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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과 문화 예술의 위상을 높이는 예술의 힘

2008년 여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세계무용박람회에 작품을 팔러 갔다. 부스를 설치하고 <물 좀 주소>라는 작품으로 쇼케이스를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메일을 보니 레바논 BIPOD(Beirut International Platform of Dance)09의 아트 디렉터 오마르 라제흐(Omar Rajeh)에게서 편지가 와 있었다. 내 작품 모음집 DVD를 가져가 보았으며 매우 흥미롭다는 것이었고, 초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오마르 라제흐는 컨템퍼러리 댄스 네트워크가 그 주변 국가와 잘 이루어져 있어 투어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나는 그의 제의를 받아들여 작년 9월부터 공연을 가기 전까지 메일을 주고받으며 준비했다.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의 무용단과 문화 재단들이 2007년부터 각국의 무용 축제를 연계해 개최하는 ‘마사하트(공간) 무용 축제’는 레바논의 오마르 라제흐와 팔레스타인의 라말라흐 컨템퍼러리 댄스 페스티벌(Ramallah Contemporary Dance Festival) 의 아트디렉터 칼레드 엘라얀(Khaled Elayyan)이 주축이 되어 열리는 큰 공연이었다. 베이루트, 시리아, 요르단, 예루살렘, 하이파, 베들레헴, 나사렛,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이탈리아, 핀란드, 덴마크, 헝가리, 그리스, 포르투갈, 독일, 미국, 아일랜드, 프랑스, 팔레스타인, 네덜란드, 스위스, 이집트, 스페인, 모로코,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한국 등에서 온 팀들이 참가해 서로 날짜를 달리하며 도시를 순회공연 하도록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있다.



칼릴 지브란을 떠올리며 떠난 사막의 이국(異國)
이번 공연은 특히 유럽 18개국이 참가하고 동양에선 처음으로 한국이 참가하는 것이라 하여 매우 흥미롭고 기대되었다. 나는 오마르 라제흐에게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 재미있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일 것이라는 생각, 오래전부터 레바논에서 나를 이끌고 있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10년 전 레바논의 시인이며 철학자이자 화가인 칼릴 지브란의 시에 매료되어 그의 시집 『예언자』, 『모래, 물거품』,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가 나의 경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칼릴 지브란은 내 삶에, 그리고 내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인간이 사는 신비한 땅을 밟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했다.
작년 9월 레바논에서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칼릴 지브란을 떠올렸다.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칼릴 지브란이 우주 어느 별에서 나에게 보낸 편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가야 했다. 낯선 도시, 낯선 문화, 테러가 끊이지 않는 위험한 곳…. 그러나 그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과 칼릴 지브란을 향한 열망은 전쟁이 나도 살아 돌아올 것 같은 무모함까지 들게 했다.
시간은 다가왔고 지인들의 걱정을 뒤로한 채 4월 15일 밤 사막을 향해 떠났다. 16일 도착한 뒤로 18일에 베이루트의 알 마디나극장, 20일에 암만의 알 후세인극장, 23일에 예루살렘의 팔레스티니안극장, 24일에 하이파의 알 미단극장, 25일에 라말라흐의 알 카사바극장을 일정으로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사막의 유랑 극단이었다.
첫 공연이 잡힌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지중해의 파리라고 알려질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베이루트 사람들은 유럽적 문화 정서와 개방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30년의 내전으로 시내 중심가에도 곳곳에 폐허가 된 건물들이 방치되어 그 깊은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상처 속에서 그들의 꿈과 재건의 의지가 이 컨템퍼러리 댄스 페스티벌을 통해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17일에는 레바논 한국 대사관의 만찬에 초대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영하 대사님은 위험한 곳에 나타난 예술가들이 무척 반가웠지만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한 듯하다. 조국으로부터 관심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뿌듯함과 감사함에 마치 에베레스트를 정복해 태극기를 꽂으러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8일, 드디어 공연을 시작했다. 작년 11월 의정부 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초연한 작품 <아리랑 아라리요-상사병>을 무대에 올렸다. 70분 동안 이설애, 전수진, 박철중, 지경민은 아름다운 불꽃처럼 무대 위에서 열연했고, 조용히 숨죽이던 관객은 공연이 끝나자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뜨거운 박수가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은 감동의 여운을 느끼고 싶은 듯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고, 레바논 대학의 무용과 교수는 “Beautiful!”, “Great!”를 반복하고는 내년에 꼭 초청하겠다면서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다음날, 칼릴 지브란의 생가가 있다는 백양나무숲을 가보지 못한 채 요르단으로 향했다.



뜨거운 모래바람을 가르며 공연을 펼친 2주간의 대장정
시리아를 거쳐 요르단으로 가는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는 이 낯선 경험은 이색적이었다. 혁명군들이 갑자기 도로 위로 튀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끝없을 것 같은 사막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 투박하고 거친 환경과 문화 속에 숨어 있을 신비함, 비밀, 갈망을 발견하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들곤 했다. 잘 다듬어진 달콤한 문화에서 찾을 수 없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꼭 있으리라. 요르단 암만의 ACDF 공연은 킹 후세인 재단의 후원으로 요르단 상원위원과 현 압둘라 2세 국왕의 친동생 파이샬 왕자의 부인 및 두 딸이 참석해 관심을 모았다. 공연이 끝나고 현지의 <뉴스위크> 한국인 기자는 이런 컨템퍼러리 공연이 거의 없었으며 이곳은 레바논보다 보수적이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리고 요르단의 신봉길 대사님은 만찬에서 우리의 이 공연이 너무 중요한 시점에 이루어진 것이고, 경제와 정치 교류에 문화가 담당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며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다음날 우리는 대사관에서 준비해준 차로 3시간 30분을 달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무대였던 ‘페트라’에 가볼 수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 뜨거운 사막의 절벽에 성전을 만들고 수많은 흔적들을 남겼을까? 어린 소년들이 모는 당나귀 택시가 인상적이었다.
그 다음날에는 중동 국가들에게 소외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23일 예루살렘, 24일 하이파, 25일 팔레스타인 공연을 했다. 팔레스타인 라말라 RCDF 09 공연에는 대통령 비서관이 참석했고, 관객으로부터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스라엘 마영삼 대사님 역시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과 문화 예술의 위상이 높아졌으며, 특히 예술의 힘이 무척 크다고 말씀하셨다. 마영삼 대사님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으로 인해 매우 긴장되어 있다며 국경을 넘어설 때까지 세심하게 도움을 주었다.
팔레스타인 페스티벌에서는 공연 외에도 사진작가, 평론가 세미나, 무용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이스라엘과 분쟁 속에서도 매우 의욕적이었으며, 여기엔 다른 국가들에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자 함이 엿보였다. 26일 사해 여행과 워크숍을 마지막으로 약 2주간의 여정이 끝났다.이 공연을 통해 중동의 낯선 이슬람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고, 지구 어느 곳이든 인류는 예술을 통해 계속 진화하고 싶어 한다는 것, 현지 한국대사관에의 진지한 관심과 도움으로 조국의 힘과 문화의 위상이 매우 올라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춤 예술이 더 이상 주변적이지 않고 국가 경쟁력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과 우리의 춤이 세계 곳곳으로 스며들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