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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SUMMER

미나리의 보편성

미나리는 독특한 향미와 아삭한 식감이 매력적인 식재료다. 최근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Lee Isaac Chung) 감독의 자전적 영화 ‘미나리’가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미나리가 단순한 식재료를 너머 한국인의 강인한 적응력과 생명력의 상징이 되었다.

들판의 풀 대부분은 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입에 넣으면 쓰다. 어린이가 본능적으로 쓴맛을 거부하는 것도 이러한 독성 식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이다. 인류의 식문화는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먹을 수 없는 식물을 구분하는 지식의 기반 위에 성장해왔다.

미나리와 독미나리는 언뜻 보면 비슷한 모양이다. 줄기 속은 비어있고 잎의 가장자리에는 뾰족한 톱니가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미나리의 이파리는 달걀을 세로로 자른 모양인 반면 독미나리는 길고 끝이 뾰족한 창날 모양이다. 미나리는 식용이고 독미나리는 먹을 수 없다. 미나리와 독미나리는 같은 과 식물이다. 미나리에는 독성 물질이 들어있지 않아서 날로 먹을 수도 있고 익혀 먹을 수도 있으며, 독특한 향미로 인해 예부터 한국에서 인기 있는 식재료였다.

실제로 1920년대 신문에 미나리의 시장가격이 실릴 정도로 흔한 음식이었다. 미나리가 이렇게 인기 있었던 것은 다른 나물보다 향기가 진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독특하기도 하지만, 공심채처럼 속이 빈 줄기채소라서 살짝 데쳐 입에 넣고 씹으면 아삭아삭한 느낌이 무척 상쾌하다.

달면서도 맵고 서늘한 성질의 여름 식재료 미나리는 비타민과 무기질, 섬유질이 풍부하다. 17세기 조선시대 의서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따르면 미나리는 갈증을 풀어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며 두통이나 구토에도 효과적이다 © Shin Hye-woo 申惠雨

미나리 잎의 가장자리에는 뾰족한 톱니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이파리의 모양이 달걀을 세로로 자른 것과 비슷하다.

수분을 머금어 탱탱한 미나리 줄기는 씹으면 아삭한 식감이 상쾌하다. 미나리는 크게 논미나리와 밭미나리가 있는데, 물에서 자라는 논미나리는 줄기 속이 비어있고 밭미나리는 비교적 차있다.

특별한 식감

19세기말 조선시대의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소개된 미나리강회 조리법을 살펴보자. 미나리를 뿌리와 잎을 떼고 다듬어 끓는 물에 데쳐 준비한다. 달걀 지단, 석이버섯, 붉은 고추, 양지머리를 가늘게 채 썰어서 가운데 잣을 넣고 데친 미나리로 돌돌 말아낸다. 이를 접시에 가지런히 담고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는다. 이 요리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다른 재료를 묶어주는 아삭아삭한 미나리이다.

우리는 왜 아삭한 식감을 사랑하는가? 신경문화인류학자 존 앨런(John S. Allen)은 자신의 책 <미각의 지배 (The Omnivorous Mind; 2012)>에서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인간이 오래 전부터 곤충을 즐겨 먹은 영장류라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불을 이용한 조리로 식재료를 원래보다 더 바삭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으며 바삭한 식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신선한 식물이 아삭한 식감을 낸다는 것이다. 수분이 가득 차 세포벽이 부풀어 오른 채소는 씹으면 ‘아사삭’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면서 즙을 낸다. 반대로 오래 보관하여 수분이 빠져나간 채소는 흐물흐물하고 질긴 느낌이다.

수분을 머금어 탱탱한 미나리는 가볍게 데치거나 볶아도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다. 김치나 장아찌로 만들어주어도 아삭함이 유지된다. 새콤한 맛의 유기산이 세포벽을 단단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나리의 아삭한 맛을 더 확실히 즐기는 방법은 재배지로 가서 갓 수확한 미나리를 날 것 그대로 맛보는 것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한재 마을에서 나는 한재미나리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초현리, 음지리, 평양리, 상리 일원을 한재라고 부르는데, 배수가 잘 되는 화산암 토양 특성이 미나리 재배에 알맞다. 미나리는 크게 논미나리와 밭미나리로 나눈다. 자라는 내내 물속에서 재배하는 논미나리는 앞서 설명처럼 줄기 속이 비어있다. 반면 밭미나리는 줄기 속이 비교적 차있다.

한재 미나리는 두 가지를 절충한 방식으로 재배하여 속이 대부분 차있다. 아삭하면서 향이 좋다. 봄에 수확하는 미나리를 구운 삼겹살과 함께 쌈을 싸먹는다. 상추 대신 미나리를 날것 그대로 깔고 삼겹살, 마늘, 된장을 올려 먹으면 미나리의 상큼한 향이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불판에 고기를 구운 뒤에 미나리를 함께 올려서 살짝 익혀서 먹기도 한다.

 

매력적인 향기

미나리의 향기는 테르펜(terpene)이라고 불리는 휘발성 물질 때문이다. 미나리를 한입 넣고 씹을 때 소나무, 전나무, 개입갈나무(cedar)가 울창한 침엽수 숲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피넨(pinene), 미르센(myrcene) 같은 테르펜 물질이 입속에서 진동하기 때문이다. 감귤류 과일, 라임 껍질, 생강, 갈랑갈 느낌을 주는 향기 성분도 함께 들어있다. 그래서 미나리를 넣어주면 요리 속의 비린내를 줄여준다. 미나리를 매운탕 같은 생선 요리에 많이 쓰는 데는 이런 과학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나리의 향긋한 냄새는 구수한 감칠맛을 내는 된장과도 잘 어울린다. 된장찌개에 미나리를 넣어 먹는 사람이야 이미 많이 있었지만, 1939년 4월 2일 조선일보에는 된장에 박은 미나리 요리법이 소개됐다. “미나리를 깨끗이 씻어 한 시간정도 더운 물에 담갔다가 대접에 된장을 깔고 그 위에 얇게 올린다. 그리고 또 다시 된장을 깔고 미나리를 올린 뒤 뚜껑을 덮어둔다. 이틀이 지나서 꺼내 먹으면 맛이 그럴 듯하다. 된장이 좋을수록 맛이 좋다.”

식물 속에 들어있는 이러한 향기 물질은 기본적으로 세균이나 곤충과 같은 외부 침입자들에게 저항하기 위한 무기이다. 그래서 미나리 향은 물속에서 보다 밭에서 기를 때가 더 강하다. 산이나 들판에서 자란 미나리에는 야생이라는 의미의 접두어 돌을 붙여 돌미나리라고 부른다. 돌미나리는 논, 밭에서 재배한 미나리보다 더 향이 강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항성 향기 물질을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미나리에는 향기 물질 외에도 다양한 항산화물질이 들어 있어 항염증, 항산화, 간장보호 효과 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복어 요리에 미나리를 넣는 것도 미나리의 해독 효과로 혹시 복어 독이 남아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나리를 넣는다고 복어의 독을 해독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맛을 더 좋게 하는 용도로 이해하는 게 맞다.

 

달걀지단, 쇠고기 볶음, 버섯 등 가늘게 채 썬 여러 재료를 데친 미나리로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미나리강회는 조선 시대 궁중 수라상에 오르거나 연회에 차려지던 고급 음식이었다. ©(사)궁중음식연구원(Institute of Korean Royal Cuisine)

육즙 가득한 삼겹살과 신선하고 시원한 미나리는 매우 어울리는 식재료다. 깨끗이 씻은 생미나리를 구운 삼겹살에 곁들이거나, 처음부터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어도 좋다. © 유은영(Yu Eun-young)

향이 강한 미나리는 ‘동양의 파슬리’라고도 불리며 최근에는 파스타의 재료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이밥차 (2bob.co.kr)

다진 미나리를 올리브유에 절여 놓은 미나리 페스토는 파스타의 주재료는 물론 바질 페스토나 시금치 페스토처럼 빵에 발라 먹어도 맛있다.

강인한 생명력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란단다.” 정이삭(Lee Isaac Chung) 감독의 영화 <미나리 (Minari; 2020)>에서 할머니가 손자에게 하는 말이다. 낯선 땅 아칸소에 도착한 한국인 가족에게 정착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곳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이민자의 삶은 미나리를 닮았다. 얼핏 미나리는 그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로만 보인다. 하지만 사실 미나리는 주변의 위협과 맞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미나리를 맛본 적 없는 사람에게 미나리와 그걸 먹는 사람이 생소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나리는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가깝게 느껴질 만한 채소이다. 미르푸아, 소프리토에 사용하는 당근과 셀러리가 모두 미나리의 친척이다. 셀러리의 아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나리와도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바질 대신 미나리를 넣어 페스토를 만들거나 오일 파스타에 미나리를 썰어 넣고 함께 볶아도 맛이 아주 잘 어울린다. 세계 여러 지역의 식문화를 비교해보면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미나리>속 이민 가족의 삶을 보면서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것도 인간이 공유하는 그런 보편성 때문이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Shin Hye-woo Illust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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