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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학이 함께한 천년 고도 경주 답사

지난 4월 16일, 한국국제교류재단 주관으로 2박 3일의 답사를 떠났다. 서울을 벗어난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 창밖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푸른 산도 함께 달렸다. 진주, 통영, 김해, 울산 코스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버스는 경주에서 멈춰 섰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경주는 도시 전체가 한 권의 역사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마치 천년고송(千年古松)의 솔향 같은 역사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는 가이드의 생생한 설명을 들으면서 석굴암과 불국사, 천마총, 첨성대 등을 둘러보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신라인과 데이트를 하듯이 나도 모르게 그 곳에 흠뻑 취해버렸다.
산길을 따라 석굴암에 도착한 우리는 일시에 발길을 멈추었다. 그 높은 산에서 이렇게 크고 정교한 불상 조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역사의 위대함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는 것 같다. 나는 갑자기 나 자신이 작아진 듯하며 할 말을 잃었다. 신라인의 신기(神技)에 대해 경위지심이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불국사를 향했다. “흰 달빚 자하문/ 대웅전 큰 보살/ 범영루 뜬 구름…” 시인 박목월의 <불국사>가 떠올랐다. 마치 신라, 시인 그리고 내가 모두 한순간에 여기에 모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봄답지 않게 햇빛이 눈부시게 강하다. 나는 석가탑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랑이 생각났다. 정말 그림자가 없는 건가? 무척 궁금했다. 아니다. 그림자가 있구나. 나는 웃었다. 매듭이 풀린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지만 약간의 아쉬움도 들었다. 그렇지만 늘 만족하고, 편안하고, 완벽한 것만 있으면 즐거운 여행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약간 아쉽고, 부족하고,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첨성대로 가는 길에 나는 일행과 떨어졌다. 길에 세워진 시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경주 출신의 김동리를 비롯해 박목월, 문효치, 김년균 등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이러한 역사 유적지에서 시도 음미할 수 있다니, 정말 뜻밖의 묘미다. 그러나 이런 행복을 누구나 누릴 수는 없다. 시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서둘러 셔터를 눌러 시인들의 마음을 담은 한 편 한 편의 작품을 나의 추억으로 만들었다. “먹구름도 밀어내고 비바람도 담아내고/ 별들의 슬픈 얘기 속삭임도 들어주며/ 하늘과 내통하고 싶어…” 김월준의 시 <첨성대>를 떠올리니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신라의 무사(巫師)가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 첨성대 위에 서서 팔을 뻗어 주문을 외우고, 나라의 영원한 평화를 비는 장면을 본 것 같다. 첨성대만 보는 것보다 더 신성하고 강렬한 느낌이다. 문학의 가치가 이런 데에 있는 듯 싶다.
첨성대를 끝으로 2박 3일의 답사가 끝났다. 조개는 진주의 모태이고 진주가 있어서 조개가 더욱 주목받듯이 유적 속에 담긴 문학은 유적의 가치를 더 오래 전해주고, 문학 속에서 기록하는 유적은 문학의 가치를 더 빛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