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로컬 기업 덕화푸드(Deokhwa Food)는 전통 방식의 명란젓을 되살려내, 명란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은 것으로 유명해졌다. 2011년 수산식품 분야에서 최초로 명장 칭호를 받은 창업주 장석준(Jang Sug Zuen, 蔣錫晙, 1945~2018) 회장의 뒤를 이어 현재는 아들 장종수(Jang Jong Su, 蔣宗洙) 대표가 2대째 덕화푸드를 이끌고 있다.
덕화푸드의 장종수 대표가 명란젓을 활용한 음식들로 상을 차리고 있는 모습. 그는 기업 부설 연구소 설립과 학문적 연구를 통해 명란의 역사와 가치를 조명하는 한편 현대적 레시피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부친 장석준 회장과 함께 오랫동안 잊힌 전통 명란젓 제법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명태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생선이다. 명태의 알집을 명란이라고 한다. 명란에 소금을 뿌려 삭힌 것이 명란젓인데, 오랜 세월 한식 밥상에 한몫을 해온 전통 음식이다. 잘 삭힌 젓갈은 ‘밥도둑’이라고 했던가? 갓 지은 밥에 참기름으로 양념한 명란젓 한 토막을 올려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명란은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소금 역할을 해서 음식의 풍미를 높이기에 요리에도 활용된다. 주로 샌드위치, 파스타, 각종 안주류에 쓰이며 동서양의 경계 없이 맛의 세계를 증폭시킨다.
명란젓은 400여 년 전 조선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으로 건너가 발전했다. 전 세계 명란 생산량의 80%를 일본이 소비하기 때문에 일본 음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원조는 한국이다. 명란젓이 일찍이 조선 시대 왕실과 민가에서 두루 즐기던 흔한 반찬이었다는 사실은 여러 사료에도 나온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 승정원일기(Diaries of the Royal Secretariat, 承政院日記) >는 조선 시대 국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에서 각종 행정 업무를 기록한 일지인데, 여기에 보면 1652년 강원도 진상품으로 명태란(明太卵)이 언급되어 있다. 이는 명란에 대한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제조법에 대한 최초의 기록물로는, 1820년경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徐有榘)가 쓴 수산물 도감 < 난호어목지(Nanhoeomokji, 蘭湖魚牧志) >가 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명태 산지인 함경도와 강원도 일부가 북한에 편입되면서, 이후 무분별한 남획과 수온 상승 등으로 명란은 서서히 우리 밥상에서 사라졌고,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일본식 명란젓이다.
전통 명란의 부활
이 땅에서 사라졌던 조선식 명란젓을 되살려낸 회사가 있다. 명란 전문 기업 덕화푸드는 1993년 부산에서 수산 가공 유통업으로 시작해 2000년도부터는 오로지 명란 한 품목만을 생산해 오고 있다. 창업주 장석준 회장은 1970년대 역수입된 일본식 명란의 제조법을 전수받은 초기 세대의 기술자이다. 그는 우리의 전통 제조법을 접목해 발전시킨 점을 인정받아, 2011년 고용노동부 수산 제조 부문에서 최초의 대한민국 명장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이 부문 유일한 명장이다.
장 명장은 식품 기준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일본에서도 실력을 입증해 일찍부터 일본 수출길을 열었다. 2008년 말부터는 7년간 편의점 브랜드 세븐일레븐으로 유명한 일본 최대 유통 기업 세븐앤아이홀딩스에 PB(자체 브랜드) 제품을 전량 수출했는데, 이는 세븐일레븐 그룹 역사상 명란 PB 제품의 제조를 해외에 의뢰한 첫 사례이다.
덕화푸드가 위치한 부산 감천항의 국제수산물도매시장(Busan International Fish Market)은 수산 물류 및 유통의 중심지로, 전 세계 명란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거래된다. 현재 국내산 명란은 사라졌지만, 러시아 어장에서 오는 배가 이곳을 수출 통로로 사용하는 덕분에 부산이 명란 산지와 같은 효과를 얻고 있다. 러시아산이 70%, 미국산이 30%인 냉동 명태알은 전량 일본과 한국이 수입한다.
“최고의 명란젓 비결은 첫 번째가 우수한 품질의 원물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좋은 명란은 선홍빛을 띠고 알이 탱글탱글하죠. 2018년부터 전 세계에 유통되는 최상급 명태 알집은 저희가 전량 수매하고 있습니다. 선사(船社)들이 깜짝 놀랄 정도죠.”
부친에 이어 가업을 잇고 있는 장종수 대표의 말에서 제품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전통 방식의 조선 명란젓은 일반 명란젓에 비해 발효 기간이 더 길고 염도가 높으며 쫀득하다. 깊은 풍미를 내기 위해 품질 좋은 항아리에서 숙성시키는데, 잘 발효된 명란젓에서는 은은한 향이 풍긴다.
숙련된 기술자들
명란젓 제조 과정은 크게 해동, 염지(鹽漬), 숙성 단계로 구분한다. 냉동 상태의 알집은 적정 온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공간에서 해동을 거친 후 일정 농도의 소금을 뿌려 절인다. 원료 상태에 따라 소금과 물의 양을 조절하고 온도를 달리하는 염지 과정에는 숙련된 경험치와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소금물에 절인 알집은 숙성 과정을 거쳐 맛을 내는데, 이때 소금 외에 청주를 넣으면 백명란이 되고, 소금과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으로 조미하면 양념 명란이 된다. 염지와 숙성 과정을 거친 명란은 알의 성숙도, 입자, 색상, 형태 등을 살펴서 등급을 나누고 검품 후 상품화된다.
“명란은 잘 삭은 해산물 향이 있어야 합니다. 싱싱한 비린내가 살짝 나면서 알알이 톡톡 터질 때 나는 풍미가 중요하지요. 이 같은 명란 입자는 염지 과정에서 결정됩니다.”
워낙 예민한 명란 특성상 덕화푸드의 깐깐한 위생 공정도 업계에서 인정받는 자랑거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내세우는 것은 숙련된 기술자 중심의 시스템이다.
“일부 생산 라인은 기계로 자동화되었지만, 매일 원료에 따라 염지할 배합액을 조절하고, 명란의 등급을 나누는 후반 작업은 숙련된 안목이 아니면 안 됩니다. 20년 이상 숙련된 기술자들이야말로 저희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죠.”
염지와 숙성 과정을 끝낸 명란은 등급을 나누는 선별 과정을 거쳐 상품화된다. 이 후반 공정은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오랜 경험과 숙련된 안목이 필요하다. 덕화푸드에 10년, 20년 넘게 장기 근속한 기술자들이 많은 이유다.
명장 아버지와 명인 아들
장종수 대표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2006년 부친의 부름을 받고 덕화푸드에 합류했다.
“한국환경공단에서 공적자금 운용 업무를 하면서 유학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요. 평소 힘든 내색 한번 안 하셨던 아버님이 임대에서 벗어나 자가 공장을 세우고는 힘들어 하셨어요. ‘함께 해보자’는 말씀에 바로 내려왔습니다.”
부친이 그에게 주문한 과제는 당시 전적으로 일본 수출에만 의존하던 명란젓의 국내 시장 개척이었다. 그는 먼저 6개월간 일본의 앞선 생산 시스템을 배우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명란 공부를 시작했다.
“일본식 명란젓은 소금을 적게 넣고 가쓰오다시와 맛술 등을 넣어 절입니다. 짜지 않은 대신 단맛이 많지요. 요즘 우리가 먹는 명란젓은 이러한 저염식 절임 제조법이 역수입돼 우리 입맛에 맞게 정착한 것입니다. 옛날 맛을 잊지 않은 아버님은 평소 전통 명란젓을 상품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하셨습니다.”
2009년 부자는 명란업계 최초로 기업부설연구소를 만들고 맛 개발에 집중했다. 전통 제조법에 대한 지속적 연구는 천연 발효 유산균을 만들어 내는 성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색소나 방부제 없이 우리 입맛에 맞는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게 됐다. 2012년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화 환율 급락으로 관련 수출업체들이 줄도산했을 때 결국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국내 시장을 염두에 둔 준비 덕분이었다.
방대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거듭된 연구는 마침내 전통 방식의 ‘조선 명란젓’을 되살리는 결실로 이어졌다.
“소금, 고춧가루, 마늘만으로 생선알을 약하게 삭히고 발효시키는 과정은 한반도만의 유일한 방식입니다. 우리 전통 방식으로 재배한 고추와 마늘을 써야 이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죠.”
장 대표는 전통 명란젓 제조법을 계승해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해양수산부로부터 대한민국 수산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국가 공인 명장과 명인에 지정된 유일한 사례다.
“일본식 명란의 염도가 4%라면, 조선 명란은 7% 정도 됩니다. 짠맛이 강하고 질감이 쫀득하죠. 짜지만 건강하게 발효된 전통 식자재는 맛의 깊이가 다릅니다.”
장 명인에게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세계 최고의 명란젓을 만드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가 지금도 명란 공부에 힘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