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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AUTUMN

마니악한 장르를 대중적으로 만든 K-오컬트의 세계

올해 개봉한 장재현(張在現 Jang Jae-hyun) 감독의 영화 < 파묘 (破墓 Exhuma) > (2024)는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최근 한국의 오컬트 영화는 공포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기보다, 다양한 요소를 결합하여 대중이 즐길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오컬트가 마니악한 장르라는 편견을 깨고 있다.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영화 < 파묘 (破墓 Exhuma) >(2024). 오컬트 장르에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재미요소를 더해 K-오컬트를 완성했다는 평이다.
ⓒ 주식회사 쇼박스

과거 “뭣이 중한디”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었던 영화 < 곡성(哭聲, The Wailing) >(2016)은 680만 관객을 기록하며 K-오컬트가 거둘 수 있는 최대의 성공으로 여겨진 바 있다. < 곡성 > 개봉 1년 전에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黑司祭們 The Priests)>이 거둔 540만 관객 흥행을 넘어선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장 감독이 다시 들고 온 영화 < 파묘 >는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 1,190만 관객이 영화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컬트 장르를 고집해 온 장재현 감독만의 색깔이 분명히 느껴지는 대목이고, 그것이 이러한 놀라운 흥행을 가능하게 한 저력이었다고 여겨진다. 그건 바로 마니악한 장르로 여겨지던 오컬트를 대중적으로 해석해 낸 그만의 방식이다.

오컬트에 장르적 재미를 더하다

< 파묘 >는 무당(巫堂 한국에서 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과 풍수사(風水師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좋은 터를 잡아 주는 사람) 그리고 장의사(葬儀師 장례 의식을 전문적으로 도맡아 하는 사람)가 등장하고 이들이 귀신 같은 존재들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으로 분명 오컬트 장르의 색깔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특이한 건, 오컬트 특유의 마니아적인 공포 속으로 관객들을 빠뜨리기보다는 훨씬 더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장르물의 재미요소를 더했다는 점이다. 영화가 입소문을 탄 후 관객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MZ세대 무당 화림(김고은 金高銀 Kim Go-eun)과 봉길(이도현 李到晛 Lee Do-hyun), 어딘지 정감이 가는 꼰대 풍수사 상덕(최민식 崔岷植 Choi Min-sik), 감초 같은 해학이 묻어나는 장의사 영근(유해진 柳海真 Yoo Hai-jin)을 일컬어 ‘묘벤져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컬트 특유의 공포물이 갖는 오싹함이 있지만, 이들 묘벤져스의 장르적인 재미를 따라가면 마치 저 귀신과 치고받고 싸우는 액션물 같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영화 후반부로 가면 묫자리를 잘못 써서 흉흉해진 집안 이야기를 넘어서 일제 잔재의 과거사를 파헤치는 이야기까지로 확장된다. 일제의 쇠말뚝에 의해 끊긴 민족정기를 잇기 위해 묘벤져스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는 냉혹한 일본의 정령과 싸우는 민족적인 영웅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장르적 재미를 더한 영화는 공포를 줄이는 대신 대결 구도를 선명히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 됐다. 이것은 < 검은 사제들 >, < 사바하(Svaha: The Sixth Finger) >(2019)에 이어 < 파묘 >까지 이른바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3부작에서 공통으로 느껴지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건 최근 K-오컬트라는 지칭이 생길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한국적 오컬트의 특징이기도 하다.

범죄물과 결합한 K-오컬트

K-오컬트는 죽음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종종 범죄물과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곤 한다. SBS에서 방영된 김은희(金銀姬 Kim Eun-hee) 작가의 드라마 < 악귀(Revenant) >(2023)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스테리한 댕기를 만진 후 귀신이 든 주인공과 귀신을 보는 민속학자 그리고 강력범죄수사대 경위가 연달아 발생하는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여기서 악귀는 자신이 깃든 자의 욕망을 들어주면서 점점 존재가 커지고, 주인공이 가진 세상에 대한 욕망과 분노에 반응한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만으로 실제 악귀가 그걸 실행해내는 걸 알게 된 주인공은 민속학자의 도움을 받아 악귀와 싸워나가게 된다. 이건 오컬트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저주를 악귀라는 존재로 해석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범죄와 오컬트의 결합은 일찍이 김홍선 감독의 드라마 < 손 the guest >(2018)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진 귀신에 빙의된 자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막으려는 이들의 협업을 그렸던 작품이다.

이 두 드라마는 범죄물이 접목된 K-오컬트로서 도저히 인간이 저지른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잔혹한 범죄들에 대한 비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처럼 K-오컬트는 그저 자극적인 공포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의미까지 담아내기도 하는데,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K-오컬트가 되기까지

오컬트라고 하면 악령 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고 이에 맞서는 사제들의 구마 의식 같은 것을 소재로 하는 장르로 받아들여지곤 했지만, K-오컬트는 여기에 한국적인 토속적 색깔을 더해 넣는다.

< 파묘 >에도 등장하지만, K-오컬트의 단골 소재처럼 나오는 무속인들의 굿 장면이 대표적이다. 고조되는 북소리와 흥분시키는 춤사위를 더해 강력한 에너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무속인들의 세계는 영화 < 곡성 >에서도 등장해 세계인들을 매료시킨 바 있다. 인간의 세계와 귀신의 세계 사이를 잇는 존재로서 무속인들이 보여주는 한국의 샤머니즘은 전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K-오컬트만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 파묘 >는 영화 스토리 뿐만 아니라 가죽 자켓, 실크 셔츠, 청바지, 컨버스 운동화 등 기존 무속인의 틀을 깨고 주인공 무속인 화림의 개성을 살린 스타일링도 관객의 주목을 받았다.
ⓒ 주식회사 쇼박스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오컬트라는 장르를 구마 의식이나 사제, 악령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칭한다면, 과거 1998년에 개봉한 < 퇴마록 >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는 3명의 퇴마사가 등장하는데, 여자의 혼이 봉인된 칼을 사용하는 무사, 기도로 악마와 싸우는 신부 그리고 부적술과 독심술을 사용하는 아이가 그들이다. 즉 서구의 신앙과 우리네 토속신앙을 접목하려는 K-오컬트의 노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K-오컬트의 또 하나의 특징은 < 파묘 >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보다 대중적인 장르들을 결합해 B급 장르라는 한계를 넘어서려 한 점이다. < 퇴마록 >이 오컬트 장르가 아니라 판타지 액션 장르로 대중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2015년 방영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 역시 사제복마저 멋진 수트처럼 소화해 낸 장르적인 해석으로 500만 관객을 넘기는 흥행을 기록했다.

악령이 든 소녀의 구마의식을 그린 오컬트 영화 < 검은사제들(The Priests) >(2015).
ⓒ 영화사 집

K-오컬트는 토속신앙이나 민담, 설화 같은 고전에서 재해석해 낸 캐릭터들 같은 한국적인 색채를 더해 넣으면서, 동시에 마니악한 B급 장르가 아닌 보다 대중적인 장르로 접근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그래서 로컬 색깔이 갖는 차별성은 물론이고 글로벌하게 이해되는 장르의 보편성까지 아우르는 세계가 되었다. 이것은 현재의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 요구하는 것으로서 K-오컬트가 왜 경쟁력을 갖게 됐는가를 설명해 준다.

정덕현 (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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