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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 Culture

‘문제아’에서 ‘문제 해결사’로 - 건축가 양수인

Arts & Culture 2026 SUMMER

‘문제아’에서 ‘문제 해결사’로 - 건축가 양수인 양수인은 2010년부터 건축사사무소 ‘삶것’을 운영하며, 뚜렷한 개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건축가이다. 건축은 물론 광고 캠페인, 상징 조형물 등 다양한 작업을 병행한다. 삶것을 ‘건축에 기반을 둔 디자인 회사’로 소개하는 그는 건축가가 삶의 다기한 문제를 풀어가는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건축이 '예술'이 아니라 '실용'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최적의 명료한 해법을 찾기 위해 영역을 넘나들곤 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2017년 선정작 ‘원심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설치된 이 작품은 바람과 원심력을 이용해 그늘을 만드는 가벼운 건축을 실험한 프로젝트로, 양수인의 이름을 건축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 신경섭 에서 최근의 까지 건축가 양수인이 설계한 지난 15년의 작업을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규모의 변화다. ‘이것저것’ 할 때의 ‘것’과 ‘삶’을 합친 사무소 이름 ‘삶것’의 모토처럼 그는 상징 조형물(이것)부터 대형 오피스(저것)까지 우리 삶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물들을 디자인해 왔다. 겉으로 보면 서로 무관해 보이는 작은 작업과 큰 작업 사이에는 일관된 전략이 흐른다. 주어진 조건을 그저 수용하기보다 비틀어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다. 이러한 전략가적 면모는 한국의 아틀리에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유독 두드러진다. 양수인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2010년 서울로 돌아왔다. 그가 머물렀던 뉴욕과 달리 서울은 여전히 지을 것이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은 도시였다. 그가 안정된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돌아온 이유 역시 이 도시의 다이너미즘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한국 사회가 경제적 성장을 넘어 문화적으로 성숙해지는 흐름 속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괴짜 예술가에 가까운 1인 건축가에서 출발해, 직원 20여 명을 이끄는 중형 설계사무소의 대표로 성장하는 동안 개인, 기업, 공공을 넘나들며 다양한 고객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작업의 스펙트럼 역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마치 하와이의 서퍼가 파도를 자유자재로 타듯 그는 도시의 리듬과 속도를 즐기며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하와이에 몇 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다. 가벼운 건축 삶것 건축사사무소를 이끄는 양수인은 건축가를 ‘문제 해결자’라고 정의한다. 그는 고정된 스타일에 얽매지 않고, 장소와 조건을 읽고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설계를 통해 건축과 도시, 일상의 관계를 새롭게 제안해 왔다. ⓒ 이민희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당선작 은 양수인을 대중에 각인시킨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이전에도 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아르코미술관·소마미술관이 공동 주최하여 청계천에 설치한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러나 경복궁 옆에 새로 생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넓은 앞마당에 세워진 이 작업은 훨씬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작업에는 양수인이 주요한 디자인 방법론으로 제시해온 ‘가벼운 건축’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집약되어 있다. 은 무거운 구조 대신 가벼운 장치로 그늘을 만드는 실험이다. 일반적으로 지붕은 구조체와 기초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바람과 회전력, 즉 원심력을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그늘을 만든다. 패브릭을 매단 장치는 모터와 플라스틱 날개를 통해 회전하며 위로 올라간다. 이들이 모여 하나의 지붕과 같은 상태를 형성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일종의 관람 환경으로 적극 고려되었다. 초록색 구름이나 버섯을 연상시키는 휴식 장치는 엄격한 그리드 체계 위에 세워진 미술관 건축에 경쾌한 감각을 더했다. 공격적인 리노베이션 문화 관련 기업 컬쳐랜드의 서울 대치동 사옥이다. 주변 건물과 채광, 조망 조건을 면밀히 분석해 공간을 배치하고, 유리 루버와 테라스, 옥상 정원을 통해 업무 공간과 외부 환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 신경섭 가벼운 건축에 이어 양수인이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또 다른 영역은 리노베이션이다. 그는 이를 단순히 기존 건물을 보존하는 행위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리노베이션이 놓인 경제적 조건과 현실에 주목한다. 그는 기후 위기와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신축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노베이션은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사회경제적 해법이 된다. 더불어 한국에서 건물은 디지털 네트워크와 즉흥적인 현장 중심 제작 방식 사이에서 완성된다. 양수인은 제작 측면에서 이 긴장 상태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리노베이션은 설계와 시공을 오가며 보다 적극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수인은 기존 건물에 깊이 개입하는 리노베이션을, 의학 용어를 빌려 ‘침습 수술’이라 부른다. 이러한 태도가 잘 드러나는 작업이 인천 이다. 폐수 처리 공장이었던 건물을 문화 시설로 전환한 이곳에서 그는 기존 건물의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법규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 해법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새 건물을 기존 건물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공장 내부를 관통하는 고리 형태의 구조를 삽입하고, 이를 로비와 동선으로 활용했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독립된 증축으로 인정받으면서, 새 건물만 법규를 충족시켰다. 기존 공장은 손대지 않은 채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흔적과 새로운 개입이 공존하는 재생 건축이 완성되었다. 문제 해결의 디자인 인천의 옛 화학 공장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코스모 40. 기존 산업 시설의 골조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증축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재생 건축의 모델을 제시했다. ⓒ 신경섭 “주어진 상황에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명료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 양수인이 말하는 이 전략은 특히 오피스 건물 설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비싼 대지 위에서 의뢰인의 경제성과 공간의 효율성, 그리고 건축가의 창의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약과 규제가 많은 작업이지만,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에서 더 큰 흥미를 느낀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이 의뢰하는 빌딩 설계는 그의 성향과 잘 맞는다. 은 이러한 접근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무실, 문화 시설, 임대 상가가 결합된 복합 건물로 대지 조건에 따라 형태와 배치가 결정되었다. 남쪽에는 인접 건물이 붙어 있기 때문에 코어와 주차를 그쪽에 집중시켰다. 대신 업무 공간은 동·서·북 세 방향으로 열어 채광과 환기를 확보했다. 저층에는 동서로 길게 뻗은 공연장이 들어서고, 상층에는 일부를 들어 올린 스카이 오피스를 배치해 전망을 넓게 확보했다. 건물 곳곳에는 테라스와 옥상 정원을 두어 사용자들이 언제든 외부 환경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외관에는 유리 루버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는 서향의 강한 빛을 차단하면서도 낮과 밤의 인상을 다르게 만든다. 이 건물은 주변 조건을 읽고, 빛과 전망, 공간을 하나의 논리로 풀어낸 결과다. 마치 방정식을 풀듯 도출된 해법이다. 말로 설계하는 건축가 코스모 40 내부 모습이다. 유리와 철골로 만든 신축동을 기존 건물의 왼편에 끼워 넣었다. ⓒ 신경섭 최근 양수인의 관심은 AI다. 다만 그는 이를 유행이 아닌 철저히 ‘도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2025년 8월 삶것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그는 AI를 활용해 실제 설계 공모안을 제작한 실험을 공개했다. 동료 건축가들의 큰 관심을 끈 이 실험의 핵심은 설계 행위의 인터페이스가 마우스에서 언어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하나의 고정된 프로그램이 아니다. 대신 상황과 필요에 따라 빠르게 생성되고 수정되며, 때로는 폐기되는 임시적 소프트웨어로 작동한다. 이는 기존의 자동화 설계 방식과는 다르다. 정해진 틀 안에서 반복적으로 최적화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낸다. 건축가는 이를 지시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양수인은 이 실험을 통해 AI가 건축가를 대체하는 존재라기보다 건축가의 언어적 사고를 실행 가능한 도구로 변환하는 매개체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육군사관학교 내 위치하는 원불교 화랑대 교당은 원불교 신자 및 장병들의 신앙 생활을 위해 지어진 시설이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은 이 건물의 핵심으로, 영적인 전이와 몰입감을 극대화하도록 유리 입면으로 디자인되었다. ⓒ 신경섭 속도와 태도 일반적으로 건축물은 설계와 시공 과정을 거쳐 완성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오설록 티하우스는 공장에서 제작한 건축 부재를 현장으로 운반해 조립함으로써 100일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완공될 수 있었다. 건축의 주요 공정이 현장이 아닌, 공장에서 이루어졌던 프로젝트이다. ⓒ 최용준 1975년생인 양수인은 한국 사회가 긴 개발기를 거쳐 국제 사회의 동시대로 진입하던 1990년대에 이십 대를 지나왔다. 그는 이른바 ‘X세대’라 불리는, 한국의 문화적 풍요를 처음 체감한 세대에 속한다. 이후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선진국’의 환경을 경험했고, 콤플렉스 없는 태도로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모토는 단순하다. 조직의 규모를 키우고, 삶과 일의 균형을 유지하며, 즐겁게 창작하는 것. 그는 누구보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지만, 그렇게 확보된 시간은 또 다른 흥미로운 활동으로 확장된다. 2024년에는 자신이 설계하고 공동 투자한 ‘틸라’ 사옥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후 『볼것』이라는 책자를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과 포럼 등을 열고 있다. 그의 에너지는 건축 내부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문화로 확장된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과 태도는 서울이라는 초고도 도시의 작동 방식을 능동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된다. 양수인의 건축은 특정한 스타일이나 고정된 개념이라기보다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식에 가깝다. 느리고 무거운 건축의 속성에 비해 그가 제안하는 가볍고 빠른 건축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의 현실적인 해법처럼 보인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환경은 그가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는 감각과 근육을 만들어준 최적의 테스트베드였을지도 모른다. 기존 건축의 전제를 의심하던 문제아는 이제 문제 해결사의 위치에 선 중견 건축가가 되었다.

두 세계를 잇는 조각

Arts & Culture 2026 SUMMER

두 세계를 잇는 조각 1935년생인 김윤신은 1970년대 한국 조각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1세대 조각가이다. 198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로 이주하면서 국내 주류 모더니즘에서 단절된 채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각 문법을 구축했다. 동양의 음양 사상에 기반을 둔 작업 철학을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견지해 오고 있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에 처음으로 초청, 국내외 갤러리들의 주목을 받으며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2024년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김윤신 개인전 《Kim Yun Shin》 전경이다. 작가가 한국으로 거점을 옮긴 후 국내에서 처음 개최한 전시이며, 목조각 연작과 함께 회화 작품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이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나무를 깎고, 돌을 다듬는다. 어쩌면 예술의 가장 오래된 몸짓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 우리가 예술을 갈망하고 추앙하는 이유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최첨단 시대에 문득 아련히 떠오르는 근본에 대한 그리움. 김윤신의 작품 앞에서 그저 먹먹하게 한참을 서 있는 이유다.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에서 최근 최대 규모의 김윤신 회고전이 열렸다. 소원을 비는 돌탑처럼 쌓아 올린 나무, 든든한 장승처럼 우뚝 선 나무, 껍질까지 고스란히 제 모습을 드러낸 나무까지. 1970년대부터 이어온 김윤신의 목조각이 숲처럼 펼쳐졌다. 그녀의 별명은 ‘전기톱을 든 90세의 할머니 조각가’. 그녀가 든 톱은 나무를 베어 숨을 끊어놓는 게 아니라 나무를 다듬어 숨통을 열어준다. 희한하게도 그녀의 작업은 차가운 돌조각에서도 나눠먹을 수 있는 빵 같은 온기가 감돈다. 예술로 다독인 역사의 상흔 김윤신은 나무 및 석재 조각, 석판화, 회화를 아우르며 고유의 예술 세계를 일구어 온 한국의 1세대 조각가이다.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는 실험을 통해 조각, 회화, 그리고 회화 조각이라는 영역으로 작업을 확장해가고 있다.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김윤신은 잘 나가던 작가, 안정적인 교수 자리를 박차고 198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이유는 하나. 그곳의 나무가 좋아서다. 40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열린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개인전은 방탄소년단의 RM을 비롯한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그 전시장을 다녀간 또 다른 중요 인물이 있었으니, 이듬해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던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였다. 이후 세계 최고 비엔날레의 초청, 글로벌 갤러리의 러브콜, 아트페어에서의 주목, 뉴욕·런던에서 열린 개인전…. 수십 년간 지구 반대편에서 묵묵히 작업만 하던 김윤신은 이렇게 재발굴됐다. 두 세기를 건너, 두 대륙을 가로지르며 오로지 예술 하나로만 사는 그녀에게 기자들이 만날 때마다 하는 질문이 있다. “왜 당신 삶에는 작업밖에 없나요?” 김윤신의 답은 매번 똑같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니까요. 왜 나무 조각이냐고? 어려서부터 나무는 내 친구였어요. 내가 나무이고, 나무가 곧 나예요.” 그 말을 이해하고, 그녀의 작품 앞에서 서성이게 하는 먹먹함의 뿌리를 찾기 위해 8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 작가는 어린 시절을 강원도 북부 안변의 산골 마을에서 보냈다. 두 지역 모두 현재 북한 영토이다. 1남 5녀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녀의 언니들은 결혼해 출가했고, 열한 살 위 오빠는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떠났다. 아버지는 중국 만주에서 한의사로 일하고 있었으니 곁에는 어머니밖에 없었다. 어느 날 책 싼 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산을 넘어 학교를 오가던 김윤신의 눈앞에 아름드리 소나무 수십 그루가 쓰러져 있었다. “저 좋은 나무를 왜 베었을까. 아휴, 저걸 다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그때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로, 일제는 전투기 연료 확보를 위해 소나무의 뿌리를 캐고 송진을 짜냈다. 또래 아이도 없는 산골 마을에서 김윤신의 친구는 나무뿐이었다. 꽃과 벌레가 말동무였으며, 수수깡과 진흙이 장난감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나를 데리고 산에 가셨어요. 3대 독자 외아들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를 매일 드렸어요. 내가 작은 돌 하나를 찾으면 어머니는 그 위에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시고, 촛불이 꺼지면 나는 또 다른 돌을 가져와 그 위에 얹고 또 촛불을 켰죠.” 김윤신은 1945년 여름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중국에서 해방을 맞았다. 어수선한 시기에 홀로 두만강을 건너야 했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돌아온 그녀는 어머니와 재회했다. 몇 년 후에는 한국전쟁이 터졌다. 열다섯 살 김윤신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떠밀리듯 피난을 떠났다. 아흔이 넘은 지금도 그녀는 폭죽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버지와 언니들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렇게 트라우마가 됐을 법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김윤신은 예술혼으로 다졌다. 쓰러져 간 소나무와 죽어 간 생명들에 사랑과 정성을 담았다. 나무토막을 켜켜이 올린 1970년대 제작한 ‘기원 쌓기’ 연작의 출발 지점이다. 한옥 집 짓는 방식처럼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나무토막을 맞추며 쌓아올렸다. 그러다 보니 전시 후에 작품이 흩어지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원목을 중간중간 깎고 다듬어 쌓아 올린 형태의 작업이 탄생했다. 깎은 나무에서 새벽의 돌탑이 어른거린다. 원시 사회의 ‘토템’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다. 작가는 이것을 “삶이 매달린 생명의 나무”라고 부르곤 했다. . 2013. 캔버스에 유채. 150 × 460 cm. 개인 소장. © Kim Yun Shin 사진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작가 제공 작가 정신의 탄생 . 2025. 알루미늄에 아크릴 물감. 135 × 202 × 56 cm.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소장. © Kim Yun Shin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김윤신은 1955년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했다. 단색화의 하종현, 전위예술(아방가르드)의 이승택 등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1964년 12월에는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전후 프랑스로 간 한국의 미술가 대부분은 중견 남성이었으니, 조각을 공부하러 파리로 간 여성 예술가는 김윤신이 처음이었다. 파리에서 그녀는 다양한 현대미술을 경험했고, 내면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추상미술에 눈을 떴다. 조각을 가르쳐 드리며 가깝게 지낸 이응노의 ‘동백림 사건’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68혁명의 자유로움도 체득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1969년 봄, 급히 귀국했다. 귀국 후 그녀는 주목받는 조각가가 됐다. 1973년 제1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이우환·권영우·김창열과 함께 한국 대표로 초대됐다. 이듬해에는 최초의 여성 조각가 단체 ‘한국여류조각가회’ 발족에 참여했다.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1978년부터는 나무 껍질을 그대로 둔 채 속살을 다듬어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됐다. 나무의 고유한 형태를 지키면서 그 안에 작가 정신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마침내 김윤신은 자신의 작업에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개체가 ‘합이(合二)’되어 ‘하나(合一)’로 만나며,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인간 존재처럼 계속 무한대적으로 합과 분이 반복된다. 전기톱을 사용해 분(分)에 의하여 창조된 선과 면은 합(合)인 동시에 분(分)이다. 나의 정신, 나의 존재, 그리고 나의 영혼은 비로소 하나가 된다.” 김윤신의 작가 노트 ‘재료와 대화를 시도하다’ 중 한 대목이다. 두 세계의 합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2026년 3월 17일부터 6월 28일까지 개최된 조각가 김윤신의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1층 전시장 전경. 이곳에는 작가의 예술 세계가 형성되기 시작해 완성에 이르렀던 1990년대까지의 주요 작품들이 선보였다.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작품은 우직하고 작가는 솔직하다. 김윤신은 이민 간 조카의 초청으로 방학을 틈타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는 단순하고 근원적이었다. 지평선이 아름다웠고, 사람들이 순했으며, 재료가 될 굵고 단단한 나무가 무성했다. 해방과 전쟁에서 살아남은 김윤신은 두려울 게 없었다. 길가에 쓰러진 가로수를 끌어다가 작품 두 점을 만들었다. 무작정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전시를 하고 싶다 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설득했다. 호평과 함께 1985년 현지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작가의 목조각은 ‘자연주의’다. 그녀는 작업에 맞춰 나무를 구하지 않는다. 일단 원목을 구해다 작업실에 펼쳐놓고 며칠 동안 관찰한다. 나무의 크기, 형태, 단단함, 향, 껍질, 옹이와 나이테까지 자세히 관찰해 특징을 파악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대화’라 부르는데, 소통하고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전기톱을 든다. 나무 그 자체에서 작업이 시작되고, 나무와 호흡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쉼없이 완성해 나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뜻밖의 전환을 불러왔다. 원목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주변에 버려진 목재를 모아다 작업했다. 못 없이 나무를 잇는 방식으로 일으켜 세웠다. 각 면에 색을 입히니 풀 죽은 나무에 생기가 돌았다. ‘회화-조각’인 셈인데, 어차피 김윤신에게는 평면과 입체라는 장르의 경계도 없었다. 고립의 제약이 오히려 두 세계를 하나로 합일시켰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국적 문물로서 남미와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졌지만, 김윤신은 아예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모더니즘이 한창일 때 스스로 낯선 땅의 이방인이 된 그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한국성을 구현했다. 서양에서 빌려온 문법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끊겼던 우리의 오래된 문법을 다시 찾아 이었다. 김윤신에게 작품은 닫힌 결말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시작되는 열린 과정이다. 합쳐서 하나가 되고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의 하나가 되는 무한한 순환 속에서 조각가의 소원은 여전히 단 하나다. “내 소원은 작업하다가 죽는 거야. 예술이 삶이 되어야지.”

과거의 가치를 미래로 잇는 사람들

Arts & Culture 2026 SUMMER

과거의 가치를 미래로 잇는 사람들 재단법인 아름지기(이하 아름지기)는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문화 단체이다. 문화유산 환경 개선 사업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전통문화를 가까이에서 누리고 경험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콘텐츠를 기획, 개발한다. 아름지기는 전통문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촉발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통의옥 사옥 2층 모습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한옥과 현대적인 건물이 마주하고 있는 구조이다. 이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아름지기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아름지기’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2001년 신연균 현재 명예 이사장을 중심으로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이 주축이 돼 설립했다. 당시는 전통 보존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고, 도처에서 고유한 생활 문화가 사라져가는 상황이었다. “지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문화가 없어지겠다”는 우려와 절박함이 재단 출범으로 이어졌다. 민간 코디네이터 아름지기의 첫 행보는 ‘정자나무 가꾸기’였다. 마을 입구나 길가에 자리한 정자나무는 보통 수령이 수백 년이어서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다. 여름철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니,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더위를 피하곤 했다. 또한 정자나무는 단순히 오래된 나무를 넘어,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주는 신령한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마을에 액운이 들면 정자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도 많았다. 마을의 중대사를 의논하는 회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으니, 정자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소통의 공간이자 지역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아름지기는 정자나무를 문화유산으로 인식하여 이를 가꾸고 주변을 개선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이 사업은 기업 후원과 개인의 재능 기부를 통해 2002년 경기도 평택의 수령 430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돌보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나무의 건강 상태를 진단해 썩은 부위를 치료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외에도 지지대와 울타리, 벤치 등을 마련해 주민들의 휴식 공간을 조성했다. 이 사업으로 서울 돈암동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 흥천사의 느티나무(보호수), 경상남도 함양의 운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등 훼손되어 가던 문화유산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정자나무 가꾸기와 함께 아름지기가 힘을 쏟은 것은 ‘궁궐 환경 가꾸기’였다. 아무리 잘 지은 집도 사람이 살며 보살피지 않으면 금방 허름해지기 마련이다. 아름지기는 2003년 8월부터 20년이 넘은 현재까지 매해 봄과 가을이면 조선(1392~1910) 시대 궁궐 중 하나인 창덕궁을 청소한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시민들도 힘을 보탤 수 있도록 관심 있는 회원들 및 일반 시민들과 함께 전각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묵은 때를 닦아내는 한편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전각 내부를 수리하고 도배를 새로 하거나 후원 조경을 정비하는 등 사업을 한층 확장했다. 이후에는 창덕궁뿐 아니라 덕수궁, 경복궁 등 다른 궁궐들에서 가구와 장신구 등 전각 내부의 집기를 재현하는 프로젝트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왕실 용품을 재현하는 프로젝트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 장인들로 자문단을 꾸려 주제 및 품목을 선정하고, 고증을 거쳐 제작에 들어간다. 그리고 완성된 재현품은 조선 시대 의궤와 실록 등 다양한 사료를 참조해 배치한다.이로써 역사 속의 궁궐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아름지기는 국내외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전국의 문화유산 안내판 디자인 개선 작업으로 활동 폭을 넓혔다. 문화유산 주변의 공공디자인이 제 역할을 해내고 있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2005년 국가유산청과 맺은 ‘1문화재 1지킴이’ 협약을 시작으로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창경궁, 덕수궁, 종묘까지 안내판을 새로 디자인해 설치했다. 이는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는 파동을 일으켰고, 민관 협력에 의한 공공디자인의 바람직한 사례로 널리 회자되었다. 2016년에는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목조 주택을 개조해 서울 한양도성의 전시 안내센터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제주도의 대표적 지질 유산인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서귀포시와 협약을 맺어 경관 개선 사업에 착수했다. 지역별 특성을 살리면서 한국의 전통미를 반영한 현대적인 공공디자인은 관람객들의 편의뿐 아니라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 속에서 아름지기는 기업과 기관 사이에서 민간 코디네이터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내고 있다. 아름지기는 에르메스 코리아의 후원 및 국가유산청과의 협업을 통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경복궁 사정전의 가구 및 집기 재현 사업을 진행했다. 다분야 전문가들과 무형유산 장인들이 참여하여 고증을 통해 총 14종 20점을 제작했다. 사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함께 업무를 보던 공간이다. 아름지기 제공 일상의 쓰임을 위해 아름지기는 문화유산 주변의 공공 디자인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유산청과 협약을 맺고,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 5대 궁궐의 안내판을 새로 디자인해 설치했다. 아름지기 제공 경복궁 서쪽 문인 영추문을 마주 보는 아름지기 건물은 주택인지 사무 공간인지 언뜻 가늠하기 어려운 외관이다. 현대식 건물 1층의 전시 공간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사옥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대로를 향해 있는 목재 미닫이문을 열면 경복궁 돌담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안쪽으로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현대식 건물과 한옥이 서로 바라보는 구조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은 아름지기의 사무 공간이고, 한옥은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아름지기의 한옥은 전통의 원형을 가져오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불편함을 개선해 새로운 쓰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우리의 의식주 문화와 관련된 전시가 진행되곤 한다. 아름지기의 전시와 관련해 장영석 디렉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전시를 관통하는 기획의 취지는 전통문화의 정수를 탐구하고 오늘에 되살려 그 가치를 내일로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환경에 부합하는 시의성,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문화 이야기, 그리고 현대 혹은 다음 세대에게 전할 창의적 시도를 함께 담습니다.” 이를 위해 아름지기는 매해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해 우리 전통 공예품과 함께 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전통 기술을 되살려보려고 합니다. 예컨대 한국 음식이 글로벌화하고 있는데 이를 꼭 와인과 먹어야 할까? 우리 음식에 맞는 우리 고유의 술과 함께 즐길 수 없을까? 그런 고민을 전시에 담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의도의 핵심은 전통문화가 소수의 특별한 향유물이 아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 생활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 지난 2006년 열렸던 은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도예가 민영기의 막사발, 이기조의 백자, 이윤신의 청자 그릇으로 꾸민 찻상, 반상, 돌상 등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전시를 통해 아름다우면서도 소박하고 의미 있는 돌상 차림 확산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로 돌상을 대여하고 돌떡을 키트로 제품화한 비즈니스가 많이 생겼으니까요.” 2017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 열린 아름지기의 해외 한복 전시 < Couture Korea 우리의 옷, 한복 >은 규모나 화제성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예감할 수 있었다. “전시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교민분들과의 만남이 많았는데, 전시 내용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해외 문화 기관과의 협업, 큰 규모의 해외 전시에 대한 노하우를 익힐 수 있어서 저희에게도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연결과 확산 사진은 2023년 아름지기 사옥에서 개최된 《blurring boundaries: 한복을 꺼내다》의 전시 장면.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의상 디자이너 크리스티나 김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옷공방이 함께 조선 시대 복식을 토대로 현대적인 한복 디자인을 제안한 전시다. 아름지기 제공 해마다 봄기운이 완연해질 무렵이면 아름지기 사옥을 일반에 공개하는 ‘오픈하우스’가 열린다. 2022년 첫 행사에는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 조명 기구에 100년 만에 불을 밝혔던 2018년의 프로젝트를 상세히 소개했다. 오픈하우스는 아름지기의 주요 사업을 공개해 전통을 잇는 가치와 중요성을 다시 조명하는 한편 한복과 장신구를 직접 착용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과 팝업 스토어도 운영한다. 관람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활동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기금 마련도 중요한 과제다. 2010년부터 시작된 ‘아름지기 기금 마련 바자’는 해를 거듭하면서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참여로 화제를 낳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름지기 차세대 멤버인 영프렌즈가 있다. 아름지기 영프렌즈는 새로운 아름지기 활동 네트워크와 기금 모금, 그리고 국내외 사업의 확산을 모색하고자 결성된 후원자 그룹이다. 바자회 같은 모금 행사를 주도적으로 기획하며 상품 구매가 얼마나 매력적인 후원 방식인지 알리는 데에도 주력한다. 전통문화를 매개한 브랜드 외에도 지속가능성, 친환경, 공정무역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들의 참여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아름지기는 지난해 제2대 홍정현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더욱 힘을 모으고 있다. 올해는 아름지기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름지기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창조적 계승이 우리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의 언어와 감각으로 누구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발걸음을 이어갈 것이다. 2018년 진행된 《가가례家家禮: 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 전시 장면. 전통적인 제사의 형식과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오늘날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바뀌고 있는 제사 문화를 집중 조명한 전시다. 아름지기 제공

표준이라는 구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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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이라는 구심점 가구 스튜디오 스탠다드에이(STANDARD.a)는 공장식 조립 가구가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15년 동안 꾸준히 수제 디자인 가구를 선보여 왔다. ‘가치를 굳건히 지켜내는 것이 표준’이라는 이들의 믿음은 갤러리, 카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복합문화공간 등 여러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스탠다드에이의 쇼룸에서 이들을 만났다. 서울 서교동에 자리한 스탠다드에이의 쇼룸에서 류윤하, 이학준, 안민규(왼쪽부터) 공동 대표가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15년 동안 묵묵히 핸드 크래프트 가구를 선보이며 브랜드의 단단한 이정표를 세워가고 있다. 국내의 디자인 퍼니처 산업은 2000년대에 들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이름이 알려진 몇몇 대형 브랜드와 서울 외곽의 소규모 가구 공장들을 통해 판매되는 가구들이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무렵 목공이 대중적인 취미로 부상하는 가운데 직접 디자인을 해서 가구를 제작하는 공방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더불어 디자인한 가구를 전시하는 쇼룸 형태 또는 국내외 유명 가구를 큐레이션하여 공간을 연출한 퍼니처 카페가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스탠다드에이는 그런 흐름 속에서 2011년 출발했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한 류윤하, 안민규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지만 목공을 취미로 시작하다가 외연을 넓힌 이학준 세 사람이 공동 대표로 스탠다드에이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첫 발을 내디뎠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철학으로 가구를 만든다. ‘독일, 스웨덴, 일본, 핀란드 같은 나라들은 누구나 금세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원목 가구 브랜드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우리가 대표가 될 순 없을까?’ 스탠다드에이의 이러한 포부와 도전은 점점 그 목표에 닿아가고 있다. 브랜드명 ‘스탠다드에이’에서 철학이 느껴진다. 소문자 ‘a’는 알파를 뜻하는데, 표준에 특별한 알파를 더하되 과하지 않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는 오브제 성향이 강한 제품보다는 공간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가구를 지향한다. 그래서 소재도 처음부터 원목으로 정했다. 더불어 브랜드 슬로건인 ‘Standard not Normal’에는 표준이 흔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치를 지켜야만 얻을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을 반영했다. 원목은 스탠다드에이의 정체성이다. 주로 어떤 목재로 가구를 만드는가? 기본적으로 오크, 체리, 월넛 세 가지를 쓰고 메이플을 추가로 활용한다. 목재를 10년 이상 다뤘지만, 아직도 어렵다. 나무의 산지가 바뀌면 가공하는 법도 달라진다. 보통 미국산 목재를 사용하는데, 미국은 지역마다 기후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목재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 재료를 다루기가 까다롭다. 그럼에도 원목 가구는 만져봤을 때 질감이 좋고 정서적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지점을 고객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코팅의 경우 가급적이면 오일이 스며들게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래커칠로 표면에 막을 씌우면 목재가 지닌 질감을 오롯이 느낄 수 없다. 가구를 만들 때 전통적인 미감도 고려하는가? 공간의 성격과 방향성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최근 작업한 H&B 스토어 올리브영 안국역점의 경우, 서울 북촌에 자리한다. 인근에 경복궁과 창덕궁이 있고, 바로 맞은편은 골동품 가게가 즐비한 인사동이다. 뒤로는 북촌한옥마을이 있다. 그래서 이곳은 지역성을 반영해 한옥을 모티프로 리뉴얼되었다. 우리는 퍼니처 아티스트 김현희 작가와 협업해 고가구에서 볼 수 있는 장석을 알루미늄 디테일로 표현하는 등 전통과 현대를 적절히 섞으려 시도했다. 새로운 느낌을 위해 전통 가구에는 잘 쓰이지 않았던 월넛도 사용했다. 그리고 2024년 말에는 ‘세븐스도어’를 운영하던 김대천 셰프가 비건 레스토랑 ‘비움’을 오픈할 예정이라며 우리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사찰 음식에 뿌리를 둔 채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어서 그는 한옥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어 했다. 한식 이미지를 가구에 녹여 달라는 의뢰를 받고, 기존 2번 의자를 기준으로 새 의자의 형태를 다듬었다. 그때 한옥 창살에 착안해 의자의 등 부분을 세로선으로 채웠다. 샘플을 제작해 실제로 사용해 본 후 제품을 출시한다고 들었다. 스탠다드에이 설립 초기, 판매한 제품에 문제가 생겨 다시 돌아온 경우가 있었다. 이후부터 우리는 일정 기간 샘플을 실제로 사용해 보면서, 문제가 생길 만한 요인들을 미리 해결하고 디자인을 수정해 최종 형태를 결정한다. 5번 의자는 지끈을 직조하는 서양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데, 뒤집어 보면 ‘ㄱ’자로 꺾인 못이 박혀 있다. 그 못에 끈을 걸면 언젠가는 빠지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서양 문화권에서는 사용자들이 못을 다시 박거나 고쳐서 사용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불량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정서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견고함을 보완하기 위해 수십 개의 못을 하나로 합친 판을 만들어 대체했다. 만약에 디자인과 기능 둘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면, 우리는 기능을 먼저 염두에 두고 형태를 찾는 편이다. 쇼룸 한쪽 벽면에 연출된 스탠다드에이의 대표적인 모듈형 원목 책장과 다양한 스툴 제품들. 짜맞춤 기법의 정교함과 오일 도장 마감으로 나무 본연의 결을 살린 디자인이 돋보인다. 스탠다드에이를 대표할 만한 가구는 무엇인가? 기준은 역시 판매량인 것 같다. 초창기에는 고객들이 다이닝 테이블 2번과 3번을 가장 많이 찾았다. 요즘에는 의자를 많이 구매한다. 7번 의자는 스탠다드에이의 현재 시그니처라 할 수 있다. ‘모수 서울’과 ‘품서울’ 등 유명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에서 이 의자를 가져간 후 입소문이 났다. 7번 의자는 우리가 기존에 만들었던 가구들에 비해 화려하다. 의도적으로 형태감이 도드라져 보이게 디자인했다. 이 의자를 만들고 나서 어디에 두면 가장 좋을까 상상했을 때 떠올랐던 공간은 레스토랑이었다. 통상 3시간가량 이어지는 긴 식사 시간 동안 자세를 편하게 바꾸려면 딱딱한 등받이보다 부드러운 등받이와 편한 팔걸이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편안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는데, 유명한 셰프들이 이 의자를 선택해서 놀랍기도 하고, 우리의 의도가 적중한 것 같아 뿌듯하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각자 선호하는 가구가 다르긴 한데, 대체로 6번 의자를 편안해한다. 스탠다드에이의 현재 시그니처인 7번 의자. 스탠다드에이의 의자 시리즈 중 화려한 축에 속하는 이 의자는 사용자를 배려한 우아한 곡선 라인이 특징이다. 스탠다드에이 제공 조민석 건축가의 매스스터디스와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첫 작업인 원남교당은 어떠했나? 매스스터디스가 원남교당 내부에 들어갈 벤치를 제작할 수 있는 목공팀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우리와 연이 닿았다. 그간 우리가 작업했던 공간들은 대부분 층고와 면적이 일정한 편이었는데, 원남교당은 스케일이 달랐다. 공간 자체가 둥글고, 층고도 높았다. 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열 번도 넘게 찾아가 공간이 비로소 익숙해진 후에 작업을 시작했다. 따뜻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가구 모서리들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구조를 적용했다. 유서 깊은 건축물인 주한 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의 리모델링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스탠다드에이가 정교하게 되살려낸 계단 난간. 도면이 없는 상태에서 사진에만 의존해 원작자의 건축적 유산을 고증해 냈다. 스탠다드에이 제공 건물 내부를 부수고 골조만 남긴 상태에서 안전 진단을 했는데, 콘크리트와 철근이 삭아서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복원이 불가능했기에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지을 것인가, 동일한 형태로 다시 지을 것인가라는 숙제가 있었다. 현대 건축의 거장 김중업(1922~1988) 건축가의 작업인 만큼 최대한 살릴 것은 살리고, 조금씩 새로운 터치를 넣기로 결정되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상징적이고도 중요한 계단의 난간 작업을 맡았다. 굉장히 까다로운 형태였는데, 설계도도 없고 사료는 빛바랜 사진 세 장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고사했는데, 우리가 안 하면 목재로 복원할 수 있는 팀이 없어 금속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참여했고, 도면도 없이 사진에 의지해 만드느라 굉장히 고생했지만, 고가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건물이 보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 외에도 피크닉 같은 복합문화공간, GS25, 우아한형제들 같은 기업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스탠다드에이만의 방법론이 있다면? 가장 어려운 점은 실무진과 결정권자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거나 명확히 소통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감사하게도, 디자인적으로는 실무자들이 우리 작업을 믿고 제안하는 경우가 많아 풀어나가기 수월한 편이다. 같은 업종이라도 공간에 따라 분위기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공간 전체를 디렉팅하는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의견을 귀담아듣는다. 정답이 따로 있진 않지만, 시간을 들여 깊게 고민하면 정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기능이나 제작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없는지 보완하는 쪽으로 접근한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의 대부분이 최소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헤리티지가 쌓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꾸준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 15년이다. 패널을 이용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가구는 만드는 쪽도 편하고, 쓰는 사람도 적당히 사용하고 버릴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함이 넘치는 시대에 직접 손으로 공들여 만드는 방식을 고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묵묵하게 우리만의 시간을 쌓아 나가고 싶다. 스탠다드에이는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 건축가와 협업하여 원남교당의 내부에 설치되는 가구 작업을 도맡았다. 건물 내부의 높은 층고와 원형 구조에 어울릴 수 있도록 가구 모서리들을 부드럽게 마감했다. 스탠다드에이 제공

한 폭의 그림이 된 절제의 미학

Arts & Culture 2026 SUMMER

한 폭의 그림이 된 절제의 미학 서울시무용단의 는 동시대 한국 공연예술을 논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작품이다. 국가무형유산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미니멀한 연출과 정제된 군무로 국내외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전통 의례의 맥락 속에서 친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섬세하게 조율해 냈기 때문일까? 1막 장면으로, 문과 출신의 벼슬아치인 문관들의 춤 문무이다. 흰색 단령을 입고 간결한 관모를 쓴 무용수들이 대열을 만들며 의례의 시작을 알린다. 두 개의 ㄷ자 형태 조명이 설치된 무대 디자인은 종묘를 시각화한 것이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는 종묘제례악이라는 다소 낯설고 어려운 주제에도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평이 따라붙는다. 실제로 는 한국의 전통을 모티브로 한 작품 중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선 구체적인 수치가 그것을 증명한다. 2022년 초연 이후 해마다 90%가 훌쩍 넘는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해 왔는데, 공연이 오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그 성과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반복된 재공연에도 불구하고 약 3,000석의 객석을 꾸준히 채우며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가 일시적인 화제성을 넘어서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의 이례적인 행보는 해외 무대까지 이어졌다. 이 작품은 초연 이듬해인 2023년 뉴욕 링컨센터에 초청되어 현지 관객들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예술 주간’ 프로그램 중 유일한 유료 공연이었음에도 3회 공연이 모두 전석 매진되었다. 당시 뉴욕의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들로부터 작품의 독창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다. 올해 1월에는 제41회 뉴욕 댄스&퍼포먼스 어워드에서 의 안무가인 정혜진, 김성훈, 김재덕이 ‘최우수 안무가·창작자’ 부문에서 수상했다. 통상 ‘베시 어워드’라 불리는 이 상은 뉴욕에서 공연한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이고 혁신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과 예술가에게 주어진다. 베시 어워드에서 한국 예술가가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를 계기로 는 국제 공연예술계에서도 유의미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성과만으로 이 작품을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높은 객석 점유율이나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 그리고 수상 경력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전부는 아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것일까? 가 만들어 내는 고유한 몰입의 순간에는 남다른 비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1막 중 한 장면이며, 무과 출신의 관리인 무관들이 추는 무무이다. 이 춤은 검술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현재’로 호출된 전통 서울 종로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종묘는 조선(1392~1910)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쉽게 말해 조선의 왕과 왕비를 기리기 위한 의례 공간인 셈이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거행되는 의례를 뜻하고, 종묘제례악은 의례가 거행될 때 연행되는 음악, 노래, 춤을 통칭한다. 종묘제례악에는 음악과 노래뿐만 아니라 춤도 포함이 된다. 과거 조선 사회에서 ‘악’은 음악과 노래, 춤 모두를 지칭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무용단의 는 이 의례에 등장하는 ‘일무’를 모티브로 했다. ‘일무’는 ‘줄을 지어 추는 춤’을 일컫는데, 64명이 여덟 줄로 정렬해 추는 팔일무가 일반적이다. 종묘제례악에는 크게 ‘보태평’과 ‘정대업’이라 불리는 음악이 사용되며, 일무는 선왕들의 문덕(학문의 덕)을 기리는 문무 ‘보태평지무’와 선왕들의 무공(군사상의 공적)을 찬양하는 무무 ‘정대업지무’로 나뉜다. 특별한 장신구와 의복, 유장한 멋이 있는 음악, 부드럽게 절제되어 있는 군무는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일무를 포함해 다양한 한국 춤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매년 작품을 수정하며 연출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있지만, 4개의 막을 차례로 선보이는 큰 구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1막에서는 전통 일무의 특징적 요소를 뼈대로 한 창작이 선보이는데, 작품의 지향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이어지는 막을 예비한다. 2막은 버드나무에서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을 형상화한 춘앵무를 모티프로 한다. 춘앵무는 본래 1인무지만, 이 작품에선 대형 군무로 확장하여 재미를 더했다. 펄럭이는 넓은 소맷자락마저 춤의 일부가 되어 우아함을 극대화한다. 3막에서는 무용수 3명이 대나무의 절개를 보여주듯 절제된 미를 구현하며 작품의 호흡을 정돈하고, 마지막 4막에서는 ‘신일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일무가 펼쳐진다. 각 막은 서로 다른 주제에 따라 그에 걸맞은 춤과 음악, 의상을 감상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4막 ‘신일무’의 한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듯 음악과 의상, 춤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무용수들의 유기적인 군무는 작품이 지닌 생명력과 동시대적 감각을 보여준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협업으로 빚어낸 무대 궁중 무용인 ‘춘앵무’를 재해석한 2막 장면. 본래 춘앵무는 화문석 위에서 추는 춤인데, 이 작품에서는 붉은 화문석을 공중에 매달아 무대 장치로 화려하게 연출했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에는 여러 관전 포인트가 있다. 그러나 가 선사하는 가장 직접적인 매혹의 원천은 단연 무용수들의 정제된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미장센이다. 깜깜하게 암전된 극장 속 하얗게 펼쳐진 무대 위에 정렬한 무용수들은 그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정확하게 맞물리는 대형의 변화가 무대를 살아 있는 장면으로 바꿔놓으며 시각적 쾌감을 제공한다. 한국 전통 음악의 요소를 사용하되 다양한 움직임과 효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자유로운 운용 방식을 택한 음악도 작품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완성도는 협업의 결과다. 안무가 정혜진은 한국 춤의 구조와 형태를 적극적으로 해체하며 독특한 조형성을 만들어 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는 의상과 색채, 무대 이미지를 통해 각 장면의 분위기를 선명하게 구축하며, 막마다 서로 다른 시각적 리듬을 부여한다. 그간 , , 등의 작품으로 국립무용단과 호흡을 맞추며 정구호가 창조한 한국적 이미지는 서울시무용단의 에서 새롭게 응집된다. 여기에 김재덕의 음악이 더해지며 의례가 지닌 느리고 엄숙하다는 고정관념을 때로는 따르고, 때로는 벗어나며 몰입의 방식을 설계한다. 서로 다른 장르에서 축적해 온 감각이 작품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가 정교한 하나의 풍경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간 종묘제례와 같은 전통 의례는 동시대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았다. 는 의례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촉발하는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의례가 지닌 세련된 카리스마를 동력으로 한 시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현재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의례를 기반으로 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역시 가 열어 보인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둬 온 는 앞으로 국내외 무대에서 어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갈까? 한국의 전통 의례를 새로운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공연예술과 연결하려는 시도는 어떤 가능성을 열어 보일까?

시간의 흔적을 품다 - 건축가 조성룡

Arts & Culture 2026 SPRING

시간의 흔적을 품다 - 건축가 조성룡 1944년생인 조성룡은 한국 현대 건축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온 건축가다. 그는 공간에 내재한 역사와 공동체의 기억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축적되는 유무형의 가치를 존중하고 보존하며, 이를 현재와 연결하려 한다. 공동 주택이나 공공 건축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크고 작은 공동 주택과 미술관, 기념관, 공원 등을 꾸준히 설계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내에 있는 꿈마루는 원래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지어진 건물이다. 노후화로 인해 철거 후 신축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조성룡 건축가는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레노베이션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덕분에 이곳은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다. ⓒ 김재경 “신축이나 증축만이 아니라, 오래된 장소와 건물을 재생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성룡의 이 말은 그의 건축 철학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그의 작업은 형태의 완결을 궁극적 목표로 삼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공간과 건물 표면에 남는 ‘흔적’을 통해 의미가 축적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흔적은 단순히 소멸이나 쇠퇴의 증거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과 장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조성룡의 건축은 그 자원을 어떻게 촉발하고 보살필 것인지를 묻는 지속적 실천이다. 한반도 남단에 자리한 작은 섬 소록도에 조성된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 시설물’이 대표적 사례다. 2016년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기념 조형물 제작에 대한 의뢰가 들어왔지만, 그는 조형물 대신 소록도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안내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센병 환자들의 주거지인 이 섬의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것인지 고민한 끝에, 그는 1970년대 지어진 낡은 주택 한 채를 레노베이션하여, 이곳에 살았으며 또한 여전히 살고 있는 한센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것이 소록도를 위해 건축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조성룡에게 건축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되는데, 건축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수많은 후배 건축가들에게 모범이 되고 자극을 주었다. 도시와 사람, 시간이 만나 만들어내는 서사를 보다 섬세하게 읽어내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성룡의 업적은 완성된 건물 자체에 있기보다는 설계 과정에서 그가 제기했던 질문들이 쌓여 만들어낸 담론에 있다. 공공적 맥락을 중시하는 그의 시각은 설계 공모를 비롯해 교육·주거·문화 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에 일관되게 드러난다. 조성룡은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적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해 온 건축가이다. 건축물의 화려한 외관보다는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지닌 삶의 방식을 우선시한다. 특히 그는 공간에 내재한 역사의 흔적을 절제된 미학으로 되살려내는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 한겨레신문 설계 공모에서 시작된 문제의식 설계 공모는 으레 제한된 프로그램과 규정, 촉박한 일정이라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설계 공모는 건축가가 장소의 맥락을 압축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훈련의 장이 되기도 한다. 조성룡에게도 그것은 단순히 좋은 평면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설계 공모의 까다로운 조건들은 조성룡에게 대지가 지닌 역사성을 집중적으로 날카롭게 접근하도록 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초기 스케치와 다이어그램, 비교안들은 이후 실현 단계에서 형태와 기능을 검증하는 이론적·실무적 자산으로 남았다. 조성룡은 1983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 및 기념공원’ 국제 공모에 당선되면서 건축계에 등장했다. 서울 잠실에 있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아시아공원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기념성과 일상성의 접점, 공공적 기억의 조직을 고민한 이 작업은 시설이 도시 경관과 시민 삶을 연결하는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파트의 질서가 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입주자들이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도록 각 동의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만들어 비웠으며, 주차장과 주거동 사이에 널찍한 마당을 설치했다. 이 경험은 공적 시설의 설계가 기념적 요소와 일상적 사용을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어 주었고, 이후 공공 프로젝트에서 장소성·공공성과 관련된 판단들을 반복적으로 촉발시켰다. 그에게 설계 공모라는 장은 결국 완성된 건물 하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질문을 발화하고 검증하는 연습장이었다. 그 연습은 이후 작은 작업이나 큰 공공사업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응노의 집’은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인 이응노를 기리기 위해 고향 홍성에 세워진 기념관으로, 그의 굴곡진 생애가 건축으로 형상화된 곳이다. 조성룡은 옛 문헌을 조사해 과거의 지형을 살려내고,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황토색 건물들이 주변 풍경 속에 녹아들도록 소박하게 디자인했다. 그러나 공간 내부는 긴장감이 감돌게 설계하여 외부와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 김재경 품위 있게 늙어가는 건축물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 시설물은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사용되었던 옛 병사 한 동을 레노베이션한 공간이다. 섬 초입에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던 건물을 없애는 대신 소록도를 찾는 방문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환영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 김재경 교육 시설은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런 공간은 단지 기능을 모아 놓은 그릇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 만남과 공적인 행위가 만들어지는 배경이자 촉매다. 조성룡이 인하대학교 학생회관 설계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단순한 프로그램 충족이 아니라, 내부 공간이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공동의 행동 양식을 길러내느냐였다. 그는 계단과 라운지 같은 가변적 회합 공간을 통해 우연한 만남을 촉발하고, 토론과 자발적 활동이 가능해지도록 했다. 조성룡은 또한 건축 재료가 시간의 흐름을 수용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건물의 벽과 바닥, 손잡이와 계단의 마감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색되고 닳는다. 조성룡은 그것을 건축물의 ‘풍화’라 일컫는데, 이 풍화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진행된다. 시간이 흐르며 쌓인 손때와 자국이 곧 공동체의 서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여러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품위 있게 늙어가는 건축’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어떤 건물이든 지어진 그 순간부터 서서히 낡아가기 마련이므로 건물의 노후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수십 년 전 지어진 낡은 건물들을 무작정 철거한다고 해서 도시 문제가 전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는 건물이 자연스럽게, 품위 있게 풍화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이자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조성룡이 재료와 디테일을 신중히 고려하는 이유다. 그가 지은 건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운치가 느껴지는데, 이는 치밀하게 계획된 결과이다. 이는 주거 설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주거 설계에서는 작은 결정들이 일상의 풍경을 바꾼다. 창의 위치, 중정의 크기, 마감재의 촉감 같은 미세한 선택들이 쌓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이 개인의 기억과 삶의 흔적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러한 판단은 단기적 편의가 아니라 장기적 삶의 질을 염두에 둔 설계적 약속이다. 장소성에 대한 관심 어린이대공원 꿈마루의 본체는 한국 현대 건축 1세대인 건축가 나상진이 1968년 설계한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이다. 이 건물이 철거 대신 재생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설계자였던 나상진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재조명받게 되었다. ⓒ 김재경 한편 조성룡에게 전시와 문화 시설은 건축적 사유를 공개적으로 시험하는 장이다. 1989년 도쿄에서 열린 은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주목받은 한국 현대 건축을 소개하는 건축 전시였다. 이 전시에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하나로 참여한 조성룡은 관객들과의 직접적 만남을 통해 장소성에 대한 자신의 건축적 사유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읽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장소성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장소의 기후적·경관적 조건을 설계 장치로 전환한 경기도 용인의 근대미술관 계획과 해운대 빌리지 프로젝트 등으로 이어졌다. 최근의 작업들에서도 장소성에 대한 관심은 계속된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부속 건물인 꿈마루는 공원의 이용성과 프로그램을 연결해 세대 간 경험을 매개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며, 선유도 공원 관련 작업에서는 기존 장소의 생태적·문화적 맥락을 재해석하고 회복하는 노력이 읽힌다. 특히 해운대 빌리지나 선유도 공원처럼 자연과 맞닿은 장소에서는 염분·습기·바람 같은 물리적 조건과 생태적 변화가 설계 시 고려 사항이 되고, 그것들이 표면과 형상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도록 구성된다. 그런가 하면 미술관 같은 문화 공간은 단지 전시물을 담는 그릇을 넘어서 관객의 경험을 매개하고 도시적 기억을 생산하는 능동적 장치로 작용한다. 조성룡의 작업에서 개념적 스케치와 실천적 건축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드로잉과 모형은 현실적 제약을 넘어서는 상상을 촉발하고, 당선된 공모안이나 실현된 건물은 그 상상을 검증하고 재정의한다. 대한주택공사의 초고층 아파트 당선 사례는 밀도와 수직성, 공동체 형성 문제를 재검토하게 만들었고, ‘바로크’로 불린 설계는 표면의 리듬과 형식적 실험을 통해 시간성과 경험의 중첩을 묻는 시도였다. 조성룡의 개념적 실험은 실현 가능한 전략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물리적·제도적 제약은 다시 개념을 숙성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 순환은 조성룡의 설계 언어를 다층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단일한 스타일이나 표면적 미학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설계 태도를 확립하게 했다.

스크린의 질감, 환각의 감각

Arts & Culture 2026 SPRING

스크린의 질감, 환각의 감각 람한(본명 한지혜)의 작업은 매끈하고 꿈결 같은 형광 팔레트 속에서 그로테스크와 아름다움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스크린의 질감을 회화적 경험으로 옮기며,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각 언어를 제시하는 그녀의 작업은 젊은 세대를 사로잡는다. < Case_01_01(toxin) >. 2020. 디지털 프린트, 라이트 패널. 100 × 100cm. 2020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커미션. © 람한, 휘슬갤러리 람한은 자신을 디지털 페인터라 소개한다. 작업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미술가를 통상 ‘디지털 아티스트’라 부르지만, ‘디지털 페인터’는 그리 흔한 용어가 아니다. 그녀는 붓과 물감 대신 태블릿 펜과 픽셀로 그림을 그린다. 떠오른 생각과 일상의 풍경을 스마트폰으로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액정 태블릿에서 스케치와 채색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스케치부터 마감까지 즉흥성이 크고, 디지털 파일의 기록성을 활용해 끊임없이 수정·갱신한다. 화면 위에 색을 찍고 선을 긋는 작업 과정을 분명한 회화 행위로 인식하는 그녀는 관람객이 작업의 ‘회화성’에 집중하길 바란다. 디지털이 일상화된 오늘날, ‘디지털 페인터’라는 명명은 회화의 정의가 갱신되어야 함을 환기한다. 블로그에서 미술관으로 디지털 환경을 바탕으로 한 람한의 작업은 가상과 현실, 기억과 환상이 뒤섞인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인다. 서브컬처의 요소들이 작품에 녹아 있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열성적인 팬덤이 형성되었다. © 람한, 휘슬갤러리 작가의 이름 ‘람한’은 활동명이다. 학창 시절 별명 ‘람쥐’에서 딴 ‘람’에 본래 성 ‘한’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람한은 10대 후반부터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블로그에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게재해 왔다. 디지털의 가상 세계는 그녀에게 일찍부터 활동의 장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에 재학하면서는 인스타그램(@ram__han)으로 개인 작업을 꾸준히 공개했으며, 출판사의 책 표지 의뢰를 비롯해 애플·LG OLED·빅히트·SM 엔터테인먼트 등과 협업을 병행했다. 2017년 첫 개인전 《나이트캡》을 열고, 일러스트레이션 화집 『Let’s meet at 7pm』을 발간하는 등 소규모 전시와 출판물을 통해 차츰 활동 반경을 넓혔다. 2018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 개최한 단체전 《유령팔》에 참여하게 되면서 람한은 비로소 제도권 미술계에 본격 진입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는 SNS를 통해 람한의 작업을 발견하고, 디지털 기반의 가상 세계를 창작 거점으로 삼아 매체와 형식을 실험하는 작가로 그녀를 주목했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작업을 선보여 온 그녀는 이 전시에서 처음으로 대형 설치 연작을 전시장에 구현했다. 가로·세로 3미터 규모의 디지털 페인팅 연작은 ‘컴퓨터 안’의 작업을 ‘컴퓨터 밖’으로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화한 계기였다. 디지털 질감을 오프라인에서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그녀는 조명용 필름(백라이트 필름)에 아카이벌 프린트를 한 뒤 뒤쪽의 LED 광원으로 비추는 라이트 패널 방식을 고안·적용했다. 호텔 객실을 모티프 삼은 이 연작에는 어항이 나란히 들어선 벽장, 침대 위에 뛰어오른 흰토끼, 원형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비행기 등이 배치되어 있다. 공간의 기능을 의도적으로 제거해 판타지만을 부각시킨 이 연작의 향수 어린 색감과 구성은 영화 속 러브호텔 장면, 그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1989년생의 세계관 < Save our souls_05 >. 2022. 디지털 프린트. 14 x 28cm. © 람한, 휘슬갤러리 < Room type 02 >. 2018. 디지털 프린트, 라이트 패널. 300 × 300cm. 2018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유령팔》 커미션.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소장. © 람한, 휘슬갤러리 휘슬 갤러리 이경민 대표는 “세대론으로만 환원하면 비평의 여지를 좁힐 수 있으나, 작가가 소재를 선택하고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에 동세대의 관심사가 강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1989년생인 람한의 미감은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등 서브컬처에 깊게 닿아 있다. 그녀는 ‘아니메’의 세계에서 성장했으며, 일본 만화 특유의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미학과 조형미에 큰 영향을 받았다. 또한 1999년 발매된 넥슨의 롤플레잉 게임 일랜시아가 주는 자유도 높은 세계관과 동서양 미감의 결합은 람한이 펼쳐내는 상상력의 지층을 이룬다. 그녀는 지금도 새로운 게임을 발견하면 그 세계관을 직접 체험해 보는 편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SF 영화와 피겨 문화 또한 주요한 참조 목록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상징하는 가수 엄정화의 와 이정현의 로 대표되는 사이버 감성의 대중음악 비주얼은 밀레니얼 기억과 결합해 화면에서 재조합되고, 인터넷 대중화 초기에 검열 없이 접한 자극적인 이미지들이 남긴 시각·정서적 흔적은 형광 계열 팔레트의 질감으로 응결된다. 람한은 《유령팔》 이후 2020년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2024년 예술경영지원센터 우수 전속 작가 기획전 《다이얼로그: 경계인간》 등 국내 주요 기관 전시와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의뢰 작업도 활발하다. 특히 책 표지 작업에서 람한은 SF·판타지 서사를 색감과 구성으로 충실히 시각화하는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다.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리커버 특별판(2020)은 퇴마 판타지의 공기를 유니크한 팔레트로 포착함으로써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김보영의 『사바삼사라 서』(2024), 정보라의 『너의 유토피아』(2025) 등의 표지 작업은 각 작품의 정서를 관통하는 시각적 입구로 기능했다. 2023년 아트바젤 홍콩 설치 전경. © 람한, 휘슬갤러리 디지털 텍스처의 회화적 전환 < Expectancy >. 2019. 디지털 프린트, 라이트 패널. 150 × 150㎝. 2019년 시청각에서 열린 람한, 박혜인 2인전 《Ghost Shotgun》 설치 전경. © 람한, 휘슬갤러리 2022년과 2024년 휘슬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Spawning Scenery》와 《Inaudible Garden》은 디지털 페인터로서 람한의 야심과 고민을 집약해 보여준 자리였다. 우선 《Spawning Scenery》에서 그녀는 매끈한 디지털 화면의 특성을 극대화하고자 색과 표면의 감각을 밀도 있게 탐구했다. 에서는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이키델릭한 색채의 끈적하고 반짝이는 덩어리들이 뒤엉키고 폭발하며 화면을 채운다. 인간과 동식물이 결합된 크리처 드로잉 연작과 가상현실 작업 등 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대중 매체와 서브컬처에 축적된 기억과 감각을 재조합해 판타지를 덧입히고, 이를 관람자의 체험으로 전환하려는 목표를 드러냈다. 한편 《Inaudible Garden》에서는 ‘정원’이라는 주제 아래 식물과 여성 이미지를 다루며 표현 방식을 한층 응축했다. 연작은 제목으로 ‘튤립’을 명시하지만, 백라이트 필름에 아카이벌 프린트된 이미지는 단번에 꽃으로 읽히지 않는다. 온전한 튤립 원본을 그린 뒤 일부를 확대·복제·재조합하고 그 위에 드로잉을 더해 활자처럼 배열한 결과다. 보다 추상화된 이미지를 통해 디지털 회화의 고유성을 드러내려는 의도다. 람한은 모니터에서만 포착되는 결, 빛의 번짐, 픽셀과 브러시가 만드는 미세한 차이를 관람자가 그대로 감각하도록 출력과 재현의 여러 단계를 실험한다. 람한의 회화는 도구의 전환을 넘어 지각의 확장에 가깝다. 붓 대신 펜, 안료 대신 픽셀을 들었을 뿐 여전히 회화의 본질을 수행하며, ‘디지털 페인터’라는 명명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굳혀가고 있다.

과거의 풍속이 현재의 트렌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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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풍속이 현재의 트렌드가 되다 온양민속박물관은 한국인들의 전통 생활 양식과 관련된 민속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사립 민속 박물관이다. 방대한 유물을 주거·생업·의례 등 유형별로 구분해 조명한다. 전시관뿐 아니라 야외 정원도 잘 조성돼 있어, 역사 교육과 휴양을 겸하는 복합 문화 공간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2024년, 온양민속박물관이 개관 46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 모습. 좌식 생활 문화를 대변하는 소반의 다양한 쓰임새와 형태를 살펴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다. 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은 충청남도 아산시에 위치한 한국 최초의 사립 민속 박물관이다. 총 8만 2,644m² 대지에 본관, 구정아트센터, 카페, 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이 박물관은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계몽사를 창업한 구정 김원대(1921~2000) 회장이 1978년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1970년대 한국은 빈곤 퇴치 및 산업화를 목표로 한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우리 고유의 생활 문화가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 회장은 민속학, 고고학, 서지학계 학자들로 자문단을 꾸리는 한편 학예사들이 전국을 다니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민속품들을 수집했다. 전통 의복부터 밥그릇, 소반, 쟁기, 지게 등 불과 몇 십 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이었지만, 오늘날엔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품들이다. 민속 유물의 가치 온양민속박물관 본관은 3개의 상설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거 한국인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 1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은 본관 1층이며, 입구 맞은편에 뮤지엄숍이 자리한다. 온양민속박물관의 소장품 가운데 고려(918~1392) 시대 법회에 사용된 청동북, 19세기 후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왕세자 의례용 갑주(갑옷과 투구)와 갑주함, 고종(재위 1863~1907)의 아버지 이하응이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 거북 흉배 등 일부는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유산으로 지정됐다. 소장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도 흥미롭다. 제작 연도(1162)와 함께 봉안처와 출토지가 분명한 천수원명 청동북의 경우, 이순신(1545-1598) 장군의 묘소 인근에 거주하던 한 주민이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1977년 발견했다고 한다. 단순히 고물이라 생각한 그는 “비누 한 장 값도 되지 않는다”는 고물상 말에 도로 가져갔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화재관리국에 연락했고, 박물관과 연결되었다. 비로소 유물의 가치를 알게 된 그는 설립자가 건넨 사례비를 끝내 마다하고 기증했으며, 박물관의 보존과 연구를 거친 청동북은 발견된 지 47년 만에 보물로 지정됐다. 제3 전시실에는 실용성과 조형미를 겸비한 전통 공예품을 비롯해 한국인의 민간 신앙과 놀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통 연희 중 하나인 탈놀이에 쓰이는 다양한 종류의 지역별 탈들이 한쪽 벽에 걸려 있다. 야외 전시장 한쪽에 자리한 전통 가옥은 1878년 지어진 너와집(소나무 판재로 지붕을 올린 집)으로, 강원도 삼척에서 박물관 자리까지 해체해 옮겨오는 데 당시 돈 1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현재 화폐 가치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다. 당시만 해도 집 한 채를 먼 지역까지 이전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 너와집은 단순한 건축 유물을 넘어, 산간 지역 생활 문화와 함께 박물관의 수집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장 가치가 높다. 이러한 민속자료는 부유한 사람들이 구입하는 값비싼 미술품이나 골동품과 달리 지금 보존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낳은 결과다. 건축 기행의 명소 본관 건물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구정아트센터는 건축가 이타미 준이 한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설계한 건축물이다. 중앙홀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개의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각종 문화 행사와 특별 전시가 이곳에서 진행된다. 온양민속박물관은 건축 순례지로서 빠지지 않는 명소다.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본관은 한국 현대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김석철(1943-2016)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웅장한 본관 건물은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한국 전통 건축물 특유의 긴 처마와 누마루가 안정감을 주고, 건물 외관과 내부 벽면은 붉은 벽돌과 검은 벽돌을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로 교차해 조화를 이룬다. 설계 당시 백제(기원전 18~서기 660) 시대의 무덤인 무령왕릉 내부의 벽돌 쌓기 방식과 색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옛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물 1만여 점이 전시된 본관은 총 6만 4,800m² 규모로 3개의 상설 전시실과 특별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제1전시실은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일생과 의식주, 제2전시실은 농어업과 사냥, 채집 등 한국인의 생업, 제3전시실은 각종 민속 공예와 민간신앙, 놀이, 학술과 제도 등으로 구분해 전시 중이다. 각 전시실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동선은 관람객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이는 건축 설계 단계부터 각 공간에 전시될 유물의 실제 크기와 배치를 계산해 전시실을 구성한 결과다. 또한 제1전시실은 실제 전통 가옥의 부엌, 안방, 대청, 사랑채 등으로 구성하고 과거를 ‘체험’하기 위해 외부 빛을 최소화한 반면, 제2전시실의 경우 상단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들여 각종 생활 도구의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이와 같은 자연광은 높은 천장고를 확보한 중앙 홀의 상단 창문을 통해서 매일 달라지는 빛의 장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온양민속박물관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건축물이 있다. 1982년 준공한 구정아트센터는 재일 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의 국내 첫 건축물이다. 그는 2005년 프랑스 예술 훈장인 슈발리에와 레지옹 도뇌르, 2010년 일본 최고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받은 세계적 건축가로 국내에선 제주 포도호텔, 수풍석뮤지엄, 방주교회 등을 설계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건축에 앞서 돌이 많은 이 지역의 특징을 연구했다. 그러고는 돌을 캐 돌담을 쌓고 질 좋은 황토를 채취해 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었다. ‘이순신이 성장하고, 죽어서 묻힌 곳’이라는 지역성을 담기 위해 건물은 전체적으로 이순신을 상징하는 거북선을 형상화했다. 멀리서 봐도 타원형 지붕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정아트센터의 중앙홀 내부로 들어서면 흰색과 흙벽돌이 어우러진 건축물이 그 자체로 예술품임을 알 수 있다. 탁 트인 공간에 두 개의 큰 기둥이 한눈에 들어오고, 11m가 넘는 천장고와 가로 세로 겹겹이 교차하며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목재 대들보를 보노라면 흡사 거대한 목선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박물관에서 힙플레이스로 온양민속박물관은 개관 당시 관람객이 줄을 서서 들어갈 정도였지만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다가 2013년 구정아트센터를 레노베이션해 공연과 전시, 문화 행사를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개관하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특히 2022년 지역의 공예 자원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한 아산공예창작지원센터와 카페 온양이 생기면서 관람객의 연령대가 크게 낮아졌다. 지원금과 기부금 의존도가 높은 사립 박물관으로서 가장 큰 현안은 홍보와 관람객 유치다. 요즘 홍보에 한몫하는 것은 박물관 굿즈 브랜드 ‘Objet Onyang’이다. 지역 작가들과 함께 개발한 전통 탈 마그네틱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하우스오브신세계 숍에서도 판매될 만큼 인기 상품이다. 또 팽이치기, 연날리기 같은 전통 놀이 체험 키트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곳은 개관 초기부터 축적된 자료들을 디지털화하는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 향후 체계적인 전시와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 올해 1월 김은경 관장은 박물관 재건과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 관장은 설립자의 3남 2녀 중 막내딸이다. 온양민속박물관은 2028년 개관 50주년을 앞두고 전시와 도록 발간을 병행하는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정아트센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외국인 관광객도 부쩍 늘었다. 박물관이 트렌드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관람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본관 제1 전시실에는 의식주 생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유물들이 생애 주기별로 진열되어 있다.

고전(古典)에서 걸어 나온 전위적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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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에서 걸어 나온 전위적 에너지 단편선은 ‘언어와 소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철학적 아티스트’라 불린다. 2004년 처음 무대에 서며 뮤지션으로서 첫걸음을 시작했다. 이후 실험적 음악 세계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한국 인디 음악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국내 인디 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꼽힌다. 2024년 결성된 밴드 단편선 순간들의 리더 단편선은 독특한 발성을 지닌 싱어송라이터이다. 또한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 발군의 역량을 발휘하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며, 편곡과 기획에도 참여하는 등 다방면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오소리웍스라는 인디 음악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당신은 나 같은 한국 영화의 기괴한 아름다움에 매혹돼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시각적 미학을 청각으로도 경험해 볼 준비가 돼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한국 인디 음악계를 대표하는 ‘미학자’ 단편선을 만나볼 차례다. 그의 본명은 박종윤이며, 1986년생이다. 2020년 말, 필자는 패션 잡지 『W Korea』의 연말 특집호에서 ‘올해의 프로듀서’를 선정하는 설문에 “단편선”이라고 답한 적 있다. 반면에 다른 두 명의 음악 평론가들은 K-팝 프로듀서를 지목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한 해를 결산하는 자리에서 대중은 잘 모를 수도 있는 인디 음악가 단편선을 꼽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무렵 나온 싱어송라이터 천용성과 전유동의 음반은 인디 팝의 풋풋함을 유지하면서도 통일성과 독자적 미학을 갖춘 쾌작이었다. 그리고 그 음반들의 크레딧 끝엔 “Produced by 단편선”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프로듀서로서 단편선은 미니멀한 포크 음악, 앰비언트적 음향 실험, 록적인 소용돌이를 오가면서 아티스트들이 그려놓은 스케치를 대담하게 채색했다. 호방하고 섬세한 그의 지휘봉은 예사롭지 않았다. 러시아 단편선 ‘단편선’이라는 예명은 어디서 왔을까.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 자리한 라이브 카페 ‘언플러그드 홍대’에서 만난 단편선은 이 질문과 관련해 러시아 작가들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긴 소설보다는 짧은 소설이 좋았죠. 톨스토이나 체호프의 단편선처럼 말이죠. 조금 더 커서 음악을 하게 되면서, 저도 그들처럼 이야기를 잘 버무리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특히 그는 체호프의 작품들 가운데 「갈매기」와 「관리의 죽음」에 열광했다. 격조 있는 문어체를 통해 진행되는 스토리에는 엽기적이고 희한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부조리의 미학이 광채를 뿜는 보석 상자를, 단편선은 마음에 깊이 담아두었다. 2000년대 초는 한국에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온라인 취향 공동체가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당시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었던 단편선은 나이는 어려도 ‘입심’은 셌다. 그는 ‘웨이브’ 같은 유명 음악 웹진에서 논객으로 활동했다. 해학적이면서도 뼈를 때리는 구석이 있는 그의 유쾌한 미문은 꽤 인상적이었고, 당시 활동하던 음악 평론가들의 눈에도 띄게 되었다. 이후 대중음악 웹진 ‘보다’가 창간되었을 때 정식 필자로 영입되어 음악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사실 중학교 다닐 무렵 오락실에 있던 리듬 게임 DDR을 통해서였어요. 거기 나오는 음악들이 너무 좋았고, 미디가 보급되던 시기라서 그런 음악을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강했죠. DDR 같은 리듬 게임에 심취한 이들이 모이는 온라인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당시 모임 대표였던 박장미(현재 밴드 ‘단편선 순간들’의 기타리스트)도 만났죠.” 단편소설을 좋아하고 리듬 게임에 심취했던 아이는 스무 살이 되면서 기타를 들었다. 2004년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한 그는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해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롤링스톤즈’에서 공연했다. 장르는 비교적 점잖은 모던 록이었다. 자립, 독립, 전위의 음악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프로듀싱 음반인 포크 듀오 선과영의 , 단편선의 첫 음반 , 오소리웍스가 발매한 소음발광의 , 프로듀싱 음반인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의 , 프로듀싱 음반인 천용성의 , 프로듀싱 음반인 싱어송라이터 전유동의 . 오소리웍스 제공 한국 인디 음악인들 사이에서 아직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하나의 투쟁기가 있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단편선이다. 2009년, 홍대 앞 작은 식당 ‘두리반’이 지역 재개발로 인해 강제로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대표적 서민 음식인 칼국수를 파는 식당을 지키기 위해 홍대 인근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듬해 단편선도 그곳에 갔다. 아방가르드 활동가이자 음악가인 한받, 기획자 박다함, 블루스 음악가 하헌진 등을 만난 단편선은 그들과 함께 공연과 입담으로 유쾌함과 처절함이 교차하는 싸움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2010년 5월 1일, 120주년이 되는 노동절을 맞아 단편선을 비롯한 젊은 음악가들이 기획한 페스티벌 ‘51+’가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이던 저희가 무대의 취지를 설명하며 한 팀, 한 팀 섭외해 나갔고, 결국 그날 하루 동안 70여 팀이 공연에 합류할 수 있게 됐어요. 그 장소가 지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홍대입구역 앞 AK 플라자 자리에요.” 단편선은 2012년 솔로 데뷔 앨범 을 낸다. 당시 활동명은 ‘회기동 단편선’이었다. 모교인 경희대가 있었던 동네 ‘회기동’에, 자신이 즐겨 읽고 좋아했던 ‘단편선’을 결합한 이름이다. 2013년 싱글 를 냈을 때는 홍대 앞 게릴라 이벤트에 여장을 하고 나타나 화제가 됐다. 단편선은 그렇게 뼛속까지 ‘자립’과 ‘독립’과 ‘전위’로 무장한 인물이었다. 이듬해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독특한 밴드가 등장했다. 통기타, 베이스기타, 바이올린, 퍼커션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록 밴드의 전통적 편제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그들의 정규 앨범 (2014)과 (2016)은 제목처럼 원시적이고 공격적이면서도 꿈결 같은 스토리텔링을 담은 수작이었다. 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 트로피를 가져갔다. 그들의 노래에는 설화적 캐릭터가 등장하곤 한다. 사람들의 모든 것을 품어줬지만 정작 외톨이가 된 거인(‘거인’)이나 사람들을 홀리고 춤추게 하는 초현실적 가객(‘이상한 목’) 같은 기괴하고 아름다운 존재 말이다.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들었을 때 쾌적함을 느끼기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곳에 빠져들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애니메이션 처럼요. 환상적인 경험을 겪은 뒤 변화가 생기거나 성장하는 것처럼 제 음악을 듣기 전과 들은 후 사람들이 뭔가 달라지는 경험을 했으면 해요.” 2025년 열린 부산국제록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 중인 단편선 순간들. 이들은 원초적이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국내 최초이자 최장수 록페스티벌이다.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 제공 음악적 미학의 집대성 는 단편선 순간들이 2024년 신작 를 발표하기 전 진행했던 팝업 스토어 형식의 전시회다. 오디오 다큐멘터리 상영, 대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오소리웍스 제공 단편선은 “내러티브가 명료하고 순차적으로 술술 풀리는 음악보다는 웃기고 재미난 아이디어가 있는 희한한 음악을 내 몸과 마음이 원한다”고 말했다. 음악에 홀수 박자와 변칙 박자를 자주 쓰는 것도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밴드 ‘단편선 순간들’의 노래 중에도 5박, 6박, 7박을 오가는 ‘불’이나 ‘독립’ 같은 곡이 그러하다. 2025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 상을 받은 단편선 순간들의 는 단편선이 펼쳐 보이는 음악적 미학이 집대성된 결과물이었다. 총 10곡이 실린 이 음반의 첫 트랙은 영국 작곡가 엘가의 을 록 음악의 미학으로 비튼 서곡 ‘Land of Hope and Glory (and The Things)’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에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곡을 몽환적인 연주곡으로 재해석한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가 놓여 있다. 즉, 클래식 명곡을 앞뒤에 배치한 구조다. “클래식과 팝 음악 또는 인디 음악 사이에 있다고들 생각하는 위계질서를 파괴하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죠. 두 곡들은 대단히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론 팝 음악이 가진 말도 안 되게 캐치한 후크가 있는 곡들이잖아요.” 이 앨범의 타이틀곡 ‘음악만세’는 발표 1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 인디 신의 새로운 국가 같은 위상을 차지했다. 2025년 여름, 여러 대형 야외 페스티벌에서 수천, 수만의 관객들이 단편선 순간들과 함께 “음악 만세”를 외쳤다. 특히 후반부에 삽입된 실제 시위 현장의 외침은 청량감 넘치는 록의 생동하는 기운과 합쳐져 묘한 뉘앙스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는 2022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퇴직 연설을 노래에 삽입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단편선은 여전하다. 그는 클래식을 탐미하되 인디를 지향한다. 톨스토이와 체호프의 작품이 지닌 고전성을 좇되 낯설고 날이 선 ‘뿔 달린’ 인디 록 음악을 엔진으로 삼아 전진한다. “제 음악 인생을 시리즈로 비교하면, 2편의 결말 정도쯤 와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마흔 살에 이르렀지만, 쉰 살까지 가는 여정에 뭔가 또 엄청난 게 기다리고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어벤져스로 치면 타노스가 등장하기 직전 정도의 긴장감이 있는 거죠. 음악에 관한 글을 쓰든, 제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든, 다른 사람의 음악을 제작하든 음악 일을 오래 하는 게 목표예요. 이제 AI가 뚝딱 음악을 만들어주는 시대가 왔어요. 저는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취향, 관점, 태도에 더욱 솔직한 음악이 중요하다고 봐요. 사람들이 힘껏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낯설고, 어둡고, 기괴한 세계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데뷔한 단편선은 이후 자신이 발표한 음반은 물론 프로듀싱한 앨범들에도 수상의 영예를 지속적으로 안기며, 한국 인디 음악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오른 ‘해녀’

Arts & Culture 2026 SPRING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오른 ‘해녀’ 제주 해녀 문화는 수많은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공동체 중심의 독특한 전통을 형성해 왔다. 최근 해녀를 소재로 한 K-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소개되면서, 해녀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1월 ‘haenyeo(해녀)’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정식 표제어로 등재되었다. 제주 해녀 문화는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섬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여성 공동체 문화이다.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26년 1월에는 'haenyeo’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 ⓒ 한국관광공사 한반도 남단에는 거친 계절풍이 깎아 만든 현무암의 섬 제주가 있다. 수백 년 동안 섬사람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척박한 토양과 가늠할 수 없는 기상 조건으로 인해 농경이 어려워지자 그들은 생존을 위해 바다에 의지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해녀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별도의 호흡 장비 없이 바다로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며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흐르며 이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지식, 신앙적 의례와 공동체적 연대가 결합되면서 고유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형성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제주의 자연환경이었다. 과거에는 남성들도 함께 참여했으나, 점차 여성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18~19세기에 이르러 여성들이 수중 채취 작업의 대부분을 전담하며 가계 경제에서 핵심적인 주체로 부상했다.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전문적인 해녀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이들은 주로 ‘잠녀’ 혹은 ‘잠수’라 불렸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재위 491-519) 503년 ‘진주 캐는 사람’에 대한 언급이다. 조선 시대(1392-1910)에 들어서면서는 확실한 분업이 이루어졌다. ‘포작’이라 불리는 남성들이 깊은 바다에서 전복을 따고, 여성들은 주로 해조류를 수확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 남성 잠수부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물질’은 여성들이 전담하게 되었고, 이들을 ‘바다의 여인’, 즉 ‘해녀’라 부르게 되었다. 공동체 윤리 제주 해녀들은 예로부터 생계를 잇기 위해 별도의 장비 없이 맨몸으로 깊은 바다에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했다. 이러한 어업 방식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3년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가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해녀박물관 해녀들은 산소통 없이 오로지 숨 참기, 경험, 강인한 체력에 의존한다. 숙련된 해녀들은 약 20미터 깊이까지 내려가 전복, 성게, 소라, 해조류 등을 채취한다. 수면 위로 올라올 때 이들이 내뱉는 독특한 휘파람 소리인 숨비소리는 호흡을 조절하는 동시에 자신의 안전을 알리는 신호이다. 해녀들은 숙련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며 작업 수심도 각각 달라서 상군은 가장 깊은 곳에서, 하군은 해안가에서 작업한다. 해녀는 절대 혼자 잠수하지 않고 마을 단위의 공동체로 움직인다. 이들에게 협업은 필수다. 이러한 공동체 윤리는 바다 너머까지 이어진다.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인 잠수굿을 올리고, 노를 젓거나 쉴 때는 삶의 고단함과 해학, 강인한 회복력을 표현한 민요를 부른다. 지속가능성이 세계적 화두가 되기 훨씬 전부터 해녀들은 어린 전복을 잡지 않고 산란기에는 조업을 금하는 등 자원 관리의 지혜를 실천해 왔다. 이러한 생태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되었다. 해녀의 역사 또한 제주 너머까지 이어진다. 19세기 후반부터 해녀들은 한반도 전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원정을 떠났다. 1930년대에는 제주도 밖에서 활동하는 해녀의 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 이러한 이동성은 근대 한국사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노동 이주와 문화 교류 양상을 반영한다. 해녀의 수는 196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 제주 해안가 마을의 소녀들이 물질을 배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였다.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감귤 농업이 확대되고 관광 산업이 발전하며 제주의 모습은 바뀌었다. 새로운 생계 수단이 등장함에 따라 해녀 인구는 급감했다. 현재 남은 해녀 대부분은 고령층이고, 해녀 공동체의 규모는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다. 제주 해녀들 사이에서는 물질을 하기 위해 인근 해역으로 배를 타고 나가거나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전승된다. 일반적으로 ‘해녀 노래’라 불리는 이 민요는 노 젓는 동작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인 리듬이 사용된다. ⓒ 언스플래시 세계 공용어가 되다 해녀 인구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녀에 대한 국제적 인식은 오히려 높아졌다. 한국어 문헌은 방대하게 존재하나, ‘해녀’라는 단어는 영문 자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과 같은 권위 있는 역사 사전에 새로운 단어가 등재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문헌적 근거가 쌓여야 한다. ‘해녀’라는 용어는 최근 학술 연구, 다큐멘터리,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2025)와 같이 제주를 배경으로 한 K-드라마 덕분에 전 세계 시청자들은 제주의 해안 문화를 만나볼 수 있었다. 2026년 1월, 해녀는 "한국에서 생계 수단으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 잠수사"라는 정의와 함께 한국 문화에서 유래한 단어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최고의 기록인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영속적 의미를 갖는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영어권에서 꾸준히 사용된 어휘들을 수집하여 해당 언어의 역사적 기록으로 보존하고 있다. 한번 등재된 단어는 영구적으로 영어의 일부가 된다. 그동안 제주 해녀의 삶은 주로 한국어 문헌 속에만 머물러 있었다. 독보적인 문화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해녀’라는 단어 자체가 영어권이나 그 외의 외국어 문헌에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면서 그 이름과 역사는 세계 공용어 속에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비록 이것이 전통의 존속을 보장하지는 못할지라도, 해녀의 삶이 인류의 언어와 세계 문화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음을 인정받은 셈이다. 물질은 죽음의 위험이 뒤따르는 일이기에 해녀들은 바다에 나가기 전 신들에게 안전과 풍요를 빌곤 했다. 사진은 영등굿을 지내는 장면으로,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굿이다. ⓒ 국가유산청

합성의 스토리텔러, 김아영

Arts & Culture 2025 WINTER

합성의 스토리텔러, 김아영 김아영은 영상,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등을 아우르며 다양한 서사를 연결하고 확장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작가는 현실과 허구, 기록과 상상을 교차시켜 불가항력에 저항하거나 그로부터 빗나가고 이탈하는 존재와 사건들을 탐구한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2월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최된 < ACC 미래상 2024: 김아영 -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 근대화 이후 사라져가는 여러 문화권의 전통적 우주론과 시간 체계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혁신적인 미래 가치와 가능성을 확장한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ACC 미래상’을 받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사진 홍철기 김아영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지난해 내가 목격한 광경을 떠올려 본다. 2024년 9월 7일, 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를 취재하기 위해 외신 기자들과 프레스 투어 버스를 타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했다. 그날 전시관의 중심에는 대형 스크린 세 개가 삼각형 구조를 이루며 공중에 들린 채 설치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지난해 ‘ACC 미래상’을 수상한 김아영의 신작 가 세 개 채널 영상으로 상영 중이었다. 나는 관람객을 위해 설치된 스크린 앞 슬로프에 누워, 영화 를 떠올리게 하는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적 도시에서 사이버펑크의 전사 같은 여성 라이더 둘이 함께 질주하고, 싸우고, 뒤엉키는 장면을 보며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참 지나 버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외신 기자들도 “김아영이 누구냐?”며 서로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어떤 기자는 그 작품을 두고 “페미니즘적 자아 혹은 성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사회 소외 계층으로서 라이더들을 영웅화하는 계급 투쟁적 이야기”라고도 말했다. 바로 그 전시에서 김아영의 작품을 접한 외신 기자들과 해외 미술 관계자들이 그녀가 지금의 국제적 명성을 얻는 데 직간접적으로 일조했음은 자명하다. 이후 작가는 2025년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수상했고,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 PS1의 개인전 초대를 받았으며, 홍콩 M+ 뮤지엄의 파사드 커미션 작업을 의뢰받았다. 그녀의 작품이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의 마음을 짧은 시간에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는 김아영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사변적 픽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김아영은 자본주의나 이데올로기 같은 거시적 서사를 고고학, 미래주의, SF적 상상력이 가득한 중첩적 서사로 재구성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의 독특한 작업 세계에 최근 국내외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다. 2023년 골든 니카상, 2025년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수상했다. 에르메스재단 제공, 사진 김상태 딜리버리 댄서의 사변적 세계 (2022), (2022), (2024), (2024)로 이어지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은 작가가 마치 전도사처럼 주창해 온 사변적 픽션의 작동 원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시다. 이 연작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비롯되었다. 김아영은 당시 여러 앱으로 배달 음식을 시키면서도 막상 그 음식을 배달하는 이들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누군가의 저녁 식사를 나르는 그들은 누구일까? 김아영의 사변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철저하게 리서치 중심적인 그녀의 사변은 취재를 통해 획득한 인식과 세상사의 원리를 나름의 방식으로 유추하거나 재정의하고, 이를 다른 사건이나 상황에 적용해 보는 실험의 과정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 방정식을 도출한 뒤, 그 식을 활용해 야구 선수가 힘껏 던진 공의 낙하지점을 유추하는 과정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은 더 나아가 상수에 변화를 준 인력의 공식을 대입해 화성이나 달 세계의 중력을 가상의 영상 이미지로 표현하는 단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김아영은 ‘Monster’의 애너그램(철자의 순서를 바꾸는 것)인 ‘에른스트 모(Ernst Mo)’라는 여성 라이더를 창조하고,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라이딩을 ‘댄싱’으로 표현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묻는다. “만약 통행인이 사라진 세상에서 무언가를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달리는 ‘딜리버리 댄서’가 있다면, 그녀에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에른스트 모는 빛의 속도로 달리기 위해 접히거나 끊어진,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달릴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 곳을 달리다 보면 결국 다른 우주와 섞여버릴 것이며, 그렇게 두 우주가 만나는 지점(작품에서는 이를 ‘누수 지점’이라 말한다)에서 도플갱어와 맞닥뜨릴 것이다. 작품에서 에른스트 모는 그렇게 다른 우주의 자아인 ‘엔 스톰(En storm)’을 만난다. 그녀가 나타날 때면, 즉 두 세계가 교차할 때면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느리게 흐르고, 급기야 느리게 흐른 시간 탓에 배달 콜을 제때 수행해 내지 못한 에른스트 모의 등급이 점점 낮아져 새로운 임무를 배정받지 못하기에 이른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는 마치 파사칼리아처럼 악장을 달리하며 변주한다. 에선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이 가상의 도시 ‘노바리아’에서 ‘우연히 소멸된 것으로 알려진 과거의 시간관이 담긴 유물들’을 배달하며,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24시간 365일’이란 서구의 시간관에 질문을 던진다. 에선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이 시간을 되찾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들은 ‘사막과 도시와 차원이 교차하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시간을 운반하고, 미래에서 온 주시관들의 눈을 피하고 싸운다. 변주는 애니메이션과 실사 그리고 퍼포먼스를 아우르며 계속될 것이다.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이 만나 서로 대립하지 않고 생존하는 세계가 나타날 때까지. 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부상한 플랫폼 노동의 문제를 그려낸 작품이다. 디지털 기술과 복합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작가의 주제 의식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가 제공 사변의 시작: 다공성 계곡 사변의 변주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은 ‘다공성 계곡’ 연작이다.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2017)에서 다공성 계곡은 ‘플롯 구멍’이 많은 계곡, 즉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들이 살아가는 곳을 뜻한다. 이 개연성 떨어지는 가상의 공간에 사는 ‘페트라 제네시트릭스’는 암벽 밖으로 튀어나온 거대하고 기이한 암석 결정에 깃들어 사는 광물이자 데이터 클러스터다. 어느 날 다공성 계곡의 폭파로, 페트라는 다른 암석 플랫폼으로 이주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당황스러운 실질적 문제에 직면한다. 이 이야기 역시 변주한다.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은 페트라가 크립토밸리라 불리는 섬의 해안가에서 눈을 뜨며 시작한다. 이 섬에서 페트라는 이주 당국에 붙들려 바이러스 취급을 당하고, 이주 심사에서 떨어져 ‘스마트 그리드’라는 감옥에 구금되었다가, 어는 순간 환청과 환영을 듣고 그에 따라 탈출을 감행한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따라 동굴로 들어간 페트라는 그곳에서 ‘어머니 바위’라는 초월적 존재를 만나고, 이 어머니 바위와 결합한다. 마치 신화 혹은 우화와도 같은 이 일련의 이야기들은 감상자가 이주, 난민, 국가, 경계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김아영은 2025년 11월 뉴욕 캐년에서 열린 ‘퍼포마 비엔날레 2025’에서 퍼포먼스 신작 〈 Body^n 〉을 공개했다. 도플갱어의 개념과 신체 재현 문제를 탐구한 작품이다. 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차이 무술 감독과 스턴트 배우들의 동작을 실시간 라이브 모션 캡처를 통해 디지털화했다. 사진은 < Body^n >의 프로덕션 스틸. 작가 제공 석유, 기억 그리고 기계 김아영의 작품 목록에서 가장 무쌍하게 변모하는 또 다른 주제는 ‘석유’다. 그리고 이 주제는 ‘리서치 프로젝트’라는 작가의 또 다른 작업 양식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석유에 대한 관심은 작가의 가족사에서 시작한다. 한양건설 부장이었던 작가의 부친은 1979년 작가가 태어난 지 세 달 만에 쿠웨이트로 파견되었다가 1982년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1984년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 걸프전이 발발한 1991년에 돌아왔으며, 그 기간 매년 두 번씩 휴가로 한국을 찾았다. 작가는 어린 시절 느꼈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아버지가 선물로 들고 온 신문물이 가져다준 기쁨을 기억한다. 1979년 OPEC 중동 국가들이 석유 수출을 제한하며 제2차 석유 파동이 벌어졌으며, 외화를 확보해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 주도로 국내 건설 업체들이 중동에 진출했다는 사실을 작가가 알게 된 건 성장한 후다. 석유 자본의 전 지구적 이동이 대한민국에 사는 한 어린아이, 즉 자신의 성장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작가 자신을 매혹했다. 이것이 ‘석유 자본의 이동과 중동 특수에 관한 리서치 프로젝트’의 발단이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첫 작품은 연작으로, ‘제페트’는 역청을 뜻한다. 글로 읽어도, 영상으로 봐도 무척이나 난해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석유와 중동 특수에 대한 방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대본을 쓰고, 이 대본을 ‘논리 정연하면서도 혼돈스러운 규칙’을 통해 재생성할 기계 장치(컴퓨팅 장치)를 만든다. 참고로 작가는 이 장치에 ‘기계 장치의 신’을 뜻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극작 용어를 이름으로 붙였다. 작가는 자신이 쓴 대본과 이 대본을 기계 장치에 넣어 얻은 결과물에 각각 기계 알고리듬을 통해 만들어진 음률과 인간 작곡가의 음률을 붙이고 이를 합창 형식으로 공연했다. 최근작 ‹알 마터 플롯 1991›(2025)은 석유에 관한 이 방대한 리서치 프로젝트의 집약판이다. 작가는 아버지가 다니던 한양건설이 1979년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대규모 거주 단지 ‘알 마터 아파트’를 추적하며, 석유 자본의 형성과 이동의 거시사가 작가의 삶과 그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미시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한다. 현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주변인들이 그 호화 주택 단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들을 수집해 생성형 AI와 CGI, 라이다 스캐닝 등의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해 미래적 에세이 필름 형태로 완성했다. 김아영의 초기작은 몽타주 사진 작업이었다. 이후 자신의 변화에 관해 김아영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최근에는 몽타주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으로 ‘합성’이라는 용어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매끈한 합성이 아니라, 비뚤비뚤하고 거칠거칠한 이음매가 모두 드러나는 합성이요.” 김아영이 현실과 픽션을 거칠게 섞은 모습은 마치 관절이 다 드러난 사이보그 같다. 올해 3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개인전 오프닝에서 작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앞으로는 ‘딜리버리 댄서’와 리서치 중심의 작품들을 투 트랙으로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딜리버리 댄서’의 사변적 픽션이 현실의 핍진성을 떨쳐버리고, 그 작동 원리만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인공 팔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리서치 프로젝트의 방법론은 작가의 해석이 담긴 현실 이야기를 매우 핍진하게 담아낸다는 점에서 육체적이다. 흡사 전자 의수를 단 사이보그, 강력한 기계 팔을 가진 아시안 퓨처리즘적 모습의 김아영이 합성의 이야기꾼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알 마터 플롯 1991〉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중 하나인 알 마터 주택단지가 배경이다. 개인적 경험을 근현대사로 확장한 작품이며, 석유를 매개로 경제 성장과 지정학적 분쟁 등 다층적 서사가 담겼다. 2025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개인전 에서 공개됐다. 작가 제공

공공 너머 미래를 향한 건축, 건축가 전숙희

Arts & Culture 2025 WINTER

공공 너머 미래를 향한 건축, 건축가 전숙희 건축가 전숙희는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건축이라는 매개를 통해 동시대의 주요 질문들을 탐구하며 대안을 제시해 왔다. 그녀에게 건축은 단순히 조형물을 구축하는 행위를 넘어, 사회적 맥락과 인간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실천적 사유를 담아내는 그릇과 같다. 경상남도 남해에는 농업용 창고로 사용하기 위해 화강암을 쌓아 만든 1920년대 건물들이 군데군데 있다. 전숙희 건축가는 한 도예가의 요청으로 그중 하나를 도예 공방으로 리모델링했다. 외관은 그대로 보존하되 아름다운 남해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지붕에 전망대를 설치했다. ⓒ 노경 전숙희는 건축이 개인의 공간을 넘어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공공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신념을 꾸준히 피력해 왔다. 그녀는 건축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건축 교육을 받았다. 특히 이화여대 건축학과 첫 입학생이었던 그녀는 선배들의 부재 속에서 자립적으로 모든 것을 찾아 해결해야 했던 경험이 독립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주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프린스턴 대학원에서는 소수 정예 교육 시스템 속에서 교수진과 학생들 간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깊이 있는 탐구를 할 수 있었다. 이는 그녀가 건축을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게 된 토대가 되었다. 장영철 건축가와 함께 2008년 와이즈 건축사사무소를 공동 설립한 이래, 그녀의 작업들은 이러한 비판적이고 탐구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건축의 사회적 기능과 책임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95%의 건축 전숙희는 건축이 단순히 사적 소유물의 가치를 넘어,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공공성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에게 건축은 도시의 일부로서, 사람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적 자산이다. 따라서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할 때 주변 환경과 조화로운지 고려하고, 지역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녀는 이러한 관점에서 ‘95%의 건축’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기존의 민간 영역에 집중된 5%의 특별한 건축을 넘어, 나머지 대다수의 건축물이 공공적 가치를 실현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은 아산나눔재단 프로젝트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녀는 비영리 재단의 사옥인 이 건물에서 ‘공공에 문턱이 낮은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경험은 사적 소유물이라 할지라도 도시와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그리고 건축가로서 이러한 공공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후 참여했던 노무현시민센터 프로젝트는 이러한 철학을 실현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그녀는 조선 시대 궁궐인 창덕궁 인근이라는 특수한 장소성과 북촌 지구 단위 계획의 제약, 시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 등 여러 가지 큰 난관 속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경험은 건축가가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것을 넘어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주체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노무현시민센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동시에 시민들을 위한 공공 공간으로 설계된 곳이다. 창덕궁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 나지막한 구릉지였는데,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건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바닥과 벽, 지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곡선을 활용했다. ⓒ 노경 위안의 장소 전숙희는 건축가가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또한 그것을 잘 활용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건축가는 나무를 키우는 사람과 다르지 않으며, 나무가 숲을 이루기도 하고 정원이나 산책로가 되기도 하듯 결국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건축가의 소임이라고 믿는다. ⓒ 이민희 전숙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지쳐 있으며, 위안과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녀는 개인이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며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낯선 이들과 공존하는 공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 역사적 의미를 내포한 공간 등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녀는 절두산 순교 성지를 예로 들며,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선 비종교적 차원의 정서적 공간으로서 이곳이 많은 사람에게 휴식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언급한다. 또한 스웨덴 우드랜드 화장터를 방문했던 경험은 그녀에게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건축적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획일적인 현대의 장례 문화와 달리, 죽음을 엄숙하게 성찰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공간은 단순히 기능적 측면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슬픔을 치유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이처럼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건축적으로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 건축가의 중요한 역할임을 인식하고, 공간이 주는 위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피겨앤그라운드는 서울 강남 가로수길의 30여 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작업물이다. 폐쇄적이었던 저층부는 덜어내고, 상층부의 공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입면을 구성하는 벽돌 마감의 수평 띠는 발코니와 외부 계단인데, 각 층을 연결해 ‘길’을 형상화했다. ⓒ 노경 건축가의 시각과 과제 서울 성산동 주택가 깊숙이 자리 잡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부닥쳐 있었던,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을 재현한 공간이다. 큼직한 안내판이나 근사한 로비 대신 작은 문 하나만 외부로 열어둔 채 가이드가 방문자들과 동행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선으로 설계됐다. ⓒ 김두호 전숙희는 기후 변화와 인구 감소라는 두 가지 시대적 과제에 주목하며, 건축이 이러한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그녀는 인구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도시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특히 한국 사회의 고유한 인구 구조적 특징에 대한 건축적 대응을 모색한다. 그녀는 서울의 인구가 80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인구학적 예측을 제시하며, 이에 따른 도시 공간의 재편과 기존 인프라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런가 하면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건축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노인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주거 환경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기술적인 해결을 넘어 사회 구조적 변화가 건축에 미치는 영향까지 통찰한다. 구도심의 쇠퇴와 신도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건축가들이 반드시 직면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며, 그녀는 건축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파주출판도시 내 자리 잡고 있는 뮤엠 사옥은 영어 교육 회사인 뮤엠교육의 부엉이 로고에서 착안해 그루터기 형태로 건물을 완성했다. 전체가 검은 벽돌로 이루어진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에 율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절개된 듯한 비틀린 형태의 출입구를 만들었다. ⓒ 노경 중요한 것은 소통의 능력 전숙희는 건축이 단순히 설계 능력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건축 실현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건축주, 시공사, 그리고 여러 방면에서 경험을 쌓아 온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며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이 전체 프로세스의 일부에 불과하며, 실제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에서 소통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건축은 결국 ‘관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 혼자 20%를 잘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80%를 채워줄 수 있는 ‘관계’에 의해서 건물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 같아요. ‘관계’를 절차와 시스템, 심지어는 구현되지 않은 기술까지 아우르는 복합성을 띤 개념으로 확장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는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글로벌 전시로, 암흑 속에서 시야가 차단된 채 다른 감각들을 일깨우며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묻는 프로그램이다. 어둠속의대화 북촌 전시장은 전통 대나무 발에서 모티프를 얻은 건물 외피를 통해 이 전시의 특징을 건축적으로 구현해 냈다. ⓒ 김용관 뮤엠 사옥 프로젝트와 같은 벽돌 쌓기 작업은 그녀가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 사례다. 초기 설계 의도와 현장 상황 간 불일치, 그리고 숙련공과의 소통 부족으로 인해 발생했던 어려움은 결국 현장에서 끊임없는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었다. 건축이 결코 건축가 한 명의 역량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소통, 그리고 때로는 고집과 자부심이 얽힌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또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공유하고 드러냄으로써 다음 세대가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선배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이는 건축계 전체의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며, 건축이 단순한 기능 구현을 넘어선 사회적 역량을 발휘하는 토대가 된다. "돌이켜보면, 건축이라는 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고민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숙희의 건축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깊이 있는 질문이자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강력한 메시지다. 남해 돌창고의 내부는 곡식만 보관하면 됐던 단출한 공간을 현재의 용도에 맞게 바꾸기 위해 여러 방식의 보강이 필요했다. 오래된 목재 트러스를 철재로 바꿔 지붕을 떠받칠 수 있도록 했고, H빔을 설치해 기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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