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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PRING

고색창연한 도시의 젊은 감성

경주가 그저 고풍스럽기만 한 도시는 아니다. 감성적인 카페와 소품 가게, 야경 명소 등을 비롯해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놀거리도 가득해 젊은 세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 경주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힙한’ 도시로 변신 중이다.

황리단길은 경주의 고풍스러운 정취와 트렌디한 감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장소로, 경주 여행 코스의 메카로 불린다.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해 주말이면 젊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국관광공사

경주 구도심 남쪽에 위치한 황남동은 무덤이 지천이다. 이곳은 경주역사유적지구 중 신라 왕과 왕비, 귀족들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 대릉원지구에 속한다. 주변에는 계림과 월성 같은 유적지를 비롯해 한옥마을이 인접해 있다. 그런 까닭에 황남동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각종 건축 행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오랫동안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이런 황남동이 지금은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경주시가 올해 2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설 명절 기간 경주의 주요 관광지를 방문한 관광객은 약 54만 명이다. 여러 관광지 중 가장 방문율이 높은 곳은 약 35만 명이 찾은 황리단길이었다. 불국사 9만 7,621명, 대릉원 5만 3,881명, 첨성대 2만 6,953명, 봉황대 1만 1,422명 등과 비교해 볼 때 황리단길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월성 지구는 신라의 역대 왕들이 거주하던 궁궐이 있었던 자리이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터만 남아 있다. 봄이면 유채꽃이 만발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높다.
ⓒ경주시, 사진 박수용

최신 트렌드의 집합소

황리단길은 경주의 최신 트렌드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황리단길은 공식 명칭이 아니다. 내남사거리부터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 700미터 남짓 이어지는 이 길의 정식 명칭은 ‘포석로’이다. 포석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황리단길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황리단길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중후반 무렵이다. 상권 활성화를 위한 상인들의 부단한 노력과 경주시의 지원에 힘입어 개성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섰는데, 기존에 있던 1960~70년대의 낡은 건물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경관이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서울 이태원의 소문난 명소 ‘경리단길’을 빗대 황리단길이라는 별칭이 생겨났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과거와 현대의 절묘한 하이브리드다.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만 놓고 보면 전주 한옥마을과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천천히 걷다 보면 맛이 다르다. 경주만의 DNA가 느껴진다. 황리단길의 상점 거리는 500번 버스가 지나는 도로가 중심이다. 대릉원 담벼락을 돌아 제과점과 기념품숍이 보이기 시작하면 딱 거기가 시작점이다. 한옥 호텔 황남관까지 이르는 길에는 주전부리를 파는 가게, 개성 있는 카페와 빵집, 기념품이나 신기한 물건을 파는 잡화점, 사진관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메인 도로 옆으로는 군데군데 좁은 골목이 가지처럼 뻗어 있다. 골목 안에는 술집과 레스토랑, 사주 카페, 한옥 게스트하우스, 서점 등이 빼곡하게 포진해 있다. 혈관처럼 고불고불 뻗은 샛길을 탐험하는 맛이 끝내준다. 마치 일본 규슈의 유후인 마을이나 동유럽 옛 도시의 플라자마켓 거리를 빼닮았다. 황리단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즐기는 방식도 다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그냥 마시는 법이 없다. 인증샷이 필수라서 사진 먼저 찍는다. 마시고 먹는 건 그다음이다. 톡톡 튀면서 앙증맞은 가게를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황리단길 투어를 한층 재미있게 해주는 요소는 주전부리다. 경주의 트렌디한 간식거리가 이곳에 다 모여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십원빵이다. 불국사 다보탑이 그려진 십 원짜리 동전을 재현한 빵으로,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 경주의 문화유산을 모티프로 한 도굴빵도 인기다. 이 외에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이색적인 디저트가 많다.

작지만 강력한 페스티벌

황리단길에서는 무려 15만 명이 모이는 축제 ‘황금 카니발’도 벌어진다. 이 행사는 2022년 ‘황남동 카니발’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어 2024년 황리단길 인근 지역까지 장소를 확장하면서 명칭을 바꾸었다. ‘우리 동네 작은 페스티벌’을 표방하는 이 축제는 지역 내 노포들이 주요 무대이다. 카페, 식당, 게스트하우스, 미용실, 주차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소규모 공간에서 진행하다 보니 코앞에서 뮤지션들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

황금카니발은 황남동 일대에서 진행되는 소규모 음악 페스티벌로 국내 최고의 인디 밴드들과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친다. 2024년 3회를 맞이한 이 행사는 도심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황금카니발

무대는 작지만 출연하는 뮤지션들은 국내 정상급 밴드들이다. 지난해에는 김창완밴드, 잠비나이, 추다혜차지스 등이 멋진 공연을 펼쳤다. 고즈넉한 한옥 북카페를 록음악으로 물들인 크라잉넛과 갤럭시익스프레스의 무대도 방문객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황금 카니발은 공연뿐 아니라 대중음악사를 주제로 한 토크쇼, 플리마켓, 전국 유명 브루어리의 수제 맥주 시음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곁들여졌다. 고도(古都)로만 알려진 경주에서 ‘현재 시제’를 만날 수 있어 흥미로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황금 카니발은 동시대 음악이 지역의 역사와 만나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스릴 만점의 놀이기구

경주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경주월드도 있다. 이곳의 연간 방문객은 110만 명으로,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와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에 이어 국내 3대 테마파크로 꼽힌다.

경주월드는 보문관광단지에 있다. 1970~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이곳에서 젊은 시절 오리배를 타고 놀며 데이트를 즐겼다. 지금의 20~30대 연인들은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특히 경주월드의 대표적 어트랙션인 드라켄은 압권이다. 63미터에 달하는 이 기구는 고층 빌딩 21층에 해당되는 높이에서 수직 하강한다. 높이로는 국내 놀이기구 중 원톱이다. 드라켄을 타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올 정도로 인기 있다. 최고 순간 시속은 117km/h, 경사각은 90도에 달한다. 운행 시간 2분 동안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전 세계 롤러코스터의 랭킹을 집계하는 데이터베이스닷컴이 조사한 2022년 랭킹에는 세계 11위에 올라 있다.

보문관광단지에 위치한 경주월드는 1985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개장한 놀이공원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드라켄이다. 63m 높이에서 90도로 수직 하강한다.
ⓒ경주월드

파에톤도 무시무시하다. 온라인 패널 서비스 패널나우가 2023년 10월 3일부터 10월 8일까지 전국 3만 2,2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에서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 톱10’ 조사 결과 5위에 올랐다.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 롯데월드의 자이로스윙과 어깨를 견준다.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들이 더 있다. 360도로 회전하다가 거꾸로 매달리는 크라크도 그중 하나다. 최소한 40분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타야 하는 명물이다. 급격한 각도 변화와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토네이도도 있다. 비교적 최근에 설치된 스콜&하티는 아시아 최초의 싱글 레일 롤러코스터이다. 타고 있으면 숨이 멎는 느낌이다.

보문관광단지에서 자동차로 약 15분 거리에는 야경 명소가 있다. 신라 시대 천문대인 첨성대, 그리고 동궁과 월지이다. 야경을 즐기며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이들로 언제나 북적거리는 곳들이다.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들

경주엑스포대공원은 최근 들어 유명해진 핫플레이스다. 1988년 국제박람회를 계기로 조성된 이곳은 현재 전시·체험·공연 등 다양한 경험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젊은 세대가 이곳에 열광하는 이유는 공원의 상징인 경주타워의 독특한 외관 때문이다. 82미터의 아찔한 높이를 자랑하는 타워는 중심부가 뻥 뚫려 있는 파격적인 설계를 보여준다.

타워의 중심부는 7세기 건립되었던 황룡사 구층 목탑의 실루엣을 음각으로 디자인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주타워를 “탑을 품은 건물”로 부른다. 이 아이디어를 낸 이는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다. 사라져 버린 황룡사 구층 목탑을 현대식 건물에서 되살리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담겼다. 꼭대기 층인 전망대에서는 보문호를 중심으로 자리한 보문관광단지, 경주월드 등 주변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념관도 놓칠 수 없다. 현무암을 이어 붙이듯 쌓아 올린 독특한 외관은 주상절리의 형상이다.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황금빛 격자와 3개의 언덕 형상은 각각 신라 금관과 고분을 상징한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의 백미는 솔거미술관이다. BTS 리더 RM이 방문해 화제가 됐던 곳으로, 아미들의 성지 중 하나다. 현대적인 수묵화로 널리 알려진 박대성 화백의 작품 830여 점이 이곳에 소장돼 있다.

한편 따뜻한 봄날에는 자전거 공원 펌프트랙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젊은이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곳은 통상적인 자전거 공원이 아니다. 면적 7,800㎡ 규모로 전국 최대이며, 난이도별로 코스가 갖춰져 있다. 다양한 형태의 요철을 통과하면서 기술 연마와 더불어 스릴을 즐길 수 있다. 최고의 매력은 무료라는 점이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은 1998년 국제박람회 행사장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미술관, 박물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경주엑스포대공원 내에 자리한 경주타워는 신라 시대 목조 건축물인 황룡사 구층 목탑을 형상화한 건물이다.
ⓒ경주시, 사진 유영님

신익수(Shin Ik-soo)매일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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