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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PRING

왕실 제사상에서 길거리 음식까지

한 나라의 음식 문화는 수도를 중심으로 꽃핀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만들어 냈다. 이런 동력은 근현대에도 이어져 경주만의 풍요로운 먹거리 문화를 창출했다. 경주 여행에서 미식이 필수인 이유이다.

하우스오브초이는 경주의 명문가 최부자댁의 후손이 설립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한식 파인 다이닝 ‘요석궁1779’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문의 내림 음식을 재해석한 정갈하고 품격 있는 한식을 선보인다.
ⓒ 하우스오브초이

대릉원지구에 있는 신라 왕족 무덤 중 하나인 서봉총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때는 1920년대이다. 일제강점기였던 이 시기에는 유물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봉총의 학술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6년부터 이듬해까지 2년간 이 무덤의 재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로 2020년 < 서봉총 재발굴의 성과: 영원불멸의 성찬 >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500년 전 신라 왕족의 제사 음식이었다. 서봉총에서 돌고래 뼈와 복어 뼈, 성게, 민어 등이 발견되면서 제사 음식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제사 음식을 담았던 사각형 합(盒)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아하고 세련된 모양새였다.

교촌마을은 신라 최초의 국립대학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 최부자 고택을 비롯해 조선 시대의 전통 한옥이 많이 남아 있어 고즈적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 한국관광공사

양반가 내림 음식

정성을 다해 차리는 제사상에 귀한 식재료가 올라갔다면, 평상시 왕실 밥상은 쌀과 나물, 고기나 생선 등으로 구성된 균형 잡힌 소박한 식단이었다. 왕실 밥상인데도 지천으로 흔한 나물이 빠지지 않은 데엔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불교의 영향이 컸다. 스님들의 일상식인 사찰 음식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용도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수행식이다. 육식을 금한 사찰 음식의 주재료는 나물이었다. 그러한 영향으로 지금도 경주의 여러 한식당들은 나물 위주로 맵고 짜지 않은 담백한 음식을 내놓는다.

조선 시대 지배 계급인 양반가의 음식도 경주의 식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양반가 음식은 같은 식재료를 사용해도 지역별로 조리법이 달랐다. 예컨대 닭고기 요리라도 전라도 양반가와 경상도 양반가의 맛이 달랐다. 가풍이 맛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양반가 음식은 종가를 중심으로 후대로 이어졌다.

교동법주는 최부자댁에서 대대로 빚어 온 전통 술이다. 토종 찹쌀과 누룩으로 만드는 이 술은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곡주 특유의 향기가 난다. 맛은 단맛과 약간의 신맛이 난다.
ⓒ 국가유산청

경주를 대표하는 최고 양반가는 이른바 ‘경주 최부자댁’으로 불리는 가문이다. 조선 시대부터 12대에 걸쳐 부를 축적한 이 집안은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을 하며 자금도 지원했다. 12대 후손 최준(1884~1970)은 가문의 모든 재산을 대학 설립에 바쳤다. 그래서 경주 최부잣집에는 항상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칭송이 따라다닌다.

후손 최재량 씨는 2024년 집안 음식을 정리한 책 『경주 최부자 종가 충의당의 음식』을 며느리인 이영주 씨와 함께 펴냈다. 충의당은 이 가문의 출발점이 된 조선 시대 무신 최진립(1568~1636)이 거주했던 가옥의 이름이다. 책에는 이 댁 제사 음식부터 내림 음식까지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제사상에는 가로세로 길이까지 정확하게 재서 정갈하게 조리한 문어, 조기, 쇠고기 등의 요리가 올랐다. 나물 요리도 재료가 콩나물,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 등 다양했다. 한식의 기본인 장도 정월 장, 보리쌀 된장, 찹쌀고추장 등 여러 가지였다.

계절의 변화에 조응해 만든 음식은 더없이 근사한 건강식이었다. 봄 내림 음식엔 고사리 보리밥, 가자미 미역국, 쑥버무리, 완두콩죽 등이 있다. 여름엔 보리 열무김치, 청각 홍합 냉국, 오리 백숙 등이 있다. 가을엔 녹두전과 버섯전골 등이, 겨울엔 갈치식해와 생대구탕 등이 내림 음식이다. 하나같이 품격 넘치는 음식들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식의 진수가 이 댁 밥상에 있다.

음식의 품격

경주 교동엔 한정식 레스토랑 ‘요석궁 1779’가 있다. 한정식은 한식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내는 정식을 말한다. 한국의 전통 밥상이다. ‘요석궁’은 신라 시대 사람인 요석공주가 살던 궁터에 최준의 첫째 동생인 최윤이 분가하여 지은 집 이름이다. 지금 그 후손들이 최씨 가문의 내림 음식을 기본으로 한 한식을 이 레스토랑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한국 전통 가옥에서 맛보는 한정식이다. 운치가 미식의 반일 정도로 근사하고 격조가 높다.

그런가 하면 경주를 대표하는 술도 경주 최부자댁과 관련 있다. 명주로 알려진 교동법주는 최씨 가문의 3대손인 최국선이 조선 숙종 때 낙향해 처음 빚은 술이다. 그는 궁중음식을 관장하는 기관 사옹원의 관리였다. 당시 이 집 마당 우물물이 쓰였다는데, 물의 온도가 사계절 변함없이 같고 맛이 좋았다고 한다. 주재료는 토종 찹쌀이다. 교동법주는 최씨 가문의 가양주다. 가양주란 집에서 만든 술을 말하는데, 양반가는 집마다 술을 빚었다. 그 맛도 다 달랐다. 집마다 레시피가 달랐다는 소리다. 소중한 자산이었던 레시피는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교동법주는 300년 넘는 역사와 뛰어난 맛 등을 인정받아 1986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나라의 크고 작은 행사에 만찬주로 자주 오르는 술이다. 현재 이 가문의 일원인 최경 씨가 교동법주 기능보유자로 맥을 잇고 있다. 교동법주 체험 행사나 시음회마다 내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몰린다.

경주에는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전통 조리법대로 만들어 내놓는 한정식 가게가 많다. 보통 입맛을 돋우는 전채 요리를 시작으로 활어회, 갈비찜, 보리굴비 구이 등의 요리에 각종 밑반찬이 딸려 나온다.
ⓒ 경주시

다채로운 길거리 음식

경주에 고급 한식당만 있는 건 아니다. 경주 별미 중에는 회국수가 있다. 말 그대로 국수에 회가 들어간 음식이다. 다른 말로 놋전국수라고 한다. 고급 식기인 놋그릇이 많이 생산되던 동네의 주민들이 먹던 음식이다.

회국수는 경주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다. 삶은 소면에 채 썬 채소와 김 가루, 참가자미 회를 올린 후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 국수다. 사진 가운데가 회국수이다.
ⓒ Ya Happy Project

경주를 대표하는 국수엔 밀면도 있다. 서울에 평양냉면이 있다면 경주엔 밀면이 있다. 평양냉면이 메밀가루로 면을 만든다면, 밀면은 그보다 저렴한 밀가루로 제면한다. 밀가루가 재료라면 일반 국수와 뭐가 다른지 의문을 표할 이들도 많겠지만, 면만 다를 뿐 맛이 평양냉면집과 비슷하다. 평양냉면에서 면만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명성이 높은 곳은 1998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밀면 전문점 ‘현대밀면’이다. 한국판 미쉐린 가이드로 불리는 식당 평가서 ‘블루리본 서베이’에 10년 연속 맛집으로 선정됐다. 쫄면 명가도 빼놓을 수가 없다. 분식점 대표 메뉴인 쫄면은 탱탱한 면과 달고 매운 양념이 버무려져 혀를 달구는 음식이다. 몇 젓가락만 집어먹어도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다. 요리 방송에도 소개된 바 있는 ‘경주명동쫄면’이 유명하다.

한편 어느 지역이나 그렇듯 경주에도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특히 황오동 해장국 골목에 역사가 오래된 해장국 노포들이 줄지어 있다. 이 거리에서 대표 식당은 ‘팔우정해장국’이다. 실내는 소박하고 음식은 푸짐한 정겨운 식당이다.

채소에 밥과 고기 등을 싸먹는 쌈밥은 한식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음식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 오랫동안 즐겨온 독특한 먹거리다. 경주에도 맛깔난 쌈밥 전문점이 있다. 그중 ‘별채반교동쌈밥’은 경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음식을 만든다. 10가지가 넘는 반찬이 나온다. 전국적인 유명세로 여행객이 많이 몰린다. ‘이풍녀 구로쌈밥’도 가볼 만하다. 생선구이, 잡채 등 15가지가 넘는 반찬과 다양한 종류의 쌈 채소가 나온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황리단길로 불리는 황남동과 인근 골목엔 향긋한 음료와 달콤한 디저트 등을 파는 세련된 공간이 많다. 이곳에는 경주를 찾은 여행객들 대부분이 구입하는 황남빵이 있다. 1939년 황남동에서 만들기 시작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빵의 겉을 만들고, 삶아서 으깬 팥으로 속을 채우는데 달지 않고 담백하다. 이른 아침 찌자마자 판매하는 따끈한 빵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 별미다. 경주의 기념품 같은 빵이다.

경주 향토 음식의 대명사가 된 황남빵은 여행자들이 반드시 사가는 간식거리이다. 1939년 황남동의 한 빵집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1994년 경주의 향토 전통 음식으로 지정되었다.
ⓒ 황남빵

박미향(Park Mee-hyang)음식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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