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An Ordinary Day > 상세화면

2025 SPRING

문화의 차이를 즐기다

고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나리카와 아야(Aya Narikawa) 씨는 오랫동안 아사히신문 문화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그런 그녀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바로 한국 영화였다. 그녀는 최근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과 일본 양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일에 한층 더 힘쓰고 있다.

아사히신문 기자에서 영화 칼럼니스트로 변신한 나리카와 아야 씨가 홍대 앞에 위치한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달에 4편가량 한국 영화를 감상하는 그녀는 독립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이곳을 자주 찾는다.

한 편의 영화를 두 번 이상 관람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나리카와 아야는 2021년 개봉 20주년을 맞아 재개봉한 한국 영화 < 고양이를 부탁해(Take Care of My Cat) >를 다시 보면서 생각했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딱 20대 초반 시절의 나와 닮았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고치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녀는 일본을 떠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가족과 멀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나리카와 씨는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서 그 바람을 이뤘다. 2002년에는 어학 연수생, 2005년에는 교환 학생으로 서울을 찾았던 그녀는 9년간 기자 생활을 했던 아사히신문을 떠나 2017년 한국에 정착했다. 오랜 시간 그녀를 사로잡은 한국 영화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가교 역할

나리카와 씨는 영화관을 운영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영화 감상을 즐겼고, 어학 연수를 계기로 한국 영화에 깊이 빠져 버렸다. 문화 담당 기자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일본에 방문한 한국 영화인들을 인터뷰하거나 그들의 통역을 도맡기도 했다. 한국어에 능통한 일본인이자 한국 영화 팬으로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갈증이 있었다.

“한국 드라마와 K-Pop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그에 비해한국 영화에 대한 일본 대중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어요. 일본에서 < 설국열차(Snowpiercer) >가 개봉했을 때 제가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했는데, 봉준호 감독이니 기사를 크게 실어줘야 한다고 부탁하자 그게 누구냐고 묻던 아사히신문 데스크의 반응에 실망했던 기억이 나요. 한국 영화를 마음껏 깊이 취재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직접 탐구를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한국 유학을 결심했어요.”

주변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학생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녀의 선택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나리카와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영화로 배운 한국

나리카와 씨는 자신의 사연에 흥미를 느낀 한국 기자의 제안을 받아 수년째 중앙일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문화 이야기를 쓴다. 경기도 일산에 거주 중인 그녀는 부산, 전주, 제천 등 한국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다가 겪은 일에 대해서도 적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아끼는 지역은 제주라고 한다. 제주도는 자연 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상흔도 간직하고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리카와 아야 씨가 한국과 일본에서 펴낸 책들. 그녀는 한국에서 일본 책과 영화를 소개하는 북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그녀는 제주 해변에서 돌고래를 목격한 것도 행복했지만, 일본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4·3평화기념관(Jeju 4·3 Peace Memorial Hall)에 다녀온 일도 뜻깊었다고 한다. 이창동 감독의 < 박하사탕(Peppermint Candy) >(2000)으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처음 접했고, 오멸 감독의 < 지슬(Jiseul) >(2013), 류승완 감독의 < 군함도(The Battleship Island) >(2017), 장준환 감독의 < 1987 >(1987: When the Day Comes)(2017) 같은 영화를 보며 한국 현대사의 맥락을 익힌 그녀는 무작정 역사를 공부하는 것보다 재밌는 영화를 통해 다른 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효과적인 공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덕분에 그녀는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에서 재일코리안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연구소 주최로 ‘재일코리안 영화제’를 개최하며 뿌듯했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2025년 2월, 나리카와 씨는 마침내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사 논문 주제는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영화 교류 양상 연구(South Korea-Japan Film Exchanges Since the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였다.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매체에 한국 영화와 관련한 글을 기고하고, 방송에 출연해 양국의 문화를 알려온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이 논문에는 재일코리안 촬영 감독 이병우(Lee Byung-woo), 일본의 한국 영화 배급사 시네콰논(Cinequanon) 대표 이봉우(Lee Bong-woo) 등의 사례도 언급된다. 모두 양국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부터 활동해 온 인물들이다. 나리카와 씨는 “지금보다 상황이 어려웠을 때 양국 교류에 나섰던 사람들이 택한 방법을 알아가면서 현재의 나도 해낼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얻었다”라고 곱씹었다.

논문 집필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아사히신문 선배 기자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이병우 촬영 감독의 손녀를 만난 일이다. 재일코리안 영화인들에 관한 기록이 부족해 연구가 쉽지 않던 차에 이병우 씨의 손녀에게 귀중한 자료들을 전달받은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쌓았던 내공 덕분일까요? 제가 만나야 할 사람, 필요로 하는 자료가 있을 때 우연히 제 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일들이 한국 생활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북카페의 꿈

논문이 무사히 통과된 다음, 나리카와 씨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쿄에 다녀왔다. 2020년 한국에서 출간된 후 2024년 10월 일본에서도 출간된 저서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의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리카와 씨가 한국에서 써온 칼럼들을 묶어서 펴낸 책이다. 행사가 열린 공간은 ‘독서가의 거리’로 알려진 진보초의 한국 책 전문 서점 ‘책거리(Chekccori)’였다. 이날 서점 스태프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양국의 문화를 전파 중인 나리카와 씨에게 근사한 상장을 만들어 선물했다. 상장에는 그녀에게 항상“차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했던 어머니의 말도 인용되어 있었다.

나리카와 씨는 북토크 자리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응원을 받았다. 그녀는 독자들의 질문을 듣고 5년 후 계획을 고민해 봤다고 한다.

“‘책거리’의 반대 버전, 그러니까 한국에서 일본 책과 영화를 소개하는 북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어요. 그곳에서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독립영화 상영회도 열고 싶고요. 이렇게 말하다 보면 도와주는 사람이 또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리카와 아야 씨가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 영화 칼럼을 비롯해 신문에 연재하는 기사들과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다.

자신만의 북카페를 상상하며 미소 짓는 나리카와 씨는 이제 자신을 걱정하던 일본 친구들에게서도 “정말 즐거워 보인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녀는 “일부러 즐거워 보이려고 애쓴 적이 없는데도 그런 말을 자주 들어서 신기하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말과 글로 나누는 동안 자연스럽게 웃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닐까?

“타지에서의 삶이 어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그렇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 한 발짝 나가본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한번 해보고 나면 기대한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수 있어요!”

나리카와 씨는 작은 도전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고른 책들이 진열된 공간에서 신선한 일본 영화를 감상할 날이 매우 기다려진다.

남선우(Nam Sun-woo)『씨네21』 기자
한정현사진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