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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UTUMN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반전이 있는 맛, 게장

겉은 단단한데 속은 뭉개지듯 부드럽다 못해 입안에서 녹아내릴 정도로 연하다. 첫맛은 짭짤하거나 또는 매콤하다가 이내 달착지근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한 입 깨물자마자 실하게 여문 보드라운 살과 내장이 톡 터지며 쏟아지는데, 과연 이 매력적이고 독보적인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한국의 전통음식인 게장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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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게장은 양파, 마늘 등의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양념간장에 싱싱한 게를 담가 숙성시킨 음식이다. 간장의 맛이 깊게 밴 탱글탱글한 게 살과 부드러운 내장의 맛이 매력적이다.

‘게장’에서 ‘장’은 한 자로 ‘장 장(醬)’ 자를 쓴다. 여기서 장은 콩을 주원료로 발효시켜 만든 모든 양념장을 뜻하는 말로 간장과 고추장, 된장이 대표적이다. 콩으로 메주를 쑤어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키는데 간장은 발효시킨 소금물을 체에 걸러 끓인 후 만든 것이다.

한국의 장 문화에서 비롯된 게장

게장의 종류 중 간장게장은 간장에 게를 푹 담가 시간을 넉넉히 두고 숙성시킨 후 꺼내서 먹는 것으로, 오랜 숙성 시간과 작업 과정을 거쳐 완성도 높은 맛을 내는 한국의 발효 문화와 많이 닮아있다. 양념게장이라고 부르는 매콤한 버전의 게장 역시 고추장과 간장을 기본으로 사용해 맛을 낸다.

그래서 게장이라는 음식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장 문화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장에 싱싱한 게를 넣고 절이는 간장게장이나, 고추장과 간장, 그 외에 단맛과 감칠맛을 내는 재료를 넣고 버무린 양념게장은 한국인의 DNA에 각인 된 ‘발효 장’ 문화가 한식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간장과 싱싱한 게가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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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간장게장은 살아 있는 게로 만들었으나, 최근에는 제철에 어획하여 급랭한 게를 이용해 만든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게장은 크게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으로 나뉜다. 간장게장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간장에 게가 전부 잠길 만큼 푹 담근 상태에서 며칠간 냉장실에서 숙성시킨 후 먹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싱싱한 게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맛있는 간장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간장게장용 간장은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보다 가정에서 메주를 띄워 직접 만든 간장으로 담그는 게 훨씬 맛있다. 간장은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감칠맛은 강해지고 염도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 묵힌 간장을 한국에서는 ‘씨간장’이라고 부른다. 이 씨간장에 양파와 대파, 사과, 마늘, 고추 등을 함께 넣고 한 차례 끓인 후 식혀 여기에 살아있는 신선한 게를 넣고 냉장실에서 숙성시킨다.

게장을 전통으로 담그는 집에서는 장독대에 씨간장과 게를 넣고 묵힌다. 이때 소고기 몇 조각을 함께 넣는데 살아있는 게들이 며칠 만에 이 소고기를 다 먹어 치운다고 한다. 소고기의 영양분을 섭취한 게살은 일반 게보다 훨씬 단맛이 돌고 탱글탱글한 식감이 일품이다.

최근엔 좀 더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단맛을 내기 위해 간장을 끓일 때 설탕이나 물엿, 요리용 술 등을 넣기도 한다. 이렇게 끓여낸 간장 양념을 식힌 뒤 게를 넣고 냉장실에서 숙성시키면 끝이다. 숙성 기간은 평균 2~3일 정도, 그러나 오래 숙성할수록 간장양념이 게의 속까지 잘 배어들기 때문에 그 이상을 숙성시키는 경우도 많다.

 

간장게장을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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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난 게딱지 밥이다. 게의 등껍질에 남아 있는 간장과 내장에 흰 밥을 넣어 비벼 먹는 것으로, 인기가 많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단단한 껍질을 뚫고 속살까지 적절하게 잘 절여진 게장을 먹을 땐 우선 등껍질을 분리한다. 그리고 몸통을 양쪽으로 잡아 가위로 절반을 가른다. 게 몸통 한쪽을 두 손으로 잡고 쭉 짜내면 간장 양념이 고루 밴 게의 생살과 연한 주황빛을 띠는 내장이 물밀듯이 쏟아지는데 갓 지은 뜨끈한 쌀밥 위에 올려 한 입 떠먹으면 그 자체로 극락의 맛이다. 그 어떤 산해진미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감칠맛이 뛰어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간장게장을 제대로 즐기는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맨 처음 분리해 놓았던 게의 등껍질에는 게의 내장과 간장 양념이 남아있는데, 게장의 진짜 별미는 이 껍질에 붙은 고소하고 크림 같은 내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등껍질에 밥을 넣어 비벼 먹는다. 이것을 두고 ‘게딱지 밥’이라고 부른다. 등껍질에 붙은 고소한 내장과 게살에 참기름(볶은 참깨를 압착해 뽑아낸 한국식 오일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김, 밥을 넣고 비빈 게장 비빔밥도 인기 메뉴다. 일부 게장 전문식당에선 여기에 날치알을 넣어 톡톡 터지는 식감을 살리기도 한다.

간장게장은 맛있게 숙성된 간장 양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보드라운 게의 생살과 고소하고 신선한 내장 맛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싱싱한 제철 꽃게를 사용한다. 특히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꽃게가 많이 잡히는데, 알이 꽉 찬 제철 암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은 가히 최고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무침 요리에서 시작된 양념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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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달콤한 양념으로 간장게장만큼이나 인기 있는 양념게장은 일부 지역에서 먹던 무침요리에서 유래됐다. 간장게장처럼 숙성하지 않고 바로바로 무쳐 먹는 요리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원래 게장 하면 바로 간장게장이 떠오를 만큼 간장게장은 대표적인 게장 요리에 속했다. 그러나 간장게장과는 전혀 다른 맛과 매력을 지닌 빨간 양념의 게장 요리가 나오면서 이와 분리하기 위해 기존 게장의 명칭을 간장게장으로, 그리고 빨간 양념의 매콤한 게장을 양념게장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양념게장은 게장의 원조 격인 간장게장보다 역사가 짧은 편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선 예부터 회나 황태를 고춧가루나 고추장 양념에 매콤하게 무쳐 먹었는데, 회나 황태 대신 꽃게를 무쳐서 먹기 시작한 것이 바로 양념게장의 출발이다. 당시엔 양념게장이 아닌 ‘게 무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매콤한 양념에 회를 무치면 회 무침, 황태를 무치면 황태 무침이 되듯이 게를 무쳤기 때문에 말 그대로 게 무침이 된 것이다.

사실 양념게장은 간장게장과 다른 점이 많다. 간장게장이 간장에 게를 숙성시켜 먹는 음식이라면 양념게장은 매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려서 바로 먹는 음식이다. 게의 생살이나 내장 맛을 즐기기보단 특유의 달착지근하면서 은은하게 매운맛이 도는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 맛으로 먹는다. 양념 재료는 집마다 차이가 있는데 보통은 고춧가루와 고추장, 간장, 설탕, 마늘, 파, 양파, 물엿 등을 넣어 만든다. 게무침의 형태였던 초창기 때보다 현재는 양념의 농도가 짙어지고 질감이 좀 더 끈적해진 것이 특징이다.

양념게장용 게는 주로 크기가 작은 게를 사용하며 등껍질과 아가미, 배딱지 전부를 제거한 후 몸통을 절반 또는 1/4 크기로 작게 자른 뒤 양념에 버무린다. 달달하면서도 매운 양념장을 입힌 이 양념게장 역시 중독성 있는 맛으로 간장게장만큼이나 인기가 높다.

 

한국의 다양한 게장 전문점

 

게장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니아층도 탄탄한 음식이라, 한국엔 게장 전문점이 매우 많다. 간장게장 한 마리에 4만 원이 훌쩍 넘는 고급 식당부터 1인 기준 1~2만 원대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는 무한리필 식당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엔 간장게장 식당이 줄지어 있는 ‘게장 골목’도 형성돼 있다. 그중 어느 집이 가장 먼저 게장을 팔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원조집 논란은 늘 있었지만, 중요한 건 게장 골목에 있는 식당 전부 항상 만석일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는 것이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게장 식당으로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진미(眞味)식당이 있다. 이곳은 꽃게 제철인 6월과 12월에 꽃게를 대량으로 공수하여 영하 35도에서 급랭해 살아있는 게만큼이나 신선한 선도를 유지하여 게장을 담근다. 간장게장 정식을 주문하면 간장게장과 함께 포슬포슬한 달걀찜, 꽃게 찌개(게와 김치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음식으로 ‘게국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리굴젓(굴을 고춧가루와 소금 등에 절여 만든 젓갈), 가시파래(김과 유사한 모양이지만, 가시파래 특유의 식감과 향이 있다) 등 한 상 푸짐하게 차려진다. 가시파래에 밥과 어리굴젓 그리고 달착지근하고 보드라운 게살을 올려 싸 먹으면 아주 맛있다. 이 식당은 ‘미쉐린 서울 2023’에 등재되기도 했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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