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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파인 다이닝의 지속가능한 미래

Features 2026 SUMMER

한식 파인 다이닝의 지속가능한 미래 최정윤은 약 30년 동안 현장과 이론,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며 한식의 경계를 넓혀온 요리 연구가이다. 세계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한식의 미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2023년 비영리 사단법인 난로학원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2025년에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한국 의장으로 임명되어 한국과 세계의 미식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하고 있다. 서울 북촌에 자리한 찻집 해온에서 그녀를 만났다. 최정윤 난로학원 의장은 한국 미식 문화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조선 시대 한양(현재의 서울)에서는 날씨가 쌀쌀해지는 음력 10월이면 선비들이 모여 숯불을 지핀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풍류를 즐기던 풍속이 있었다. 이를 난로회라 한다. 최정윤 의장은 여기에서 착안해 2022년 난로회라는 미식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국내 내로라하는 셰프들을 비롯해 각계 전문가들이 이 모임에 다녀갔다. 지금까지 40회 이상, 600명 넘게 참여한 이 모임은 한식의 현재와 미래에 질문을 던지는 공론의 장이 되었다. 최 의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 세대의 한식 인재를 양성하고 글로벌 교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이듬해 난로학원을 설립했다. 서울 조선호텔과 하얏트호텔 리젠시 퍼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활동했던 그녀는 2007년 전설적인 레스토랑으로 회자되는 스페인 엘 불리와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 재단에서 경험을 쌓으며 식재료와 음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안목을 길렀다. 이후 2010년부터 올해 봄까지는 국내 대표적 식품 기업 중 하나인 샘표의 ‘우리맛연구중심'을 이끌며, 한식의 뿌리인 전통 장을 현대적으로 정립하는 연구에 매진해 왔다. 이곳은 과학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한식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그런가 하면 2023년에는 뉴욕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아토믹스의 박정현 셰프와 함께 10년의 연구 끝에 집필한 영문 한식 조리서 『더 코리안 쿡북』을 세계적 예술 출판사 파이돈에서 발행하며, 한식의 가치를 전 세계에 증명해 보였다. 지난해부터는 세계 최고 권위의 미식 평가 가이드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한국 의장으로서, 글로벌 미식계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오피니언 리더로 활약 중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보수적이며 엄격한 관점으로 톱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데 반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은 트렌드를 이끄는 화두를 던지는 레스토랑에 방점을 둔다. 최근 국내에서 파인 다이닝 문화가 급부상하고 있다. 요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경제 성장률이 일정 시점에 도달하면 경험 경제 시대가 도래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GDP가 3만 달러를 돌파한 게 2017년인데, 그즈음 때맞춰 미슐랭 가이드 서울판이 발간된 게 의미심장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셰프들의 도전이 주효했다고 본다. 한국은 1980년대만 해도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1989년 해외 여행 자유화 이후 유학을 다녀오거나 해외 선진 레스토랑을 경험한 셰프들이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 파인 다이닝을 뿌리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 한식 파인 다이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오랫동안 보유해온 자산이 있다. 한식의 핵심적 키워드인 발효다. 우리가 한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해외 미식가들과 유수의 셰프들이 가장 눈을 반짝이는 대목이 바로 발효다. 그들에게는 우리처럼 가가호호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을 정도로 발효가 일상화된 문화가 없었던 거다. 더불어 2010년대 초반, 미식 업계에서 ‘산미’가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이 점이 발효 미학과 맞아 떨어진다. 엘 불리와 알리시아에 몸담고 있던 시절, 스페인 최고의 셰프들이 내게 힌트를 줬다. 한국의 발효를 미학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샘표에 입사한 것도 발효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싶어서였다. 그간 다양한 국적의 셰프들과 교류했는데, 각 나라마다 한식에 매료되는 지점이 달랐을 것 같다. 유럽 셰프들이 발효를 연구자 같은 태도로 접근한다면, 일본 셰프들은 재료를 존중하는 우리의 태도에 공명하면서도 한국식 대담함과 투박함에서 신선함을 느끼더라. 동남아 셰프들은 발효와 매운맛이라는 공통의 언어에서 빠르게 접점을 찾았다. 난로학원은 한식 레스토랑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전통 한식 문화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난로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사진은 난로 아카데미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김명성 발효연구소의 메주이다. 메주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담그는 원료이다. 난로학원 제공 해외로 진출한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도 큰 화제다. 현지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생각의 시작점을 바꿔야 한다. 식당이란 건 결국 손님들에게 사랑받아야 살아남는다. 손님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가 본질이 된다. 문화라는 건 사람들이 향유하면서 나온 결과물이지, 고정된 무언가가 아니다. 예를 들어 고추장찌개는 한식일까? 아마 조선 시대 선비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이 고추장을 대중적으로 먹기 시작한 시기를 통상 19세기 무렵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고추장과 라면, 떡볶이가 대표적인 한식으로 인식되지 않나? 현지화도 같은 맥락이다. 변화와 발전, 새로운 조합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고정관념에 갇히면 외면받고 고립되면서 결국 소멸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고추장과 라면이 붐이지만, 매운맛은 시작에 불과하다. 일단 매운맛을 통해 한식을 경험하게 되면, 차츰 한식의 깊고 넓은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거라 본다. 기본적으로 한식은 한 상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먹는 ‘공간 전개형’ 식문화다. 코스에 따라 서빙되는 파인 다이닝의 ‘시간 전개형’ 식문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간극이 충돌하지 않고 섞일 수 있을까? 파인 다이닝에서는 요리의 온도나 셰프의 창의적 의도 등 정교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한식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파인 다이닝의 정교함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많다. 예컨대 2026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4위인 온지음에서는 메인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도록 서빙하거나 각 코스마다 어울리는 김치를 페어링해 준다. 시간의 문법과 공간의 문법은 경쟁하는 게 아니라 호응한다. 서양 파인 다이닝 역시 엄격한 코스 방식에서 벗어나 공유와 커뮤널 다이닝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한 상의 동시성과 풍요로움을 잘 번역하면, 파인 다이닝의 문법을 한층 넓힐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현재 한식 파인 다이닝 업계가 풀어나가야 할 가장 큰 과업은 무엇인가? 첫째로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도 시급하다고 본다. 단순히 일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빠르게 한식을 확산하는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식당에서 일해본 외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한식당을 차리는 경우도 왕왕 접한다. ‘한식이 잘된다’는 얘기는 다음 세대들이 한식을 계속 먹느냐, 그리고 한국 바깥에서 한식을 얼마나 즐기느냐의 종적, 횡적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 둘째로 로컬의 확산이다. 쉽게 말해 서울 말고 다른 지역의 식문화를 고루 선보여야 한다는 거다. 파인 다이닝이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각 지역의 고유한 음식 문화가 다양하게 발전하며 미식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2024년 부산이 미슐랭 가이드 평가 대상 도시로 추가되면서, 우리에게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54위를 차지한 ‘산’의 셰프 중 한 명이 부산 출신인데, 메뉴에 부산의 향토 음식인 돼지국밥이 있다. 본인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국제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셰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한식 파인 다이닝의 지난 10년을 신선함과 스펙터클로 요약할 수 있다면, 이제는 깊이와 축적을 향해 나아갈 시기다. 지속 가능성이 가장 큰 화두라 할 수 있다. 난로학원을 설립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다.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가? 셰프들이 식당을 차리면 열 곳 중에 일곱 곳이 문을 닫는다. 요리와 경영은 전혀 별개의 분야다. 그래서 난로학원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멘토링이다. 미식뿐 아니라 파이낸스, 마케팅, 브랜딩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문화 산업으로 봤을 때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플랫폼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경우만 봐도 미식의 힘이 패션과 영화, 와인, 럭셔리와 얽혀 200여 년간 성장해 왔다. 일본 음식 역시 디자인과 공예, 콘텐츠와 함께 발전했다. 음식이라는 건 외딴 섬이 아니다. 난로학원에서 하는 일은 한식이 오래 설 수 있는 생태계를 짓는 거다. 엘 불리 레스토랑과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 재단을 이끌었던 셰프 페란 아드리아가 2025년 난로학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셰프들과 함께 전라남도 장성에 위치한 백양사 천진암에서 정관 스님에게 한국 발효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난로학원 제공

한국적 파인 다이닝의 원류 - 조선 왕실의 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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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파인 다이닝의 원류 - 조선 왕실의 연회 애피타이저에서 메인 디시를 거쳐 디저트로 이어지는 파인 다이닝의 코스 방식은 19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귀족 계급과 고급 레스토랑에 도입되어, 19세기 중후반 기본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시선을 조선(1392~1910) 왕실의 연회로 돌리면 뜻밖의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조선 왕실은 이미 15세기 이래 코스 방식으로 음식을 제공하고, 전국에서 최고의 식재료를 조달하며, 전문 요리사 조직을 운영하는 정교한 연회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 1848. 종이에 채색. 141.5 × 49.5 cm(한 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848년 당시 임금이었던 헌종(재위 1834~1849)이 할머니 순원왕후의 육순(60세)과 어머니 신정왕후의 망오(41세)를 경축하기 위해 개최한 궁중 연회의 모습을 담은 8폭 병풍 그림이다. 그중 이 장면은 창덕궁에서 헌종이 주관하여 거행한 의례를 묘사했다.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왕실에서는 규모가 큰 연회를 ‘진연’ 또는 ‘진찬’이라 불렀다. 이는 왕과 왕대비(선왕의 비)·왕비의 생일 전후에 열리는 잔치인데, 진연이 진찬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케일이 컸다. 18세기 이후에는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연회를 진찬이라고 지칭했다. 진연 혹은 진찬이 왕과 왕대비, 왕비의 매해 생일마다 열린 것은 아니었다. 왕의 경우에는 즉위 20·30·40주년에, 생일은 20·30·40·50·60세가 되었을 때 치렀다. 또한 70세까지 장수한 남성 관료 출신들이 입회했던 기로소에 왕이 들어가면 이를 축하하는 연회도 열렸다. 기로소는 연로한 고위 관료들의 친목을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 조선 시대 관리들은 이곳에 들어가는 것을 영예롭게 여겼다. 성대하게 거행된 행사였기에 진연과 진찬에는 수많은 인원과 물자가 동원되었고, 경비도 매우 많이 들었다. 그래서 왕은 신하들의 요청을 거부하다가 세 번째 요청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조선의 왕들은 국가적 행사가 자신과 관련될 경우, 두 번은 거절하고 세 번째에 허락하는 관행이 있었다. 왕의 윤허가 떨어지면, 행사 주관자는 잔치 전반을 준비하고 진행할 각 부서의 관원들로 임시 조직을 꾸렸다. 이 조직을 통해 일정, 참석자, 규모, 상차림 등 세세한 내용이 확정됐다. 왕실 연회의 기획과 준비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조선 왕실의 연회 상차림 재현 모습이다. 잔치의 주인공 뒤에는 일월오봉도나 십장생도 같은 병풍을 세우고, 앞에는 잔치의 규모와 주인공의 신분에 맞게 음식상을 차렸다. 또한 꽃으로 장식한 항아리와 촛대 등을 배치해 잔치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문제는 적어도 10년에 한 번은 열리는 왕실 잔치를 준비할 대형 부엌이 궁궐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장 음식을 마련하는 소주방, 떡과 과자를 주로 만드는 생과방이 궐내에 있긴 했지만, 연회 음식을 장만하기에는 턱없이 작았다. 이처럼 큰 부엌이 없었던 이유는 유학 이념이 왕과 왕비에게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의 역할에 엄격한 구별이 있어야 하며, 생활도 따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왕과 왕비는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살았으며, 평소 식사도 혼자했다. 각각의 처소 근처에 작은 부엌이 마련돼 있었기에 큰 부엌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왕실 연회를 앞두었을 때는 행사장 근처에 야외 임시 주방이 설치됐다. 잔치 음식을 담당한 사람들은 물품 공급 부서인 사옹원에 속해 있던 남성 요리사 숙수였다. 숙수들의 직급과 직무는 다섯 가지로 나뉜다. 재부는 왕실 식사를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였고, 선부는 왕의 일상식을 책임지는 요리사였다. 조부는 음식의 간을 맞추는 일을, 임부는 밥이나 죽 같은 요리를, 팽부는 고기나 채소 삶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이들 아래에 구이, 밥과 국, 술과 음료, 떡과 과자를 각각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있었다.음식을 만드는 전 과정이 분업화돼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연회 장소였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에는 수백 명이 참석할 수 있는 실내 연회장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왕실 잔치는 왕의 업무 공간인 정전이나 대비와 왕비의 침전인 내전에서 열리곤 했다. 하지만 이 전각들도 규모가 작아, 대청에서 앞마당 전체에 이르는 공간에 마루를 깔아 연회장을 만들었다. 이 임시 연회장은 참석자들의 안전을 위해 왕실의 목수들이 대거 동원되었으며, 행사 반년 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열구자탕’이라고도 불리는 신선로는 왕실 잔치에 빠지지 않았던 화려한 궁중 음식이다. 굽 부분에 숯불을 넣을 수 있는 화로가 있어, 어육과 채소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은 뒤 육수를 붓고 끓여 먹는 음식이다. 사진은 국가유산진흥원이 운영하는 궁중 음식 다이닝 한국의집이 올해 봄에 선보인 신선로 요리이다. 국가유산진흥원 한국의집 제공 코스로 제공된 음식 왕실 연회가 개최되면 보통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됐다. 남성 관료들만 참석하는 연회, 왕실 여성들이 참여하는 연회, 왕실의 남녀 친인척만 참석하며 밤에 이루어지는 연회, 그리고 행사 주관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과 마지막으로 뒤풀이에 해당하는 야연이 있다. 이 다섯 종류의 연회에서 중심 행사는 참석자들이 연회의 주인공에게 술이나 음료를 바치는 단계이다. 이것을 ‘진작’이라 한다. 진작을 몇 번이나 하는가는 연회의 규모와 직결됐다. 진작의 횟수는 홀수로 시행됐는데, 아홉 번이 최대치였다. 하지만 조선 시대 왕들은 검소함을 내세웠으므로 보통 다섯 번이나 일곱 번으로 한정했다. 한편 진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공보다는 지위가 낮지만, 참석자들 중에서는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제일 먼저 주인공 앞으로 나와 축하의 말과 함께 술이나 음료를 올렸다. 그러면 시중을 드는 여자 나인이 안주상을 주인공 앞으로 옮겼다. 이때 음식은 술과 음료에 맞춰 어울리는 것으로 준비됐으며, 몇 종류의 음식이 오르느냐 또한 연회의 규모에 따라 달랐다. 아랫사람에게 잔과 안주상을 받은 주인공은 참석자들을 격려하며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들에게 마실 거리와 먹을거리를 나눠 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연회장 남쪽에 자리 잡은 악대가 곡을 연주했고, 무대 가운데에서는 무용수들이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춤을 췄다. 이후 주인공과 참석자들에게 차, 과일, 과자가 놓인 상을 제공하면서 연회가 마무리되었다. 주로 다식(쌀, 밤, 콩 등의 곡물을 가루 내어 꿀이나 조청에 반죽해서 만드는 과자)·정과(과일, 생강, 연근, 인삼 등을 꿀에 조려 만든 음식)·유밀과(밀가루나 쌀가루 반죽을 모양 내 말린 다음 기름에 튀겨 꿀을 발라 만든 과자)와 함께 전복이나 꿩고기, 문어를 말려서 만든 포가 상에 놓였다. 이 단계에서 연회의 주인공은 참석자들을 비롯해 이번 잔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참여한 모든 관리와 일꾼들에게 음식과 선물을 내렸다. 주인공이 자리를 떠나면 비로소 연회가 끝났다. 궁궐에서 사용했던 수저집들이다. 수저를 보관하는 기능적 용도 외에도 붉은 비단에 장수와 건강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글귀를 수놓아 사용자의 안녕을 기원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왕실 잔치나 제사에 사용되었던 은제 주전자이며, 18~19세기 궁중 연회를 기록한 문헌들에도 등장한다. 몸체의 한쪽 면에는 상상 속의 동물인 삼족오가, 다른 쪽 면에는 달에서 절구를 찧는 토끼 모습이 선각으로 묘사되었다. 높이 29 ㎝, 바닥 지름 9.5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등급과 품격의 시각화 1892년 고종(재위 1863~1907)의 생일을 기념해 열린 잔치에서는 고종에게 9번의 안주상이 차례로 바쳐졌다. 사진은 당시의 안주상을 궁중음식문화재단이 모형으로 재현한 것으로, 은행과 홍합, 전복 등으로 만든 음식을 상에 올렸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파인 다이닝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음식의 품격을 상차림과 기물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조선 왕실의 연회는 이 원리를 식탁 위에 정교하게 구현했다. 진작마다 올리는 안주상과는 별도로, 연회의 주인공과 주요 참석자들 앞에는 큰 식탁에 음식이 차려졌다. 가령 순조(재위 1800~1834)의 탄생 40주년과 재위 30주년을 기념하여 1829년 창덕궁에서 열린 잔치에서 순조는 46그릇의 음식이 차려진 큰 상을 받았다. 왕후에게는 34그릇, 세자와 세자빈에게는 각 31그릇, 공주에게는 25그릇의 음식이 제공되었다. 식탁에 오른 음식의 가짓수는 왕정 사회의 신분 질서에 따른 것이다. 메뉴는 육류·어류·채소가 고루 배치된 균형 잡힌 구성이었다. 가령 1902년 고종 황제(재위 1863~1907)의 기로소 입소를 축하하며 열린 잔치에서 황제의 식탁에는 63가지의 음식이 차려졌는데, 그중에서 재료와 요리법이 겹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왕실 연회의 음식 재료와 분량은 연회가 끝나면 낱낱이 기록되어 서너 권의 의궤로 만들어졌다. 의궤란 나라에서 큰일을 치를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그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를 자세하게 적은 책이다. 이 기록은 조선 왕실 연회 음식의 매뉴얼이자, 훗날 다시 재현할 수 있는 레시피 구실을 했다. 조선 왕실의 연회는 최상급 식재료, 전문 요리사 조직, 코스 방식, 신분에 따라 차등화된 격식, 그리고 음악과 무용이 어우러져 오늘날 파인 다이닝의 모든 핵심 요소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물론 조선 왕실의 연회와 서구의 파인 다이닝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전자는 유학적 예법과 왕실의 정치적 권위를 실현하는 의례적 장치인 반면 후자는 상업적 미식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답고 정교한 왕실 연회는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단절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파인 다이닝이 서구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거두면, 조선 왕실의 연회 속에서 한국 음식 문화의 긴 계보와 수준 높은 경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연회의 술과 음료, 그리고 다양한 음식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음식 문화가 오래전부터 세계 여느 왕실 못지않은 품격과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역사적 증거다.

새로운 얼굴의 한식, 익숙한 맛의 색다른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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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얼굴의 한식, 익숙한 맛의 색다른 문법 국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가파른 성장에는 한식이 있다. 미식업계의 권위 있는 주요 상을 수상한 레스토랑 대부분이 파인 다이닝에 한식을 접목한 곳들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미국 등 서양에서도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면 해외에서 굳이 한국 레스토랑에 시선을 둘 이유가 없다. 이 점은 한국 레스토랑의 장점이자 특별함이다. ‘숙수’는 조선 시대 궁중에서 음식을 담당하던 남성 요리사를 일컫는다. 권우중 셰프는 자신의 성씨인 ‘권’과 ‘숙수’를 합쳐 레스토랑 이름을 짓고, 한식의 본질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소반에 음식을 내는 상차림은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한식의 품격을 경험하게 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이다. 권숙수 제공 서양식 고급 정찬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문화가 한국에 정착한 지는 20여 년 됐다. 2000년대 초중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며 미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고, 그 시기 서구의 파인 다이닝 문화를 학습한 셰프들이 하나둘 독립형 레스토랑을 차리면서 국내 파인 다이닝 문화가 본격화됐다. 서양이나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에 견줘 역사가 짧은 편이다. 하지만 짧은 역사에도 성장 속도는 빨랐다. 100년 역사가 넘는 미식 안내서 ‘미슐랭 가이드’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이 한국에 수두룩하다. 매년 순위를 발표하는 미식 행사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도 이름을 올리는 레스토랑이 늘고 있다.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세계 레스토랑 순위를 발표해 권위를 확보한 프랑스 미식 가이드 ‘라 리스트’에도 한국 레스토랑 진입 속도가 빠르다. 정관 스님이 죽순을 손질하고 있다. 한국 사찰 음식의 대가로 통하는 정관 스님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에 출연해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으며, 국내외 정상급 셰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에는 사찰 음식에 담긴 지혜와 레시피를 정리한 첫 에세이 『정관 스님 나의 음식』을 출판했다. ⓒ 베로니크 회거, 윌북 제공 다시 쓰인 한식의 언어 파인 다이닝 식문화는 스타 셰프를 배출하기 마련이다. 국내에선 대표적인 인물이 강민구 셰프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에서 유일하게 미슐랭 가이드 별 3개를 받은 요리사다. 미국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잠시 일한 적 있지만 유학파는 아니다. 국내 대학의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실력을 쌓았다. 그의 레스토랑 ‘밍글스’는 2014년 문을 열었다. 당시 한식 DNA를 심은 그의 메뉴에 식도락가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밍글스 이전에 한국 파인 다이닝의 시초가 된 정식당의 단품들과 차별성이 있을지 의문을 가졌다.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는 서양식 플레이팅에 비빔밥 같은 우리네 음식을 담아 한식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바 있다. 하지만 밍글스에 대한 식도락가들의 우려는 오산이었다. 한식의 기본인 장을 이용한 디저트 ‘장트리오’는 스테디셀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디저트 크렘 브륄레에 우리네 장과 고춧가루 등을 섞어 만든 후식이었다. 이질적인 식재료인데 묘하게 맛의 궁합이 맞았다. 코스엔 한식의 향취가 넘실거렸다. 하지만 진한 한식 맛은 아니었다. 발걸음 겨우 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컨템포러리 한식’ 세계로 진입한 맛이었다. 그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막상 한식을 하려니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한식 스승을 간절히 찾아 나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는 셰프들의 스승으로 불리는 조희숙 선생과 사찰음식 명장 정관 스님을 만났다. 조희숙 선생은 대학 졸업 후 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서울 특급 호텔 주방장을 지낸 한식 전문가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부각되면서 명성이 더욱 높아진 실력자다. 2020년엔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로 선정되기도 했다. 강민구 셰프는 조희숙 선생에게 간청했다. 자신을 비롯해 요리사들을 위한 한식 수업 모임을 꾸려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맺은 조희숙 선생과 강 셰프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관 스님과의 인연은 그의 실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정관 스님은 넷플릭스 시리즈 에 출연해 세계에 한식을 알린 사찰음식 대가다. 한국의 사찰음식은 다른 아시아권 사찰식과 달리 수행을 기본으로 하며, 극강의 식도락을 추구하지 않는다. 정신이 빠진 먹거리는 그저 허기를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인간의 역사가 표표히 흐르는 문화로서, 먹거리에는 생각과 철학이 깊이 스며 있다. 강민구 셰프는 정관 스님을 통해 한식의 정신 한 축을 깨우쳤다. 지금 밍글스는 더 깊어진 한식의 맛을 선보인다. 당도가 높고 향이 진한 제주도 구좌읍 당근, 외국인 관광객들이 열광하는 참기름, 한우, 매실 고추장, 오미자, 찹쌀 등 우리 땅에서 나는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찹쌀밥에 잘 익힌 서해안 대하 구이를 곁들인다. 여기에 전통주인 막걸리로 만든 소스를 더한다. 한우 스테이크엔 전통 육류 요리 중 하나였으나 근래에는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가 높은 순대가 함께한다. 초창기의 밍글스가 서양식에 한식을 살짝 가미한 음식을 선보였다면, 현재의 밍글스는 조연의 자리를 박찬 세련된 한식이 주인공이다. 그의 이런 행보는 다른 셰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서로 다른 것들을 조화롭게 버무리는 데 무게중심을 둔다. 전통 한식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테크닉을 유연하게 결합함으로써 한식 파인 다이닝의 지형을 바꾼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HUBLOT 식탁에 오른 ‘지역’과 ‘전통’ 권우중 셰프가 운영하는 ‘권숙수’는 부침이 심했던 고급 외식업계에서 용케 잘 버틴 컨템포러리 한식 레스토랑이다. 그는 초창기부터 반상을 코스에 내는 등 한식의 전통적 매력을 강조했다. 그는 종종 “진짜 한식 셰프이고 싶다”고 말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는 장도 직접 담근다. 그가 조부의 생가에서 장을 담그는 날이면 레스토랑 전 직원이 동원된다. 직원들은 흥이 난다. 한 해 레스토랑 영업의 승패는 장맛에 달렸다. 메주(콩을 삶아 절구에 찧은 다음 뭉쳐서 덩이로 만든 다음 발효·숙성시키는 것. 된장, 간장, 고추장의 재료) 양만 해도 80장이 넘는다고 한다. 메주는 한식의 근간인 장의 처음이자 끝이다. 김은희 셰프의 ‘더 그린 테이블’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국내 여성 셰프의 수는 과거에 견줘 늘었지만, 여전히 적다. 2010년대 말 이른바 스타 셰프로 명명되며 방송을 누빈 이들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그런 풍토에서 살아남은 여성 요리사가 바로 김 셰프다. 그녀는 본래 프렌치 레스토랑 셰프였다. 2007년 문을 연 그녀의 레스토랑은 미국 요리학교 CIA에서 자신이 갈고 닦은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김 셰프는 몇 년 전 화려한 번화가인 강남 지역에서 종로구 원서동으로 레스토랑을 옮기며 변신했다. 이곳에서는 창밖으로 고풍스러운 창경궁이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고급 한식 뷰 맛집’으로 알려진 이유다. 그녀는 우리 땅에서 자란 제철 채소의 맛을 강조한 샐러드, 오래 끓여야만 감칠맛이 우러나는 국 스타일의 수프, 연근으로 만든 한 입 거리나 장아찌 등을 낸다. 그녀는 몇 년간 한식 수련에 매달렸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운영하는 사찰음식 전문 교육 기관 향적세계의 전 과정을 마쳤다. 요즘 새롭게 조명되는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엔 ‘솔밤’, ‘비움’, ‘주은’, ‘테이블 포포’, ‘이타닉 가든’ 등이 있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각 지역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제철 식재료를 직접 공수해 오거나 사장됐던 지역 음식의 조리법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릇이나 실내 장식에도 한국적 미감을 담기 위해 신경 쓴다. 올해 미슐랭 가이드 별을 처음으로 획득한 레스토랑 주은은 박주은 셰프가 진두지휘한다. 우리 전통 도기와 한국 풍광을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실내 장식이 돋보인다. ‘세븐스도어’를 통해 이미 여러 해 동안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순위에 오른 김대천 셰프는 몇 년 전 비건 콘셉트의 레스토랑 비움을 열어, 소박하고 절제된 한식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비움에 들어서면 마치 궁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엄태준 셰프가 이끄는 솔밤은 다른 요리사들도 메뉴를 경험해 보기 위해 예약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누룩으로 숙성한 금태를 숯불에 구운 생선 요리, 합자장을 발라 구운 전복 요리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 순서대로 나온다. 합자장은 한국인들조차 생소하다. 토종 홍합을 삶고 졸이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해 만드는 통영의 전통 장이다. 농축된 맛이 일품이다. 이타닉 가든은 손종원 셰프가 총괄한다. 그는 두 번째 시즌과 JTBC의 요리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최근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그도 전통 조리법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 조리법에 자신만의 감성을 담는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잡채를 한입에 쏙 들어오는 둥근 크기로 빚어낸다. 에 손 셰프와 함께 출연했던 김성운 셰프는 자신의 레스토랑 테이블포포에서 고향인 충청남도 태안의 식재료를 마음껏 펼쳐놓는다. 기하학적 형태의 그릇 위에 한 입 거리 요리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는 기승전결이 있는 무대 공연처럼 한 끼 식사가 고객들에게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가 그릇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다. 이 그릇은 하패리목공소의 이재하 작가와 협업하여 제작했다. ⓒ 신동민 이타닉 가든의 손종원 셰프는 제철 식재료와 전통 식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집중한다. 이타닉 가든의 여름 메뉴 중 하나인 호박 잡채는 말린 애호박에 다양한 품종의 호박과 호박꽃을 버무려 전통 잡채를 새로운 감각으로 접시에 담았다. ⓒ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 음미해야 느낄 수 있는 맛 한식 파인 다이닝이 짧은 기간 다채로운 변화를 꾀하는 가운데 시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굳건히 자신을 지켜온 레스토랑들도 있다. 이런 곳들은 외국인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예컨대 서울 서촌에 자리한 ‘온지음’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포함해 새롭고 개성 강한 문화를 좇는 힙스터들 사이에서 명소로 통한다. 경복궁 돌담을 마주하고 있는 온지음은 조은희·박성배 셰프가 이끈다. 이들의 한식은 한복의 우아함을 장착한 듯한 맛이다. 방풍죽, 탕평채, 진주식 갈비찜, 봄나물 비빔밥 등 이름만 들으면 언뜻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먹어 보면 깊은 맛이 일품이다. 이곳은 그럴 듯해 보이는 화려한 조어로 맛 자랑에 나서길 거부한다. 소박한 음식 이름 속에 한식의 진수가 있다고 믿는다. 메이필드호텔의 한식 레스토랑 ‘봉래헌’도 온지음 못지않게 정통 한식을 강조하는 곳이다. 이곳을 이끄는 이는 이금희 조리장이다. 그는 1980년대 말부터 국내 특급 호텔 한식당에서 일하며 실력을 쌓았다. 봉래헌의 구절판, 나물, 전 등은 한식의 원형을 경험해 보고 싶은 외국인들이 환호할 만한 맛이다. 지난 3월, 45년 만에 새로 단장한 ‘한국의집’은 앞서 언급한 조희숙 선생이 고문으로 있는 곳이다. 이곳 또한 기품이 있는 한식 맛을 선보인다. 한식은 천천히 음미할수록 맛의 정수가 드러난다. 장, 김치 등 재료 자체가 발효라는 시간의 힘이 작동해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련된 서비스까지 더해진 파인 다이닝 한식 레스토랑은 경험의 새로운 경지를 선물한다. 온지음의 다양한 메뉴들을 한 그릇에 담아본 모습이다. 온지음은 고조리서와 전통 조리법에서 영감을 받은 음식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테이블에 올린다. 재료 본연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담백한 맛을 추구하는 것이 이곳의 스타일이다. ⓒ 온지음 비움은 채식 중심의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며, 사람과 자연이 상생하는 음식을 지향한다. 김대천 셰프는 자연의 순리와 조화를 따르면서, 계절과 땅의 기운이 담긴 요리를 선보인다. 사진은 한식 도시락으로, 울릉도와 지리산, 제주 등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자란 식재료로 만든 나물 반찬과 몸에 좋은 잡곡밥이 담겨 있다. 비움 제공

호텔의 시대에서 셰프의 시대로 – 한국 파인 다이닝 연대기

Features 2026 SUMMER

호텔의 시대에서 셰프의 시대로 – 한국 파인 다이닝 연대기 한국의 현대사는 유난히 압축적이었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으며, 이제는 문화와 기술 분야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식문화 또한 역동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성장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소수 계층을 중심으로 향유되던 파인 다이닝이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며, 대중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안성재 셰프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경력을 시작해 현재 모수 서울과 모수 홍콩을 운영 중이다. 모수 서울은 2023년판 미슐랭 가이드 서울에서 별 3개를 획득했으며, 재료의 섬세한 뉘앙스를 감각적으로 표현해 낸다고 평가받는다. 사진은 한 입 거리 요리인 캐비아 쌀 타르트. 모수 제공 국내에서 파인 다이닝이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업계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용어 자체도 낯설었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서울에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40곳이 넘고, 한국 셰프들은 글로벌 미식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다. 국내 파인 다이닝 역사는 유럽이나 일본처럼 오랜 세월 다듬어진 미식 문화의 토대 위에 서있지는 않다. 하지만 응축된 서사를 써내려 가고 있는 셰프들의 노력과 시대의 흐름이 현재의 파인 다이닝 신을 재편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급 호텔에서 태동한 미식 문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인테리어는 셰프가 추구하는 요리 철학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장치이자 미식 경험 설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사진은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밍글스의 내부 모습이다.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강민구 셰프의 철학이 엿보이는 공간이다. ⓒ 밍글스 우리나라 고급 미식의 역사는 특급 호텔에서 시작됐다. 한국 관광·호텔 산업의 본격적 태동기인 1970~80년대, 서울 호텔 신라와 조선호텔, 롯데호텔 등 이 시기의 특급 호텔 레스토랑은 프랑스 요리와 서양식 코스 다이닝을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각인시키며, 현대적 고급 외식 문화의 출발점이 됐다. 이곳들은 주로 비즈니스 접대나 외교 행사를 위한 공간이었고, 일반 대중은 좀처럼 가까이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제 성장과 함께 해외 여행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식 선진지의 고급 레스토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국내에서도 유사한 식사 문화를 찾기 시작했다. 또한 TV 매체와 잡지를 통해 서양 요리 문화와 유명 셰프의 이야기가 소개된 것도 이 무렵이다. 자연스레 고급 식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그 수요는 천천히, 꾸준히 쌓여 갔다. 유학파 셰프들의 등장 2000년대 초반, 결정적인 변화의 씨앗이 뿌려졌다. 미국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 일본 츠지조리사전문학교 등 세계 유명 요리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젊은 셰프들이 레스토랑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가져온 것은 요리 기술만이 아니었다. 제철 식재료를 선별하는 안목, 한 끼 식사를 하나의 서사로 설계하는 감각, 셰프가 예술가로 인정받는 문화까지 함께 들어왔다. 레스토랑의 입지도 달라졌다. 개인의 철학을 녹여내기 어려운 호텔을 벗어나 셰프의 이름을 내건 ‘오너 셰프’ 중심의 레스토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서울 청담동과 도산공원 일대는 국내 파인 다이닝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됐다. 유학파 셰프의 등장은 중요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고급 식사의 기준이 ‘어느 호텔에서 먹느냐’에서 ‘누구의 요리를 먹느냐’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셰프의 이름이 레스토랑의 브랜드가 되는 문화, 이른바 ‘셰프 중심 문화’가 이때 처음 싹텄다. 한편 미슐랭 가이드는 세계 공통의 기준으로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권위 있는 미식 평가서다. 2016년 11월,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 서울 2017’이 처음 발간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 파인 다이닝의 지형은 크게 달라졌다. 특히 셰프들에게는 요리의 완성도, 식재료 선별,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릴 구체적인 동기로 작용했다. 레스토랑에는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었으며,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믿고 가볼 수 있는 기준’이 주어졌다. 그렇게 미슐랭 가이드 도입 이후 국내의 파인 다이닝 생태계는 눈에 띄게 다양해졌다. 프렌치와 이탈리안, 일식 중심이던 미식 신에 모던 한식, 컨템퍼러리, 비건 파인 다이닝 등 다양한 장르가 뿌리를 내리며 질적 성장을 비롯해 양적 성장을 동반하게 됐다. 세계 무대에 선 셰프들 국내뿐 아니라 해외 무대에서도 한국인 셰프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한국 파인 다이닝계의 걸출한 셰프 중 하나로 꼽히는 임정식 셰프이다. 그는 2009년 서울에 ‘정식당’을 열고 2011년 뉴욕으로 진출했다. 파인 다이닝은커녕 한식 자체가 세계 미식 지도 위에 제대로 올라 있지 않았던 때, 한국인 셰프가 뉴욕 파인 다이닝 현장에 정면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전례 없는 시도였다. ‘정식 뉴욕’은 2024년 미슐랭 3스타, 2025년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최우수 셰프상 부문까지 수상하며 한국 파인 다이닝의 세계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정식 뉴욕 출신인 박정현 셰프의 ‘아토믹스’ 또한 2018년 뉴욕 개업 후 미슐랭 2스타를 거쳐 2025년 ‘북미 베스트 레스토랑 50’ 1위를 차지했다. 한편 최근 K-팝과 K-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로 확산되며,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음식으로 이어졌다. 이 현상은 글로벌 미식 신에서 한식과 한국 셰프들의 입지를 넓히는 큰 동력이 됐다. 권숙수는 2016년 미슐랭 가이드 서울의 발간과 함께 별 두 개를 받았으며, 현재까지 매년 이 등급을 유지해 오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 서울은 한국 파인 다이닝의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셰프와 레스토랑을 국제적인 미식 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촉매 역할을 했다. 권숙수 제공 대중문화의 영역이 된 파인 다이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주방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셰프의 철학과 요리에 담긴 서사가 한 접시로 탄생하는 창작의 무대다. 이준 셰프가 이끄는 스와니예의 오픈 키친은 고객이 요리의 탄생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제철 식재료와 세련된 감성을 담은 코스 메뉴를 한 편의 이야기처럼 펼쳐내는 장소다. ⓒ 홍기웅 2024년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국내 파인 다이닝의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슐랭 스타 셰프와 무명 셰프가 함께 경쟁하는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간 일부 미식가들만 알던 셰프들의 이름과 서사가 대중에게 명확히 알려졌고, 출연 셰프들의 레스토랑은 단숨에 몇 달 치 예약이 꽉 찼다. 파인 다이닝 셰프들의 이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인 변화였다. 현재 국내의 파인 다이닝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축에 속한다. 프렌치, 이탈리안, 일식, 모던 아시안, 멕시칸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고급 요리 문화가 한 도시 안에서 공존하며 경쟁한다. 여기에 한국 고유의 식재료와 발효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한식 파인 다이닝이 더해지면서, 서울은 어디에도 없는 독자적인 미식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셰프들의 세대도 바뀌었다. 해외에서 배워온 것을 정교하게 재현하던 1세대를 지나, 지금의 젊은 셰프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이 땅의 이야기를 요리로 풀어낸다. 제철 식재료, 지역 생산자와의 직거래, 전통 조리법의 재해석이 하나의 흐름이 됐다. 이들이 만들어갈 국내 파인 다이닝의 다음 장이 기대되는 이유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에빗은 호주 출신의 조셉 리저우드 셰프가 이끌고 있으며, 한국의 다양한 향토 음식과 식재료를 재해석한 코스 메뉴를 선보인다. 사진은 경상남도 함양의 전통주인 솔송주에 곁들인 방어 요리로, 숲의 향과 바다의 풍미가 어우러지는 조합이다. 에빗 제공 한국 파인 다이닝의 역사는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고급 호텔에서부터 시작됐다. 그중 호텔신라의 중식당 팔선은 1979년 호텔 개관과 함께 문을 연 국내 최고급 중식당 중 하나로, 한국 중식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미식 공간으로 명성이 높다. 사진은 팔선의 올해 여름 특선 메뉴이며, 정통 광둥식 요리를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 호텔신라

한지의 조형적 실험과 가능성

Features 2026 SPRING

한지의 조형적 실험과 가능성 한지는 현대 공예와 디자인 분야에서도 중요한 표현 매체로 활용된다. 형태를 구현하고 디테일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한계가 없으며, 작가의 메시지를 유연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지는 고유의 문화유산을 넘어, 동시대 작가들의 재해석을 통해 현대인의 일상생활 속에 아름답게 스며들고 있다. 전통문화 연구소 온지음과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fnt가 협업하여 제작한 한지 제품들. 한국 전통 직물 문양을 디지털 패턴으로 만든 후 이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한지에 인쇄했다. 온지음 제공, 사진 김잔듸 최근 한지를 사용하는 공예 작가들이 예전과 비교해 훌쩍 많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장 확실한 이유는 한지 자체가 최고의 매체이자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지가 제작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이렇게 귀하고 정성스러운 소재가 또 있을까 싶다. 닥나무를 심고, 수시로 순을 솎아내고, 잿물을 만들기 위한 농사를 따로 짓고, 겨울이 가까워지면 마침내 닥나무를 찌고 말리고 삶고 세척해 한 장의 종이로 만들어낸다. 공예 작가들이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표면에 그 ‘물성의 영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한지도 그러하다. 손과 눈으로 그 정연한 기품을 느끼다 보면, 이 소재로 쓰임이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무한한 가능성 라이프 에티켓 브랜드 희녹이 2026년을 맞아 섬유예술가 고소미와 협업하여 출시한 '새해 에디션'. 여러 장의 한지를 겹쳐 만든 ‘한지 패브릭 바구니’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질감을 느끼게 하고, 한지를 변형해 만든 ‘소원 돌’은 돌을 쌓으며 행복과 건강을 빌던 풍속에서 착안해 만든 오브제다. 희녹 제공 한지를 주요 소재로 작업하는 고소미는 지금 이 순간 한지의 매력과 가능성을 가장 넓게 보여주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한지 가리개부터 조명, 오브제와 직물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무기는 그녀가 직접 개발한 한지사, 즉 한지로 만든 실이다. 한지를 떠올리면 반듯하게 떠 낸 평면의 종이가 연상되는데, 그녀는 한지를 섬유질 방향대로 길게 자른 후 물레에 걸고 조심조심 돌려가며 실로 잣는다. 처음에는 얼마 못 가 끊어져 버리곤 했지만, 자연 풀을 먹여가며 천천히 돌리다 보니 점차 튼튼한 실이 되었다. 이렇게 만든 실을 본인의 이름을 따 ‘소미사’라고 부른다. 이 실로 만드는 작품은 다채롭다. 우선 조명이 있다. 철사를 구부리고 꼬아가며 동그란 구 형태로 만들고, 그 안을 한지사로 촘촘하게 연결한 후 닥섬유를 풀어 헤친 나무통에 담갔다 꺼내면 철사와 한지실 사이사이로 종이죽이 묻는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동그란 몸체 위로 제법 두꺼운 ‘종이 피부’가 올라가고, 그 안으로 전구를 넣어 불을 밝히면 은은한 빛이 매력적인 조명이 된다. 코바늘뜨기로 일일이 짠 커튼도 만들 수 있다. 황톳길이나 흙 같은 따스한 질감을 좋아하는 건축가 조병수는 이 커튼의 열렬한 팬으로, 많은 건축 프로젝트에 이 작품을 사용한다. 리넨이나 실크와 비교하면 확실히 두텁고 정겨운 느낌이며, 까슬까슬한 촉감도 매력적이다. 섬유 회화도 그녀의 시그너처 라인이다. 나무판 위에 두꺼운 한지 여러 장을 차곡차곡 올려 캔버스로 만든 다음 코바늘뜨기로 짠 한지 스웨터를 합치는 방식이다. 동양화에 쓰는 파란색 안료나 먹물로 스웨터 부분만 채색한 작품은 온화한 빛깔의 한지와 어우러지며 색다른 매력을 만들어낸다. 최근 그녀는 한지로 설치 미술 작품까지 만들고 있다. 한복에 자수를 넣을 때 사용하는 은실과 한지사를 한꺼번에 잡고 꼬아가며 춤추는 형상의 ‘섬유 외투’를 만든 다음 널찍한 장판지에 올린 작품으로, 2025년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한지로 만들 수 있는 작품에 한계는 없어요. 나무처럼 세우는 것도 가능하고, 회화처럼 벽에 거는 것도 가능합니다. 은실을 사용하면 반짝이게 하는 것까지도 가능하지요. 무궁무진한 매력과 가능성의 재료입니다.” 고소미 작가의 말이다. 평면에서 입체로 한글을 모티프로 한 유남권의 지태칠기 작품이다. 근대 출판물 속 한글 서체의 특색을 칠기에 담아냈다. 지태칠기는 한지에 옻칠을 해서 만든 전통 그릇을 말하는데, 가볍고 물에 강한 특성이 있다. 유남권 제공 이정인은 평면적 재료인 한지가 얼마든지 입체도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작인 은 소파다. 언뜻 보면 흰색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처럼 단단하고 볼륨감 넘치는 모습이다. 반듯한 한지를 작게 찢어 300여 개의 조각으로 만든 후 이를 다시 밀가루 풀로 겹쳐 붙이는 것이 1차 공정이다. 이렇게 완성한 큼직한 면의 종이를 100여 장 넘게 만들어 이를 다시 소파 형태로 쌓아 올리면, 거구의 운동선수가 앉아도 거뜬할 만큼 단단한 소파가 완성된다. 사극을 보면, 방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창호지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래서 한지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명백한 오해다. 한지를 두세 장만 겹쳐도 강도가 세져 쉽게 찢어지지도, 흐느적거리지도 않는다. 한지의 강도가 우수한 것은 제작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 화지는 한 번에 2장을 뜰 수 있는 ‘쌍발뜨기’ 방식을 택하지만, 한지는 한 번에 한 장만 만들 수 있는 ‘외발뜨기’를 사용한다. 앞뒤 좌우를 모두 흔들며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섬유를 얹는 덕분에 어지간해서는 사용 시 손상되지 않는다. 홍익대학교에서 목조형가구학을 전공한 이정인은 이 작품으로 2025년 로에베 재단에서 시상하는 공예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옻칠로 확장하는 미감 재단법인 예올이 주최하고 샤넬이 후원한 전시 의 전시작 중 하나인 박갑순 장인의 . 민화 속 까치와 호랑이에서 착안했으며, 호랑이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익살스러운 작품이다. 예올 제공 박갑순의 작품은 같은 영화에 소품으로 등장해도 될 만큼 사랑스럽다. 풀과 벌레를 주인공으로 그린 그림 ‘초충도’나 민화에서 봤음 직한 개구리와 호박, 풀벌레와 호랑이가 작은 캐릭터 인형으로 되살아난 느낌이다. 1999년 전통 한지 공예를 접한 그녀는 종이죽으로 다채로운 오브제를 만든 후 생생한 컬러로 마감한 작품을 통해 그녀만의 사랑스러운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중이다. 제작 방법은 우선 낡은 고서나 자투리 한지를 그러모아 밑재료로 준비한다. 이후 수집한 종이를 잿물에 삶고 깨끗이 씻어낸 후 삶은 종이를 잘게 찢거나 절구에 찧어 통밀 풀과 결합해 찰기가 있는 종이죽으로 만든다. 다음은 형태 잡기. 원하는 모양의 골격이나 틀 위에 종이죽을 겹겹이 바르며 두께와 모양을 잡아간다. 색을 내는 재료는 감물이나 우뭇가사리 같은 자연 소재들이다. 옻칠을 가미하는 때도 많다. 이런 작품들로, 그녀는 2025년 재단법인 예올과 패션 브랜드 샤넬이 함께하는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 시상에서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됐다. 한지에 옻칠을 더하면 또 다른 미감과 기능이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이가 조명 디자이너 권중모다. 일정한 폭과 흐름으로 한지를 섬세하게 접거나 검은색으로 옻칠해 만든 작품들은 다양한 형태의 금속 지지대와 결합하며 저마다 빛의 투과율이 다른 조명 기구로 변신한다. 유남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한지로 기물을 만든 뒤 옻칠로 마감하는 ‘지태칠기’ 작품을 만든다. 기물에 옻을 바르고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기는 텍스처와 색감이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마다 농담이 다른 그의 작품들은 현대 공예 컬렉터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옥 창호에서 영감을 얻은 권중모는 빛의 음영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소재인 한지로 조명 작품을 제작한다. 한지를 접어 주름 패턴을 만들거나 또는 한지를 겹쳐 붙임으로써 빛의 투과성에 변화를 주고 있다. 사진은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 LF03_em (Layers Floor lamp03_Embroidered )>. 권중모 제공

시간을 기억하는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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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기억하는 종이 한지는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종이다. 한지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난다. 보통의 종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약해지지만, 잘 만든 한지는 오히려 섬유가 안정되며 질긴 내구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한지는 ‘천년을 가는 종이’라는 수사를 넘어, 실제로 시간을 견디는 재료로 평가받는다. 닥나무 껍질이 원료인 한지는 국내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며, 각 지역에는 대를 이어 전통 기법으로 한지를 만드는 공방이 여럿 있다. 지역별 한지는 저마다 물성과 쓰임새가 조금씩 다른데, 이는 기후와 토양, 수질 등 닥나무의 생육 환경을 비롯해 제조 방법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종이는 연약한 물질로 인식된다. 손에 쥐면 구겨지고, 물에 닿으면 흐트러지며, 불 앞에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러나 인류는 이 연약한 재료에 역사를 기록했고, 예술을 남겼으며, 기억을 보존해 왔다. 종이는 약하지만, 가장 오래 버텨온 매체이기도 하다. 종이 중에서도 한지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한지는 단순히 ‘한국의 전통 종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담기 어려운 물성을 지닌다. 손끝으로 만졌을 때 느껴지는 깊은 결, 섬유가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조직감, 빛을 머금은 듯 은은하게 비치는 투과감, 그리고 접었다 펴도 쉽게 상하지 않는 탄력. 이러한 한지의 물성이 최근 유럽의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제 복원지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일본의 화지가 사실상 표준처럼 사용돼 왔지만, 복원 대상이 다양해지고 복원 방식이 정밀해질수록 종이 자체가 유물에 개입하는 정도와 물성이 더욱 섬세하게 검증된다. 그 과정에서 한지는 대안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택지이자 새로운 표준 후보로 조용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복원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영역에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복원지의 조건 문화재 복원에서 종이는 단순한 보강재가 아니다. 복원지는 원본을 떠받치되, 원본을 앞서서는 안 된다. 너무 강하면 원본을 압도하고, 너무 약하면 보강의 의미를 잃는다. 복원지는 강도와 유연성, 섬유 조직의 안정성, 접착제와의 궁합, 산성화에 대한 저항성,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의 섬세한 조작 가능성까지 동시에 요구받는다. 복원지에 허락된 조건은 많고, 허용되는 약점은 거의 없다. 경기도 가평에서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장지방의 장성우 장인이 전통 방식의 한지 제조법인 외발뜨기 방식으로 한지를 만들고 있다. 외발뜨기는 발을 줄 하나에 매달아 놓은 후 좌우로 흔들면서 물을 뜨고 흘려 버리기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닥 섬유가 발에 전체적으로 골고루 안착해 종이 두께와 무게가 균일하고 강도가 우수해진다. 외발뜨기는 물을 흘려 버린다는 뜻에서 ‘흘림뜨기’라고도 부른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한지는 이 까다로운 조건들 사이에서 드물게 균형을 이룬다.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섬유는 길고 질겨 종이 내부에서 단단히 얽힌 구조를 형성한다. 덕분에 한지는 얇게 떠도 인장 강도가 높고, 접거나 습윤 상태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원본 위에 덧대어질 때도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섬유 사이에 형성된 미세한 공극은 습도를 머금고 내보내며, 종이·목재·섬유·채색층 등 서로 다른 재료 사이에서 완충재처럼 작동한다. 계절별 습도 변화가 큰 유럽의 기후 환경에서 이러한 특성은 더욱 의미가 있다. 한지의 이러한 물성은 실제 복원 현장에서 검토되고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복원 전문가 네트워크인 ‘Gruppo 130°’는 한지를 일본 화지와 함께 비교 적용하며 실제 작품 복원에 사용했고, 습윤 상태에서의 강도, 유연성, 표면 특성, 작업성을 중심으로 평가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한지는 ‘동양의 전통 종이’가 아니라, 복원이라는 엄격한 기준 속에서 기능적으로 검토되는 재료로 다뤄졌다. 바티칸 박물관에서도 한지는 보존 처리 전문가 교육을 위한 새로운 재료로 학술·교육의 장에 들어왔다. 한지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공식 프로그램은 한지가 단발성 관심을 넘어 제도권 복원 담론 속에서 논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지가 유럽 복원계에서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라, 병행 사용 가능한 재료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우리는 과연 한지를 수출하기 전에 한지의 전통 기술을 충분히 전수하고 있는가? 체계적 기술 전달 한지가 세계 복원 시장에서 확장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종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쓰는 법을 함께 전수하는 것이다. 복원지는 재료 자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풀의 조성, 습식과 건식 공정의 차이, 박리와 접합의 타이밍, 색과 질감의 미세한 조정이 함께 축적될 때 비로소 재료는 현장에서 살아 움직인다. 일본 화지가 국제 복원 시장에서 오랜 시간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제품의 우수성뿐 아니라 교육과 연수 시스템을 통해 복원가 네트워크를 꾸준히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한지가 같은 길을 걷기 위해서도, 복원용 한지의 물성뿐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기술이 체계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기획된 것이 2025년 바티칸 박물관과 이탈리아 파브리아노 종이박물관을 잇는 ‘보존 처리 전문가를 위한 한지·자연색 기술 이전 워크숍’이다. 이 프로그램은 복원에 사용되는 한지를 단순히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원가 스스로가 한지와 자연 색상을 제작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이전을 목표로 한다. 특히 복원 현장에서 가장 자주 요구되는 갈색 계열의 색상을 자연 재료로 안정적으로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오리목, 양파, 도토리, 오배자 등 현지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 복원 대상 유물의 변색 상태와 조화를 이루는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단순한 염색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유물과 함께 변화해 갈 수 있는 재료를 다시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한지가 다른 나라의 전통 종이보다 내구성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최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문화재 복원 재료로 한지를 주목하고 있다. 사진은 바티칸 박물관의 한지 샘플. 이승철 제공 지역별 한지 한지는 단일한 종이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기후와 물, 원료, 그리고 기술이 만들어낸 서로 다른 종이들의 집합이다. 의령, 전주, 문경, 안동, 괴산 등 국내 주요 한지 생산지는 같은 닥나무 섬유를 사용하면서도 오랜 시간 전혀 다른 결의 한지를 만들어 왔다. 의령·문경·괴산은 국가무형문화유산 장인 공방을 중심으로 지역색이 뚜렷한 물성과 강도를 지닌 한지 생산을 이어오고 있다. 전주는 한지를 산업·관광·공예와 결합해 하나의 한지 문화권을 형성했다. 안동 한지는 전통 생활 공예를 통해 한지의 활용성과 연결성이 강조되어 왔다. 한지의 지역적 다양성은 복원지로서 오히려 강점이 된다. 복원 대상이 제각각이고, 하나의 종이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성격의 한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복원가에게 더 많은 선택 기회를 제공한다. 색한지의 확장 가능성 쪽물로 자연 염색하여 푸른빛을 머금은 색한지. 닥나무를 솥에 푹 찐 후 겉껍질을 벗겨내 쪽물에 담가 제작한다. 이승철 제공 전통적으로 한지는 자연 염색을 통해 색을 입힐 수 있는 종이였다. 색은 장식이 아니라 물성이었다. 한지 섬유가 염료를 머금는 방식, 빛을 받아들이는 깊이, 표면에 남는 결은 색한지를 하나의 완성된 재료로 만들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색한지 제작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자연 염색을 통한 색한지는 원래 원료를 염색하는 선염법과 염색된 원료로 만든 한지를 다시 염색해 색을 완성하는 후염법으로 만들어진다. 이 중 선염법은 거의 사라졌다. 한지를 만드는 이는 자연 염색을 모르고, 자연 염색을 하는 이는 한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색한지는 자연 염색 없는 화학성 후염법이라는 불완전한 방식으로만 남아 있다. 그럼에도 색한지는 한지가 지닌 확장 가능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이다. 특히 문화재 복원에서 요구되는 갈색 계열의 자연색을 안정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면, 색한지는 장식용 종이가 아니라 복원 기술의 핵심 요소로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다. 오늘날 한지는 세계 복원지 시장에서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지가 지닌 물성, 지역성, 그리고 장기 보존성은 분명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지닌 자산이다. 복원이라는 가장 보수적이고 엄격한 영역에서 한지가 호명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한지가 가진 기술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쩌면 한지가 세계로 나아가는 길은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역할로 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기록을 지키고, 예술을 떠받치며, 시간을 견디는 종이로서의 역할. 그것을 다시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때 한지는 세계의 시간을 기억하는 종이로 선택받게 될 것이다. 강원도 원주는 예로부터 주요 한지 생산지로 이름난 곳인데, 특히 다양한 색한지가 특징이다. 원주에 위치한 한지 공방 중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원주한지’에서는 230여 가지의 천연 색한지를 개발하는 등 전통 한지 보존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예술 언어가 된 한지

Features 2026 SPRING

예술 언어가 된 한지 한지는 단순한 전통 재료를 넘어, 현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조형 언어와 실험의 매개체로 자리한다. 특히 ‘한국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갈망한 이들에게 한지는 그 자체로 비서구적 예술 철학의 구현을 가능케 한 본질적 방법론이었다. 천년 역사를 가진 한지는 시대의 미감과 예술의 가치가 급변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한국 미술의 동시대성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예술 언어로 주목받고 있다. < Opening 21 >. 이정진. 2016.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5.5 x 76.5cm. ed. 10+3AP. 작가 및 PKM 갤러리 제공 < Wind 07-95 >. 이정진. 2007. Photograph on hand-coated Korean Mulberry paper. 75.5 x 144.5cm. 작가 및 PKM 갤러리 제공 한국의 현대 미술가들이 한지를 작업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미술 한류’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단색화의 경우를 보자. 이들 작가들에게 한지는 단순한 전통 재료 이상으로, 작품의 존재 이유를 대변하는 고도의 매체에 가까웠다. 서양의 캔버스가 물감이라는 핵심 재료를 받아내는 보조적 위치에 충실했던 반면, 단색화에서 한지는 보다 주체적 역할을 맡는다. 예컨대 박서보의 유명 연작인 은 젖은 한지에 선 혹은 골을 만들어내는 반복적 행위로 작가 자신의 신체성 및 정신성을 담아낸 작업이다. 또 권영우는 한지 표면을 직접 찢고 뚫어서 획득한 종이의 물질성을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치환했다. 인간의 노동과 시간, 역사와 기억이 켜켜이 응축된 한지는 현대 미술가의 작업을 통해 재료 이상의 가치로 나날이 재해석된다. 획기적인 조형 언어와 다채로운 실험의 매체로 부상했을 뿐만 아니라 수행과 사색, 그리고 영감의 대상으로 거듭나고 있다. 형식과 사유의 정점에서 한지는 미술가들 각자의 고유한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진과 회화, 조각 등의 장르적 경계는 흐려지고, 과거와 현재가 교감하는 등 예술의 스펙트럼이 한결 넓어진다. 몰입의 깊이 . 김민정. 2022. 한지에 먹, 수채물감. 189 x 130cm. 작가 제공 30년 넘는 세월 동안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사진작가 이정진은 재현이나 기록 매체로서의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풍경을 포착해 왔다. 미대륙의 광활한 사막, 흙이나 바위 등의 자연, 한국의 석탑, 우표 같은 일상의 오브제들까지 수묵화를 닮은 이정진의 작업은 감성과 직관을 통한 시적 울림을 전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는 등 국적을 불문하고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 사진의 힘은 한지에서 출발한 아날로그 프린트 작업으로 배가된다.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전통 한지의 표면에 붓으로 감광 유제를 바른 후 이미지를 인화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개발, 지속해 왔다. 장인정신이라 해도 좋을 수공적 방식은 복제 매체로서의 사진을 재정의하고, 사진의 물성과 회화성, 그리고 시간성을 표표히 드러낸다. 한지 특유의 거칠한 질감을 입은 이미지가 시각을 뛰어넘어 촉각까지 자극하는데, 이는 근래 시도한 아날로그 프린트와 디지털 기법을 결합한 새로운 작업에서도 유효하다. 이정진의 사진은 이 세상의 ‘풍경’을 넘어 ‘초상’을 찍은 듯한 특유의 느낌을 선사한다. 이는 손으로 찢은 듯 거친 한지의 가장자리를 그대로 작업 일부로 살리는 방식 덕분에 더욱 돋보인다. 이미지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흑백 이미지를 숙성시키며 시공간을 초월해 현존하게 하는 것이다. 하여, 이정진의 이미지는 자유롭다. 프레임에 갇혀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해방감으로 가득하다. 이정진에게 한지는 자기 경험과 감각을 보는 이가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인 동시에 사진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몰입의 깊이를 더하는 조력자다. 존재론적 대상 이정진에게 한지가 생명력을 상징한다면, 김민정에게는 사색의 매체이다. 프랑스 남부 생폴 드 방스에 위치한 고즈넉한 작업실에서 작가는 동아시아의 서예와 수묵화 전통, 그리고 동양 철학에 대한 탐구를 한지로 구현한다. 특히 김민정은 한지를 가볍고도 연약한 물성과 오랜 세월을 견디는 강인한 속성을 겸비한 독립적 대상으로 여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작가는 한지를 일일이 자르고 중첩해 형태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해오고 있는데, 이때 한지의 가장자리를 촛불이나 향불로 그을려 먹 혹은 수채 물감이 자연스레 번지는 듯한 우연한 효과를 얻어냈다. 종이(한지)와 자연(불)의 통제 불가능한 협업은 인위적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몽환적 풍경을 그려낸다. 한지 조각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시시각각 색, 형태, 질감 등을 변주해 미묘한 입체감을 더한 신개념 추상화로 완성된다. 동양 예술의 정신과 서양 추상 회화의 어법,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포용하는 실험적인 스타일은 작가의 전매특허로 자리매김했다. 김민정에게 한지는 매 순간 마주하는 가장 익숙한 재료이자 자신의 피부나 다름없는 존재론적 대상이다. 또한 기다림과 절제, 반복과 순환, 선과 도를 시각화하는 수행의 무대이기도 하다. 한지를 태울 때 작가는 명상하듯 호흡을 가다듬고, 그렇게 집중해서 얻어낸 조각들을 하나하나 얇게, 섬세하게 쌓아 올리는 노동의 시간을 필연적으로 거친다. 그녀의 작업은 태워 없애야만 얻을 수 있으며, 비움으로써 채워진다. 겹겹의 한지에 스민 사유가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는 순간, 보는 이들은 치유의 힘을 체험하게 된다. 시간의 기억 전광영에게 한지는 기억의 매체이다. 그 작업 세계의 바탕에는 어린 시절, 한약방을 운영하던 작은아버지가 약재를 한지로 정성스레 감싸던 오래된 장면이 자리한다. 전광영은 고서를 찢은 종이로 서로 다른 크기의 삼각형 스티로폼을 일일이 감싸고 끈으로 묶어 한약방의 약첩 형태로 만든다. 언뜻 보자기로 싼 선물 같기도 한 조각들은 작품의 가장 실질적인 기본 단위이자 조형 언어가 된다. 이렇게 만든 조각 수천, 수만 개를 정교하게 합판에 붙인 은 그중에서도 가장 회자되는 작가의 대표 연작이다. 불규칙하게 삐죽삐죽 돌출된 조각은 부조 같은 화면에 율동감을 불어넣는다. 급기야 작가는 유기적 움직임을 극대화한 거대한 조각을 만들어내며 작업 영역을 대폭 확장하기도 했다. 베니스를 비롯해 각지에서 선보인 평면이자 입체인 작업들은 “민족의 혼과 얼을 담고 싶다”는 한국 작가로서의 바람을 직관적으로 구현했다. 작품의 주재료인 고서, 그리고 이를 이루는 빛바랜 한지는 곧 선인들의 기억을 의미한다. 작품 곳곳에 새겨진 문자와 시간 같은 단서들이 그들의 일상과 역사, 배움과 기록의 의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지를 입은 조각들은 서로 충돌하고 때론 강렬하게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시각적 질서를 만든다. 작금의 세상을 비판하기도 하고, 천연염료로 얻은 밝은 색채를 빌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고 그 정서를 감싼 전광영의 한지에는 상상 이상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 전광영. 2013. 한지에 혼합 재료. 250 x 200cm. © 전광영 & CKY 스튜디오 물질과 정신의 공명 . 양혜규. 2022. 한지, 알루디본드, 액자. 62 x 62cm. 작가 제공,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양혜규의 한지는 인간 문명의 보편적인 단서로 작용한다. 그동안 작가는 물질과 영성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특히 2020년부터 매진하고 있는 연작은 무속 전통에 사용되는 종이 무구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콜라주 작업이다. 무속에서는 제의를 치를 때 한지를 특정한 방식으로 접고 오려 ‘넋전’을 만드는데, 망자의 혼이 서리도록 하는 용도이다. 종이 무구가 물질과 정신이 공명하는 관계를 상징한다는 믿음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샤머니즘, 민속 또는 이교적 전통과 관련된 신성한 종이 오브제들이 전해오고 있으며, 한국의 한지를 비롯해 일본의 와시, 중국의 추피지 등이 그런 역할을 해왔다. 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통용되어 온 종이의 영적 특성을 현대 미술의 언어로 체화했다. 양혜규는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로 알려졌지만, 초창기부터 줄곧 평면 작업에 애정을 표해 왔다. 작가에게 평면성은 재료를 접고, 자르고, 붙이고, 겹겹이 쌓는 일이다. 역시 갖가지 문양 및 장식으로 추상적인 겹과 층을 생성하는데, 이는 그간 블라인드, 짚풀, 방울 등의 재료를 가공해온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다른 점은 조각 및 설치 작품이 물리적 공간을 구축한다면, ‘납작하게 하는 행위’로 탄생한 평면 작업은 역설적으로 더 다채롭고 밀도 높은 층위를 품는다는 것이다. 접히고 축약된 은 평면성과 입체성의 이분법을 초월한 잠재적 추상의 세계로 매번 도약한다. 작가에게나 감상자에게나 종이, 즉 한지가 바로 그 세계로 진입하는 문이자 문고리인 셈이다.

한지에 스며든 한국인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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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에 스며든 한국인의 일상 한지는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일생을 함께했던 종이다. 서화와 서책은 물론 각종 생활용품과 가구를 만드는 데도 널리 쓰였고, 그런 까닭에 다양한 한지 공예 기법이 발달할 수 있었다. 또한 한옥 부재로 사용돼 한국인의 주거 문화 속에도 깊숙이 뿌리내렸다. 2024년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서 열린 수장형 전시 의 전시작 중 일부인 김선애 장인의 작품. 높이 153㎝의 발을 비롯해 두 점의 달항아리 모두 지승을 엮어 만들었다. 지승공예는 한지를 잘라 손으로 비벼서 노끈을 만들고, 이를 엮어서 기물을 만드는 전통 공예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10여 년 전 독일 뮌헨에 있는 도이체스뮤지엄에 들른 적이 있다. 독일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과학 박물관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여기서 뜻밖의 전시물과 마주쳤는데, 바로 종이로 만든 한복이었다. 한지로 만든 일상복을 실물로 접하기는 처음이었다. 문헌에서나 마주쳤던 종이옷을 먼 타국에서 대면하게 되니, 미묘한 감회에 휩싸여 그 앞에 한참 붙들려 있었다. 종이옷은 수의나 종교 의례 시 사용한 예가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변방의 군사들에게 솜 대신 종이를 넣은 방한복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종종 나온다. 숙종(재위 1674∼1720)은 추위에 떠는 유랑 거지에게 종이옷을 입혀 돌보라 일렀다. 종이옷이 방한복으로도 활용됐다니, 그 성능에 새삼 놀라게 된다. 종이로 무슨 입성이랴 싶지만, 근래 닥 섬유로 짠 옷감과 양말이 팔리는 것을 보면, 종이 한복은 지혜로운 전통 유산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지승으로 옷을 지어 입기도 했다. 길이 42cm, 너비 133.5cm의 이 옷은 1945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원주역사박물관 일상의 중심에 있었던 종이 김동식 장인의 합죽선. 2015년 국가무형문화유산 선자장으로 지정된 그는 4대째 전통 기법으로 부채를 만들고 있다. 합죽선은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를 말하며, 조선 시대 양반들이 더위를 쫓거나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했던 고급 부채이다. 솔루나 리빙 제공 종이로 책을 매거나 기물을 만드는 것과 옷을 짓는 일은 기술의 난이도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고정된 형태를 마름질하기는 쉬우나 몸을 감싸되 활동이 자유로워야 할 옷은 고려할 조건이 곱절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이옷의 존재는 일반 종이를 압도하는 한지의 고유성을 한마디로 설명한다. 더구나 한지로 갑옷을 지어 입혔다는 데에 이르면 한지의 쓰임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질기고 탄력적인 닥나무 껍질을 겹겹이 중첩해 만든 갑옷은 웬만해서는 화살도 뚫지 못했다. 이처럼 한지의 쓰임은 상식의 틀을 훌쩍 벗어난다. 세상에 태어나 땅에 묻히는 순간까지 한지는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우리 곁을 지켰다. 장지 장판 위에서 태어나 창호지를 바른 공간에서 살며, 책을 펼쳐 공부하고, 천수를 누린 뒤에는 종이에 싸여 땅에 묻혔다. 혼인 단자에 사주를 적고, 망자를 배웅하는 길에는 오방색 상여 꽃으로, 제사 때는 지방과 축문으로, 신을 불러 접신하는 자리는 종이꽃[紙花]으로 굿판을 가득 채웠다. 한국인의 삶 전체가 한지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온갖 데에 요긴하게 쓰인 한지라지만, 종이로 만든 지우산에 이르면 탄복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물기에 취약한 종이로 우산을 만든 역설은 품 너른 한지의 특별한 오지랖이다. 종이를 이토록 일상의 중심에 깊이 끌어들여 산 이들이 또 있을까. 질긴 생명력 대우건설이 운영하는 브랜드 체험 공간 써밋 갤러리에 설치된 윤규상 장인의 지우산.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실로 연결하고, 들기름 먹인 한지를 붙여서 제작한 작품이다. 한국의 전통 우산인 지우산은 실용성과 심미성을 겸비하고 있어, 현대인의 일상에서도 파라솔이나 인테리어 용품으로 활용된다. 2011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유산 우산장으로 지정된 윤규상은 국내 유일한 지우산 장인이며, 후계자인 아들 윤성호 이수자와 함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 대우건설 써밋갤러리 삼국시대에 들어온 종이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닥종이 한지로 새로이 거듭났다. 종이를 먼저 발명한 중국은 헝겊이나 그물을 풀어 만든 거친 종이를 사용하다가 이후 청단나무 껍질에 볏짚을 섞은 선지를 오늘까지 잇고 있다. 한지와 선지는 재료의 차이도 있으나 종이를 뜨는 방법도 다르다. 한지는 물질할 때 닥나무 섬유를 우물 정자로 교차시켜 씨줄과 날줄로 직조하듯 켜켜이 중첩하는 반면, 선지는 일본의 화지처럼 결을 한 방향으로 형성한다. 중국이 송대부터 고려지를 꾸준히 요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북송의 시인 소동파와 명나라 화가 동기창이 고려지를 애용했고, 원나라는 고려에 한지 10만 장을 한꺼번에 요청한 적이 있으며, 자금성 내부를 온통 고려지로 배접한 사실은 한지의 저력을 말해준다. 더욱이 한지는 홍두깨로 두드려 겉을 매끄럽게 다듬는 도침 공정을 필히 거친다. 질기고 매끈한 한지의 질감이 여기서 나온다. 한지의 종류는 재료와 용도에 따라 수십 가지를 헤아린다. 쓸모가 많으니, 전국의 물 맑은 곳이면 어디든 닥나무를 심어 한지 제작으로 생계를 꾸렸다. 이 가운데서 서울 자하문 밖 세검정 일대는 고급 한지 명소로 꼽혔다. 북악산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가에는 한지 뜨는 지소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궁궐과 관청이 코앞이라 전국에서 이름난 장인들이 몰려들었고, 관청용 종이를 생산하던 관아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제지 공장이 들어서자, 그 많던 장인들이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졌다. 한지가헌의 2025년 기획전 전시 전경. 국내 대표적 한지 생산지인 괴산, 전주, 안동의 한지를 여러 명의 공예 작가들이 현대적으로 해석해 한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한 전시이다. 서울 북촌에 위치한 한지가헌은 전통 유산인 한지의 우수성과 쓰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020년부터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한지의 장점은 첫째가 내절성이다. 접었다 펴기를 반복해도 견디는 강도를 말한다. 공식 실험에서 양지는 불과 스무 번 남짓에 끊겼으나, 한지는 800회 이상을 견디는 놀라운 격차를 보여준다. 그것도 기계식 한지가 이 정도였으니, 손으로 두드려 올을 살린 전통 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지의 가치가 이러하니 낡은 자투리 하나도 허투루 버릴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 사초로 쓴 종이를 물에 흔들어 먹을 지운 뒤에 다시 사용하기를 반복한 기록이 보인다. 과거 시험 낙방자의 답안지 낙폭지로는 옷이나 세간을 만들었고, 신발이나 삿갓을 만들기도 했다. 한지를 으레 다시 쓰다 보니 ‘돌아온 종이[還紙]’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한지는 닳아 없어질 때까지 질긴 생명을 놓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책의 기능을 다한 파지는 손으로 비벼 꼬아서 노끈을 만들었다. 이 노끈을 촘촘히 엮어 반짇고리나 함 같은 생활 기물을 만드는 것을 지승공예라 한다. 이런 기물들은 정감이 넘칠 뿐 아니라 생태적 측면에서도 더할 나위 없다. 여기에 옻칠을 하면 훨씬 견고해지니 쓸모가 더 많아진다. 진흙으로 구워 만든 자라병도 지승으로 감싸 말안장에 채우면, 먼 여정에도 안심하고 목을 축일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전시 작품 중 하나인 섬유예술가 엄윤나의 ‘백미’ 시리즈. 지끈을 한 줄씩 쌓아 올려 미싱 작업을 한 것으로, 현대적인 한지 공예의 세계를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재활용 기술의 정점 한지는 전통 가옥에서 방바닥에 바르는 장판지, 창과 문에 바르는 창호지, 벽에 붙이는 도배지 등 다양한 용도로 두루 활용되었다. 사진은 건축사사무소 선재가 전라북도 정읍에 신축한 한옥으로, 채광과 환기를 위해 한지를 현대적으로 활용했다. 건축사무소 선재 제공, 사진 박영채 2025년, 전통문화 후원 재단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은 지호장 박갑순이었다. 샤넬이 후원한, 예올 북촌가에서 열렸던 전시 에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전시를 관람한 이들은 한결같이 호평을 쏟아냈다. 그동안 보아온 공예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풋풋한 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호는 풀로 반죽한 한지 죽을 거푸집에서 굳혀, 필요한 그릇을 만들던 서민의 생활 기술이다. 옷감 자투리로 알록달록한 보자기를 만들어 썼듯이, 한지를 비단처럼 귀하게 여긴 알뜰함이 지호의 본질이다. 재료를 재구성하여 용도를 바꿀 때는 특별한 솜씨와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쓸모를 다한 종이를 활용한 점은 지승과 유사하나, 지호로는 작은 표주박에서 큰 독까지 크기 제한 없이 만들 수 있다. 오지그릇조차 버거운 가난한 서민들이 지호로 선호한 기물은 단연 종이독[紙甕]이었다. 여기에는 주로 쌀과 같은 곡식을 넣어 사용했다. 재료를 귀하게 여기고 아껴서 오래 쓰는 것이 지속 가능한 삶의 출발점이다. 지호에서 겸손과 절제된 태도를 배우게 된다. 물질의 풍요를 누린 결과가 기후 위기를 초래한 문명의 역설 앞에서 생태적 삶을 배울 만한 데가 어디 한지뿐이겠는가. 빼어난 유산도 시간의 유속을 거스르기가 버거울 때가 있다. 한지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는 늘었으나, 일상과의 격절로 인해 한지 장인의 얼굴에는 그늘이 한층 짙어간다. 손 글씨로 편지를 써본 적이 까마득하다. 더뎌서 불편해도 느림의 가치를 알아채고 내 삶에 일부나마 적용해 보는 것이 유효한 해결책이다. 그것이 한지를 내일의 유산으로 전하는 디딤돌이다. 최공호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은은하고 깨끗한 세 가지 맛

Features 2025 WINTER

은은하고 깨끗한 세 가지 맛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파주는 토양이 비옥하고, 일교차가 크며, 물이 맑아 작물의 생육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연유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조선 시대 왕실에 진상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 쌀과 함께 인삼과 장단콩도 파주의 청정 자연이 선사하는 건강한 먹거리다. 메주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글 때 사용하는 재료다. 전통적인 메주 제조는 콩을 삶은 후 뭉쳐서 네모난 덩어리를 만들고, 이를 볏짚으로 묶어 선반에 매달아 자연 발효되는 시간을 장기간 거친다. 1960년대 이후 메주를 좀 더 간편하게 만들기 위해 배양 균주를 인위적으로 첨가해 발효시키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파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메주는 재래 방식으로 만들어져 풍미가 깊다. ⓒ 한국관광공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K-팝 스타 BTS와 블랙핑크 등으로 대변되는 K-콘텐츠의 열풍이 한식으로 확산된 지 오래다. 불고기, 비빔밥, 치킨 등 외국에 익히 알려진 한식 말고도 지방 향토 음식 여행에 나선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둘이 아니다. 2023년엔 돼지곰탕 전문점 ‘옥동식’ 뉴욕점이 그해 뉴욕 타임스 선정 ‘뉴욕시 최고 요리 8선’에 올랐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의 글로벌 인기로, 한식의 한 갈래인 분식마저 주목받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김밥, 라면, 떡볶이 등을 다룬 ‘먹방’이 전 세계 SNS에 차고 넘친다. 그야말로 한식이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한식의 근간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 밥이 으뜸이다. 한국에 유독 밥과 관련된 인사말이 많은 이유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는 안부를 묻는 말이고, “언제 밥이나 먹자”는 다음에 또 만나자는 약속이며, “나중에 밥 한번 살게”는 고마움의 표현이다. 밥은 벼의 낟알에서 껍질을 벗겨 낸 알곡인 쌀로 짓는다. 조리법도 중요하지만, 쌀의 품질이 밥맛의 8할을 결정한다. 품종 교배로 만들어진 고급 토종 벼 파주는 쌀농사 짓기에 더없이 비옥한 땅과 깨끗한 물, 맑은 공기가 어우러진 지역이다. 공주의 고맛나루쌀, 예천의 미소진미, 철원의 오대쌀, 횡성의 어사진미 등 지역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쌀 브랜드가 전국에 있지만, 파주 지역을 대표하는 쌀 브랜드 한수위는 특별하다. 한수위 쌀의 품종인 ‘참드림’ 때문이다. 파주 북서쪽을 관통해 한강으로 유입되는 임진강은 이 지역이 농업 중심지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다. 임진강의 범람과 퇴적 작용은 농경에 필수적인 비옥한 토양을 제공해 왔으며,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대규모 벼농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 한국저작권위원회 참드림은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자체 개발한 고급 토종 품종이다. 토종 벼 중 하나인 조정도와 다른 품종을 교배해 긴 시간 공들여 개발했다. 2014년 참드림 종자 육성 개발을 완료하고, 2016년 국립종자원에 신품종 등록을 마쳤다. 참드림 개발엔 주역이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작물육종팀장이자 밥소믈리에인 장정희 씨다. 그는 20년 남짓 벼 육종 연구에 매달려 왔다. 그는 “한 품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대략 10~12년 걸리는데, 여기에 3~4년 걸리는 농가 보급 기간까지 합치면 신품종 탄생 과정은 그야말로 인내와 땀이 촘촘히 박힌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파주가 속해 있는 경기도 일대는 과거에 쌀 농가의 80%가 외래종을 쓰고 있었기에 우리 종자를 개발하고 육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고로 ‘신토불이’라고 했다. 자신이 사는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체질에 맞는다는 뜻이다. 비단 한국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미식이 발달한 국가일수록 자국 생산물의 자체 소비가 웰빙에 중요하다. 참드림은 찰지고 식감이 부드럽다. 단백질과 아밀로스(다당류) 함량이 다른 쌀 품종에 견줘 비교적 낮은 편이다. 밥맛이 좋은 이유다. 쌀은 단백질 함량이 낮을수록 찰지고 은은한 단맛을 낸다. 참드림 품종으로 지은 밥은 밥맛도 오래 유지된다. 장 팀장은 파주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일대 생태 환경이 참드림 탄생에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위도가 높은 이 지역의 가을 기상을 보면 밤과 낮의 일교차가 큽니다. 수확기인 가을에 쌀의 질과 당도가 올라가지요.” 올해 8월엔 파주를 대표하는 쌀 브랜드가 하나 더 세상에 나왔다. 농촌진흥청이 남한 벼 종자 ‘진부 19호’와 북한 벼 종자 ‘삼지연 4호’를 교배해 육성한 품종 ‘평원 벼’가 그것이다. 국내 최초 남북 교배종이다. 그래서 이 벼의 이름에는 ‘평화를 원하는 벼’란 뜻이 담겼다. 평원 벼는 찰기가 좋고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고품질 품종이다. 본래 강원도 철원에서 개발되었는데, 여러 차례 시험 재배 결과 철원 땅과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파주 땅에선 마치 제짝을 만난 듯 잘 잘랐다. 평원 벼는 DMZ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 지역인 대성동 마을 일대에서 재배된다. 이 벼를 탈곡해 만든 쌀 브랜드는 ‘평화미소’라는 이름이 붙었다. 개성 인삼의 맥 쌀이 재료가 되는 술이 있다. 막걸리다. 파주 지역에는 유명한 막걸리 양조장이 몇 군데 있다. 우선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막걸리 제조 업체 파주탁주는 몇 년 전부터 한수위 쌀을 주원료로 하는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양조장 도반주조가 생산하는 ‘더 파주막걸리’도 한수위 쌀로 빚어낸다. 이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9도로, 옅은 탄산과 산미가 어우러져 맛이 고급스럽다. 운정양조장도 파주 쌀로 막걸리를 만든다. 과거 집집마다 술을 빚었던 우리네 가양주 문화를 제대로 잇겠다는 포부로 설립된 양조장이다. 이곳에서는 일반 막걸리보다 쌀 함량을 높여 단맛을 끌어올린다. 대표 제품으로는 ‘운정막걸리’와 ‘파주개성인삼막걸리’가 있다. 양조장 역사는 약 8년 정도로 길지 않지만, 국내 주류 평가 대회에서 주요 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질이 좋은 술이다. 운정양조장의 ‘파주개성인삼막걸리’란 제품에서 ‘개성 인삼’이란 글자가 눈에 띈다. 인삼은 약용 작물이다. 고려 시대 때 우리 인삼의 우수성이 주변 국가에 널리 알려지면서 이후부터 한반도에서 재배되는 인삼을 통틀어 ‘고려 인삼’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시대엔 중국과 일본 등에 수출할 정도로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 고려 인삼의 주 재배지가 지금은 북한 땅인 개성이었다. 다른 지역의 인삼보다 효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개성 인삼의 명맥을 잇는 곳이 바로 파주다. 개성과 바로 이웃해 있는 파주는 예로부터 개성과 함께 고려 인삼의 주요 생산지로 통했다. 그래서 지금도 파주의 인삼을 ‘파주 개성 인삼’이라 부른다. 운정양조장이 인삼을 막걸리 재료로 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파주에선 매년 10월 파주개성인삼축제가 열리는데, 올해 20회를 맞았을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 다른 특산품, 장단콩 파주를 대표하는 또 다른 먹거리 축제로 매년 11월 열리는 ‘파주장단콩축제’가 있다. 콩은 채식주의자들이 열광하는 먹거리다. 육식을 하지 않고도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식품이다. 파주는 장단콩 생산지인데, 장단콩은 콩 품종이 아니라 파주 장단 지역에서 재배되는 토종 재래종 콩의 명칭이다. 장단 지역은 배수가 잘되는 마사토에 일교차마저 커 농산물이 잘 자라는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장단콩 재배는 한국전쟁 당시 사라졌다가 1970년대 부활했다. 지금은 장단 지역을 비롯해 파주에서 생산되는 콩 대부분을 장단콩이라 부른다. 예부터 장단콩은 파주 임진강 쌀, 개성 인삼과 함께 왕의 수라상에 올랐다. 이런 이유로 이들 세 가지 식품은 ‘장단삼백’이라 불렸다. 장단 지역의 세 가지 희고 깨끗한 농산물이란 뜻이다. 장단콩은 콩알이 굵다. 단백질뿐만 아니라 식물성 지방, 칼슘, 철분 등도 풍부한 작물이다. 한국식품연구원 자료를 보면 노화 방지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안토시아닌 함량도 높다. 파주 일대엔 장단콩으로 맛을 내는 식당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 2001년 문을 연 ‘통일동산두부마을’이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콩비지 찌개, 청국장, 두부전골 등 메뉴 모두가 장단콩으로 만들어졌다. 주인 차국제 씨는 “장단콩은 우리 콩의 효시”라며 파주가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갖췄다고 말한다. 차 씨가 가게를 열 때만 해도 파주에는 장단콩 전문 식당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손님들이 우리 가게에 와서 먹어보니 맛이 좋고, 맛이 좋으니 찾는 이가 많아져 주변에 장단콩 전문 식당들이 하나둘 생겨났다”고 말한다. 손바닥만 한 이 집의 찐 두부는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하다. ‘담박하다’는 형용사가 저절로 떠오르는 풍미다. ‘담박하다’는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란 뜻이다. 파주 장단 지역은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 물이 맑고 늦서리 피해가 없어 콩 농사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파주 특산품인 장단콩은 다른 콩보다 이소플라본 함량이 높으며, 고소하면서 진한 맛이 난다. 알이 굵고 선명한 것도 장단콩의 특징이다. 현재 1,100㏊에서 700여 농가가 장단콩 농사를 짓고 있다. 파주시 제공, 사진 김주원

파주에서 만난 조선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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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서 만난 조선의 시간 파주는 유구한 내력을 지닌 역사의 도시이다. 대형 석기 같은 구석기 시대 유물을 비롯해 고인돌 유적지와 청동기 시대 주거지는 오래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말해준다. 또한 고대부터 한반도의 남북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흔적이 짙게 남아 지나간 이야기를 들려준다. 은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였던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가 그린 그림이다. 화폭 왼쪽 아래에 과거 교통의 요지였던 임진나루가 잘 묘사돼 있으며, 또한 한국전쟁 때 소실된 성문 ‘진서문’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파주’라는 지명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한 건 『세조실록』에서다. 조선 제7대 임금이었던 세조(재위 1455~1468)가 1459년 왕비 정희왕후의 고향 ‘원평’을 파주로 이름을 바꾸고, 행정 구역 단위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광해군(재위 1608~1623) 때에는 풍수지리설(지형이나 방위를 길흉화복과 연결해 적합한 장소를 구하는 이론)에 입각해 수도를 파주로 옮기자는 논의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 의주대로는 한양(현재의 서울)에서 출발해 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향하는 중요한 도로였다. 의주대로의 주요 관문 중 하나였던 파주는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 만큼 수많은 문화유적이 곳곳에 숨어 있다. 또한 조선을 대표하는 인물을 기억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들도 다수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파주는 경기도 구리시, 고양시, 남양주시와 함께 조선 시대 왕릉이 다수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황동혁 감독의 같은 영화나 드라마에 곧잘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인조(재위 1623~1649)의 무덤 장릉을 비롯해 ‘파주 삼릉’으로 지칭되는 공릉, 순릉, 영릉, 그리고 소령원이나 수길원처럼 왕위를 계승할 왕자를 낳은 후궁들의 묘소도 조성되어 있다. 대학자의 고향 이이(1536~1584)는 이황(1501~1570)과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외가인 강릉의 오죽헌에서 태어났지만, 본가가 있던 곳은 파주였다. 여섯 살 때 파주 율곡리 본집에 돌아와 생활했는데, 그의 호 ‘율곡’도 이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율곡은 ‘밤나무골’이란 뜻으로, 자신이 파주 밤나무골 출신임을 호에 드러내고 있다. 용암사 경내에 있는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거대한 천연 암벽에 새겨진 고려(918~1392) 시대의 불상이다. 왼쪽은 둥근 갓을, 오른쪽은 네모난 갓을 쓰고 있으며 토속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쌍미륵 석불 입상이다. ⓒ 경기관광공사 임진나루 바로 위쪽에 자리한 정자 화석정 안에는 이이가 여덟 살 때 지은 것으로 알려진 한시 「팔세부시」가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저녁 정자에서 바라본 임진강 풍경을 읊은 시로, 그의 천재성을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되는 시다. 이이는 1584년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파주의 선영이 있는 곳에 묻혔다. 1615년 파주 유림들의 공의로,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서원이 건립됐고, 이곳에 그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했다. 서원은 오늘날로 치면 지방에 위치한 사립 교육 기관이다. 1650년 이 서원은 ‘자운’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이이의 학문을 계승한 후대 학자들을 추가로 배향했다. 자운서원 좌측 능선에는 이이의 부모와 이이 부부를 비롯해 이 집안의 묘소 13기가 집결해 있다. 이이와 그의 아내 무덤은 묘역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한 가문의 묘가 같은 지역에서 족분을 이루는 것은 관혼상제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 『주자가례』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친족 공동묘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자운서원은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이는 조선 성리학의 큰 줄기를 형성한 대학자로, 성리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아동 교육서인 『격몽요결』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 한국관광공사 황희와 반구정 파주는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명망 있는 재상으로 이름을 날린 황희(1363~1452)와도 큰 연고가 있다. 그는 사리가 깊고 청렴하며 충효가 지극했다고 한다. 또한 학식도 깊어 그가 모셨던 왕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재위 1418~1450) 대에는 최고 관직에 올라 임금을 보필했고, 세종이 성세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반구정은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뜻으로,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낸 곳이다. 이곳 역시 임진강이 보이는 기암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반구정은 황희 사후 폐허가 되었다가 17세기에 후손들에 의해 중수되었는데, 이때 조선 후기의 문신 허목(1595~1682)이 기문을 작성했다. 허목은 “반구정은 먼 옛날 태평 재상 황희의 정자이다”라고 운을 떼면서 “물러나 강호에서 여생을 보낼 적에는 자연스럽게 갈매기와 백로와 같이 세상을 잊고, 높은 벼슬을 뜬구름처럼 여겼으니, 대장부의 일로 그 탁월함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겠다. 정자는 파주에서 서쪽으로 15리 되는 임진강 가에 있는데, 썰물이 물러가고 갯벌이 드러날 때마다 갈매기들이 모여든다.”라고 해 이곳이 바다와 매우 가까운 곳임을 언급했다. 반구정에서는 맑은 날 파주 북쪽 개성의 송악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개성이 고향이었지만, 일생 대부분을 한양에 머물며 관직 생활을 한 황희의 마음을 늘 어루만져 주는 장소였을 것이다. 반구정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명재상이었던 황희가 노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반구정 아래에는 황희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영당 건물이 있다. ⓒ 한국관광공사 인조의 장릉과 파주 삼릉 2009년 조선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중 파주에는 4기의 왕릉이 있다. 우선 장릉은 인조의 무덤이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하자, 다음 왕위를 계승한 인조의 둘째 아들 효종(재위 1649~1659)은 아버지의 무덤인 장릉을 현재의 파주시 문산읍 운천리 대덕골에 조성했다. 인조보다 먼저 세상을 뜬 어머니 인열왕후의 무덤이 이미 파주에 있었고, ‘장릉’이라는 능호도 있었기에 효종은 어머니의 무덤 옆자리에 아버지의 무덤을 함께 만들었다. 사실 이곳은 인조가 살아생전 미리 봐둔 자신의 묏자리였다. 그래서 효종은 선왕이 정한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왕릉 조성을 주관했다. 그러나 화재가 자주 일어나고, 뱀과 전갈의 무리가 석물 틈에 서식하니 좋지 않다고 여겨, 훗날 현재의 자리인 파주시 탄현면으로 장릉을 이전하게 됐다. 장릉은 봉분 하단에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그 주변에 돌로 난간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 상석 2좌를 배치하여 무덤이 2위임을 나타냈다. 상석 중앙 정면에 장명등과 양쪽에 망주석 2기를 세웠고, 그 아래로 문인석과 무인석을 각각 1쌍씩 세웠다. 병풍석과 장명등에는 모란과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는 17세기 석물 문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파주의 대표적 관광지인 마장호수는 2001년 농업용 저수지로 조성되었다가 2018년 파주시가 도심형 테마파크로 개장했다. 길이 220m, 폭 1.5m의 출렁다리가 유명하다. 마장호수 주변은 과거 조선 시대에 군마 훈련장[馬場]이 있었던 곳이다. ⓒ 한국관광공사 한편 ‘파주 삼릉’은 공릉, 순릉, 영릉 3기의 능을 지칭하며, ‘공순영릉’이라고도 부른다. 먼저 공릉의 주인공은 장순왕후이다. 조선 제8대 왕인 예종(재위 1468~1469)의 첫 번째 왕비로, 예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산후병 때문에 세자빈의 신분으로 17세에 사망했다. 후에 예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로 추존되었다. 공릉은 장순왕후가 세자빈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일반적인 왕릉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석물 장식도 생략됐다. 순릉은 예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성종(재위 1469~1494)의 정비 공혜왕후의 능이다. 성종이 왕이 된 후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불과 몇 년 후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장순왕후의 공릉과 달리 이곳은 왕릉의 형식을 따라 만들어졌다. 그런데 장순왕후와 공혜왕후는 둘 다 한명회(1415~1487)의 딸이다. 한명회는 조선 전기 고위직을 두루 역임한 문신으로, 두 명의 딸을 왕비로 만들어 권세와 부를 누렸던 인물이다. 자매가 나란히 왕비가 된 데에서 그의 권력이 당시 얼마나 막강했는지 알 수 있다. 두 딸의 능이 파주에 조성되면서 그도 파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영릉은 조선 역대 임금 중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영조(재위 1724~1776)의 맏아들 효장세자의 무덤이다. 열 살 어린 나이에 세자의 신분으로 사망했지만, 훗날 진종으로 추존되면서 그의 무덤도 왕릉으로 승격했다. 37세의 나이로 승하한 부인 효순왕후가 그의 곁에 묻혀 있다. 영릉은 쌍릉 형식인데, 처음에는 세자 무덤의 예를 따라 만들어졌다가 훗날 왕릉 형식을 갖추게 됐다. 이 외에도 파주에는 왕을 낳은 후궁들의 무덤이 있다. 파주가 조선 왕실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장릉은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와 인열왕후의 무덤이다. 1635년 인열왕후의 무덤이 먼저 조성되었고, 인조 사후 쌍릉 형태로 만들어졌다가 이후 1731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되면서 합장릉이 되었다. 이에 따라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 형태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 궁능유적본부

헤이리, 자연 위에 그린 예술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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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자연 위에 그린 예술의 지도 서울에서 북서쪽으로 한 시간 남짓 자유로를 따라 달리면 도심의 풍경이 어느새 사라지고, 드넓은 한강 하구와 들판이 나타난다. 그 끝자락에 자리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일대에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마을, 헤이리예술마을이 있다. 콩치노 콩크리트는 압도적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감상실이다. 각 층 공간은 음악 감상에 최적화된 비례로 조성되었다. 창문을 통해 임진강 주변의 멋진 풍경도 감상할 수 있어, 젊은 세대들에게 한 번쯤은 꼭 방문해야 할 핫플레이스로 통한다. © 김종오 헤이리예술마을이 자리한 곳은 원래 벼와 채소를 재배하던 농경지였다. 이곳의 변화는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작가와 건축가, 영화인, 음악인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인들 300여 명이 뜻을 모았다. 이들은 자연 친화적 공간에서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고 창작에 전념하는 한편 서로 소통하는 예술인 공동체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1997년, 예술가들의 자발적 의지로부터 출발한 ‘헤이리 프로젝트’는 이듬해 창립총회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헤이리’라는 이름은 파주 지역에 전해 내려오던 농요 ‘헤이리 소리’에서 비롯되었다. 농부들이 모를 심을 때 힘을 맞추기 위해 부르던 노래로, 리듬이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농요에서 마을 이름을 따온 데서 알 수 있듯 헤이리예술마을은 공동체의 협력과 조화를 중시한다. 예술가들은 이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새로운 마을을 상징하는 단어로 삼았다. ‘농경의 땅 위에 예술을 심는다’는 의지가 투영된 작명이었다. 한국전쟁 뒤 빠르게 산업화한 한국에서 ‘예술가 마을’이라는 발상은 무척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예술가들은 경제 발전과 도시 개발이라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술가다운 삶의 구조’를 실험하고자 했다. 헤이리는 도시 계획이 아닌, 예술 기획으로 시작된 마을이었다. 요나루키는 명상과 스파를 위한 공간, 갤러리, 바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헤이리예술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로 마련되었으며, 건축가 조병수가 설계를 맡아 2011년 완성되었다. © 황우섭 예술 마을의 탄생 헤이리를 처음 찾은 방문객들은 ‘무질서 속의 질서’에 놀라게 된다. 도로가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고, 건물의 색과 재질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큰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능한 한 본래의 자연과 지형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주거와 작업, 전시, 휴식이 한 공간에 공존할 수 있도록 ‘도시의 단위’를 버리고 ‘삶의 단위’를 기준으로 설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을 전체 면적 약 15만 평 중 상당 부분을 녹지로 남겨 두었으며, 주변 산들의 흐름을 차단하지 않는 랜드 스케이프를 완성하고자 모든 건축물의 높이를 12m로 제한했다. 여느 도시처럼 하늘이 고층 건물로 막혀 있지 않다 보니, 고개만 들면 하늘을 볼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울타리 설치도 금지되었기에 대신 나무 등을 심어 경계를 대신한다. 한마디로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다. 한편 이곳의 모든 건물은 면적의 60% 이상이 문화 시설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헤이리에 전시 공간과 창작 공간, 아트숍 등이 즐비한 이유다. 그래서 헤이리를 걷다 보면 마치 ‘야외 미술관’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헤이리에 자리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화예술 공간에서는 공연, 전시, 교육 프로그램, 강좌 등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그중 몇 곳은 최근 젊은 세대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핫플레이스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2004년 개관한 테마파크 ‘딸기가 좋아’는 독특한 건축 디자인과 재미있는 전시 콘텐츠로 헤이리예술마을을 일반에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제9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주제관 초청작이었던 이 건물은 아쉽게도 2024년 철거됐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헤이리 하면 가장 먼저 이곳을 떠올린다. © 경기관광공사 우선 김정기뮤지엄은 드로잉 아티스트 김정기(1975~2022)의 작업 세계를 기리는 미술관이다. 그는 ‘기억 드로잉’으로 불리는 독창적 스타일로 유명했다. 실재하는 모델 없이 기억 속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그려내며, 수십 미터의 캔버스를 한 호흡으로 완성하곤 했다. 미술관 내부에는 그의 생전 작업 도구, 벽면 가득한 대형 스케치, 인터뷰 영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은 손이 아니라 머리로 그린다”는 그의 철학은 헤이리의 예술가들에게, 그리고 이곳을 찾는 방문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도예가 한향림이 세운 한향림도자미술관에서는 국내외 현대 도예 작품들의 다채로운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녀는 도자기를 “흙이 사람과 다시 만나는 형식”이라 표현한다. 이곳의 전시품들은 찻잔, 접시, 병 등 실생활용 기물들 속에도 예술적 감각이 깃들어 있다. 불에 구워진 도자기 표면의 미세한 갈라짐, 즉 유약의 ‘빙렬’은 인생사의 불완전함을 닮았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따뜻함이 피어난다. 특히 언덕에 파묻힌 듯 자리한 이 건물은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기도 한데, 헤이리에는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건물들이 꽤 많다. 음악 감상실이자 카페인 카메라타는 헤이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오랜 세월 TV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많은 이들의 가슴에 따뜻함을 불어넣어 준 방송인 황인용 씨가 만든 공간이다. 그는 “음악을 늘 듣는다는 것은 기댈 데가 있고, 외로울 때 투정 부릴 데가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빈티지 아날로그 오디오와 LP, 클래식 음반이 빼곡히 꽂힌 벽면을 배경으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진공관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나아가 빛 대신 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경험은 감각의 확장을 일으킨다. 예술이 눈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헤이리시네마는 한국의 독립·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이다. 작은 상영관 한쪽 벽에는 감독과 관객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종종 상영이 끝난 뒤 토론이 이어지고, 때로는 즉석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탄생하기도 한다. ‘관객이 곧 공동 창작자’라는 개념은 헤이리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예술이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교감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을 밖으로 이어지는 실험 헤이리는 하루의 빛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표정이 바뀐다. 봄에는 철쭉과 벚꽃이, 여름에는 초록 덩굴과 수초가, 가을에는 은행나무와 억새가, 요즘 같은 겨울에는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이 건물 윤곽을 부드럽게 감싼다. 이 마을에는 ‘조경’이라는 단어 대신 ‘식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조경은 인위적인 꾸밈이지만, 식생은 자연의 생태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건물 지붕 위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빗물은 인공 배수로가 아니라 땅으로 스며든다. 자연이 배경이 아니라, 건축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가로등 대신 건물 내부의 조명이 골목을 밝힌다. 그 불빛들은 유리 벽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오며, 마을 전체를 은은하게 물들인다. 이곳에서 밤은 어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예술적 연출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마을의 풍경은 외부로 확장된다. 헤이리에서 차로 10분 거리, 파주출판도시 끝자락에 자리한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은 ‘헤이리 정신의 확장판’으로 불린다.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흰 콘크리트 곡면으로 이루어진 유려한 구조를 지녔다. 외벽에는 단 한 줄의 장식도 없지만,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이 건물의 표정을 바꾼다. 건물 내부는 사선의 빛이 천장에서 흘러내리며 관람객의 시선을 유도한다. 마치 자연광이 하나의 조명 장치처럼 작동한다. 전시는 회화, 조각, 건축, 사진,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미메시스는 그리스어로 예술 창작의 기본 원리인 ‘모방’이나 ‘재현’을 뜻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모방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와 리듬을 배우는 과정이다. 방송인 황인용이 운영하는 카메라타는 콩치노 콩크리트와 함께 파주를 대표하는 음악 감상 공간이다. 실내는 공연장처럼 꾸며졌으며, 전면에 있는 그랜드피아노 뒤에 빈티지 스피커가 놓여 있다. ⓒ 이민희 헤이리예술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콩치노 콩크리트는 최근 떠오르고 있는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뻥 뚫린 높은 층고와 어우러진 육중한 콘크리트 공간이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거대한 스피커 다섯 개가 들려주는 단단하고 장엄한 소리가 압도적이다. 그 사운드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1920~3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공동체와 지속가능성 헤이리예술마을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단지 창작만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함께 식사하고, 서로의 전시를 돕고, 함께 아이들을 돌본다. 공동체는 느슨하지만 따뜻하다. 이곳의 카페 주인은 전직 조각가이고, 서점 주인은 소설가이며, 도예가는 인근 농장에서 흙을 직접 구해온다. 모두가 예술가이자 주민인 것이다. 또 다른 중심에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있다. 모든 건물이 에너지 절약형으로 설계되었고, 빗물 재활용 시스템과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건물이 많다. 최근에는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돼 아이들이 흙과 식물, 곤충과 물의 순환을 배우고 있다. 예술이 생태와 결합하며, 마을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헤이리를 떠나는 길목에서 많은 방문객은 자문한다. “이곳은 미술관인가, 마을인가?” 아마 정답은 둘 모두일 것이다. 예술가들이 만든 헤이리는 도시 계획의 대안이며,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이곳에서 예술은 소유나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자연과 사람, 예술과 생활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며 공존하는 곳, 그것이 헤이리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낮에는 쇠기러기와 재두루미, 개리 등 다양한 겨울 철새들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날고, 저녁이면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농경지로 돌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그 평화로운 순간, 예술과 자연, 인간과 시간의 경계가 사라진다. 헤이리는 그렇게, 여전히 자라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경기도 북부 지역에 개관한 첫 국립박물관이다. 유물과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전시 기법을 접목한 개방형 수장고가 운영된다. 총 15개 수장고에는 약 100만 점 이상의 소장품과 자료가 보관되고 있다. ⓒ 파주시

책의 도시에서 문화예술의 도시로

Features 2025 WINTER

책의 도시에서 문화예술의 도시로 파주출판도시는 1980년대 후반 한국 출판 산업의 발전과 혁신을 꿈꾸던 출판인들에 의해 기획됐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이곳은 내로라하는 출판사와 인쇄소들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며, 국내 최대의 출판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나아가 책과 출판을 넘어 건축과 생태, 축제가 결합한 문화예술의 집합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에 자리한 ‘지혜의숲’은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간이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이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학술 기관, 연구소, 출판사, 미술관 등에서 기증받은 다양한 분야의 도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 이민희 자유로를 달려 임진각을 향하다 보면 파주 초입에 이르러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파주출판도시다. 정식 명칭은 ‘파주출판문화정보국가산업단지’이지만, 이곳에 터 잡은 사람들은 간단히 ‘파주출판도시’라 부른다. 파주출판도시가 자리한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은 2011년 행정 구역이 개편되기 전까지 ‘문발리’였다. ‘글이 퍼지는 동네’라는 뜻이다. 이 명칭의 연원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전기의 이름난 문신 황희(1363~1452)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임금이었던 문종(재위 1450∼1452)은 파주까지 행차해 그의 장례를 지켜봤다. 환궁 길에 “황희의 높은 학덕과 지혜를 널리 알리라”는 의미로 이 동네에 ‘문발리’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곳이 출판도시가 될 운명은 어쩌면 조선 시대에 이미 정해진 게 아니었을까? 열화당이 2012년 사옥 내 개관한 열화당책박물관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고서들을 비롯해 동시대 출간된 전 세계의 특색 있는 책들 4만여 권이 갖춰져 있다. 열화당은 1971년 설립 이래 미술 및 전통문화와 관련된 전문 서적을 발행하며, 50년 넘게 한국 출판계에서 독보적 영역을 구축해 온 유서 깊은 출판사다. ⓒ 이민희 민간 주도의 출판 클러스터 파주출판도시는 국가 산업 단지다. 그러나 그 시작은 ‘책을 위한 도시’, ‘좋은 책을 만드는 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출판인들의 자발적 발상과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이른바 ‘북한산 결의’라고 불리는 일이 그 출발점이었다. 1988년 어느 날, 고 박맹호(1933~2017, 민음사), 고 윤형두(1935~2023, 범우사), 고 전병석(1937~2018, 문예출판사), 김경희(지식산업사), 김언호(한길사), 이기웅(열화당), 허창성(평화출판사) 등의 출판인들이 북한산 등반에 나섰다. 이 일곱 명의 출판계 거장들은 그곳에서 출판 정신을 쇄신할 ‘출판인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기획과 편집, 디자인과 인쇄, 물류와 유통을 집적한 출판 단지를 만들자고 결의한다. 출판 공동체에 대한 이들의 꿈은 마침내 현실화되었고, 민간 주도로 조성된 세계 최초이자 세계 유일의 출판도시가 탄생했다. 현재 파주출판도시는 950여 개 업체, 2만 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일터가 되었다. 출판 공동체의 뜻을 세운 출판인들이 초창기부터 지켜온 정신은 절제, 균형, 조화, 인간애,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무분별한 자기 탐욕을 억제하고 공동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그리하여 새로운 인간성이 발현되는 것이 파주출판도시의 오랜 염원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며 30년 넘게 그 역할에 매진해 왔다. 파주출판도시가 추구하는 이 네 가지 가치를 동시대에 맞게 새롭게 되살려내는 일은 이제,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후배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책과 건축, 생태의 도시 파주출판도시는 책과 출판 중심의 1단계 사업에 이어, 2단계 사업에서는 책과 영상·영화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지금은 음악과 미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영역의 예술가들이 포진해 명실상부한 책과 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에는 다산북스, 동녘, 들녘, 돌베개, 뜨인돌, 문학동네, 사계절, 열화당, 창비, 한길사 등 국내 최고의 출판사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상지사 등의 인쇄 업체들과 국내 최대 물류센터인 북센 등은 파주출판도시를 지탱하는 구심점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과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출판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파주출판도시는 ‘건축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은 저마다 이야기가 있는 독특한 건축물로 채워진 커다란 건축 전시장이다. 47만 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250여 개의 건축물들은 태양의 궤적을 느끼고, 비와 바람 그리고 구름을 느끼고 볼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건물이 자연과 순응하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듬는다. 우리 시대 대표 건축가들의 ‘지식을 기반으로 한 지혜’의 결과물인 하나하나의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 파주출판도시가 건축 도시임을 말없이 웅변한다. 파주출판도시의 모든 건축물들은 자연환경과 건물의 조화를 고려해 설계됐다. 사진은 도서출판 들녘의 사옥으로, 국내 건축가 김영준이 스페인 출신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와 공동 설계한 작품이다. 2006년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로부터 건축상을 받았다. ⓒ 한국저작권위원회 흥미로운 점은 파주출판도시의 구성원이 될 출판인들과 그들의 보금자리를 세울 건축가들이 ‘건축 설계 지침’을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도시 건축의 지침이 된 이 ‘설계 헌장’은 1단계 사업에서는 ‘위대한 계약’으로, 2단계에서는 ‘선한 계약’으로 명명되었다. 파주출판도시 설계에는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승효상을 비롯해 김병윤, 김영준, 김인철, 김헌, 민현식 등 국내 최고의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또한 플로리안 베이겔(영국), 세지마 가즈요(일본), 알바로 시자(포르투갈) 등 세계적 거장들도 동참했다. 봄과 가을이 되면 국내외 건축학도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가 하면 파주출판도시는 ‘생태 도시’를 지향한다. 최근 생태와 환경이 전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이곳은 기획 단계부터 일찌감치 생태 도시를 추구했다. 애초 토지 조성 당시의 계획은 부지 내 갈대 샛강과 유수지를 모두 메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배 출판인들은 그곳을 살림으로써 도시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책의 도시를 구현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강하게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갈대 샛강과 유수지를 매립하지 않고 보존함으로써 900여 종의 야생 동식물은 물론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보고로 가꿔지고 있다. 파주출판도시 내에 ‘생태위원회’를 구성해 답사와 탐조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파주출판도시는 인간과 책 문화가 상생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파주출판도시에 자리 잡은 명필름아트센터 내부. 영화관, 카페, 쇼룸, 아카이브 룸, 스크리닝 룸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2025년 창립 30주년을 맞은 명필름은 PC 통신을 소재로 새로운 세대의 감성을 보여준 (1997)을 시작으로, 남북 관계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 (2000) 등 한국 영화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5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명필름아트센터 제공 문화예술의 중심지 파주출판도시의 또 다른 정체성은 ‘교육 도시’라는 점이다. 이곳은 거대한 캠퍼스와 같다. 디자인과 영상 창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 영화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는 명필름랩은 물론 출판인 재교육의 산실 파주에디터스쿨, 인문예술 대중화에 기여하는 출판도시 인문학당, 출판체험학교, 출판도시 ‘북드림 꿈의 학교’ 등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배우고 익히며 그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이 작업한 ‘출판도시 인문학당’ 행사 포스터가 벽에 걸려 있다. 이 프로그램은 출판도시문화재단이 2014년부터 운영해 왔으며 낭독극, 강연회, 체험 클래스 등 인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 일상의실천 한편 파주출판도시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의 향연이 연중 펼쳐진다. 봄과 가을에 각각 열리는 어린이책잔치와 파주북소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북카페와 갤러리, 공연장과 박물관에서 상시 다양한 문화 공연과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2024년 가을부터는 ‘파주페어 북앤컬처’를 개최하고 있다. 이 축제는 책에서 비롯된 다양한 문화예술 창작 콘텐츠를 국내외 시장에 소개하고 교류하는 글로벌 콘텐츠 마켓이자, 시민들과 함께 축제의 기쁨을 누리는 복합 문화 페어이다. 파주출판도시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책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갈라 콘서트와 연극, 프린지 쇼케이스 무대가 펼쳐진다. 2025년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2회 행사에는 5만여 명의 관람객들이 일상을 벗어난 일탈의 즐거움을 누렸다. 파주출판도시는 공동성의 정신에 기반하여 책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는 곳이다. 아울러 책에서 발현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가 날마다 태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책의 울타리를 넘어, 책이 찾아내고자 했던 인간성의 가치를 오늘에 되살리는 곳이 바로 파주출판도시이다. 앞으로 파주출판도시는 책은 물론 문화예술 복합도시의 면모를 다듬어가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든든한 못자리로 성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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