만, 한국과 호주가 당면할 수 있는 딜레마적 상황, 예컨대 극단적으로는 중국과 미국 중 어느 한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 호주는 서로 공조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고 새로운 지역 질서의 요소로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경제 규모나 국력 면에서 유사한 수준이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치경제적 가치와 제도를 공유하는 양국이 이른바 ‘미들 파워’로서 지역 및 글로벌 차원에서 공조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에 양국 참가자들이 의견을 함께하였다.

새로운 경제적 상호 보완성 개발
양국은 상호 보완적 경제에 입각하여 긴밀한 경제관계를 유지•발전시켜왔으나, 이러한 경제관계를 보다 심화시키기 위해서 이른바 ‘새로운 상호 보완성(new complementarity)’을 개척하여 새로운 분야로 협력을 확대•다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열띤 논의가 벌어졌다. 한국은 호주의 4대 교역 상대국이고 호주는 한국의 8대 교역 상대국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전체 소모 광물자원의 3분의 1을 호주에 의존하면서, 중국 및 일본에 이어 호주 에너지 및 자원 수출에서 제3위 시장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호주로부터 자원 및 쇠고기, 농산품 등 주로 1차 산업 품목을 수입하는 데 반해서 호주는 한국으로부터 자동차, 휴대전화 등 2차 산업 공산품을 수입하고 있다. 양국 경제관계의 심화를 위해서는 이와 같은 보완적 무역 구조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호 보완성을 찾아 사회간접자본 개발은 물론 금융, 관광, 교육 등의 서비스 산업 분야로 협력관계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을 양측 참가자 모두가 지적했다.
한국과 호주 양국 간 관계의 중요성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하고 있던 필자로서도 이번 한-호 포럼은 양국 간 협력관계가 왜 전략적 차원에서 중요한지를 보다 명쾌하고 체계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좋은 학습의 장이었다. 아직도 한국 내에서 호주에 대한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호주는 북미나 유럽에 이은 자녀 교육과 유학의 차선적 장소나 관광 휴양지, 또는 일부 중산층의 이민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 필자는 호주 참가자들로부터 호주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지도 역시 높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인구는 한국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호주는 한반도 전체의 약 35배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갖고 있다. 그 너른 영토만큼이나 호주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 포럼의 영역 이외에도 한국학의 진흥이나 문화 교류의 진작 등 국제교류재단 사업 분야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이 바로 호주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번 한-호 포럼은 양국의 각계 지도급 인사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양국 관계를 보다 심화시키고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사회적 반향의 측면에서 이와 같은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속성이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일회성 포럼이 아니라 지속적인 포럼으로 자리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내년의 제2차 한-호 리더십 포럼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