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트 토이 신(scene)은 해외에 비해 출발이 늦은 편이지만, 꾸준히 성장하며 발전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으며 협업하는 작가들도 여럿이다. 올해로 결성 18년째인 핸즈인팩토리(Hands In Factory)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조형미가 뛰어난 피규어를 넘어 삶을 매개하는 아트 토이 작업을 선보인다.
2008년 결성된 핸즈인팩토리는 한국 아트 토이 신의 1.5세대에 속한다. 업템포(사진 오른쪽), 락쿤, 하종훈(사진 왼쪽) 세 사람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팀을 이끌어간다. 이들은 국내외 전시 및 글로벌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작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아트 토이는 창작자의 철학이 깃든 장난감이다. 작가의 세계관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조형화된다는 점에서 단순히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입체화한 피규어와는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 서브 컬처로 치부되었던 아트 토이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2000년대 중반부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신규 컬렉터층으로 등장했고,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로써 소수의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향유되던 아트 토이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핸즈인팩토리는 국내 아트 토이 분야의 현재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크루이다. 2008년 결성된 이 그룹은 업템포(UpTempo, 본명 이재헌), 락쿤(RocKOON, 본명 박태준), 하종훈(Ha Jong-hun) 세 사람이 함께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은 자유로운 스트리트 컬처를 원동력 삼아 한국 아트 토이 신의 새 지평을 활짝 열어가고 있다.
아트 토이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시작했나?
업템포: 우선 평면의 그래픽 디자인을 입체로 만들어 현실 세계로 불러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아트 토이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와 주제를 구현하는데, 이런 점을 젊은 층이 힙하다고 느끼며 열광한다. 아트 토이 문화의 기반이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마치 악보를 읽지 못하는 이들이 기존 질서에 반하는 랩을 만들고, 오늘날 힙합이 전 세계를 관통하는 장르가 된 것처럼 말이다. 아트 토이도 일종의 ‘카운터 컬처’인 셈이다.
또한 아트 토이는 팬들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의 대표적 캐릭터 ‘러닝 혼즈(Running Horns)’는 ‘Run again and the again’이 슬로건이다. 내 작업을 좋아해 주는 이들에게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당신의 속도대로 꿋꿋하게 달려라”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업템포 작가의 대표 캐릭터는 뿔 달린 초식 동물을 의인화한 ‘러닝 혼즈’다. 최근에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을 캐릭터에 담아내고 있다.
핸즈인팩토리가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종훈: 한마디로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아트 토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힘들 때도, 돈이 되지 않을 때도, 어떤 조건에도 상관없이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 자체가 흥미롭다. 만들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른다. 이것이 꾸준히 창작을 이어올 수 있었던 또 다른 원동력인 것 같다.
각 캐릭터들의 성장과 세계관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업템포: 보통 아트 토이 작가들은 캐릭터를 창조할 때 자신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요소를 투영한다. 내 경우도 과거에는 스트리트 컬처의 반항적 성격을 표현하거나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인형 놀이하듯 캐릭터에 입히곤 했다. 그래서 초기 작품에는 농구 시합하는 청년들이나 래퍼의 모습을 한 러닝 혼즈가 많았다.
최근에는 우편 집배원이나 정비사 같은 새로운 캐릭터가 생겨났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적 기준이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멋지게 보이더라.
하종훈: 도마뱀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 ‘하자드(Hazard)’를 만든 게 2016년이다. 나 역시 당시에는 캐릭터의 외형 묘사에 집중했다. 10년 정도 지난 지금은 캐릭터의 성격을 확장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주력한다. 겉모습이 귀엽다거나 스타일이 좋다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도마뱀 사육장을 디오라마로 연출하고 있다. 캐릭터가 살아가는 환경을 구현함으로써 생태계의 공존과 삶의 방식을 강조하고 싶었다.
하종훈 작가의 ‘하자드’는 꼬리가 잘려도 계속 살아가는 도마뱀을 형상화한 캐릭터이다. 그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강인한 의지로 삶을 이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캐릭터에 반영한다.
북청사자 프로젝트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
업템포: 우리는 러닝 혼즈와 하자드 캐릭터를 북청사자와 접목해 2023년 12월 공개했다. 스니커즈 브랜드 세븐에잇언더의 협업 제안을 받았을 때 우리는 단순히 그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기존의 스니커즈 디자인에 핸즈인팩토리의 성격을 어떻게 매치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북청사자가 떠올랐다. 거대한 사자 가면을 뒤집어쓰고 여러 사람이 호흡을 맞춰 춤을 추는 북청사자놀음(Bukcheong Saja Noreum, Lion Mask Dance of Bukcheong) 말이다. 그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는 한 번도 한국적인 작업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 기회에 전통 민속놀이를 모티프로 한 작업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세븐에잇언더가 북청사자의 털을 신발끈으로 연출해 보자는 제안도 해줘서 더욱 생동감 있는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2023년 말, 핸즈인팩토리가 스니커즈 브랜드 세븐에잇언더와 협업하여 제작한 북청사자 캐릭터.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인 북청사자놀음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핸즈인팩토리 제공
한국은 아직 아트 토이 마켓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아쉬움은 없나?
업템포: 지금 우리나라에는 아트 토이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플랫폼이나 채널이 없다. 아트페어에 참여하거나 전시회를 개최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개인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 온라인 스토어에서 작품을 거래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중개자가 개입되었을 때보다 구매자와 작가가 더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장과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아트 토이가 ‘문화’를 넘어 ‘산업’의 단계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아트 토이의 트렌드는 어떤가?
하종훈: 과거에는 점토가 주된 재료였고, 3D 프린터가 상용화되면서는 대부분 이 방식으로 제작한다. 하지만 근래에는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이루어 낸 상향 평준화의 반향으로 레트로 느낌이 물씬한 수제 아트 토이가 떠오르는 추세이다. 예컨대 나무를 재료로 써서 의도적으로 투박한 느낌을 주는 식이다. 레진을 사용할 때도 조각칼로 디테일을 덧입히는 등 핸드 메이드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하종훈 작가의 또 다른 캐릭터 바인(VINE)은 퇴근길에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음악을 선곡해 듣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핸즈인팩토리 제공
솔로보다 팀으로 활동하는 이점은 무엇인가?
업템포: 혼자 작업할 때는 한계가 명확하다. 스튜디오에서 제작에만 열중하다 보면,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기 어렵고 익숙한 영역에만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이들이 팀을 이루어 활동하면 지속적으로 새로운 의견을 접할 수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피드백을 얻기도 한다. 팀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을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도움도 받으면서 혼자였다면 결코 구현하지 못했을 작업을 해나가기도 한다.
핸즈인팩토리의 올해 계획은?
업템포: 패션 브랜드 뉴에라의 마스코트 캐릭터 ‘팔로(FFALO)’ 디자인을 우리가 했다. 올해 10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컴플렉스콘(ComplexCon)에 뉴에라와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아트 토이 작가로서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업템포 작가의 작업 공간. 언젠가는 러닝 혼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종훈: 내 작품을 2D나 그래픽으로만 전시해 보고 싶다. 우리끼리 대화하면서 디자인이 정말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데, 오로지 디자인으로만 전시를 꾸려 관객들에게 그 중요성을 전달하고 싶다. 스티커만 몇 백 장씩 있는 전시회는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에 그려 본다.
스케치 작업을 하고 있는 업템포 작가(왼쪽)와 도색 작업 중인 하종훈 작가(오른쪽). 아트 토이 산업이 발달한 해외에서는 작업 과정을 세분화해 분담하는 경우가 많지만, 핸즈인팩토리는 디자인과 모형 제작, 도색 등 일련의 과정을 모두 각자 혼자서 전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