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null > 상세화면

2024 AUTUMN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일상을 만드는 동구밭

소비자는 현명하다. 샴푸 하나도 성분, 가격, 제형 등을 까다롭게 따져보고 구매한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는지, 동물실험에 반대하는지 등 회사의 철학에 관한 기준도 명확하다. 동구밭((株)打勾吧, DONGGUBAT Inc)은 소비자의 깐깐한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비장애인과 함께 지속 가능한 일상을 제안하는 기업, 동구밭을 소개한다.

동구밭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지속가능한 일상을 만들어 간다. 특히 발달장애인 근속년수 해결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매출이 늘어날 때마다 회사는 발달장애 사원을 추가로 고용하고 있다.
ⓒ Donggubat Inc.

시골 마을 입구를 떠올려 보라. 야트막한 언덕 위 커다란 나무, 옆으로 펼쳐진 논과 밭, 구불구불한 오솔길. 따뜻하고 정겨운 이미지의 공간이 그려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네로 들어가는 어귀를 ‘동구(洞口)’, 그곳에 자리해 사람들을 맞이하는 밭을 ‘동구밭’이라고 부른다.

이름처럼 동구밭은 사람들, 특히 발달장애인에게 포근한 자리가 되어주고자 만들어진 회사다.

동구밭에서는 장애인의 꿈이 자란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발표한 「2023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서 6대 장애유형별 경제활동상태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시각장애인 고용률이 43.3%로 가장 높고, 지체장애인(43.0%), 청각장애인(27.3%), 발달장애인(26.2%), 기타장애인(23.0%), 뇌병변장애인(12.2%)순으로 이어졌다. 장애인 취업자의 현재 직장(일자리) 근속기간도 전체 평균이 11년인 것과 비교해 발달장애인의 평균 근속기간은 4년 10개월로 짧았다. 언어, 인지, 운동, 사회성 등의 지연 및 이상을 보이는 발달장애인은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이 직접 일해 수익을 내게 할 순 없을까?” 사업 초기 동구밭은 고민 끝에 비누를 만들기로 했다. 비누는 제조법이 간단하고, 적은 생산 비용과 인원만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행히 시장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발달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친환경, 비건 등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고품질의 제품을 선보인 덕분이었다.

회사가 성장할수록 고용할 수 있는 장애인 수도 늘었다. 2024년 4월 기준 동구밭 임직원 수 130여 명, 발달장애인 직원 수는 50여 명에 이른다. 발달장애인 직원은 동구밭 자체 직무 역량 개발 프로그램을 거친 뒤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공장에서 제조, 배송 업무 등을 수행한다. 땅값이 비싼 도심에 공장을 둔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분명 손해가 나는 일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직원이 원활하게 출퇴근할 수 있도록 동구밭은 기꺼이 손해를 감수한다.

동구밭에 없는 세 가지

동구밭은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태어난 회사다. 하지만 장애인 고용을 방패로 삼지 않는다. 즉 동구밭에는 핑계가 없다. “장애인이 만들었으니 부족해도 이해해 달라”라고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닌, 당당히 제품력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박상재(朴祥宰, Park Sangjae) 공동 대표는 이것이 “회사가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한다.

“장애인과 오래 함께할 수 있으려면, 회사가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비자가 좋아서 다시 찾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죠.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임상’이었습니다. 사실 설립 초기에는 비누 제작에 있어 전문가라고 할 만한 인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한계를 두지 않고 마음껏 연구‧개발할 수 있었어요. 전국 각지의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노하우를 전수받고요. ‘지구와 사람에게 해롭지 않아야 한다’라는 가이드라인만 엄격하게 두고 최적의 원료와 배합 방법을 찾기 위해 직접 부딪쳤습니다. 동구밭 샴푸바의 유사 제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이러한 진심과 노력이 있었기에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동구밭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동물 실험도 하지 않는다. 대신 옥수수, 아보카도, 레몬, 케일, 가지, 다시마 등 식물 유래 성분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전성분과 원료 배합에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 덕분에 동구밭의 생산공장은 프랑스 이브 비건(EVE Vegan®) 인증과 환경경영시스템 인증(ISO 14001)을 받았다. 천연 원료만을 고집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인체 안전성을 인증받은 성분인지를 먼저 꼼꼼히 따져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킨다. 저온 숙성 공법(Cold Press, CP)도 차별점이다. 해당 공법을 적용하면, 재료의 좋은 성분이 열에 파괴되지 않는 반면 보습력은 강해진다.

유기농 녹차를 함유한 비건 설거지바
ⓒ Donggubat Inc.

마지막으로 동구밭은 플라스틱 프리를 실천한다. 동구밭은 액체, 가루 등의 제품군 포장재를 제외하고는 성분, 패키지, 완충재 등에 플라스틱 사용을 배제한다. 대신 제품은 비접착 재생 용지 패키지에 담아 판매한다. 동구밭 제품 1개를 사용했을 때 줄일 수 있는 플라스틱 배출량은 16.2g. 현재까지 누적 판매한 제품 수를 대입해 계산하면, 총 381,251㎏의 플라스틱 배출을 막은 셈이다.

소비자는 이러한 동구밭의 제품을 신뢰하고, 회사를 지지한다. 동구밭은 현재 샴푸바, 린스바, 세안비누, 거품 입욕제, 설거지 비누 등 월 50만 개의 제품을 제조 및 판매‧납품하고 있다. 많은 회사가 협업을 제안하면서, 주문자위탁생산(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OEM)과 제조업자개발생산(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ODM) 방식으로도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동구밭의 성장은 기업에 다음의 메시지를 남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일회용 여행용품을 대신하는 플라스틱 프리 고체 여행용 키트. 샴푸바, 린스바, 바디&페이셜바로 구성되어 있다.
ⓒ Donggubat Inc.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일상을 위한 노력

동구밭은 회사 밖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동구밭은 2021년 10월 서울 강동구 암사동 광나루한강공원에 400그루의 나무를, 이듬해 11월에는 산불 피해 지역인 강원도 강릉시에 1,25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2022년과 2023년 6월에는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피해목으로 인센스 홀더를 제작해 보급하기도 했다.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 직업 재활의 날에도 캠페인을 진행한다. 지난 4월에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화장실 이용 인식개선을 위한 ‘모두의 화장실’ 캠페인을 전개했다. 캠페인 기간 내 특정 제품 매출의 1%를 기부하고, 서울시와 함께 수리가 필요한 공공 장애인 화장실을 개‧보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외에도 연중 많은 기업과 지속 가능 발전(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ESG) 관련 협업을 기획‧진행하고, 사회복지단체에 물품 기부도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구밭은 직원의 50% 이상을 발달장애인으로 고용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더불어 발달장애인 고용 문제에 관심을 두고, 해결에 동참하는 회사가 더 많아지도록 본보기가 되고자 노력한다. 이를 위해 일반 회사에서 직원 능력을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투입하듯 동구밭은 발달장애인이 어떤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검토 및 연구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박상재 공동대표는 “발달장애인 고용에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선 장애인 직원만을 무조건 배려하거나 비장애인 직원을 역차별해선 안 된다. 강요가 아닌 설득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없는 브랜드 동구밭의 비누바를 만드는 모습.
ⓒ Donggubat Inc.

“동구밭이 사회에 큰 변화를 이끌었다고는 아직 생각하지 않습니다. 갈 길이 멀죠. 다만 화장품, 생활용품 패키지나 기업 대표 명함에 점자가 인쇄되기 시작한 것을 두고 업계 사람들은 ‘동구밭 덕분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동구밭은 더 많은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그들이 일할 수 있는 가능성과 사회의 관심을 키울 것입니다.”

스스로를 ‘마을 어귀’라고 칭했듯 동구밭의 노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일상을 만드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인간과 동물, 환경 등. 드넓은 동구밭 안에서 수많은 가치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날을 그려본다.

이성미(李成美, Lee Seongmi) 라이터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