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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UMMER
말 속에 먼저 남은 채소, 오이
더위에 지쳐 입맛을 잃기 쉬운 여름철에는 오이만 한 반찬이 없다. 오이는 옛사람들의 말 속에 먼저 자리 잡은 채소다. 문헌 기록에서도 오이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속담과 관용구, 설화와 민담 속에 더 빈번하고 흔하게 등장한다.여름마다 다닥다닥 영그는 이 채소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이를 먹는다는 건 계절을 견디는 방법이 아니라, 계절과 함께 사는 방식을 의미한다.
수분 함량이 높은 오이는 아삭한 식감과 청량한 향으로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대표적인 식재료다. 한국에서는 오이소박이를 담가 먹거나 오이지 같은 저장 음식으로 활용한다. ⓒ 셔터스톡
오이와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문헌 기록은 『고려사』다. 조선(1392~1910) 전기에 편찬된 이 역사서를 통해 고려(918~1392) 시대에 이미 오이를 재배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오이는 문헌 기록보다 앞서 존재했던 식재료다. 광주광역시 신창동 일대에서 출토된 기원전 1세기경 생활 유적에서 오이씨가 적지 않게 발견된 것을 보면, 삼국 시대 이전부터 오이를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이가 얼마나 친숙하고 오랜 식재료였는지는 속담으로도 드러난다. “오이는 씨가 있어도 도둑은 씨가 없다”, “오이 덩굴에서 가지 열릴 리 없다”와 같은 표현은 굳이 오이를 언급할 필요가 없음에도, 오이를 매개로 의미를 전달한다.
여름을 식히는 감각
궁중 요리의 하나인 오이선은 칼집을 낸 오이에 고기소를 넣어 익힌 후 장국을 부어 만든 음식이다. 요즘에는 다진 소고기, 달걀지단, 버섯 등을 소로 넣고, 식초와 설탕으로 조미한 물을 부어 상큼하게 먹는다. ⓒ 한식진흥원
말 속에 자리 잡은 채소, 오이는 자연스럽게 식탁에서도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매우 흔한 이 식재료는 지역마다 다른 모습으로 소비되었다. 수도권과 중부 지방에서는 표면이 매끈하고 색이 연한 백다다기오이를 주로 먹는다. 전라도에서는 짙은 청녹색을 띠는 취청오이를, 경상도에서는 가시가 발달한 가시오이를 즐겨 먹는다. 같은 오이라도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는다. 이는 단순한 품종 차이를 넘어, 식재료가 지역의 기후와 지역민들의 입맛, 생활 방식에 맞춰 변주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조선오이’라고도 불리는 백다다기오이에서 ‘다다기’라는 이름은 종종 외래어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외래어가 아니라, 열매가 줄기에 다다귀다다귀 붙어 자라는 모습에서 비롯한 말이다. 이름을 생장 방식에서 따올 만큼 오이는 우리 일상과 멀리 떨어진 적이 없다. 오이는 늘 눈앞에서 자라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따서 먹을 수 있는 채소였다.
오이는 전체의 95%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머지 5%에 영양소가 포함되니, 절대적인 기준에서 보면 영양가가 높은 채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오이는 여름철에 유독 유리한 식재료로 꼽힌다. 물이 많으면서도 칼륨을 함께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땀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나트륨과 같은 전해질을 포함한다.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면 체내 전해질이 줄어들고, 사람은 본능적으로 짠 음식을 찾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보충은 쉽게 과잉으로 이어지고, 과도한 나트륨 섭취는 몸을 붓게 만든다.
여름철 오이 섭취는 수분을 보충하는 동시에, 칼륨이 나트륨의 배출을 도와 체내 균형을 다시 맞춘다. 부족과 과잉 사이를 오가던 몸이 잠시 제자리를 찾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이를 먹고 나면 몸이 가벼워졌다고 느낀다. 이는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몸의 상태가 실제로 조정되는 경험에 가깝다. 그러므로 오이는 영양을 따져 먹는 채소라기보다 균형을 되돌리는 채소다.
이러한 특성은 오이를 먹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오이는 별다른 손질 없이 있는 그대로 먹는 채소다. 우리가 흔하게 소비하는 양파, 마늘, 파는 대부분 조리를 거치고, 생으로 먹더라도 통째로 섭취하지는 않는다. 배추 역시 가공 과정을 통해 김치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감자와 고구마는 익혀 먹는 것이 기본이고, 당근이나 파프리카는 생식이 가능하지만 손질이 필요하다. 당근은 흙을 제거하기 위해 씻거나 껍질을 벗겨야 하고, 파프리카는 씨를 빼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먹어야 한다.
반면 오이는 겉면만 씻으면 곧바로 베어 물 수 있다. 이 간편함 때문에 오이는 다른 채소보다 우리 손과 입에 더 가까이 닿는다. 특히 여름철, 찬물에 씻은 오이를 베어 물면 갈증이 가시는 동시에 더위도 한풀 꺾인다. 등산길에 물 대신 오이를 챙겨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가지 저장 방식, 발효와 염장
오이는 수분이 많기도 하지만, 본래 차가운 성질을 지닌 채소다. 먹는 즉시 시원함을 느끼게 하고, 그 청량감이 비교적 오래 남는다. 이 감각은 특정 문화권에만 통용되지 않는다. 동양에서는 이를 음양오행의 틀 속에서 냉한 성질로 설명해 왔고, 영어에도 “cool as a cucumber”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오이처럼 차갑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오이가 주는 물리적 감각이 언어로까지 확장된 사례다.
냉한 성질을 지닌 오이는 여름에 가장 필요한 식재료다. 그리고 오이는 강한 햇볕과 넉넉한 수분 속에서 잘 자란다. 무더운 계절에 더위를 식혀주는 채소가 가장 풍성해지는 시기 역시 같은 계절이라는 점에서, 이 구조는 인간의 몸과 자연의 시간이 얼마나 오래 맞물려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여름 뙤약볕 아래 덩굴마다 오이가 다닥다닥 매달린 풍경은 그래서 하나의 축복처럼 보인다.
김치와 장아찌 사이
오이소박이는 오이에 채 썬 무, 양파, 부추, 당근 등의 소를 넣고 담근 김치의 일종이다. 오이소박이에는 연한 재래종 오이를 사용한다. 조선 시대의 여러 문헌에도 오이소박이를 담가 먹었던 기록이 남아 있어 예전부터 여름철에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 한국관광공사
지금은 배추가 사시사철 생산되니 김치 역시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본디 김치는 철저히 계절의 논리를 따르는 음식이었다. 봄에는 민들레, 미나리, 달래, 돌나물 등의 봄나물로 김치를 담갔고, 여름이면 열무, 얼갈이, 깻잎, 고추, 오이로 김치를 담갔다. 식재료의 지형도에 따라 지역마다 다른 재료로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경상도에서는 콩잎으로, 전라도에서는 갓으로 김치를 담그는 식이다.
제철 식재료를 그 시기와 지역 문화에 맞게 저장하고 소비하는 방식 속에서 김치 종류는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그 결과 오늘날 김치의 종류는 수백 가지에 이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오이소박이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김치다.
‘소박이’라는 이름은 주재료에 소를 박아 넣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리법과 형태를 함께 가리킨다. 예전에는 가지나 무, 고추로도 소박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소박이 하면 오이소박이를 떠올릴 만큼, 오이소박이가 대표적인 형태로 남았다. 오이를 통째로 절여 소를 넣는 방식은 오이의 수분과 아삭한 식감을 가장 잘 살리는 조리법이다. 다만 오이소박이는 오래 두고 먹는 김치는 아니다. 오이는 수분이 많아 쉽게 무르고, 금세 익는다. 그래서 담근 뒤 수일 안에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로 오이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한 방식도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오이지다. 오이를 통째로 소금이나 소금물, 혹은 간장물에 절이면 삼투압 작용으로 수분이 빠져나오고, 대신 염분이 스며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이지는 높은 염도 덕에 여름철에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우리는 저장 음식 하면 흔히 겨울 김장을 떠올린다. 늦가을에 수확한 채소를 갈무리해 염분을 이용해 저장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름에도 오이지라는 저장 음식이 존재했다. 여름의 고온 환경에 맞춰 발효가 아닌 염장 방식을 선택했을 뿐이다.
호불호가 강한 채소
오이지는 단순히 저장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절여진 오이를 꺼내 짠기를 빼고 그대로 먹거나, 갖가지 양념을 더해 무쳐 먹는다. 짠기를 적당히 남겨 냉국에 쓰기도 하고, 아예 절인 소금물로 냉국을 만들기도 한다. 김장 김치가 찌개와 찜으로 확장되듯 오이지는 냉국으로 이어진다. 오이는 이렇게 김치와 장아찌, 두 가지 저장 방식을 모두 품고 있는 식재료다.
“장마에 오이 굵듯”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환경을 만나 빠르게 자라는 경우를 비유한 표현이다. 오이는 그만큼 잘 자란다. 햇볕과 수분이 충분한 여름철 한반도에서 오이는 어렵지 않게 성장한다. 그래서 오이는 늘 흔한 채소였다.
하지만 흔한 만큼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오이는 호불호가 강한 채소다. 쓴맛을 내는 성분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강한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 가운데 이 성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전자를 가진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쓴 오이 보듯 한다”는 표현은 그 감각이 오래전부터 공유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오이를 둘러싼 감각 역시 말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오이는 대부분 생으로 먹는 채소로 인식되지만, 과거에는 익혀 먹기도 했다. 궁중에서는 오이선을 만들어 먹었다. 절인 오이를 센불에 빠르게 볶은 뒤 고기와 달걀지단, 채소를 채워 넣는 방식이다. 사찰에서는 여전히 여름이면 오이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뜨거운 국이지만 시원한 맛이 더해지는 독특한 음식이다. 조리 방식이 달라져도, 오이가 주는 감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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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UMMER
잔혹함, 거짓말, 복수에 관한 섬뜩한 이야기
『사소한 거짓말』
박설미 작, 여현정 역 레이븐 북스, 2025 160쪽, 8.99 파운드
잔혹함, 거짓말, 복수에 관한 섬뜩한 이야기
박설미의 데뷔작 『사소한 거짓말』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작품에 적용된 서간체 소설(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등) 형식을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서간체는 한 번에 하나의 시점에 집중하면서 각 화자에게 선명하고 고유한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장점이 있다. 서사의 층위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독자는 전체 그림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사소한 거짓말』은 이러한 전통을 충실히 잇는 작품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 전까지 독자를 흔들어 놓는다.
이 작품은 미라가 자신이 가르쳤던 남학생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된다. 첫 문장부터 긴장감이 너무도 팽팽해서 활자가 터질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미라는 유재의 가정 교사가 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발단은 유재의 형 유찬이 미라의 반려견 벨을 학대하고 죽인 사건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지며 미라를 맹목적인 복수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그런데 놀랍게도 답장이 날아온다. 유재의 어머니 지원이 답신을 보내오고, 공포와 긴장감은 한층 깊어진다. 이후 유재와 유찬의 서사가 차례로 펼쳐지고, 미라의 목소리로 마무리된다. 편지 대신 직접 찾아가는 장면으로, 독자는 한쪽의 목소리만 듣게 된다.
『사소한 거짓말』이 매력적인 이유는 네 명의 목소리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미라, 지원, 유재, 유찬은 각자의 경험과 세계관이 매우 다르며, 나름의 한계 안에 갇혀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끝까지 편협한 시각을 버리지 못한 채 자신이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이 불완전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진실을 깨닫고 목표를 이루는 인물도 있다. 과연 그들 중 누구라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결국 『사소한 거짓말』은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작품이다.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무엇이 그들을 그 지경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시점이 바뀔 때마다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가 확신했던 것들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시점이 하나씩 쌓이며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고 퍼즐 조각이 서서히 맞춰지면서,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전체를 볼 수 있게 된다.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 때문이든, 박설미 특유의 술술 읽히는 문체 때문이든, 이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손에서 놓기 어렵다. 책을 덮은 후에도 칠흑 같이 어두운 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섬뜩한 메아리처럼 잔상이 오래도록 맴돈다.
『장: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빚어낸 미식의 세계』
강민구, 나디아 조, 조슈아 데이비드 스타인 공저 아티장, 2024 216쪽, 35 달러
한국 요리의 맛, 그 비밀을 찾아서
강민구 셰프는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을 가졌다. 해외에서 셰프로 경력을 쌓은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14년 밍글스를 열었다. 한국과 서양의 식문화를 한데 어우른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면서 그는 한식의 세계로 한층 더 빠져들었다. 정관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장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그는 장을 “테루아르를 가장 충실히 담아낸 재료”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4년 『장: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빚어낸 미식의 세계』를 출간했고, 이 책은 그해 뉴욕타임스 최고의 요리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장은 발효 대두를 기반으로 한 양념으로, 간장, 된장, 고추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한식을 즐겨 먹는 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장은 강 셰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재료”이다.
책의 앞부분은 이 비밀 재료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다. 강 셰프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천 년에 걸친 장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각 가정에서 장 담그던 문화가 쇠퇴한 과정, 최근 전통 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현상을 소개한다. 그다음으로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세히 알려준다. 집에서 장을 직접 담그는 방법이 아니라, 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단순한 재료들이 자연, 시간, 사람의 손길과 정성을 통해 신비롭게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한 끼 식사로 어울리는 요리에 대한 유용한 팁도 담겨 있고, 마지막으로 한식 입문자를 위한 필수 식재료 목록도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은 한식 애호가라면 익히 알 만한 재료들이지만, 고추장 파우더는 나에게 뜻밖의 수확이었다. 새로운 팝콘 시즈닝으로 시도해 볼 만할 것 같다.
물론 책의 핵심은 다양한 장을 활용한 레시피들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주제로 각각 한 챕터씩 정리되어 있으며, 챕터 마지막마다 해당 장을 만드는 장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테루아르뿐 아니라 사람들과도 만나게 해준다. 레시피의 대부분은 밍글스의 메뉴가 아닌, 강 셰프가 가족과 지인을 위해 집에서 직접 만드는 요리들이다. 덕분에 훨씬 친근하고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장아찌, 해물파전, 강된장 비빔밥 외에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양념 치킨 등 한식 애호가라면 누구나 아는 레시피도 있다. 하지만 나를 신세계로 인도한 것은 장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 레시피들이었다. 라구 소스에 간장을, 파스타 크림 소스에 된장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상상도 못 했던 조합들도 있었다. 그래놀라에 간장을, 초콜릿 무스에 고추장을, 크렘 브륄레에 된장을 쓴다니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퓨전 요리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기술이나 자극적인 재료의 조합이 아니라, 사람들의 식문화가 아무리 달라도 맛에는 국경이 없다는 깨달음, 바로 그것이다.
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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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PRING
춘궁기의 생존 음식, 봄나물
봄나물은 계절의 풍미를 전하는 별미다. 쑥 향이 올라오는 국 한 그릇, 달래 간장을 얹은 밥 한 숟갈, 냉이를 다져 넣은 된장찌개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하지만 이 향긋한 감각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봄이 겨울만큼이나 혹독했던 우리 선조들에게 봄나물은 별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였다.
봄이 되면 냉이, 봄동, 쑥 같은 제철 봄나물이 식탁에 오르기 마련이다. 봄나물은 비타민과 미네랄 등 영양소가 풍부해 봄철 활력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싱그러운 향은 겨우내 무뎌졌던 미각을 일깨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겨울을 나게 해주던 묵은 곡식도 봄 앞에서는 바닥을 드러냈다. 가을에 파종한 보리는 늦봄이나 초여름이 되어야 수확할 수 있었고, 그 사이 공백은 길었다.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일이 적지 않았다. 배를 곯으며 보리가 여물기를 기다리는 고된 시간을 ‘보릿고개’라 부른 이유다. 보릿고개는 단순히 어떤 시기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삶의 문턱을 넘나드는 생존의 시험대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 지독한 보릿고개를 버티게 한 것이 바로 봄나물이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뜻밖의 이야기다. 기근이 심할 때 주식 대신 먹는 구황 작물은 전분 함량이 높아 빠르게 포만감과 에너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메밀처럼. 반면에 봄나물은 가볍고 향긋해 그저 입맛을 돋우는 용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처음 봄나물을 캐서 먹기 시작한 선조들에게 그것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량이었다.
그렇다면 전분 함량이 낮은 봄나물로 어떻게 허기를 달랬을까? 답은 양과 조합에 있었다. 봄이면 산과 들에서 나는 모든 먹을 수 있는 풀을 최대한 활용했다. 쑥, 냉이, 달래, 씀바귀, 두릅, 머위, 곰취, 참취 같은 산나물과 들나물은 밥, 국, 반찬, 죽, 전, 떡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식의 재료가 되었다. 열량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도 있었다. 칡뿌리를 찧어 물에 풀어 가라앉힌 앙금으로 만든 갈분이 대표적인 예다. 또 산에 흔한 소나무에서 전분 함량이 가장 높은 속껍질을 벗겨 말려 가루로 쓰기도 했다. 이렇게 얻은 전분성 재료를 나물과 섞어 죽을 쑤거나 떡을 빚었다. 주식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었지만, 허기를 달래고 몸을 유지하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나물 서리’라는 것도 있었다. 가난한 부녀자들이 봄에 산과 들에서 나물을 잔뜩 따게 되면, 부잣집에 무작정 가서 광주리를 풀고 주저앉았다. 그러면 부잣집에서는 그 나물을 어쩔 수 없이 거두는 대신 곡식을 내주곤 했다. 봄나물은 그 자체로 일용한 양식이었으며, 부자로부터 곡식을 받아내는 자산으로 쓰였던 것이다.
이 시기의 음식은 미각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준은 단순했다. 먹을 수 있느냐, 버틸 수 있느냐였다. 그렇기에 봄나물 요리는 자연스럽게 단순해졌고, 조리법은 최소한으로 정제되었다. 데치고, 무치고, 끓이고, 부쳐 먹는 방식이 주를 이룬 것도 그 때문이다.
봄나물로 짓는 밥과 국
곡식이 귀해질수록 밥에는 나물이 섞였다. 쑥, 냉이, 두릅이 들어간 밥은 오늘날 계절 미식으로 인식되지만, 본래는 밥의 양을 늘리기 위한 방식이었다. 나물을 잘게 다져 밥을 지으면, 적은 양의 곡식으로도 한 솥의 밥을 지을 수 있었다. 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봄이면 집집마다 나물국이 상에 올랐다. 냉잇국, 쑥국, 달래국은 찌개보다 물을 많이 넣고 맑게 끓여, 가장 흔한 재료였던 나물을 넉넉히 쓸 수 있었다. 국은 밥보다 물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재료로도 많은 식구가 나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때로는 나물국에 갈분이나 송기 등을 타 포만감을 높이기도 했다. 봄나물로 만든 국은 그렇게 밥상의 중심이 되었다.
춘궁기에 봄나물을 넣어 포만감 높은 국을 끓여 먹던 문화의 원형은 제주에 특히 또렷하게 남아 있다. 제주에 가면 흔히 접하는 향토 음식 고사리육개장과 몸국이 바로 그것이다. 예전에는 고사리육개장을 고사리 국이라 불렀다. 기후와 지형, 토양 등 여러 조건에서 양치식물이 자라기 좋은 제주에서는 이른 봄이면 곳곳에서 고사리를 꺾었다. 고사리와 메밀가루를 넣어 점도 높고 묵직하게 끓인 고사리 국은 추위를 물리치고 허기를 달래기에 알맞은 음식이었다. 고사리는 여러모로 유용한 구황 작물이었는데, 뿌리를 찧은 다음 전분을 받아 국수를 빚거나 전을 부칠 만큼 전분 함량이 높다.
모자반과 메밀가루로 걸쭉하게 끓인 몸국은 육지에서 나는 봄나물을 쓰지는 않지만, 해조류를 바다의 나물로 본다면 또 다른 형태의 봄나물 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모자반은 겨울부터 이른 봄이 제철이어서 바다의 봄나물이라 할 수 있다. 걸쭉하고 묵직한 몸국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여전히 북녘의 삭풍이 기세를 부리는 이른 봄의 추위도 한결 누그러지는 듯하다. 바람이 잦은 제주에서는 몸국이 오랫동안 바람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육지에서는 애탕국을 주목할 만하다. 애탕국은 쑥을 활용한 봄철 대표적 음식인 동시에, 고기가 들어가 과거에는 보양식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소고기 양지머리나 사태를 삶아 넉넉히 육수를 내고, 삶은 고기를 잘게 다진다. 쑥은 살짝 데쳐 물기를 꼭 짠 뒤 곱게 다진다. 다진 고기와 쑥으로 완자를 빚어 밀가루와 달걀을 입히고,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한 육수에 넣어 끓인다. 쑥의 화사한 향과 고기의 단백질이 어우러진 이 음식은 단순한 나물국이 아니라, 봄을 넘기기 위한 한 그릇의 생존식이었다.
각양각색 반찬
예전에는 나물이 귀한 겨울철을 대비해 이른 봄, 제철 나물을 햇볕에 바짝 말려 저장해 두곤 했다. 나물을 말리면 수분이 빠지면서 영양분이 응축되고,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는 장점이 있다. 요즘에는 굳이 겨울철이 아니어도 별미를 즐기기 위해 말린 나물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 한국관광공사
나물 무침도 반찬의 자리를 넘어, 한 끼를 채우는 데 중요한 몫을 했다. 데친 나물을 무쳐 큰 그릇에 담아 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나눠 먹었다. 나물의 양이 늘어날수록 밥의 양은 자연스레 줄었다. 굶주린 와중에도 선조들은 나물을 상성에 맞게 된장, 고추장, 간장, 소금 등으로 달리 양념해 잠깐의 미각적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나물 전 또한 빠지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 나물은 반죽의 중심 재료가 되었다. 잘게 썬 나물에 소량의 곡물 가루를 섞어 부쳐냈다. 밀가루가 남은 집은 밀가루를, 바닥난 집은 갈분이나 메밀가루, 도토리 가루 등을 썼다. 어떤 나물이든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나물 전의 장점이었다. 씀바귀 전, 쑥전, 머위 전은 봄철 식탁에 흔히 올랐고, 많지 않은 기름으로 부쳐낸 나물 전은 허기를 달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처럼 배추김치를 사시사철 먹을 수 없던 시절, 봄에는 봄나물로 김치를 담갔다. 머위 김치, 달래 김치, 유채 김치, 봄동 김치 등은 오래 두고 먹기 위한 저장 식품이라기보다 제철에 바로 먹는 생김치에 가까웠다. 장아찌로 만들어 두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지금 손에 잡히는 것을 활용한 김치였다. 특히 돌나물로 담근 물김치는 향이 좋다.
죽과 떡, 나물의 확장
3월 하순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봄나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 시기에 전통시장에 가면 직접 캔 봄나물을 좌판에 벌여 놓고 판매하는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 한국관광공사
나물 전과 김치가 비교적 손이 가는 음식이었다면, 보릿고개에 죽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적은 재료로도 많은 양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봄나물은 죽의 주재료가 되었다. 봄나물로 죽을 끓일 때는 전을 부칠 때처럼 특정 나물 하나에 기대지 않았다. 조화를 이루는 나물을 한데 넣고 푹 끓여 양을 늘렸다.
그중에서도 냉이 죽은 『본초정화』에 “눈을 밝게 하고 간을 이롭게 한다”라고 나온다. 이 책은 약용 식물을 소개하는 기존의 서적들을 편집해 만든 의서이다. 그런가 하면 방풍죽은 조선 시대의 문인 허균(1569~1618)이 우리나라 전국의 토산품과 별미 음식을 소개한 자료 『도문대작』에 등장하기도 한다. 죽은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면서, 동시에 몸을 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봄나물은 죽을 통해 다시 한번 역할을 넓혔다. 나물을 데치고 무치던 방식에서 나아가, 물과 함께 오래 끓이며 한 끼를 연장하는 재료가 된 것이다.
떡 또한 봄나물과 결합했다. 쑥떡은 오늘날에도 즐겨 먹는 대표적인 봄철 별미이다. 쑥은 떡의 색과 향을 더하는 재료로 인식되지만, 본래는 떡의 양을 늘리고 곡물 사용을 줄이기 위한 재료였다. 쑥을 많이 넣을수록 곡물 가루는 적게 들어갔다. 떡은 제사나 명절 음식이기도 했지만, 춘궁기에는 허기를 달래는 실용적인 음식이었다.
봄나물 문화는 단순한 계절 음식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관찰하고,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며, 부족한 자원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집단적 지식이었다. 어느 나물이 언제 돋고, 어떻게 손질해야 쓴맛이 덜한지, 어떤 조리법이 배를 더 오래 든든하게 하는지는 모두 경험을 통해 축적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봄나물을 향과 일시적 계절성으로 소비한다. 봄나물은 여전히 향긋하고, 여전히 소박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존의 기억이 있다. 봄나물은 풍요의 상징이 아니라, 결핍을 견디는 기술이었다. 애탕국 한 그릇, 나물밥 한 공기의 소박함 속에는 긴 보릿고개를 건너온 식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Lifestyle
2026 SPRING
죽음의 행성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사투
『붉은 칼』
정보라 작, 안톤 허 역 혼포드 스타, 2025 220쪽, 14.99파운드
죽음의 행성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사투
제국의 식민지 포로가 되어 비좁은 우주선에 몸을 싣고 다른 행성으로 가던 그녀는 한 소년 덕분에 힘을 얻는다. 담갈색 눈동자와 붉은 머리를 지닌 소년 또한 다른 식민지 출신이다. 이들이 마침내 도착한 낯설고 적대적인 하얀 행성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의 조건은 단 하나, ‘유령’이라 불리는 괴물 종족을 섬멸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선의 문이 열리는 순간, 모든 희망은 하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지독한 안개는 포로들의 시야를 가리고, 소년이 갖고 있던 무기마저 무용지물로 만든다.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안개를 뚫고 날아온 날카로운 백색 광선이 소년의 몸을 어깨부터 허리까지 단숨에 두 동강 내버린다. 그녀는 절규하며 무릎을 꿇지만, 슬퍼할 여유조차 없다. 방금까지 그녀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또 다른 광선이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는 빛을 반사하는 붉은 칼집에 든 칼 한 자루다. 천운으로 칼집이 적의 살상 광선을 반사해 낸 덕분에 그녀는 가까스로 유령 외계인을 무찌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안개 속에는 살상 광선으로 무장한 외계인들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고, 등 뒤에는 퇴각하는 포로를 사살하려는 무자비한 제국 군인들이 서 있다. 사면초가의 이 행성에서 그녀는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베테랑 번역가 안톤 허를 통해 영미권에 소개된 정보라 작가의 잔혹한 SF 소설 『붉은 칼』은 이처럼 강렬한 흡입력이 있다. 무심한 죽음이 도사리는 곳에서 생의 끈을 놓지 않는 무명의 주인공을 집요하게 쫓아가는 작품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차갑고 기계적인 폭력을 가감 없이 묘사하며, 독자들을 그 절박한 현장으로 밀어 넣는다.
각 장 사이에 배치된 짧은 에피소드들은 이 죽음의 행성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실체를 조금씩 드러내는 퍼즐 조각과 같다. 독자들은 아마 주인공보다 먼저 그녀가 처한 상황을 눈치채게 될 것이며, 이러한 ‘비극적 아이러니’로 인해 더욱 충격적인 결말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지켜볼 부분은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깨닫게 된 그녀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붉은 칼』은 여타 훌륭한 SF 소설들이 그러하듯, 긴장감 넘치는 서사 너머로 인간다움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포로들의 목숨을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며 소모품처럼 전장에 내모는 제국의 비인간성은 언뜻 허구처럼 보이지만,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지 않았다면 이토록 강렬한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전선 너머 맞은편에서 미지의 타인을 ‘괴물’이나 ‘유령’으로 낙인찍는 것 또한 인류 역사에서 자주 보았던 전쟁 선동 방식과 닮아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정체성 형성에서 ‘기억’의 역할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결국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이 이끄는 대로 그저 정해진 길을 따라 가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때로는 무력해 보일지라도,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나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우주선의 엔진 굉음과 처절한 전장의 소음이 잦아든 뒤에도, 이 작품은 당신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유에서 유』
오은 작, 안수현 역 블랙 오션, 2025 178쪽, 20.00달러
양날의 검을 가진 언어의 힘
영미권 독자들이 시집 『유에서 유』를 통해 오은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역자는 “오은의 시는 일상적 언어의 사용을 넘어선 한국어 감각을 체험하게 만든다”라고 평했다. 하지만 매끄럽게 옮겨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에 바로 이 점이 번역가에게는 딜레마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독자들은 「너무」라는 시에서 왜 갑자기 나무가 언급되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너무(too much)’와 ‘나무(tree)’라는 글자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알게 되면 비로소 이해가 갈 것이다. 또한 「만약이라는 약」은 ‘만약(if)’이라는 미련을 내려놓는 과정에 대한 성찰적인 작품으로, 한국어에서 ‘만약(manyak)’이 약(yak, medicine)의 한 종류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제목의 의미가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국내 시집의 전형적인 구성대로 『유에서 유』 역시 해설가의 평론으로 끝맺는다. 시인의 말놀이 방식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반가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안수현 번역가의 방대한 주석이 더해져 영미권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단순한 말놀이를 넘어 오은의 시는 여러 차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다움」과 「합평회」 같은 작품들은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으며, 「청문회」는 마치 시인의 공개적 선언처럼 느껴진다. “거의 모든 단어에는 양날의 검이 있다”라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코리안 밥상’
www.koreanbapsang.com
한국인의 밥상에 둘러앉다
‘코리안 밥상’은 재미교포 노효선 씨가 자녀들이 어릴 때 먹었던 한국 음식을 직접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시작한 웹사이트이다. 한국 요리 입문자들이 손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시작하기’ 링크가 준비되어 있다. ‘밥상’의 의미를 비롯해 밥, 반찬, 국, 찌개 등 한국 식사의 기본 요소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또한 한국 음식의 필수 식재료 정보,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들도 함께 제공한다.
레시피 메뉴에는 훨씬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간식, 전채 요리부터 메인 요리, 슬로우 쿠커 요리, 채식 요리, 후식까지 카테고리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심지어 인기 드라마
등에 나왔던 음식을 만나볼 수 있는 ‘특별 이벤트’ 요리, 또는 한국과 미국 문화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홈파티’용 레시피도 확인할 수 있다. 각 레시피에서는 입맛을 돋우는 완성 요리 사진부터 음식에 대한 설명과 역사, 그리고 노효선 씨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Lifestyle
2025 WINTER
길한 음식, 떡국
떡국은 대표적인 세시 음식으로, 고깃국물에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어 넣어 끓인다. 지역에 따라 재료나 조리 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음식이라는 점은 어디나 매한가지다. 요즘은 명절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적으로도 즐겨 먹는 별미가 되었다.
맑은 국물에 가래떡을 가늘게 썰어 넣고 끓이는 떡국은 설날에 먹는 절기 음식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평소에도 일품요리 형태의 한 끼 음식으로 널리 상용된다. ⓒ 한국관광공사
겨울이 오면 본능적으로 뜨끈한 국물 요리를 찾게 된다. 그중에서도 떡국은 특별하다.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과 계절 감각을 함께 불러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설날 아침에만 맛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명절의 경계를 넘어섰다. 마트 진열대에는 간편식 떡국 상품이 늘어서 있고, 일반 식당이나 분식집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가 되었다. 그럼에도 설에 떡국을 먹지 않으면 마치 새해의 복 한 조각을 놓친 듯 허전하다. 그것은 아마도 떡국 한 그릇에 담긴 길하고 복된 기운을 우리 모두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를 세는 단위
떡국은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음식이다. 근대기에 활동했던 문인이자 언론인인 최남선(1890~1957)은 1946년 한국의 풍속과 전통, 지리, 종교 등을 망라한 『조선상식문답』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은 매우 오래됐으며, 이는 상고 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됐다”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음복이란 ‘복을 먹고 마신다’라는 뜻으로, 조상께 올린 제사 음식을 나눠 먹으며 복을 기원하는 전통을 말한다. 그가 언급한 상고 시대가 정확히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쌀밥을 짓는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쌀을 찧어 가루로 만든 뒤 떡으로 쪄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는 학자들의 의견이 모인다. 떡은 시간이 지나면 굳기 때문에 국물에 넣어 다시 데워 먹는 방식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을 것이다.
조선 시대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서는 떡국을 ‘백탕’ 혹은 ‘병탕’이라 부르고 있다. 백탕은 국물이 희다는 뜻인데, 이는 단순한 색깔 묘사가 아니라 상징성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흰빛에서 청결과 순수를 떠올렸고, 한 해의 시작을 더럽힘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열고자 했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행위는 그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정화 의례에 가까웠다. 그래서 떡국을 조리할 때는 소고기든 닭고기든, 혹은 멸치 등의 해산물로 우려냈든, 색이 짙지 않게 맑고 흰빛을 유지하려 애썼다. 또한 병탕(餠湯)은 떡 ‘병(餠)’과 끓일 ‘탕(湯)’을 합친 용어로, 말 그대로 ‘떡을 끓여 만든 국’이라는 뜻이다.
한국인들은 생일과 무관하게 해가 바뀌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걸로 셈한다. 따라서 새해 첫날 먹는 떡국은 나이를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내가 너보다 떡국을 더 먹었어”라고 말한다면, 이는 곧 “내가 너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뜻이며, 삶의 경험과 식견이 더 풍부하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 『동국세시기』에도 옛사람들이 “병탕을 몇 사발이나 먹었느냐”라는 표현으로 나이를 물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떡국은 세시풍속의 음식이면서 동시에 생물학적 나이와 삶의 연륜을 재는 도구이기도 하다.
떡국의 주된 재료인 가래떡은 그 자체로 담백하고 쫄깃해 주전부리로 즐겨 먹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살짝 굳은 가래떡을 석쇠에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해져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에 구운 가래떡은 주로 조청이나 꿀을 발라 먹는다. ⓒ 한국관광공사
복을 비는 마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1748~1807)은 풍속지 『경도잡지』에서 떡국을 “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처럼 얇게 썰어 꿩고기와 함께 끓이는 음식”으로 묘사했다. 그의 기록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떡국의 원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옛사람들은 생명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무병장수의 기원을 담아 가래떡을 길게 뽑았다. 그리고 그 떡을 엽전처럼 동그랗게 썰면서 재물과 풍요, 번영을 희구했다. 그렇기에 떡국은 단순한 겨울 음식을 넘어, 길한 음식으로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떡국은 한겨울에 꼭 필요한 실용적 음식이기도 하다. 소화가 더디고 체온을 유지하기 힘든 추운 계절에 가루 내어 익힌 떡은 부드러워 소화가 잘되었고, 흡수율이 높아 금세 에너지로 바뀌었다. 뜨끈한 국물과 함께 먹으면 몸이 데워져 새해 첫날 활기를 북돋기에 제격이었다.
국물 재료 선택에도 이유가 있었다. 농경 사회에서 소고기는 귀해 자주 쓰기 어려웠고, 대신 꿩이나 닭은 비교적 구하기 쉬운 단백질원이었다. 더불어 꿩·닭을 삶으면 국물이 맑고 기름기가 적어 백탕의 이미지와 잘 맞았다. 또 소화에 유리해 겨울철 보양 음식으로 적합했다. 특히 꿩은 예부터 “양기를 북돋아 몸을 덥힌다”는 인식이 있었고,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서 새해 시작과도 연결됐다. 하지만 야생 꿩은 구하기가 어려워, 일상적으로는 닭이 대체재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각 지역의 떡국
떡국은 지역색이 드러나는 음식이기도 하다. 지역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개성은 조랭이떡국으로 유명한데, 양 끝을 비틀어 리본 모양으로 만든 조랭이떡은 특이한 모양새와 말캉하고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다. 맑은 소고기 육수에 달걀지단과 김 가루를 고명으로 얹어 깔끔하고 절제된 풍미를 완성하며, 곁들이는 반찬으로는 담백한 동치미나 무김치가 어울린다. 함경도와 평안도 같은 북방 지역은 쌀이 귀해 떡 대신 만두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떡만둣국이 흔했고, 국물은 멸치·다시마·건어물로 내어 구수하면서도 진한 맛을 냈다. 마늘·두부·대파가 고명으로 올라가고, 김치·젓갈 같은 저장 음식이 반찬으로 곁들여져 긴 겨울을 버티는 데 필요한 열량과 온기를 보충했다.
강원도의 떡국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품은 지리적 특성이 드러난다. 산간 지방에서는 황태나 북어를 푹 끓여 국물 맛을 내고, 바닷가에서는 오징어나 생선을 활용하기도 했다. 메밀 피로 빚은 만두가 들어간 떡만둣국이 흔했다. 충청도에서는 멥쌀가루를 익반죽해 작은 덩어리로 만든 반죽을 두툼하게 썰거나 손으로 뜯어 넣어 끓였다. ‘날떡국’ 또는 ‘생떡국’이라 불리는 이 독특한 떡국은 두께가 일정하지 않아 씹는 재미가 있다. 국물은 소고기·닭·멸치를 담백하게 끓여내는 경우가 많았다. 고명은 단출했지만, 무생채나 동치미 같은 곁들임 반찬이 어우러져 충청도 특유의 소박한 정서가 배어난다.
서울과 경기도는 여러 지역의 영향을 아우르며 표준형 떡국을 만들어냈다. 소고기 양지나 사골을 고아 낸 맑은 국물에 어슷하게 썬 가래떡을 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방식이다. 달걀지단, 파, 김, 소고기를 채 썬 고명이 기본으로 올라가며, 깍두기나 동치미 같은 반찬이 곁들여진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떠올리는 전형적인 떡국의 형태이다.
전라도는 국물이 깊고 진하다. 그중 닭장떡국이라는 향토 음식이 유명하다. 원래는 꿩을 넣어 끓이는 것이 상례였지만, 꿩을 쉽게 구하기 어려워지자 그 맛을 대신하기 위해 닭을 활용했다. 토막 낸 닭에 파, 마늘, 생강 같은 향신채와 조선간장을 넣고 짭짤하게 조린 후에 이것을 물에 풀어 국물을 내고 떡을 넣어 끓인다. 짭조름한 국물이 떡에 스며들면서 국물 맛이 한층 진해지고, 담백한 닭고기와 어우러져 든든한 별미가 되었다.
경상도에서는 ‘꾸미(국이나 찌개에 넣는 고기)’라 불리는 고명이 떡국 맛을 좌우했다. 국물은 멸치·다시마 육수나 소고기 국물을 쓰지만, 짭조름한 꾸미로 맛을 보강했다. 간장에 졸인 고기, 두부, 달걀, 김 가루가 고명으로 올라가고, 바닷가 지역에서는 굴이나 해산물이 더해졌다. 울산에서는 독특하게도 구운 떡을 넣어 고소함을 더한 ‘굽은떡국’이 전해진다.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익반죽한 반죽을 기름 두른 팬에 전병처럼 넓게 구운 뒤, 이를 한입 크기로 잘라 멸치 장국에 넣어 끓이는 방식이다. 기름에 구운 떡 특유의 고소한 향과 쫄깃한 식감이 국물과 어우러져 별미를 이룬다. ‘굽은’은 구웠다는 뜻의 지역 사투리이다.
오늘날 식재료가 풍족해지고 세시풍속을 따르는 사람들이 줄면서 많은 명절 음식이 빛을 잃었다. 떡국 역시 가정간편식으로 사시사철 맛볼 수 있는 일상적 음식이 되었지만, 길하게 여기는 마음은 한결같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설날 아침 가족이 한데 모여 떡국을 나눠 먹으며 새해의 안녕을 함께 빌고 덕담을 나눈다.
조랭이떡국은 개성 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떡국은 긴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어서 끓이지만, 조랭이떡국은 리본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끓이는 게 특징이다. 국물을 내거나 고명을 얹는 방식은 다른 떡국과 비슷하다. ⓒ 경향신문
Lifestyle
2025 WINTER
부당함에 맞서는 일에 관하여
『서른의 반격』
손원평 작, 션 린 할버트 번역 하퍼비아, 2025 233쪽, 19.99달러
부당함에 맞서는 일에 관하여
손원평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인 이 책의 주인공은 ‘김지혜’다. 1988년생 여자 이름 중 가장 흔한 이름이기에, 그녀는 수많은 ‘김지혜들’ 속에 파묻힌다. 하지만 그녀에게 익명성은 오히려 편안하다. 무대에 선 사람들을 객석에서 지켜보면서, 조용히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서른 살이 된 김지혜는 대기업 DM그룹의 교육 계열사인 DM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원했던 인생은 아니었다. 꿈도 희망도 이루지 못했고, 미래는 불확실하기만 하다. 그런데 마치 맑은 하늘에 번개가 치듯 그녀의 일상에 한 남자가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두 번째 인턴으로 채용된 이규옥이다. 물 같은 지혜에 비해 그는 불과 같은 성향이지만, 둘은 의외의 동지가 된다. 우쿨렐레 수강생 남은주와 고무인까지 합류하면서, 세상의 권위에 맞서고 정의를 구현하는 4인조가 탄생한다. 이들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고, 방식도 유쾌하다. 갑질하는 상사를 상대로 협박문 느낌의 쪽지를 남기거나, 다리 밑에 낙서하고, 싫어하는 정치인에게 달걀을 던지는 정도의 소소한 장난이다.
처음엔 이 장난들이 나름대로 효과를 보인다. 체제가 전복되거나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의 일상은 조금 더 나아진다. 그런데 지혜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진다. 진정한 변화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마침내 사상 최대의 계획을 실행할 기회가 찾아온다. 과연 4인조는 지혜가 바랐던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면, 세상과 맞서 싸우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이 현명하다는 현실주의자들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게 될 것인가?
지혜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서른을 넘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10대에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변화가 너무 많아 스스로를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그 시기가 지나고 20대가 되면,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디며 가능한 많은 경험을 쌓아가게 된다. 그러나 30대에 접어들면, 사회는 ‘이제 진지하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하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사회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틀에 맞서서, 자신이 원하는 꿈을 좇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혜는 둘 중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최소한 모두에게 맞는 답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각자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고 얻은 메시지다. 독자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손원평의 작품이 탁월한 이유는 모두에게 똑같은 해답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인다. 앞으로도 분명 그녀의 인생에는 수많은 시련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녀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옥춘당』
고정순 작, 박애린 번역 레빈 퀘리도, 2025 128쪽, 21.99달러
사탕처럼 달콤하고… 깨지기 쉬운 추억
작가 고정순은 『옥춘당』에서 따뜻한 글과 아름다운 그림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쟁고아였던 두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손녀인 정순은 방학이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는데, 기억 속 할머니의 집은 ‘여름이 오래 머무는 곳’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세월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가지만, 모든 것에는 언제나 끝이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단어만 골라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대신 글 사이에 놓인 그림들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눈앞의 장면만이 아니라 마음의 여운까지 포착하며, 오래된 기억을 고스란히 불러낸다. 이야기의 끝에서 작가는 할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인 ‘작은 실내화 한 켤레’를 떠올린다.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는 물건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기억 속에 다시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만들어 두고 가는 것임을 알려준다. 그 빈자리는 우리의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드라마빈스
www.dramabeans.com
전 세계 K-드라마 팬들, 모여라
2007년, ‘javabeans’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여성이 K-드라마의 세계에 푹 빠졌다. K-드라마를 향한 애정을 함께 나눌 곳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지만, K-드라마가 제대로 주목받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만든 사이트가 바로 ‘드라마빈스’다. 이 사이트의 주요 콘텐츠는 인기 드라마 요약이지만, 그 외에도
의 세계적 성공 등 드라마 현상에 관한 에세이, 드라마 업계 뉴스, 팬들을 위한 토론 게시판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드라마빈스의 필진은 출신도 다르고, 살아온 길도 제각각이다. 이 사이트를 알게 된 경로 또한 각기 다르지만, 그들을 하나로 잇는 단 하나의 끈이 있다. K-드라마에 대한 사랑, 아니 어쩌면 집착에 가까운 애정이다. 현재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소위 ‘리캡 미니언’ 들은 대부분 드라마빈스의 초기 독자들로, 아끼는 사이트에 직접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꿈만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드라마빈스는 위에서 아래로 정보를 뿌리는 구조가 아닌, 팬에 의해, 팬을 위해 만들어진, 애정이 담긴 K-드라마 해설과 분석의 공간이다. 리캡 미니언들처럼 K-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겨찾기 해둘 만하다.
찰스 라 슈어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Lifestyle
2025 WINTER
토종 씨앗이 펼쳐내는 세계
토종 작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커지고 있다. 비영리단체 토종씨드림의 변현단 대표는 전라남도 곡성에 마련한 채종포에서 토종 씨앗을 증식해 전국에 보급하는 한편 토종 씨앗에 대한 농부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도 추진 중이다.
씨앗을 채취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작물을 볕에 말리고 있는 변현단 대표. 그녀는 점점 사라지는 토종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2008년 비영리 민간단체 ‘토종씨드림’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토종 씨앗 수집부터 증식, 연구, 보급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곡성 읍내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산속 농장. 이곳에는 변현단 대표가 현재 가꾸고 있는 토종 작물 2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그녀가 직접 지은 황토집 주변으로 씨앗 창고와 비닐하우스, 토종씨드림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주변에는 3,000평의 채종포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녀는 2008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은 토종 씨앗을 육종하고, 또 농가에 다시 나눠 싹을 틔우게 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현재 그녀가 대표로 있는 토종씨드림은 약 4,000종의 토종 씨앗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땅에서 시작된 자생종, 우리 땅에서 대를 이어 키운 재래종, 두 가지를 합쳐 토종이라 부른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작물은 대부분 작황을 위해 품종 개량을 거친 것들이다. 변 대표는 대가 끊겨가는 토종 씨앗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국을 샅샅이 훑는다. 먹을거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혹독한 세상살이에서 살아남는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는 충청북도 괴산에 갔어요. 요즘이야 구글 뷰로 보고 어디쯤 가면 좋을지 대충 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가 발품을 팔았죠.”
마을 초입부터 시작해 가장 깊숙한 안쪽까지 6개월간 이 잡듯이 뒤져 찾아낸 450여 종의 토종 씨앗이 시작이었다. 그 당시 재래 농법으로 농사를 짓던 할머니들이 대부분 80대의 고령이었음을 고려하면, 토종 씨앗의 마지막 세대를 찾아 그녀가 대를 이은 셈이다. 도시 빈민들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먹을 권리’를 보호하는 일로 변모했다.
자립을 위한 길
변 대표가 농사를 시작한 이유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하며 살아온 그녀는 자칭 ‘도시 빈민’이 되어갈 무렵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2004년경 경기도 시흥의 기초생활 수급 여성들과 연이 닿아 자활 공동체를 설립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목표는 여성 빈민들의 자립이었는데, 도시에서 생활하려면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하니 농사를 지어 내다 팔기로 했다.
“한번은 옥수수를 수확해서 그 씨앗을 심었는데, 아무것도 안 자라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문제점을 자각했어요.”
당시 심은 옥수수 씨앗은 종자 회사에서 파는 F1 종자로, 균일한 품질의 작물을 일시에 대량으로 수확할 수 있지만, 대신 재수확은 불가능하게끔 개량한 품종이었다. 한마디로 매년 종자를 새로 구매해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종자였다.
“옥수수 종자 하나를 심으면 한 대에 최소 3개가 열려요. 옥수수 1개가 120알이고요. 옥수수 20알에 2,000원씩 판다고 치면 옥수수를 파는 것보다 종자를 파는 게 훨씬 더 이윤이 나죠. 농부들이 전부 씨앗을 사서 재배하고, 다음 해에 씨앗을 받을 수 없으니 악순환이에요.”
농사짓는 데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가자, 그녀는 비료를 제한하고 기계를 쓰지 않는 생태 농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최소화하다 보니 잡초와 싸우는 것도 큰일이었죠. 어느 날, 밭에 한가득인 잡초를 보고 ‘저걸 언제 다 매냐, 그냥 확 먹어버릴까 보다’ 푸념했어요. 그런데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한마디 툭 던지시더라고요. 그거 먹는 거라고.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잡초가 아니라 닭의장풀이었고, 어린잎과 줄기를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걸 알았죠.”
토종 작물에 대한 변 대표의 관심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상황에서 시작됐다. 식물도감을 찾아 뒤지던 그녀는 약용 식물에 대한 설명서인 본초 도감에 이어, 조선 시대의 의학 서적인 『동의보감』과 중국의 한의학 서적 『황제내경』까지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상추 대신 토끼풀에 삼겹살을 싸 먹다가 생손앓이를 치유하고, 환삼덩굴로 샐러드를 해 먹다가 천연 수면제를 발견하게 됐다.
“결국 약식동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토종 작물을 길러 전파한다는 건, 옛 선조들의 지혜와 문화까지 잇는다는 얘기에요.”
점차 사라지는 토종 작물
마트에서 파는 농산물들은 어찌 보면 반만 진실이다. 예를 들어, 시래기와 무는 원래 하나의 작물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품종이 분화되었다. 순전히 시래기를 얻기 위해 심는 무는 무청만 거두고 무는 버린다. 반대로 무를 얻기 위한 종자는 심어서 무만 취하고 무청은 버린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과정은 더 많은 수확량을 확보하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한 결과다. 그 시작은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오른다.
“구한말에 일본 농림수산성에서 조사해 기록한 우리 벼 품종이 450종이었어요. 1930년도가 되면 100종도 채 남지 않게 돼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나는 작물을 일본 종자로 대체해 심도록 했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가 먹는 단호박도, 고구마도 모두 우리 자생종이 아니에요. 일본에서 들여온 거죠.”
사진은 전통 방식으로 건조 중인 밭찰벼. 대나무 거치대에 작물을 거꾸로 걸어놓고 말리면, 줄기에 함유돼 있던 수분과 영양분이 건조되는 동안 벼 이삭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밥을 지었을 때 더 향긋하고 맛이 좋다.
일본뿐 아니라 각국 열강이 우리나라 토종 종자를 가져가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콩이다. 지금은 외국의 대규모 종자 회사들이 품종을 개량해 GMO 콩이 다수가 되었지만, 변 대표의 농장에 심긴 토종 콩은 어림잡아 30여 종은 족히 된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 여파로 땅이 피폐해졌죠. 전후에 늘어난 인구를 지탱하기 위해 높은 수확량을 목적으로 품종을 개발했어요. 1970년대에 통일벼가 개발된 배경이 바로 그거예요.”
이즈음부터 상업농과 재래농은 명확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상업농은 종자 회사에서 씨앗을 사서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이윤을 꾀하고, 재래농은 전통적 방식으로 씨앗을 받아서 다품종 소량 생산을 지속한다. 식량난을 해결하고 상업농이 우선시되면서 토종 종자는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초기에 상업농을 하면서 토종 작물을 키우는 실험을 해봤어요. 요즘 배추는 속이 꽉 차서 김치 담글 때 속을 많이 넣기가 힘든데, 원래 배추는 그렇지 않아요. 좀 성근 대신에 안쪽까지 파랗고, 칼슘이 풍부하죠.”
고추도, 무도 요즘 우리가 흔히 먹는 것과 토종 작물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토지 대비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개량된 결과다.
살아남는 것과 아닌 것
변 대표가 밭을 둘러보며 소개해 주는 가운데 종종 냉이며 꾸지뽕 같은 것들을 따다가 건넸다. 그러면서 여러 그루의 나무를 심어도 어떤 건 날씨 때문에 번번이 죽는다며, 기후 변화로 인한 작태를 걱정했다.
“역사적으로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사태만 봐도 알잖아요. 같은 품종으로만 심다 보면 환경이 변할 때마다 농작물이 다 죽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를 심으면 그중 어떤 건 반드시 살아남아요. 토종 씨앗을 보존해 다양한 품종을 심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이라는 얘기죠.”
토종 씨앗은 오랫동안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뿌리내린 생물종으로 환경 변화에도 생존율이 높다. 변 대표가 지금까지 농가와 나눈 토종 씨앗은 자그마치 1만 종이 넘는다. 사진은 채종하기 전 건조 과정을 거치고 있는 두메부추.
오래전 토종씨드림 초창기에 씨앗 수집을 갔다가 있었던 일이다. 그녀는 강아지풀과 생김새는 비슷한데 뭔가 다른 풀을 발견했다. 동네 할머니에게 여쭤보니 ‘똘조’라고 했다. ‘똘’은 보통 야생 작물 이름 앞에 붙이는 말이니, 원예화되기 이전의 야생 조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한국에 벼가 450종이라면, 동남아 지역에서는 조가 450여 종으로 그 수를 견줄 만큼 다양하다. 그녀는 “조가 볏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물”이라면서 기후 변화에도 조는 살아남을 거라고 말한다.
변 대표는 언론사에 다니던 2001년, 인도의 생태운동가 반다나 시바를 인터뷰한 일을 터닝포인트로 간직하고 있다. 핵물리학자였지만, 토종 씨앗 운동가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우주 만물이 하나의 원소에서 시작한다면, 씨앗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생생하게 마음을 울렸다.
“토종 씨앗을 잇는 일에 모든 원리가 내재해 있어요. 제가 곡성으로 이사한 뒤 가장 먼저 공부한 게 물리학이에요. 그리고 지구과학, 생물학, 생리학, 병리학을 차례로 공부했죠. 농사를 지으려면 자연을 알아야 하니까요.”
젊은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세계를 누비며 문화 충격도 적잖이 받았다. 궁금한 것은 너무 많고, 궁금하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변 대표는 구절초, 맨드라미, 연잎 등 토종 작물들의 꽃과 잎, 씨앗들을 덖거나 말려서 따로 보관한다. 차로 우려내 마시기 위한 용도로,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그녀의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책에서 공부한 거랑 사회에 나와서 보는 세상이랑 너무 다른 거예요.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것들에 관해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변 대표는 토종 씨앗을 받는 족족 일단 땅에 심고 본다. 그녀는 유전자 조작 콩이라도 땅에 계속해 심으면 본래의 성질이 나온다고 믿는다.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7년에 걸쳐서 붉은 콩, 분홍 콩, 노란 콩, 검은콩, 흰콩까지 다 제 손으로 받았어요. 유전자라는 건 환경에 따라 그 성질이 나타나기도, 숨기도 해요. 결국은 다 하나의 씨앗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Lifestyle
2025 AUTUMN
한 봉지의 감성
커피믹스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간편히 마실 수 있는 음료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점차 대중화됐고, 현재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시장에 나와 있다. 사람들의 입맛과 인식이 변화하면서 2010년대 이후 소비량이 줄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커피믹스는 인스턴트커피와 설탕, 크림을 일정 비율로 한 봉지에 넣은 제품이다. 1976년 동서식품이 국내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한 이래 현재는 맛과 건강을 고려한 다양한 종류의 커피믹스가 출시되고 있다. © 뉴믹스커피
믹스 커피는 인스턴트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넣어 조제해 먹는 방식의 커피이다. 믹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누군가에겐 취향의 표현이고, 또 누군가에겐 위로의 언어이다. 한때는 서열과 관계를 상징했으며, 여성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기도 했다. 그 믹스 커피를 한 봉지에 담아낸 제품, 커피믹스가 탄생했다. 모두가 표준화된 맛을 즐기게 된 순간,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커피믹스는 단지 빠르고 간편한 커피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로 감정을 포장한, 한국식 커뮤니케이션이다.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물 속에서 퍼지는 그 맛은 어떤 시대의 감성을 품고 있다.
우수한 발명품
2020년 개봉한 영화
에는 유니폼을 맞춰 입은 여직원들이 누가 먼저 믹스 커피를 타는지 속도를 겨루는 장면이 등장한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여성 사원들은 저마다 커리어 우먼을 꿈꾸지만, 8년을 일했음에도 여전히 믹스 커피 타는 일이 주요 업무이다. 영화는 코믹한 장면 뒤에 시대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런가 하면 인스턴트커피와 크림, 설탕의 비율로 범인을 추적하는 장면은 커피 취향이 곧 정체성이던 시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정체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치며 수많은 고졸 여성들이 가장 먼저 정리 해고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여성이고 고졸이라는 이유로 저부가가치 인력으로 분류된 그들이 사라지자, 믹스 커피를 타고 회의실을 정리하며 일상의 틈을 메우던 손길 또한 함께 없어졌다. 남은 직원들은 곧 그 공백을 체감했다. 특히 믹스 커피를 직접 타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바로 그 시점에 커피믹스가 해결사처럼 등장했다. 봉지를 뜯어 컵에 넣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누구나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는 이 표준화된 취향의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효율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그 상징성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17년 특허청이 설문 조사한 ‘한국을 빛낸 발명품 10선’에서 커피믹스가 5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보다 앞선 순위가 훈민정음, 거북선, 금속활자, 온돌 같은 역사적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작은 봉지가 지닌 사회적 파급력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웃도어 아이템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왕실을 비롯한 일부 고위층만 즐기던 사치품이었다. 커피가 대중적인 기호 음료로 정착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였다. 미군 보급품을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암암리에 유통되고, 다방에서도 믹스 커피를 팔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퍼졌다.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커피를 물에 타 마시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1970년에는 식품 제조 기업 동서식품이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커피를 선보였다. 그리고 6년 뒤인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 크림, 설탕을 한 봉지에 담은 커피믹스를 출시했다. 낱개 포장된 이 발명품은 과거 ‘빨리빨리’ 문화로 상징되던 산업화 시대 한국의 성장 속도와 정서를 담은 생활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초창기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가정과 사무실에는 각각의 유리병에 담긴 ‘커피 삼총사(커피, 크림, 설탕)’가 갖춰져 있었고, 커피를 개인의 취향에 맞춰 타 줄 인력과 사회적 여유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커피믹스는 오히려 아웃도어 아이템이었다. 사람들은 믹스 커피를 만들어 먹기 어려운 야외에서 레저 활동 중 커피믹스를 마시며 당분을 충전했다. 1980년대 들어 등산과 낚시, 야유회 문화가 확산되면서 커피믹스 소비량도 점점 증가했다. 커피믹스가 그 편리성 덕분에 인기를 얻자, 이후 여러 기업들이 커피믹스를 생산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전체 커피 시장에서 커피믹스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됐다.
상징의 스펙트럼
커피믹스가 야외에서 실내로 들어온 건 1997년 이후였다. 잉여 인력의 부재, 급박한 노동 환경, 그리고 정수기의 대중화는 커피믹스가 업무의 기본 세팅이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예전처럼 누군가의 취향을 일일이 기억해 커피를 내어줄 필요 없이, 모두가 같은 봉지로 만족할 수 있었다. 이로써 커피는 더 이상 서열과 기호의 상징이 아니라, 생존과 자기 위로의 도구가 되었다.
해외에서의 인식 변화도 흥미롭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커피믹스는 한국만의 이상한 문화였다. 에스프레소, 블랙커피, 캔 커피 중심의 시장에서 커피믹스는 지나치게 달고, 아무런 감각도 감정도 없어 보였다. 커피는 예나 지금이나 취향의 영역이고 감성의 언어이기 때문에, 그 모든 걸 생략한 듯한 커피믹스가 환영받을 리 없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믹스커피에 우유, 시나몬 가루, 바나나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제조하여 마시는 트렌드가 불고 있다. ‘달고나 커피’가 대표적이다. 그릇에 꿀을 넣고 색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거품기로 젓다가 커피믹스를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계속 저은 다음 우유에 부어서 마신다. © 한국관광공사
하지만 2010년대 들어 한국 드라마를 비롯한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외국인들은 커피믹스를 감성적인 음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달달한 커피 한 잔을 매개로 나누는 대화가 그들의 감성을 건드린 것이다. 지금은 러시아, 동유럽, 인도네시아, 베트남, 대만 등지에서 박스째 수입하는 K-푸드가 되었다. 2016년 국내 한 여행사가 외국인 관광객 약 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이 넘는(53%) 외국인들이 커피믹스를 ‘가장 맛있는 한국 차’로 뽑기도 했다. 믹스 커피를 한국의 차로 보는 시선이 흥미롭다.
한편 커피믹스는 생존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2022년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한 광산이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 당시 무너진 갱도에 고립된 광부들이 221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이 바로 커피믹스였다. 이들은 커피믹스를 식사 대용으로 조금씩 나눠 먹으며 생명을 이어갔고, 구조 후 스스로 걸어 나올 만큼 건강했다. 커피믹스에 함유된 당분과 열량,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유용했는지를 보여준 극적인 사례다.
젊은 세대의 변화
최근 커피믹스는 다시 한번 새로운 얼굴로 나타났다. 배달 서비스 플랫폼 배달의민족 창업자로 유명한 김봉진 그란데클립 대표가 선보인 ‘뉴믹스커피’는 커피믹스를 시대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브랜드다. “커피는 원래 타 먹는 것”이라는 슬로건 아래, 다방과 사무실을 오가던 옛 감성을 다시 불러냈다. 서울 성수동과 북촌의 쇼룸형 매장은 그 자체로 커피 문화의 회고적 감성을 재현한 공간이다.
이 브랜드의 등장은 단지 레트로 감성 때문만이 아니다. 원두커피가 처음 보편화됐을 때 사람들은 그 쓴맛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카페모카, 프라푸치노 같은 달콤한 음료가 인기를 끌었다. 이후 아메리카노의 깔끔한 쓴맛으로 점점 입맛이 이동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달고 진한 커피가 돌아오고 있다. 크림 라테, 아인슈페너, 비엔나 라테 같은 음료의 유행은 젊은 세대의 기호 변화를 잘 보여준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뉴믹스커피 성수동 매장 앞에서 제품을 시음해 보고 있다. 2024년 론칭한 뉴믹스커피는 ‘기념품 커피’, ‘디저트 커피’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브랜드이다. 군밤 맛, 시나몬 약과 맛, 팥빙수 맛 등 획일화되었던 기존 커피믹스의 맛을 다양하게 변주함으로써 커피믹스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 뉴믹스커피
이러한 흐름 속에서 커피믹스는 다시 새로운 것이 되었다. 뉴믹스커피 매장을 찾는 외국인 비율이 높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SNS와 드라마에서 본 한국식 커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그들을 뉴믹스커피로 이끈다. 발상의 전환 측면에서는 이보다 신선할 수 없는 뉴믹스커피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커피 한 잔조차 부담스러운 요즘 젊은 세대에게 커피믹스는 새로운 감정의 언어일 수 있다.
최근에는 커피믹스를 활용한 다양한 영상 콘텐츠도 활발히 유통된다. 커피믹스로 카페라테, 칼루아, 크림커피 등을 만드는 레시피 영상이 유튜브에 쏟아진다. 커피믹스 시장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진화하고 있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당분이 거의 없는 제로 슈거, 고단백, 무지방 제품 등 기능성을 더한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기존 원두커피와 스페셜티 시장 사이에서 꾸준한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통계에 의하면 2022년 기준, 국내 커피 시장에서 액상 커피 판매 비중이 35.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커피믹스 판매량도 24.8%를 기록해 아직도 믹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2024년에는 커피믹스 판매량이 10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됐다. 2024년 기준, 동서식품이 출시하는 커피믹스의 대명사 ‘맥심 모카골드’는 연간 약 57억 개가 팔렸다. 초당 약 180개가 팔린 셈이다. 이처럼 커피믹스는 여전히 한국인의 일상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효율과 위로의 상징이던 커피믹스는 다시 한번 새로운 세대에 의해 감정의 매개체로 재해석되고 있다. 취향의 서열을 해체하고, 감정을 연결하는 한국식 커피. 그 중심에서 커피믹스는 여전히 한 모금의 여유를 내어준다.
Lifestyle
2025 AUTUMN
낯선 것에 쫓기다
『절망의 구』
김이환 작, 숀 린 할버트 역 서펜츠 테일, 2024 368쪽, 14.99파운드
낯선 것에 쫓기다
서울의 무더운 어느 일요일 저녁, 정수는 담배를 피우러 집을 나선다. 모든 것이 평범해 보이던 그때,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의 구가 나타나 사람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발버둥 치며 비명을 지르던 이들은 순식간에 새까만 덩어리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도시는 공포에 휩싸이고, 구는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사람들을 쫓아다닌다. 그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두려움은 극에 달한다. 정수는 부모님을 찾기 위해 남쪽으로 서둘러 나서지만, 곧 자신 또한 끝없이 위협하는 구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도망가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는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굴복하고 절망에 빠지게 될까?
이것이 바로 김이환의 『절망의 구』 속 주인공이 처한 위기다. 이 작품은 2009년 처음 출간되었으나 최근에야 영어로 번역되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작품이지만, 마치 코로나19 팬데믹을 배경으로 한 것처럼 여전히 시의성을 지닌다. 좀비 영화에 익숙한 독자라면 좀비 영화와의 유사점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처럼 구 또한 아무것도 개의치 않으며 거침없이, 살아 있는 자들을 집어삼키려 한다. 느리게 움직여 달아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공포는 그 압도적인 규모와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위기가 확산되고 두려움이 고조되면, 좀비 영화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류 사회의 근간이라 믿었던 문명성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남는 것은 결국 각자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뿐이다. 더 나아가 『절망의 구』에서는 좀비 영화의 공통된 주제이기도 한 미디어의 불신 문제가 드러나며, 어떤 정보가 진실인지 가려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공포와 고통은 더욱 극대화된다
한편, 구는 좀비와 다르다. 인간과 괴물 사이 어디쯤에도 속하지 않는다. 또한 좀비로 인한 세상의 종말이 흔히 바이러스의 발병이나 초자연적 현상으로 설명되는 것과 달리, 구는 완전히 미스터리다. 그 어떤 논리나 동기로도 설명할 수 없는, 철저히 낯설고 불가해한 존재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무섭고, 현대 사회의 막연한 불안과 절망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저자가 말하듯, “무언가로부터 도망치지만 정작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는지는 결코 알 수 없는” 바로 그러한 상태다.
『절망의 구』는 뛰어난 과학소설이 대개 그러하듯,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성찰과 비판을 담고 있다. 한국 작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집필한 만큼, 의무 군복무 제도나 그로 인해 형성된 부정적 남성성 같은 한국 특유의 문화적 맥락도 담고 있다. 그러나 작품이 던지는 물음은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를 향한다. 위기 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믿을 것인가? 모든 것이 붕괴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품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는가? 놀라운 결말과 함께 『절망의 구』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되돌아보게 하며, 스스로에게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지게 만든다.
『한옥, 오늘』
박나니 저, 사진 이종근 한림출판사, 2023 280 쪽, 35,000원
과거의 건축, 현재에 다시 살아나다
박나니의 『한옥, 오늘』은 한옥, 즉 한국의 전통 가옥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을 한층 더 확장한 책이다. 첫 번째 책이 주거 공간으로서의 한옥을 다루었다면, 이번 책은 공공 및 상업 공간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가 직접 한옥을 찾아가 주인들과 나눈 대화에서 얻은 통찰은, 이종근 사진작가가 담아낸 예술적 건축 사진과 어우러져 한층 더 깊이 있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 책에 담긴 한옥들은 휴가용 숙소나 호텔, 미술관과 전시장, 바와 레스토랑 등 다양한 공공·상업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중에는 스위스 대사관, 테스트 키친, 예술가의 작업실과 쇼룸처럼 다소 특별한 용례도 눈에 띈다. 소개된 한옥들은 전통 건축을 레노베이션한 경우도 있고, 새로 지어진 건물도 있으며, 때로는 한국적 건축 요소와 서구적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우도 있다.
각 건축물을 들여다볼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은, 한옥이 한국 전통의 중요한 일부분이면서도 결코 과거에 묶여 있는 화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한옥은 한국적 정신이 살아 숨 쉬는 형태로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소유자들은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문화적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전통을 오늘의 삶 속에 되살리려 애쓴다. 『한옥, 오늘』은 오래된 건축이 품은 새로운 가능성을 통해 독자의 눈을 열어줄 것이다.
단편선 순간들, 오소리웍스, 미러볼뮤직, 2024
기이하고 아름다운 실험
밴드 ‘단편선 순간들’의 데뷔 앨범
는 올해 2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음반’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대중음악상은 한국의 그래미 어워즈를 표방하며 2004년 탄생한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상이다. 음악을 면밀히 살펴보는 깐깐한 전문가들에게 최고의 음악적 평가를 받은 것이다.
리더인 단편선(본명 박종윤)은 21세기 한국 인디음악을 이해할 때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키워드다.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그는 미학과 철학에도 심취한 바 있는데,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들을 좋아해서 예명을 ‘단편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음악은 문학적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음악 비평 커뮤니티에서 논객으로 활약하던 그는 2012년 첫 번째 정규 음반을 발표했다. 이후 2013년에는 4인조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 ’을 결성해 ‘어쿠스틱 호러 판타지 하드록’이라 불릴 만큼 아방가르드 색채가 물씬한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고, 2017년 밴드 해체 후 최근 몇 년 동안은 독보적인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는 뮤지션으로서 그의 복귀작이다. 그가 여러 명의 연주자들과 결성한 새로운 밴드 ‘단편선 순간들’의 정규 1집이기도 하다. 록, 재즈, 클래식 등이 뒤섞인 이 음반은 그동안 그의 음악이 ‘뒤틀린 아름다움’을 지향했던 것과 달리 ‘아름다운 뒤틀림’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자의 첫인상이 뒤틀림이었다면 후자의 방점은 이제 아름다움에 있다. 그래서인지 발라드곡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친절한 느낌의 곡들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적당한 불친절이 없다면 단편선이 아니다. 몇몇 곡들은 편안하게 감상하기 어려운 긴장감을 조성한다. 타이틀곡 ‘음악만세’는 연주곡에 가깝지만, 중반부에 등장하는 연설이 뜻밖의 감정적 진폭을 만들어낸다. 그는 한 노동 운동가의 연설을 삽입해 기막힌 콜라주 같은 음악적 연출을 선보였다.
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임희윤 음악평론가
Lifestyle
2025 AUTUMN
분재로 세계를 감각하는 방법
바위틈이나 절벽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교묘히 가지를 틀고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며, 크기를 더 키우지 않는다. 분재는 바로 여기서 영감을 얻은 작업이다. 유상경 씨는 한국만의 조화로운 미감으로 분재를 만들어 키우고 판매하며, 분재를 가꾸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식물 마니아 유상경 씨가 운영하는 ‘서간’은 식물을 매입해 그대로 판매하는 일반적인 꽃집과 달리 화분과 이끼, 돌 등을 활용해 식물을 작품처럼 디자인한 뒤 판매하는 공간이다. 오전에는 화훼 농장에 가서 식물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식물을 돌보며 가꾸는 게 그의 주된 일상이다.
서울 서촌의 한적한 어느 골목,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디귿자 모양의 아담한 한옥이 펼쳐진다. 대부분 무릎 높이 아래로 자라는 작은 분재들이 점점이 늘어선 이곳, 서간은 유상경 씨가 운영하는 분재 가게이자 전시관이다. 마당의 자갈, 잡초, 한곳에 켜켜이 쌓아둔 기왓장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과 함께한 어린 시절
분재는 손바닥만 한 작은 화분에 나무나 풀, 이끼, 돌 등을 심고 배치하는 일 또는 그렇게 가꾼 화초나 나무를 말한다. 유상경 씨는 취미로 분재를 시작했는데 일이 커져 전시관으로 이어졌다. 그는 거의 매일 이곳에 상주하며 40여 개의 분재를 돌보는데, 하루 1~2시간이 꼬박 걸린다.
“어릴 때 전라남도 광양에 살았어요. 조경이 잘 된 동네였죠. 그래서 산이며 나무며 바다며 자연과 친숙하게 자랄 수 있었어요.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이사해서도 강의가 없는 시간이면 근처에 산을 타러 다니곤 했어요.”
말하자면 유상경 씨는 ‘덕후’다. 산에 오르거나 길을 걷다가도 눈에 들어오는 풀과 나무, 이끼 같은 사소한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마음에 드는 자연석을 수집하기도 했다. 독립해 혼자 살게 되면서는 본격적으로 집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심심할 때면 혼자 식물원이나 농장에 자주 다녔어요. 오래된 화분을 사 모으기도 했고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는 주말이면 종일 식물을 만졌어요. 나중에는 집에만 식물이 60~70종이 됐어요.”
집에 살아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몸가짐이 사뭇 달라지는 일이다. 점점 더 부지런해졌다. 가지도 직접 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두었다가 다시 서늘한 곳으로 옮겼다가, 분갈이를 여러 번 해주며 식물이 하루하루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보니 본격적으로 식물을 가꾸는 법을 배울 필요를 느꼈다.
“이 식물에 흙을 이걸 쓰는 게 맞는지, 가지를 이렇게 쳐도 되는 건지, 분갈이를 이렇게 자주 해줘도 되는 건지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알게 된 게 분재라는 장르예요.”
서울 서촌의 고즈넉한 골목길 끝에 자리한 서간은 느리게 움직이는 이 지역 특유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유상경 씨는 이곳에서 분재 원데이 클래스와 정규반 수업을 진행한다. 때로는 브랜드와 협업해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하고, 작가들의 작품 전시도 개최한다.
오해와 진실
분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스럽고 인위적인 취미로 오해받곤 한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우선 분재를 가꾸고 감상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파리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가지가 어떻게 뻗어져 나가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이 많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한번은 대학생 손님이 오셔서 분재 가격을 물어보더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다시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정말 시간과 돈이 넘쳐서 분재를 사려는 게 아니죠. 저는 오히려 분재를 통해 여유로운 시간을 사는 거라 생각해요.”
또한 분재 하면 많은 이들이 철사를 칭칭 감아 수형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혹은 식물이 비좁은 화분에 갇혀 원래 크기대로 자라지 못하고 간신히 생명을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유상경 씨는 서간에서 원데이 클래스도 운영하는데, 종종 분재에 대한 이러한 편견과 오해를 접한다. 그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화분에서 식물을 키운다는 것부터가 인공이에요. 그렇다면 화분에 옮겨 심은 식물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제한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에게는 적절한 관리가 필요해요. 가지치기를 적당히 해주고, 필요하다면 철사로 가지를 교정해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거죠. 나무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나무에 해를 입히지 않아요. 나무에 하는 모든 일이 애정에서 비롯되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나무가 못나 보이는 계절도 있다. 여름에는 덥고 습해 병충해가 잦기 때문에 이파리가 시들해지는 경우가 많다. 분재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서간에 방문한 6월 말에는 철쭉이 꽃을 피웠다가 떨구고 딱 한 송이가 남아 있던 참이었다.
“좋아하는 수종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보기에 예쁘면 다 좋아하는데, 못생겼으면 또 그런대로 좋아해요.”
식물의 줄기와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양새에 따라 분재는 여러 종류로 나뉜다. 전나무나 삼나무처럼 줄기가 위로 솟아나는 것을 직간, 해송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서 자라는 나무를 사간, 줄기가 아예 바닥으로 늘어지는 것을 현애라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형태는 나무줄기가 길고 가늘게 뻗어 끝부분에 이파리가 달려 있는 문인목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긴 모양을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문인목이더라고요. 옛날 조선 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나무라는 뜻이죠. 뜻을 알고 나니 더 좋아요. 깊은 내공을 갖고 있지만 으스대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그게 제가 추구하는 이상향에 가까워요.”
서간에서는 대부분 한국 자생식물을 이용해 분재를 만든다. 특히 그는 꼭지윤노리나 애기범부채처럼 정감 있는 이름을 가진 나무에 더 애착을 느낀다. 그는 이왕이면 우리 자생식물을 위주로 분재를 하고자 다짐했고, 옛 선비들이 그린 수묵담채화 등을 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미감을 꾸준히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투박한 미감
유상경 씨는 모든 식물이 제각각의 아름다운 실루엣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분재라는 방식을 통해 각 식물의 특징과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사진은 유상경 씨가 핀셋으로 잎을 다듬고 있는 모습.
유상경 씨가 좋아하는 한국의 전통문화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수묵화이다. 여백이 많으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그려진, 화려하진 않지만 슴슴한 맛이 있는 그림이다.
“나무도 별 볼 일 없이 그려져 있고, 산도 크긴 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아요. 그 안에서 인간은 아주 작게 존재하죠. 인간이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 위안을 찾는 것 같아요. 서간에 와서도 사람들이 비슷한 순간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식물을 보다 보면 나의 존재마저 없어지는 느낌. 아주 작은 점이 된 기분을 느끼다 갔으면 해요.”
한국 분재의 특징도 이와 비슷하다.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고려(918~1392) 시대 중기의 문헌들에 분재에 대한 기록이 있어, 대략 13세기쯤 이미 분재를 즐기는 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분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좀 더 자연스러운 미감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상경 씨가 좋아하는 백자나 막사발에서 느낄 수 있는 투박한 미감에 가깝다.
“요즘 생각하는 한국의 멋은 한마디로 조화라고 생각해요. 하나하나가 존재감 없이 어우러지는 게 아니라,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있으면서 조화로울 때 더 아름답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나무는 꽃이 지고 나면 볼품없어지죠. 그렇다고 해서 나무를 안 보이는 곳에 들여놓지 않아요. 그 시기마저 수용하는 게 한국의 멋이라고 생각해요. 내년에 또 가장 예뻐질 때를 기다리는 거죠.”
서간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 1시부터 6시까지 열려 있다. 혹한기나 혹서기에는 예약제로 운영할 생각을 하고 있다. 모두 이곳에 있는 나무, 그리고 나무를 감상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서다.
“요즘은 나무의 뿌리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늘 보는 건 줄기부터 이파리까지 윗부분이지만, 분갈이할 때 보면 뿌리가 무성해요. 살아남기 위해서 무언가를 부여잡고 있는 흔적이죠. 경이로운 마음이 들어요.”
서간 내부에는 곳곳에 분재가 놓여 있다. 봄과 여름에는 화사한 꽃을 만끽하고, 가을에는 붉게 익은 열매를, 그리고 겨울에는 나목을 감상하는 등 분재와 함께하는 일상은 언제나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다.
유상경 씨가 분재에 사용하는 식물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들이다. 우리 고유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재와 어울릴 만한 화분 수집은 물론 고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모으는 것도 그의 취미 생활이다. 사진은 스튜디오 한쪽에 놓여 있는 빈티지 지류함으로 그가 서울 일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찾아냈다.
Lifestyle
2025 SUMMER
컵에 담긴 청춘의 생존기
급격한 물가 상승 때문에 점심값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2010년대 초반, 서울 노량진에 포진한 포장마차들에서는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빠르게, 싸게,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이른바 ‘컵밥’이 탄생한 것이다. 컵밥은 이제 단순한 끼니를 넘어 시대의 필요가 만들어 낸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고시촌의 생존 음식에서 K-푸드로 확장된 컵밥에는 청춘의 고단한 시간과 한국인의 밥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로벌 푸드엔터테인먼트 브랜드 ‘컵밥’은 송정훈 대표가 2013년 미국 유타주에서 푸드트럭으로 시작해 현재는 미국 전역으로 매장을 확장했다. 현지인의 문화와 입맛을 반영한 레시피 덕분이다. ⓒ 컵밥
“점심값 1만 원 시대.”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11년이었다. 당시 언론은 콩국수 한 그릇 9,500원, 칼국수 8,000원, 설렁탕 1만 원 등을 예시하며 물가 상승을 대서특필했다. 직장인들은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관공서나 학교, 회사 구내식당을 찾기 시작했고, 편의점 도시락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는 단순한 식비 절약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생존형 소비에 진입했다는 신호였다.
2011년은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유난히 팍팍했던 시기였다. 제조업과 대기업의 생산성이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경제 성장률은 세계 평균에도 못 미쳤다. 생산자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6.7%, 소비자 물가지수는 4%나 올랐다. 이 시기는 우리 경제가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궤도를 바꾼 변곡점이었다. 모든 것이 조금씩 비싸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조차 점심값을 고민하던 시절, 취업준비생, 특히 고시생들의 현실은 더욱 암담했다. 부모의 지원에 의존하며 온종일 공부에 매진해야 했던 이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사치에 가까웠다. 고시생의 하루는 공부를 중심으로 철저히 계획되어 있었고, 식사조차 효율성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했다.
노량진 컵밥의 탄생
서울 노량진은 학원가로 유명한 지역이다. 1980~90년대에는 대학 입시 학원들이 밀집해 호황을 누렸다. 이후 입시 학원들이 강남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에는 공무원 시험을 위한 전문 학원들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노량진은 전국에서 고시생들이 모여드는 대표적인 고시촌이다.
이곳엔 ‘고시 식당’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밥과 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식 식당이다. 지금도 고시 식당의 가격은 7,000원 안팎으로 저렴하지만 2011년 당시엔 3,000원 선이었다. 점심값이 1만 원을 넘는 시대에 이 가격은 분명 저렴했지만, 고시생들에게는 그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물가가 오르면서 고시 식당의 가격도 조금씩 인상되고 있던 터라 고시생들의 걱정이 커져갔다.
노량진역 앞, 긴 행렬을 이룬 포장마차도 이 지역만의 독특한 풍경이었다. 떡볶이, 핫도그, 햄버거 같은 분식을 주로 팔았지만, 주먹밥이나 간단한 덮밥 형태의 메뉴도 일부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 본격적으로 밥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등장했다.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혹은 넓적한 종이 용기에 볶음밥을 담아 팔거나 맨밥 위에 여러 가지 토핑을 얹은 덮밥을 팔았다. 가격은 한 그릇에 2,000원 정도였다.
뷔페식으로 구성한 고시 식당이 1인당 3,000원가량 했으니, 포장마차에서 파는 2,000원짜리 컵밥이 그다지 매력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시생에게 차액1,000원은 무시 못 할 금액이었다. 또 고시 식당은 여러 반찬을 내놓다 보니 개별 품질이 떨어졌으며, 음식을 고르고 받아야 하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고시생들도 많았다. 반면 컵밥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양이 푸짐했으며, 달고 짠 맛으로 젊은 입맛을 사로잡았다. 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서서 5분 만에 한 끼를 해결하고 바로 학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컵밥은 가격, 맛, 시간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다.
노량진 컵밥 거리 모습. 컵밥은 노량진 포장마차에서 개발된 거리 음식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수험생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 서울관광재단
컵밥 거리의 퇴색
‘컵라면’에서 파생된 신조어 ‘컵밥’은 언론이 좋아할 만한 소재였다. 고시생들이 만든 신개념 식문화라는 스토리는 충분히 화제성이 있었다. 점심값 1만 원 시대에 한 끼에 2,000원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컵밥은 빠르게 주목받았다. 단순히 값싼 끼니가 아니라, 청년 세대가 고안해 낸 생존 방식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컵밥 열풍이 커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주변 식당들이 포장마차의 컵밥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며 민원을 제기했고, 구청은 단속에 나섰다. 결국 포장마차 사장님들은 라면, 핫바 등으로 품목을 바꾸거나 컵이 아닌 알루미늄 포일 용기를 사용하는 식으로 우회해야 했다.
식당과 포장마차 간 컵밥 전쟁으로 컵밥 원조들이 노량진에서 사라져갈 때 아이러니하게도 컵밥은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건강을 강조한 ‘비건 컵밥’, ‘키토 컵밥’ 같은 차별화된 메뉴도 등장했다. 2012년엔 한 편의점 브랜드가 발 빠르게 컵밥 제품을 출시했다. 이 무렵 노량진 포장마차들은 단속으로 인해 이미 컵밥을 팔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대기업은 되고, 서민은 안 되냐”라는 포장마차 사장님들의 항변은 컵밥 열풍 이면의 사회적 불균형을 보여줬다.
노량진의 컵밥 포장마차들은 3년 후 구청의 중재로 기존 학원가에서 150미터 떨어진 사육신역사공원 앞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컵밥 거리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청년 세대가 공무원을 더 이상 안정적인 직업으로 여기지 않기 시작하면서 고시생 인구가 줄었고, 이에 따라 고시촌의 분위기 역시 예전 같지 않게 됐다. 노량진 컵밥도 그만큼 활기를 잃었다. 그러나 컵밥 거리는 흥미로운 탄생 과정으로 인해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고, 한번쯤은 가봐야 하는 명소로 떠올랐다. 이제는 고시생보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나 젊은 연인들이 이곳을 더 많이 찾는다. 노량진 컵밥이 생존형 식문화에서 관광 콘텐츠로 확장되며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출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포장마차에서 분식 대신 밥을 팔자 대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처럼 젊은 고시생들도 떡볶이나 국수 대신 밥을 먹어야 든든하다고 여겼다. 알곡 상태의 밀을 곱게 빻은 밀가루는 일종의 가공식품이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섭취 후 혈당을 급격히 올리고, 이내 급격한 허기를 유발한다. 반면 쌀은 천천히 흡수되어 포만감이 오래간다. 이는 수천 년 동안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식습관에서 비롯되어 몸에 자연스럽게 새겨진 감각이다.
시대적 트렌드
오늘날 컵밥은 더욱 진화하고 있다. 고급화된 메뉴, 브랜드화된 제품, 해외에서의 K-푸드 아이콘으로 거듭나며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화로 남아 있다. 우선 컵밥은 컵라면처럼 빠르게 대중화에 성공했다. 냉동식품이나 레토르트 형태로 가공되며 편의점과 마트에서 ‘전자레인지 2분’이면 완성되는 간편식으로 자리 잡았다. ‘집에서도 간단한 한 끼’라는 메시지는 시대 흐름과 맞아떨어졌고, 컵밥의 대중성을 더욱 굳혔다.
이제 컵밥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유타주에서 시작된 컵밥(Cupbop) 프랜차이즈다. 비보이 출신이었던 송정훈 대표가 유학을 왔다가 시작한 이 브랜드는 컵밥을 미국식 패스트푸드 스타일로 재해석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밥, 고기, 소스, 토핑을 조합해 하나의 볼로 제공하는 방식은 미국의 푸드 트렌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한국적 맛을 유지하면서도 서구적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주효했다. 어느덧 창업 20년이 넘은 이 브랜드는 현재 미국 전역으로 매장을 넓혀가고 있으며, K-푸드 열풍과 맞물려 더욱 성장 중이다. 이 외에도 컵밥은 일본, 동남아, 유럽 일부 지역에서 한식 간편식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BTS, 김치, 불고기와 함께 컵밥은 ‘일상 속의 한류’를 구성하는 아이템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컵밥의 가치는 단순히 간편하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한국 사회의 변화, 특히 청년 세대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음식이라서다. 고된 공부와 취업 준비, 아르바이트 사이에서 허겁지겁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수많은 청춘들의 진심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컵밥은 시대의 필요가 만들어낸 음식 문화였다. 길거리에서 시작된 작은 컵 하나가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컵밥은 그 자체로 한국인의 생활과 감성을 담아낸 살아 있는 음식 문화의 사례다. 한 손에 쥔 이 작고 따뜻한 한 끼가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기대가 된다.
노량진 컵밥은 간편식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간편식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다양한 종류의 컵밥이 편의점과 마트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 뉴스뱅크
Lifestyle
2025 SUMMER
미래의 꿈, 현실과 만나다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작, 김지영 번역 와일드파이어, 2024 224쪽, 14.99 파운드
미래의 꿈, 현실과 만나다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은 정부의 저출산 해결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한 네 커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녀 셋을 낳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서약을 하면 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할 수 있게 해주는 사업이다.
요진과 남편 은오가 네 번째 입주 부부로 공동주택에 들어오면서, 독자들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이 커뮤니티의 모습을 처음 마주하게 된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희망적인 이름과 달리, 이곳 입주민들 사이에는 이미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공동주택 반장 역할을 자처하는 단희는 쾌활하고 적극적이지만, 이웃에 대한 관심이 간섭과 참견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출산 직후 동화책 그림 그리는 일에 복귀한 효내는 남편이 출근한 사이 아이를 돌보며 마감에 시달리고 있다. 공동체 생활에 참여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여산과 교원 부부는 그들만의 문제가 있지만, 작은 공동체에서 비밀이란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그 가운데 새로 합류한 요진과 은오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커플로, 요진은 ‘직장맘’이고 은오는 전업 아빠다. 단희의 남편 재강의 차가 고장 나자, 은오가 요진과의 카풀을 제안하면서 부담스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출퇴근길을 함께하게 된 재강은 요진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꾸 선을 넘으려 하고, 요진은 자신의 판단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서울의 높은 집값, 최저 수준의 출산율, 정부의 어설픈 대응 등 현대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조명한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인간적 질문들의 틀에 불과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전통적인 성 역할에 따라 사회가 아버지 또는 어머니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아이를 낳은 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요진의 친구들이 말하듯, 정말 아이를 낳아야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며, 그 이전까지는 그저 ‘소꿉놀이’에 불과한 것인가? 생물학적 요인과 문화적 요인이 서로 얽히고설켜 인물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지만, 그 원인이 정확히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작품 속의 공동체는 마치 현미경 아래 놓인 페트리 접시와 같다.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이 고립된 공간에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곧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입주자들은 과연 그 균열을 메꿀 수 있을까? 아니면 균열이 점점 깊어져 그들이 섬세하게 쌓아올린, 취약한 세상을 뒤흔드는 단층선으로 변하게 될까?
중대한 사회 문제로 인해 아무리 상황이 심각하다 해도, 사회란 결국 개인과 개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다. 구병모 작가는 거시적인 한국 사회와 미시적인 공동체의 삶을 동시에 들여다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성인으로 산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무한화서』
이성복 작, 안톤 허 번역 앨런레인, 2023 176 쪽, 18.00 달러
시의 거장이 들려주는 시와 삶에 대한 성찰
이성복의 『무한화서』는 창작 수업 중 470개의 아포리즘을 학생들이 정리하여 담은 책이다. 깊은 성찰을 통해 얻은 지혜의 글을 통해 저자는 종교, 철학, 스포츠, 과학, 수학 등 다른 분야들을 인용하면서 은유와 비유를 통해 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언어, 사물, 시, 글쓰기, 삶이라는 다섯 주제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시에 대한 저자의 일관된 생각이 그 기저에 흐르고 있다. 즉, 시란 의도적 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미묘한 사유가 드러나며, 저자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다른 관점과 시선을 보여준다. 각각의 아포리즘은 빗방울처럼 잠깐 스쳐 지나가지만, 쌓이고 쌓여 결국 바위를 뚫는 물방울처럼 깊은 울림을 남긴다.
특히 마지막 장에는 시와 무관해 보이는, 그러나 어쩌면 가장 시적인, 인생의 지혜들이 담겨 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독자는 그 여정이 ‘언어’에서 ‘삶’으로 곧게 이어지는 직선이 아니라,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하나의 원형임을 깨닫게 된다. 한 번 읽으면 저자의 시 철학을 엿볼 수 있고, 차분히 여러 번 읽다 보면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 역성 >
이승윤, CD,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마름모, 2024
불합리한 세상을 향한 포효
이승윤은 2011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이후 인디 음악계에서 활동했다. 그가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된 건 JTBC가 2020년부터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
의 초대 우승자가 되면서부터다. 브릿팝, 하드록, 헤비메탈, 펑크 록에 이르기까지 날것의 재료들을 도마에 올려 난도질한 뒤 특유의 한국어 말맛을 뒤섞는 게 그의 음악적 레시피다.
2024년 발매한 정규 3집
은 싱어송라이터로서 그가 걸어온 여정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실존주의 철학 용어를 가져온 가사들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폭풍처럼 질주하는 록 템포에 올라타 활어처럼 펄떡인다. 그가 쓰는 가사는 대체로 호전적이다. 싸움의 대상은 자기 자신과 세계다. 그는 세상이 제시하는 진리와 삶의 방식, 성공 방정식에 대해 끝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고개를 흔든다.
15곡이 실려 있는 이 앨범은 64분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타이틀곡
은 사납게 포효하는 보컬과 밴드 사운드에 산뜻한 현악을 가미해 ‘처박혀 버린 얼’과 ‘짓밟힌 넋’을 되찾는 역성혁명을 이루겠다고 천명한다. 앨범은 중반부 어쿠스틱 팝 발라드에서 야성적 펑크 록을 지나 후반부쯤 6분이 넘게 몰아붙이는
에서 하이라이트에 도달한다. 부드럽게 시작해 광기 어린 드럼의 질주로 치닫는 마지막 곡까지 이 앨범은 이승윤이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물게 굵은 붓과 커다란 캔버스를 쓰는 아티스트임을 입증한다.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자기 식대로 쌓아 올려 큰 그림을 그려 내는 앨범 지향형 음악가 말이다.
이승윤은 이 음반으로 2025년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록 노래, 최우수 모던록 노래 3개 부문의 트로피를 안으며 3관왕에 올랐다.
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임희윤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