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는 가면 쓴 정체 모를 출연자의 절창에 열광하고, 음치일 줄 알았던 일반인 출연자의 놀라운 노래실력과 사연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음악의 힘이다. 그러나 때론 지나친 오락성과 느슨한 진행이 시청 피로감을 낳기도 한다.`
“우와,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복면가왕>(MBC) 3라운드를 지켜보다 기어이 소리를 질러버렸다. 세상에나,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임재범의 ‘고해’를 멋들어지게 부른 ‘번개맨’이 전설적 록밴드 스틸하트의 보컬 밀젠코 마티예비치라니. 우주 어느 별에나 있을 법한 그가 한국의 TV 프로그램 무대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내 가슴은 펄떡거렸다. 그는 비록 준결승에서 탈락했지만, 방청객은 세계적 히트곡 ‘She's Gone’을 현장에서 원곡 가수의 목소리로 듣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방청객의 흥분과 열광은 떼창으로 나타났다.
추리하며 노래 듣기
<복면가왕>은 TV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2009년 음악 전문 방송국 엠넷(Mnet)의 <슈퍼스타 K>가 불을 지핀 리얼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동안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몇몇 프로그램은 단명에 그치기도 했으나, <나는 가수다>, <히든 싱어> 를 비롯해 대체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 음악의 폭 넓은 확산에 이바지했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해 선보인 <복면가왕>과 <너의 목소리가 보여>(너목보․ Mnet, tvN)는 추리하는 재미를 가미한 새로운 스타일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끌었다. <복면가왕>에는 가수를 비롯한 유명인이 출연하고, <너목보>에는 일반인이 참가한다. 전자는 노래 잘하는 사람끼리 벌이는 경연이고, 후자는 노래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퀴즈다. 둘의 공통점은 각기 연예인 판정단, 또는 초대가수가 추리를 한다는 것. 전자는 가면 속 인물이 누구인지, 후자는 출연자가 실력자인지 음치인지 알아맞힌다.
<복면가왕>에는 모두 8명이 출전해 4개 조로 나뉘어 1대 1일 대결을 벌인다. 각 조에서 이긴 사람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2주 동안 1, 2, 3라운드를 거쳐 가왕 결정전을 치르는데, 경쟁에서 패한 출연자들은 복면을 벗어야 한다. 기존의 가왕을 제패한 우승자는 새로운 가왕으로 등극해 황금가면을 물려 받는다. 다음 회에는 새로운 출연자 8명이 같은 방식으로 가왕에 도전한다. 각 단계의 승자는 연예인 판정단과 일반인 청중이 투표로 정한다.
반전의 쾌감
처음엔 뭐하나 싶었다. 얄궂은 가면에 유치하다 싶은 닉네임. 게다가 우스꽝스러운 복장은 경연의 긴장도를 떨어뜨려 진지한 몰입을 방해했다. 이색적으로 보이긴 했으나 상당히 어설펐다.
대중적 관심의 계기는 ‘클레오파트라’의 4연승이었다. 복면의 주인공이 대중 음악 팬들에게 ‘보컬의 신’으로 인정받는 김연우라는 소문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면서 흥행가도가 열렸다.
이후 ‘코스모스’(거미․4연승), ‘캣츠걸’(뮤지컬 배우 차지연․5연승), ‘음악대장’(하현우․5월 29일 현재 9연승)이 다승왕 계보를 이으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조장혁, 신효범, 조관우 등 톱 클래스 가수들의 등장과 젊은 층에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짱짱한 노래실력도 흥행 요인이었다.
<복면가왕>의 매력 포인트는 반전이다. 이를테면 초반에 탈락한 사람이 유명 가수라든지,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한 사람이 배우나 아나운서, 스포츠선수, 혹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 시청자는 놀라움과 더불어 반전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단점이라면 느슨한 진행과 긴 방송 시간. 약방의 감초 같은 연예인 판정단의 관전평은 프로그램의 재미를 배가하는 데 한몫 하지만, 비슷비슷하고 시시껄렁한 잡소리는 종종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는 복면 쓴 출연자의 썰렁한 개인기나 연예인판정단과 사회자 사이에 오가는 무의미한 말장난도 마찬가지다. <복면가왕> 방송시간은 1시간40분. 8명이 토너먼트를 벌여 우승자를 가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노래 외적인 요소를 조금만 줄인다면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무대
<너목보>는 매회 초청가수가 나와 7~8명의 일반인 출연자 중 누가 실력자이고 음치인지 맞히는 프로그램이다. <복면가왕>의 연예인 판정단과 비슷한 음치 수사대가 다양한 추리로 초대가수의 판단을 돕는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실력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반전을 맞는 경우가 많다.
<복면가왕>과 마찬가지로 총 4라운드에 걸쳐 진행되는데, 라운드마다 추리의 단서가 다르다. 1라운드 단서는 외모.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긴 하지만, 출연자들의 각양각색 포즈를 보고 음치 2명을 지목한다. 2라운드에서는 남은 출연자들의 립싱크를 보고 판단한다. 이때 실력자는 자신의 목소리에, 음치는 남의 목소리에 맞춰 립싱크를 한다. 3라운드에선 사진이나 문서, 주변사람 얘기 등 갖가지 증거로 판단한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실력자로 선정되면 초대가수와 듀엣무대를 꾸미는 영광을 누린다. 이때 진짜 실력자면 음원 발매의 기회를 얻고, 음치면 500만 원을 받는다.
<너목보>는 <복면가왕>보다 반전의 매력이 더 크다. 노래를 잘하지 못할 것으로 짐작한 사람, 음치라고 예상한 사람이 엄청난 실력자임이 드러날 때 시청자는 충격과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 대상이 주부, 회사원, 식당 종업원, 택배 아르바이트 대학생 등 평범한 사람이기에 감동의 향기가 진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현실의 장벽에 막혀 가수의 꿈을 펼치지 못한 사람들이다.
지난 1월 하순 끝난 시즌2에서는 ‘고음도사’ 김청일(중국집 종업원), ‘신바람 박사’ 최형관(한국수자원공사 직원)의 소름 끼치는 고음이 시청자를 경악시켰다. 또한 ‘에이미 와인하우스’ 문수진(여고생)의 깊이 있고 감칠맛 나는 허스키 보이스, ‘응답하라 삼천포’ 전상근(대학생)의 잔잔하지만 울림이 풍성한 중저음, 국악과 가요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준 ‘사과아가씨’ 이윤아(국악 가수)의 청아한 음색이 돋보였다.
음악성과 오락성
<너목보>의 단점은 지나친 오락성이다. 아무리 재미를 추구하는 쇼라지만, 음치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마치 ‘최대한 못 부르기 경쟁’이라도 하듯 꽥꽥거리는 모습은 종종 거슬린다. 자연스럽지 않으면 불편해지고 재미와 감동이 덜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뭐든 같은 패턴이 지속되면 식상한다. 프로그램이 진화할수록 시청자도 진화한다.
이 두 프로그램은 중국과 태국으로 포맷이 팔려나가 1월부터 태국에서, 3월부터 중국에서 방송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아시아권의 몇몇 다른 나라들도 현지판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각기 어떻게 변용돼 나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