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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UMMER

삶을 위한 또 다른 선택

복잡하고 치열한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대안적 삶을 위해 농촌이나 어촌으로 이주하고 있다.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겠다는 게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울릉도에 정착한 지 7년이 넘은 임효은(Lim Hyo-eun) 씨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서울 직장인이었던 임효은 씨에게 울릉도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2018년 울릉도 여행을 통해 이곳의 풍경과 사람들에게 매료된 그녀는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속도대로 살고 있다.
© 스튜디오 켄

울릉공작소(Ulleung Gongzakso)는 울릉도 북동쪽 천부항 근처에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다.이곳에서는 임효은 씨가 직접 디자인해 만든 컵, 에코백, 마그넷, 키링 같은 물건들을 판다. 모두 울릉도의 지역성이 드러나는 관광 상품들이다. 그녀가 울릉도에 정착하기 전까지 이곳에는 그 흔한 기념엽서 하나 없었다. 이제는 그녀의 손에서 디자인 상품들이 개발된다. 그녀가 2024년 출간한 책 『마음이 울릉울릉』과 SNS 채널을 보고 울릉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2018년, 일에 치여 지쳐갈 무렵 울릉도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그녀에게 울릉도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한다고 하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한 달살이 프로그램 참여자들 대부분이 2주만 머무르거나 예정대로 한 달 후 떠났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섬 생활은 낯설었고, 내륙보다 물가도 비싼 편이라 경제적 부담도 컸다. 하지만 임효은 씨는 복잡한 도시 대신 한갓진 섬 울릉도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선택했다. 울릉도가 그녀에게 새롭게 살아볼 용기를 준 것이다. 이제 그녀는 디자이너이자 사진작가, 에세이스트, 인플루언서로서 부지런히 울릉도를 알리고 있다.

울릉도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이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멀고 낯선 섬에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본다면, 그 자체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누군가가 울릉도에서 살라고 강제로 등 떠밀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울릉도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울릉도에 온 지 7년이 지났지만, 처음 왔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첫날부터 입도가 쉽지 않았다. 선박 출항이 지연되고, 가는 동안 배도 많이 흔들려서 무척 고생했다. 멀미할까 봐 밤을 꼬박 새우고 배에 올랐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몽사몽 중에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다녔는데, 첫날 저녁 마주친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울릉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해안도로 길이는 약 45㎞다. 마라톤 풀코스와 비슷하다. 하지만 작은 섬 안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지형들이 숨어 있다. 마치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는 외국 같은 느낌이다. 그야말로 신비의 섬이다. 울릉도는 연교차가 적고 눈이 많이 내리는 독특한 기후와 화산 지형인 탓에 지리 과목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어릴 때부터 지리 과목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살아보니 어떠했나?

아름답고 험준한 곳이다. 울릉도는 1880년대 공식적으로 ‘사람이 살아도 되는 섬’이 되었다. 그때 내륙에서 이주한 50여 명이 험준한 산을 개척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처음 이곳에 정착한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메마른 땅을 힘겹게 일구며 고된 노동을 이어가면서도 이 섬이 유독 아름답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같은 풍경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계절은 다르게 찾아오고, 해 질 녘 하늘의 색도 매일 다르다. 그렇게 하루하루 관찰하다 보니 시간이 이만큼 지났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울릉도는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다.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바게트를 만들었다. 원래 빵을 좋아하지도 않고, 만드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울릉도에 빵이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아쉬웠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맛이 좋아서 앞으로 종종 만들어 보려고 한다. 또 지난해부터는 마당에 가지, 고추, 상추 같은 채소를 키워서 먹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마음도 편해졌다. 도시에 살 때는 변화가 두려웠다. 사람이 하던 일이 인공지능, 디지털 기술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섬에 정착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변화가 두렵지 않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로지 내 힘으로 산다는 것은 어렵지만 행복한 일이다.

기념품 가게 울릉공작소는 어떻게 열게 됐나?

울릉도 정착 후 처음에는 지역 영화제인 ‘우리나라가장동쪽영화제’의 기획, 디자인, 운영을 맡았다. 울릉도에는 영화관이 없어서 영화를 보려면 배를 타고 다른 도시로 나가야 한다. 그런 점이 아쉬워서 2019년부터 영화제를 열고 있다. 그리고 울릉도 2주살이 프로그램과 게스트 하우스도 운영했다. 울릉도를 알리기 위해 SNS 채널을 개설해 웹툰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2023년 울릉공작소를 열었다. 울릉도에 여행 왔을 때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사고 싶었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었다. 관광지에는 으레 기념엽서를 판매하기 마련인데, 울릉도에만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어 나리분지, 송곳봉, 공암(코끼리바위) 등 울릉도를 대표하는 명소들을 캐릭터화하기 시작했고, 이를 활용해 디자인 상품군도 점차 확대했다.

임효은 씨는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울릉도의 명소들을 캐릭터화하거나 울릉도 특산품을 소재로 기념품을 제작해 판매한다. 울릉도 곳곳을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만든 기념엽서도 반응이 좋다.
© 임효은

현재는 병뚜껑을 재활용해 만든 리사이클링 키링 등 친환경 제품과 컵, 에코백 등 생활용품 등을 주로 판매한다. 울릉공작소가 있는 천부리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 아니다. 그런데도 책이나 SNS 채널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사인을 요청하는 방문객들도 있었다.

울릉도를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할 일도 많아진다. 경상북도, 울릉군과 협업해 관광 콘텐츠도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나리마을 홍보 영상과 관광 포스터, 울릉군 관광 SNS 콘텐츠 등을 제작했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 일하기도 하나?

울릉도는 대표적인 인구 소멸 지역이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나도 2023년까지 울릉군 청년 정책 참여단의 일원으로, 울릉도에서 살며 겪는 어려움과 해결책에 대해 정기적으로 토의했다. 이와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통해 울릉도를 알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2024년 출간한 에세이. 직장을 그만두고 울릉도에 정착하기까지 겪은 다사다난한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담았다.
© 임효은

그리고 나처럼 울릉도로 이주한 이웃 청년들과도 서로 도우며 지내고 있다. 청년들은 프리다이빙 가게, 숙박업소, 카페 등을 직접 운영하며 이곳을 더욱 활기차게 만든다. 최근 울릉도 일 년살이를 시작한 사람도 있다. 지난해 울릉공작소에 찾아와 “울릉도에 꼭 살고 싶다”며 이것저것 묻던 손님인데, 정말로 이웃이 되었다.

울릉도 청년으로서 가장 풀고 싶은 과제는 무엇인가?

의료와 주거 문제가 가장 절실하다. 울릉도는 전국 평균 대비 주택 보급률이 낮다. 도서 지역 특성상 건축비가 많이 들고, 건물을 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거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정착을 포기한 청년들도 종종 봤다. 저렴하고 깨끗한 주택이 공급된다면, 인구 유입도 늘어날 것 같다. 가족 단위 이주민과 주민을 위해 의료 인력도 더 많이 제공되어야 한다.

울릉도 방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사는 말이 있다. “목적지가 없는 기차를 탄 것처럼 살아라.” 지금 타고 있는 기차에서 잠깐 내려도 괜찮다. 우리 인생은 거기서 다시 흘러간다. 조금 느린 기차를 타봐도 좋다. 울릉도에 머무르는 것도 좋다. 이러한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 인생이 더욱더 근사해질 것이다.

이성미(Lee Seongmi)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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