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Features > 상세화면

2025 SPRING

천혜의 자연 환경을 품은 도시

경주 여행 하면 흔히 유적지를 돌아보는 역사 기행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곳은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도 유명하다. 산과 바다, 호수와 평야가 두루 어우러져 그 자체로 매력이 넘친다.

경주시 남쪽에 자리한 남산은 해발 468m와 494m 두 개의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6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산이다. 우리나라에서 불교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며, 자연 경관도 빼어나다.
ⓒ 경주시, 사진 박영희

“남산을 보지 않고는 경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경주 시내 남쪽에 있는 남산은 ‘신라의 정신’이라고 할 만한 상징적인 산이다. 신라인들에게 신앙의 대상이었기에 천년 역사 동안 이곳에는 무수한 절들이 세워졌다.

신라가 존속했던 시간만큼 긴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이 산의 범상하지 않은 기상(氣像)은 여전하다. 수많았던 절들은 사라졌지만, 당대인들이 바위에 새긴 부처의 형상과 층층이 쌓아 올린 석탑들은 바위와 나무처럼 산의 일부가 되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깨지고 닳았지만, 그래서 인위적이지 않고 더 자연스럽다. 등산로를 걸으며 만나는 숱한 석불과 석탑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돌이지만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신라인들이 정성을 다해 어루만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솔숲의 싱그러움

남산은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 두 봉우리에서 뻗어 내려오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기암괴석이 웅장하고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아 등산로만 수십 코스에 달한다.

남산 서쪽 기슭의 삼릉숲은 왕릉 3기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다. 이곳은 휘어진 노송들이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 독특한 정취를 담으려는 사진 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게티이미지

남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지 않다.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산 앞에서 자주 멈추고, 오랫동안 응시한다. 그들의 목표는 정상에 닿는 것이 아니라, 남산이라는 ‘노천 박물관’ 관람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분포된 유적과 유물은 약 700점에 이른다. 그중에는 13기의 신라 시대 왕릉도 포함된다. 그 왕릉들을 수만 그루의 소나무들이 수호한다. 남산의 숲을 이루는 수종의 80%는 소나무다. 그래서 남산은 한겨울에도 내내 푸르다.

남산의 솔숲은 강운구(Kang Woon-gu)나 배병우(Bae Bien-u) 같은 국내 대표적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그들의 앵글로 찍힌 솔숲은 붓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그린 수묵화 같다. 곡선과 직선으로 뻗은 나무 기둥들이 조화롭게 얽혀 있고, 그 사이로 온화한 햇빛이 쏟아지거나 어슴푸레한 안개가 감돈다.

특히 삼릉숲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솔숲으로 꼽힌다. 남산 서쪽 기슭에 3기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三陵)’이라 불리는 구역의 숲이다. 하늘을 향해 뻗은 소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반원 형태의 커다란 무덤들은 죽은 이의 공간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한 언덕처럼 푸근해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이른 아침에 삼릉숲을 찾는다. 새벽안개가 채 걷히지 않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아침의 신선한 솔향이 깊은숨을 쉬게 하기 때문이다. 삼릉숲에선 소나무 아래 앉거나 나무 기둥을 안고 오랫동안 명상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상적인 산책

봄에 경주를 찾는 여행자들은 보문호로 간다. 경주를 대표하는 벚꽃 명소이기 때문이다. 수령 50년의 1만 5천여 그루 벚나무가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면 주변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다. 이때만큼은 보문호가 경주의 수많은 천년 유적지들을 압도한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꽃잎들이 수면과 사람들 어깨로 내려앉는다. 호숫가를 걷기만 해도 황홀하다.

호수의 역사는 60년이 조금 넘었다. 보문호는 원래 홍수와 가뭄을 대비해 1963년에 축조한 대규모 저수지였다. 그런데 정부의 ‘경주 종합 개발 계획’에 의해 1979년 보문 관광 단지가 개장하면서 쓰임이 달라졌다. 보문호는 보문 관광 단지의 중심축으로 오랜 시간 시민들과 여행자들의 쉼터 역할을 해 왔다. 경주의 다른 명소들과 견주어 역사는 매우 짧지만, 경주가 관광 도시로 거듭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호숫가에는 전망 좋은 호텔과 리조트,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들을 잇는 산책로는 약 8km에 이른다. 벚꽃이 피는 봄뿐만 아니라 사계절 자연의 변화를 눈으로 감상하며 걷거나 자전거 타기에 좋은 길이다. 호숫가에는 1991년 설립된 우양미술관도 있다.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국내외 원로 및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또한 유럽과 미국의 현대 예술 작품과 1970년대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작까지 두루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미스 반 데어 로에를 사사한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종성(Kim Jong Soung, 金鍾星)이 설계했다. 한국 전통 건축의 구조와 중정의 개념을 빌려온 건축물로 정확한 비례와 섬세한 화강암 마감이 돋보인다. 수변 길을 따라 산책하고 미술관에 들러 전시회 관람까지 하면 호숫가에서 누리는 하루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해진다.

보문호는 야경도 아름답다. 해가 지면 산책로와 그 주변에 조명이 켜져서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보문호는 ‘역사의 도시’ 경주가 아닌 온전히 쉬고 즐기는 ‘휴양지’ 경주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1970년대 말 개장한 보문관광단지는 인공 호수 보문호를 중심으로 240만여 평의 면적에 특급 호텔과 레저 시설, 미술관 등이 들어서 있다. 벚나무가 가로수로 식재되어 봄이면 만개한 벚꽃이 흩날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 경주시, 사진 박춘엽

경주 바다의 숨은 보석

경주는 바다와 접한 고장이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유명한 사적을 둘러보느라 바다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여행자들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경주의 해안선은 30km에 이른다. 경주 바다에는 삼국으로 나누어져 있던 한반도를 통일한 문무왕(재위 661~681)이 용으로 환생해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경주시 양남면의 주상절리군은 규모와 형태에 있어 다른 지역의 주상절리와 뚜렷한 차별성을 지닌다. 10m가 넘는 정교한 돌기둥들이 1.7㎞에 걸쳐 분포해 있으며 주름치마, 부채꼴, 꽃봉오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발달해 있다.
ⓒ 경주시, 사진 이정희

해안선의 대부분은 트레킹 코스로 연결되어 있는데,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구간은 1.7km에 걸쳐 이어진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이 길은 군사 지역이어서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는데, 베일에 싸여 있다가 2012년 공개되었다. 길이 개방되자 경주의 ‘숨은 보석’ 양남 주상절리군이 드러났고, 중요성을 인정받아 그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빠르게 냉각되어 만들어진 오각형, 육각형의 돌덩이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은 무려 2,000만 년 전인 신생대 3기에 형성되었다. 각진 돌덩이는 성냥개비처럼 균일하게 쌓여 부채꼴, 주름치마, 꽃봉오리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주상절리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해안가에 만들어져 매 순간 파도와 만난다. 파도가 주상절리를 덮치며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모습은 눈을 떼기 어려운 절경이다.

유서 깊은 씨족 마을

경주 북쪽 끝 낮은 구릉과 골짜기에 조성된 양동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씨족 마을이다.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가문이 15세기부터 자리 잡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6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큰 변화 없이 주민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유서 깊은 마을이다.

경주 양동마을은 조선 시대 초기에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입향해 대를 이어 살아온 마을이다. 한국의 씨족 마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며, 주민들이 오늘날까지 전통적인 유교적 관습을 지키고 있어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경주시

양동마을의 가치는 자연에 어우러져 전통 문화를 보존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한국인의 지혜에 있다. 마을을 처음 방문한 이방인들은 언덕과 골짜기를 따라 집들이 들어선 입체적인 풍경에 감탄한다. 본래의 지형을 따라 세워졌기 때문에 같은 층위의 집들이 없다. 한 집이 다른 집을 가리는 경우도 없어서 어느 곳이나 햇볕이 잘 들어온다. 또 어떤 집에서나 마을을 감싼 산을 바라볼 수 있다. 구릉 위로 난 마을 길을 따라 오르면 서로 다른 구조와 디자인으로 지은 개개의 고택들을 만날 수 있다.

양동마을에는 조선 초기에 지은 기와집이 원형 그대로 네 채나 남아 있다. 마을의 역사를 함께한 수령 500년을 넘긴 나무도 여러 그루다. 마을 길은 구릉을 넘어 골짜기 아래로 이어진다. 골짜기에는 또 다른 집들이 외지인을 반긴다.

마을의 가장 높은 지대에 서면 경주를 관통하는 형산강의 지류와 드넓게 펼쳐진 평야, 그리고 그 주변의 수려한 산세를 조망할 수 있다. 발아래로는 올망졸망 자리 잡은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보인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시야를 가리는 것,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는 풍경이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경주의 자연 경관은 유구한 문화유산과 더불어 이곳을 특별한 도시로 만든다. 경주는 사계절 내내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며,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을 제공한다.

유승혜(Yoo Seung-hye)여행 작가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