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 플랫폼마다 경쟁하듯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고 이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연애, 결혼이라는 현실과 이상 간 괴리의 대리만족으로 풀이된다.
과거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난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환승연애 2 >포스터와 커플이 되어야만 나갈 수 있는 외딴섬, ‘지옥도’에서 펼쳐지는 솔로들의 솔직하고 화끈한 데이팅 리얼리티 쇼인< 솔로지옥 2 >포스터.
ⓒ 티빙, ⓒ 넷플릭스
현재 방송되었거나 방송 중인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연애 리얼리티 장르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 이 OTT 채널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2022년 한해 방영된 프로그램만 봐도 TVING의< 환승연애 2 > ,< 러브캐쳐 인 발리 > , 넷플릭스의< 나는 SOLO > ,< 솔로지옥 2 > , MBN< 돌싱글즈 3 > , Wavve의< 남의 연애 > ,< 메리퀴어 > ,<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한국 연애 리얼리티의 두 날개
반경 10m 안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가오면 알람이 울리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웹툰의 실사판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인<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 >
ⓒ 웨이브
수많은 프로그램 중 지금의 광풍을 이끈 주역은 단연<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시리즈다. 첫 방영과 함께 시즌 2로도 이어져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모두 OTT라는 플랫폼에서 방영되어 그간 공중파에서 담을 수 없었던 시도를 담았다. 선택적인 시청을 전제로 하는 OTT는 시청 연령 제한만 분명하다면 수위를 제재받지 않는 자유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대부분 멜로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감정적 교류 정도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기존의 프로그램이 처음 만난 평범한 남녀의 연애 과정을 담았다면,< 환승연애 > 는 헤어진 커플들이 한 공간에서 지내며 다른 이를 만나 ‘환승’하거나 혹은 헤어진 채 현실로‘복귀’하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헤어진 연인이 내가 아닌 다른 이와 가까워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는 감정적 자극의 수위가 높은 프로그램으로, 기존의 미디어라면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프로그램이었다. 또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솔로지옥 >시리즈는 ‘한국판< 투핫 > ’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출이나 스킨십 수위를 높여 놓았다. 지옥도에서 만난 남녀가 서로 선택해 매칭되면 천국도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내세웠다. 감정적 교류만이 아니라 섹시한 몸을 의도적으로 노출해 보여주기도 하고 남녀의 스킨십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두 프로그램은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노출 수위는 물론 다양한 콘셉트로 차별화 하며, 이혼남녀, 이별을 고민 중인 커플, 성소수자, 양성애 같은 다양한 출연자 풀을 갖게 됐다.
이 모든 것은 놀랍게도 단 1년 만에 벌어진 현상이다.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연애 리얼리티는 날개를 달았고, 소재, 수위, 자극적인 면에서 꽤 오래도록 닫아뒀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 이라는 두 날개가 펼쳐놓은 연애 리얼리티는 한국 예능의 신세계를 펼쳐 놓고 있다.
연애 예능의 변천사
그간 연애 예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맞선, 미팅, 소개팅 등 익숙한 연애 문화에서 착안한 MBC< 사랑의 스튜디오 > (1994~2001)는 일반인들이 스튜디오에서 대화를 나누고 게임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는 단순한 형태였는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예능적인 재미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일반인 대신 연예인들이 출연해 매력을 발산하고 게임을 하며 커플 매칭을 하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으로 변모했다.
이 시기 해외에서는 일반인들의 수위 높은 사생활이 공개되는 리얼리티쇼가 유행했지만, 한국은 지상파 방송의 제재로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여전했고, 이에 해외 리얼리티쇼를 한국 정서에 맞는 수위로 조정하여 수용하기 시작했다. 2008년 방영됐던 MBC< 우리 결혼했어요 > 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인 대신 연예인이 출연해 가상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7년 시즌4까지 방영되었는데, 그 사이 방송가에서도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리얼리티쇼는 ‘관찰카메라’라는 덜 자극적인 표현으로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정착해갔고, 2011년 한국적 연애 리얼리티쇼로 SBS< 짝 > 이 등장했다. ‘애정촌’이라는 특정 공간에 일반인 남녀 출연자들이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담은 포맷으로 사실상 현재 유행하고 있는 연애 리얼리티의 형태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일반인의 과도한 사생활 노출이라는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한동안 주춤하기도 했다. 이후 2017년 현실 연애를 한편의 멜로 드라마처럼 연출한< 하트시그널 > 과 같은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다. 일반인의 리얼리티와 다양한 연출,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지금의<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 이 등장한 셈이다.
연애 리얼리티 봇물과 실제 연애, 결혼관의 괴리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러브캐처는 머니캐처를 피해 진정한 사랑을 찾고, 머니캐처는 러브캐처를 유혹해 상금을 획득하는 리얼 연애 심리 게임< 러브캐처 >
ⓒ 티빙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열풍은 실제 청춘남녀들이 연애, 결혼에 열의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의 혼인율은 갈수록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혼인 건수는 192,507건으로, 10년 전인 2011년 329,087건 대비 무려 134,566건(41.6%)가량 줄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혼인율이 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청년층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연애는 물론이고 결혼이나 출산 등은 모두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하지만 최근 취업 경쟁이 치열해진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생존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다. 결국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열풍은 실제 연애를 하기 어려운 이들의 대리 만족 의미가 더 강하다는 뜻이다.
또한 최근 1년간 쏟아져 나온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 최근 한국인 청년들이 가진 연애관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다. 남녀 간의 사랑 표현 방식뿐만 아니라 헤어진 후에도 관계를 이어 나가는 쿨한 모습이나 스킨십, 혼전 동거 등 기성세대들보다 열려 있는 면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이성애는 물론이고 양성애, 성소수자 같은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모습들도 보인다.
한편 K-콘텐츠의 관점으로 보면 연애는 본래 중심적인 위치에 있던 소재였다. 지금 봇물이 터지듯 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이미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K-드라마들이 그 증거다.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먼저 시작한 해외의 프로그램에 비하면 아무래도 문화나 정서적인 이유로 제한적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한국인만의 남다른 감수성을 강점으로 로맨틱 코미디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덕현(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