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의 교류가 매력적인 키네틱 아트의 세계
그가 침식하며 창작을 하는 12평 남짓한 ‘스튜디오 9’는 여느 화가의 화실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캔버스나 이젤, 물감 대신 놀이기구 같은 것이 3점 자리하고 있었다. 파이프와 도르래, 줄 등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언뜻 기계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신기한 눈초리를 보내자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작품’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키네틱 아트란,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넣은 예술작품을 뜻한다. 대부분 조각의 형태를 띄는 것이 특징인 키네틱 아트는 미래파나 다다의 예술운동에서 파생된 것으로, 최초의 작품은 마르셀 뒤샹이 1913년 자전거바퀴를 사용해 만든 ‘모빌’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예술작품이라 해도 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하는 의미가 없잖아요. 키네틱 아트는 적극적으로 관객과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매력적입니다. 작품에 담긴 신체적·공간적 의미를 움직임을 통해 제시하는데, 관객이 참여할 수 있거든요.”
KF 문화센터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그의 작품 ‘무제’는 관객이 다가가면 작품에 달려있는 센서가 이를 감지해 비로소 움직인다. 그제서야 비로소 작품이 작품의 역할을 하게 되는 방식이어서 관객도 작품 일부가 된다. 그가 키네틱 아트를 선택하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그는 밥그릇에 화려한 색을 입혀 물성을 바꾸는 등 색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도 역시 동일한 이유라고 말한다.
운명처럼 다가온 키네틱 아트와의 만남
“원래 미술을 전공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서 중국 상하이 중의학대학에서 침술을 전공할 계획이었죠. 2002년 입학 허가를 받은 직후에 집안일로 귀국했다가 낙마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올 정도로 중상을 당했고, 몇 달 동안 누워만 있었어요. 간신히 몸을 추스린 다음엔 친구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마음에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죠. 어학연수 시절에 시간이 날 때마다 스케치를 했는데 이걸 모아 무작정 근처 미술학교에 들고 가서 미술을 배우고 싶다고 졸랐어요.”
우여곡절 끝에 그는 2009년 런던의 첼시 예술칼리지를 졸업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만큼 회화, 조각, 디자인 등 통합교육을 실시하는 이곳에서 폭넓은 예술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몸에 6개의 쇠못이 남아있는 그가 신체적 동작을 공간에 표현할 수 있는 키네틱 아트에 관심이 쏠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 모른다.
교류를 통해 발견한 행복과 성장의 씨앗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셀레스테 아트 프라이즈’를 받은 그는 졸업 후에도 6개월간 학교 스튜디오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영국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2010년에 귀국했다.
“처음엔 막막했죠. 학연도 없고, 유명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게 되면서 방향이 잡혔달까요? 스튜디오에 독일, 프랑스 등 외국 작가들도 함께 작업하고 있어서 다양한 작품과 시각을 접할 수 있고, 스튜디오 안에서 생활과 창작을 함께할 수 있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2011년 1월, 17명의 동료 작가와 함께 고양미술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그는 독일에서의 개인전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한 해를 보냈다. 1년의 입주기간이 금세 지나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니 이번 ‘2011 국제교환입주 프로그램 참여작가전’은 그에게 결산 프로그램인 셈. 국제적으로 작품을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그는 프로그램 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통해 영국, 이탈리아 등 예술 강국으로 커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 삶에서 예술의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데요, 전 행복하니까 해요. 사고 전에는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려고 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공유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요. 안정적인 직업을 택해 살고 있는 친구들도 별로 부럽지 않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경제적 어려움은 감수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그게 행복이라고 믿습니다.”
행복한 작가 홍기원에 대해 전시기획자 양지윤은 이렇게 평가한다.
“홍기원의 작품들은 신선하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의 특수한 모습 또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에두르지 않고 투사한다. 작가에게 현재는 다음 도약을 위한 숨고르기의 과정인 듯하다. 홍기원의 설치 속에는 우리의 풍경이 있다. 그 풍경은 완결된 것이라기보다는, 다음을 향한 하나의 파편이고 무대 장치이기에 계속 기대를 갖게 한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