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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UMMER

그 어디보다 특별한 미식 여행지

삼면이 바다인 한국은 유난히 섬이 많다. 그중 음식이 가장 돋보이는 섬은 단연 울릉도다. 넘쳐나는 해산물, 토종 한우, 육지에서 맛보기 힘든 각종 나물들까지 군침 도는 먹거리가 여행객을 기다린다. 울릉도는 특별한 미식 여행지이다.

울릉도 마른오징어는 열풍이나 기계 건조로 말리는 다른 지역과 달리 자연 해풍 건조 방식을 고수해 맛과 향이 더 좋다. 오징어 귀에 구멍을 뚫어 긴 막대로 꿰어 말리는 것도 울릉도만의 건조 방식이다.

섬은 고립과 단절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섬 음식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고유성을 지키며 발달해 올 수 있었다. 특히 울릉도가 그렇다.

울릉도에서 가장 먼저 맛볼 만한 음식은 비빔밥이다. 한식을 대표하는 비빔밥은 각종 나물과 계란프라이, 고추장 양념 등을 밥에 비벼 먹는 음식이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가 조리법을 SNS에 올릴 정도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되었다. 그러니 울릉도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울릉도의 비빔밥은 다르다. 주재료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색다른 비빔밥

갯바위에 붙어사는 바다 생물 따개비가 주인공인 따개비밥은 울릉도를 대표하는 비빔밥이다. 전복보다 크기가 작은 따개비를 따끈한 밥 위에 수북하게 올리고 참기름, 깨소금 등을 넣어 먹으면 바다 향을 흠씬 느낄 수 있다. 울릉도의 여러 항구 인근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판다. 그만큼 울릉도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인 것이다. 따개비는 칼국수나 죽 등으로도 만들어 먹는다.

따개비 비빔밥은 울릉도의 향토 음식 중 하나다. 해녀나 어부들이 해안가 바위에 붙어 있는 따개비를 직접 채취해 일일이 손질하기 때문에 조리 과정이 번거롭지만, 쫄깃하고 오독오독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바다 향 가득한 비빔밥이 또 있다. 홍합밥은 울릉도에서 채취한 자연산 홍합이 재료다. 양식 홍합과 달리 자연산 홍합은 ‘섭’이라 부른다. 쫄깃쫄깃한 홍합엔 바다 특유의 달곰한 짠맛이 배어 있다. 씹을수록 상큼한 단맛이 입안에 퍼진다. 황홀한 별미다.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만 비빔밥의 재료가 되는 건 아니다. 울릉도만의 매력이 가득한 산채 정식이 있다. 산나물로 차려낸 정식의 메인은 비빔밥이다. 각종 산나물을 밥과 비벼 먹는다. 울릉도에서 산나물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은 나리분지다. 섬에서 유일한 평야 지대인 이곳은 성인봉을 비롯해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나리분지에 가면 마을이 형성돼 있고, 식당도 있다. 이들 식당은 나리분지에서 자란 다양한 산나물로 비빔밥을 낸다. 명이나물, 부지깽이, 취나물, 고비, 삼나물(눈개승마), 더덕, 두릅 등 그야말로 산나물의 향연이 펼쳐진다.

나물은 한국인만 먹어온 식재료다. 예부터 한국인들은 들과 산에서 채취하거나 키운 나물을 볶고, 삶고, 무쳐 반찬으로 만들었다. 국으로 끓여서도 먹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선 나물도 계절마다 맛이 다르다. 햇볕에 잘 말린 나물을 겨울철 물에 불려 조리해 먹으면 봄에 먹는 나물과는 다른 풍미가 느껴진다. 한국인들은 그 맛을 즐기면서 계절을 보낸다. 기실 한식의 정수는 나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나물이 외국에선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요즘,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한식을 내세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들이 나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구하기 쉽고 가격이 싸서 먹었던 나물이 지금은 최고 건강 음식으로 등극했다. 고기 맛이 나는 나물이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맛과 채소에 버금갈 만큼 영양소가 풍부한 게 나물의 특징이다.

나물, 울릉도의 진짜 맛

울릉도에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나물들이 자란다. 대표적인 게 명이나물이다. 이 나물의 정식 명칭은 울릉산마늘이다. 이름엔 유래가 있다. 옛날 울릉도로 이주한 이들이 눈 쌓인 겨울 먹을거리가 부족해 눈을 헤치고 다녔다고 한다. 이때 발견한 것이 바로 명이나물이다. 이 나물로 배를 채우며 하루하루 연명한 울릉도 사람들은 “명(命)이 길어지게 한다”란 의미에서 ‘명이나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쌈이나 장아찌로 조리해 먹는다. 울릉도 사람들이나 즐겨 먹은 명이나물이 건강에 좋다는 정보가 널리 알려지면서 육지에서도 인기 식품이 됐다. 자생하는 명이를 캐는 데 머물지 않고 키워서 소득원으로 삼는 농부들이 늘었다. 특히 명이나물 장아찌는 새콤달콤해 기름진 삼겹살 구이와 찰떡궁합이다.

섬말나리는 명이나물 버금가는 ‘유명 나물’이다. 심지어 국제적인 명성도 얻었다.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섬말나리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식물이다. 국제슬로푸드협회가 지정하는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2013년 울릉도 칡소와 함께 등재됐다. ‘맛의 방주’는 한 지역에서 예부터 소비되어 왔으나 소멸 위기에 처한 가치 있는 식재료를 보존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다. 울릉도 사람들은 섬말나리를 재료로 한 전통 음식을 복원하고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더덕은 한국이 원산지다. 전국적으로 재배되는 더덕은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열량이 낮아 건강식으로 인기다. 더덕을 손질해 납작하게 두드린 다음 매콤달콤한 양념을 발라 굽는 더덕구이가 가장 인기다. 조리하지 않은 생더덕을 양념에 무쳐 먹는 더덕무침은 아삭하면서 향긋하다. 더덕장아찌, 더덕밥 등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 울릉도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더덕 음식이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판매하는 더덕주스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질 좋은 울릉도 더덕을 갈아 만들어 맛과 건강을 다 잡은 음식이다. 이 외에 부지깽이와 삼나물(눈개승마)도 울릉도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식재료들이다.

울릉도 특산식물인 부지깽이나물은 맛과 향이 좋아 식재료로 애용되는 산나물이다. 비타민을 비롯해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40헥타르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울릉도 밭농사 중 소득액 규모가 가장 크다.
© 울릉군

미각의 확장

도동항 인근에는 칡소 전문 식당들이 있다. 차림표에는 약소 구이, 약소 양념불고기 등이 적혀 있다. 약소는 토종 한우 종자인 울릉도 칡소를 말한다. 황갈색 몸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게 특징이다. ‘약소’는 울릉도에서 자라는 각종 산나물과 깨끗한 물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약과 다를 바 없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칡소의 장점을 살피기 전에 한우 얘기부터 해보자. 기원전 2000년부터 한반도에서 사육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한우는 외래종과 섞이지 않은 토종 품종이다. 과거 농경문화 시대에는 밭을 가는 일꾼 역할을 했던 가축이다. 이런 이유로 집마다 재산 1호가 한우였다. 누런색인 황소, 칡소, 몸 전체가 검은색인 흑우 등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멸종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수십 년 전부터 정부와 지자체들이 한우 종자 복원 사업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2006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우리 민족의 문화 중 대표성을 지닌 100가지 상징을 선정하면서 한우도 포함시켰다. 그만큼 한우는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풍미를 제공하는 한우는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요리사들조차 탐내는 식재료다. 양질의 단백질과 미네랄 등 영양소도 풍부하다.

어업 전진 기지인 저동항은 예로부터 오징어잡이 어선들로 유명하다.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은 울릉도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다.

울릉도 특산물을 얘기할 때 오징어도 빼놓을 수 없다. 예부터 울릉도 여행객이 선물용으로 잔뜩 사가는 게 바로 마른오징어였다. 청정한 해풍과 따스한 섬 햇볕에 잘 말려진 오징어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난다. 도톰한 살도 식미를 돋운다. 밤새 잡은 오징어를 바로 손질해 팔기 때문에 신선도가 높다. 오징어를 재료로 하는 음식도 다양하다. 우선 오징어 내장과 갖은 채소를 함께 끓여낸 보양식인 오징어 내장탕이 있다. 신선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음식이다. 여름에는 오징어를 얇게 썰어 찬물에 넣고 밥과 함께 비벼 먹는 오징어 물회가 아주 인기다. 또 오징어불고기, 오징어순대도 있다.

섬이 만들어 낸 음식은 육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질수록 입맛에 맞게 다듬어진다. 하지만 고유성은 훼손되지 않고, 여행자들의 미각만 넓힌다. 섬 음식의 힘이다.

독도새우를 비롯해 울릉도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 코스모스 울릉도에서는 전담 셰프가 울릉도만의 특별한 식재료를 테마로 한 파인 다이닝을 선보인다.
© 코스모스 울릉도

박미향(Park Mee-hyang) 음식 문화 기자
이민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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