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tainment
2025 SUMMER
전 세계를 울린 가족 드라마
방영 내내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폭싹 속았수다 >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국적 정서가 물씬한 이 드라마는 국내를 넘어 세계 각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 폭싹 속았수다 >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아우르며 주요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는 드라마다. 촬영지를 찾아 인증샷을 찍거나 드라마를 테마로 한 이벤트가 열리는 등 현재까지도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 넷플릭스
올해 3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16부작 드라마 < 폭싹 속았수다 >는 한반도 남쪽에 자리한 아름다운 섬 제주를 배경으로 광례에서 애순을 거쳐 금명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가족사를 그려냈다. 이 드라마는 전 회차를 한꺼번에 공개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4회씩 순차적으로 방영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첫 회부터 최종회까지 흡인력과 화제성을 잃지 않으며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특히 OTT 플랫폼의 주 이용층인 20~30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과 노년층 시청자들까지 불러들이면서, 그동안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OTT 서비스의 장벽을 허물었다.
< 폭싹 속았수다 >는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을 비롯해 김원석 감독의 짜임새 있는 연출과 임상춘 작가의 탄탄한 극본이 삼박자를 이루며, 작품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근래 한국 드라마들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이 무색하지 않게, 지난 5월 열린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도 8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최종적으로 작품상, 극본상 등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 평론 사이트 IMDb에서 9.2점, 로튼토마토에서는 토마토미터 100%의 평점을 받았다. 이는 역대 한국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점수다. 이 수치는 < 폭싹 속았수다 >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국적 감성
< 폭싹 속았수다 >는 첫 회부터 한국인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바다 깊숙이 들어가 고된 물질을 하는 애순의 엄마 광례의 모습에서 저마다 자신의 어머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초반부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1960~70년대는 경제 발전이 최상의 과제였던 재건의 시기였다. 이 시대를 살았던 한국의 어머니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억척스럽게 일하며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려 했다.
주인공 애순이 어린 시절 급장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고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부급장이 됐을 때 광례는 애순에게 “엄마가 가난하지, 네가 가난한 거 아니야. 쫄아붙지 마. 너는 푸지게 살아.”라고 위로했다. 그 말은 한국전쟁 이후 생존이 절실했던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가진 소망이었다. 광례는 딸에게 푸지게 살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거친 물질로 생계를 이어가다 겨우 스물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광례는 자신의 꿈이나 성공 같은 것은 사치에 불과했던 생존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열 살에 엄마를 잃고 생활력 없는 새아버지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야 했던 애순의 삶도 모질기는 마찬가지였다. 애순에게는 지긋지긋한 섬을 떠나 대학도 가고 시인도 되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소처럼 밭을 일궈 수확한 양배추를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잇는 고된 삶만을 허락할 뿐이었다.
생존과 생계의 시대를 지나 부모 세대의 꿈을 현실화한 건 다음 세대이다. 애순의 딸 금명은 결국 애순이 그토록 바라던 섬을 떠나 최고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고군분투 끝에 인터넷 강의 회사를 차려 성공을 거두고, 엄마의 꿈이었던 시집 발간도 대신 이뤄준다. 금명의 성공 스토리는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지는데, 행복과 불행이 끝없이 교차하는 복잡한 인생사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고통과 절망, 기쁨과 열망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시청자들이 온전히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래서 드라마가 공개된 후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는 시청 후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보편적 테마
< 폭싹 속았수다 >는 지극히 한국적인 드라마다. 제주 방언을 그대로 사용한 제목에서부터 이미 드러나듯 지역적 정서가 깊게 밴 작품이다. 작품 제목인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사실 제주 방언은 타 지역의 한국인들에게도 매우 낯선데, 이 작품에는 한국인도 알아듣기 어려운 제주 사투리로 가득한 대사가 계속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제주 지역의 토속적 문화, 여성들에게 버거웠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질풍노도 같았던 한국 현대사가 간접적으로 펼쳐진다.
18개 언어로 더빙되어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난 이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번역과 더빙에 심혈을 기울였다. ⓒ 넷플릭스
그런 연유로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막 공개됐을 때만 해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더욱이 자극적인 장르물들이 적지 않은 넷플릭스에서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과연 통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방영 내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들이 쏟아졌고, 넷플릭스 순위 집계에서도 비영어권 1위, 전체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대부분의 국가들은 물론이고 남미권에서도 열풍이 불었다. 브라질에서는 한 마트에서 마지막 회를 다 같이 모여 단체 관람하는 이색적인 풍경도 펼쳐졌다.
SNS에서도 해외 팬들의 이른바 ‘나의 관식’ 인증 릴레이가 유행처럼 번졌다. 평생 가족을 위해 몸을 혹사해 무쇠 같던 몸이 어느새 닳아버린 남자 주인공 관식은 당대를 살았던 한국 아버지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아내 애순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순정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에 몰입한 팬들은 ‘당신의 아빠가 당신의 관식일 때’라는 제목으로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거나 커플 사진에 “나는 나만의 관식이랑 결혼할 것입니다.”라는 글귀를 붙였다. “나는 이미 나만의 관식과 살고 있다”며 다정해 보이는 부부의 사진을 올린 경우도 있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관식의 삶에 대한 감동을 릴레이 인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결국 국가, 언어, 문화가 달라도 ‘가족’이라는 보편적 테마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가장 한국적인 드라마가 세계인들의 ‘인생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한국형 가족 서사의 가능성
근대화 과정에서 남다른 가족주의 시대를 거쳐온 한국인들에게 가족 서사는 오랜 전통을 지닌 소재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1인 가구가 전체의 30%에 다다르게 된 한국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풍조로 변화했다. 이러한 사회상은 드라마에도 반영되어, 가족 드라마보다는 멜로물이나 장르물이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특히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의 등장 이후 보다 보편적인 서사에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릴러 같은 장르물이 더 많이 쏟아졌다. 그런 점에서 < 폭싹 속았수다 >는 최근 흐름에서 빗겨나 있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젊은 날의 꿈과 좌절, 가족 간 갈등과 화해, 예상치 못한 이별 등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그려내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 넷플릭스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은 한 문화권의 문화 상품이 다른 문화권으로 진입할 때 언어, 관습, 종교 등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SNS와 유튜브가 공유되면서 문화적 할인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글로벌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를 함께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이색적인 풍경은 문화적 장벽이 점차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는 곧 차별화된 로컬 문화를 깊이 있게 담아내는 콘텐츠가 글로벌 성취의 관건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취향과 관심사가 다원화된 시대에 전 세계 모든 대중들이 열광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 폭싹 속았수다 >의 이례적 성취는 가족 서사가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중요한 매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