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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AUTUMN

Books & More

『경청』

김혜진(金惠珍) 작, 장해니(張傑米) 번역, 200쪽, 18달러, 레스트리스 북스(2024)

부서진 삶의 조각들을 다시 맞추다

김혜진의 『경청』은 진정 이 시대를 위한 소설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은 주인공 해수가 자신을 비난한 기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된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해수의 편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편지도 끝맺지 못한 채 남겨진다. 편지는 해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기만을 위한 시도’에 가깝다. 심리 상담사이자 토크쇼 패널로도 잘 알려진 해수는 어느 날 무심코 대본에 적힌 대로 한 배우에 대한 평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발언을 했으니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배우의 자살로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뀐다. 네티즌들이 다른 여러 명과 함께 해수를 가해자로 지목하면서, 그녀는 배우의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해수는 자신이 언어의 힘을 잘 알고 있고 뛰어난 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었지만, 아직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해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욕할까봐 두려워하며, 타인과의 접촉을 줄이고 혼자 지낸다. 그러던 중 같은 동네에 사는 여학생 세이와 길고양이 순무를 만난다. 세이는 덩치가 크고 재빠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같은 피구팀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고 있고, 순무는 구조가 시급한 상황이다. 해수는 길거리에서 서서히 힘겹게 죽어가는 순무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따뜻한 공감을 통해 세이가 힘든 상황을 이겨내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해수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애초에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었던 목적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경청』이라는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중 하나는 바로 ‘도덕적 범주(도덕적으로 배려할 가치가 있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의 구분)’이다.  길고양이를 잡기 위해 통 덫을 들고 돌아다니던 해수는 사람들의 눈에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걱정하면서, ‘자신이 집중해야 하는 일과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의 구분에 대해 생각한다. 한때는 자신은 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배우의 자살 사건 이후로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해수는 이것이 자신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해수의 도덕적 범주 가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인터넷과 SNS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연결성이 높아진 지금, 단편적인 사건들까지 모두 연결해서 살펴보지 않으면 현대 사회의 모순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한편으로 심각한 고립감을 느끼기도 한다. 온라인상의 타인을 인간이나 도덕적 존재가 아닌, 공터에서 우는 길고양이처럼 굳이 관심을 쏟을 필요가 없는 얼굴 없는 개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유사한 두 단어 ‘cancel’과 ‘counsel’을 활용한 재치 있는 영어 제목은 이야기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을 강조한다. 한국어 제목 『경청』에서 드러나듯이, 귀 기울여 듣는 것, 즉 나의 관점을 내세우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듣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경청』은 배려심 깊은 독자들에게 귀 기울일만한 많은 이야기를 던져준다.

『이별 후의 이별』

장석원(張錫原) 작, 데보라 김(金) 번역, 83쪽, 10,000원, 아시아 퍼블리셔스(2023)

언어의 혁명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박상수는 장석 원의 시(이번 시집에는 영문 번역된 20여 편의 작품이 실려있다.)의 기원이 ‘혁명과 사랑’이며 그 기원이 지금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 두 주제는 이번 시집에서도 잘 드러난다. 언뜻 보기에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여기에서 혁명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장석원은 언어의 혁명 없이는 어떤 혁명도 완성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시는 그러한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색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트랜스 휴머니즘의 미래까지 나아가며, 그는 갈등과 투쟁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 사이로 사랑의 빛이 비추지만,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모습의 사랑은 아니다. 작가가 노래하는 사랑은 고통과 그리움, 때로는 야만적이고 죽음과 연결되는, 날것의 사랑이다. 새로 출간된 이번 시집은 시인의 세계관을 엿보고 독자 자신의 투영된 이미지를 관조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창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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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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