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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WINTER

서촌의 공공 한옥들

서촌은 북촌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 마을로 꼽히는 지역이다. 그중 서울시와 종로구가 운영하는 서촌 내 공공 한옥들은 전통 주거 문화 체험은 물론 다채로운 문화 예술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어 서촌을 대표하는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중이다.

서촌라운지의 안마당 전경. 2층 구조의 한옥을 개조한 서촌라운지는 아파트 등 현대식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진 시민들에게 한옥의 주거문화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 서울시청

서촌의 한옥들은 대부분 근대기에 양산된 ‘도시형 한옥’이다. 1920~30년대 주로 지어진 도시형 한옥은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인구 과밀 현상을 겪고 있던 경성(京城, 현재의 서울)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났다.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토지를 매입해 필지를 잘게 쪼갠 뒤 소형 한옥을 지어 대량 공급했다.

도시형 한옥은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대문과 방들이 ㅁ자 형태로 연결된 구조이다. 전통 한옥에 비해 규모나 구조가 간소화된 대신 장식적인 요소가 많아지고, 재료에서도 유리나 벽돌 등 근대적인 소재가 사용되었다. 또한 점차 달라지는 생활 양식을 반영해 부엌과 화장실을 신식으로 고치는 등 개량되었다.

하지만 도시형 한옥에도 한옥 특유의 정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하룻밤이라도 특별함을 누리고자 한옥 스테이를 찾는 이유다. 그러나 한옥 스테이는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에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이에 서울시와 종로구에서는 공공 자금으로 한옥을 매입해 일반에 개방하고,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서촌에도 상촌재(Sangchonjae, 上村齋), 홍건익 가옥(Hong Geon-ik House, 洪建翊 家屋), 서촌라운지(Seochon Lounge) 같은 공공 한옥이 있어 지역 주민들과 서촌 방문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이들 공공 한옥에서는 전통 주거 문화를 경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예 체험이나 미술 작품 전시 등 색다른 문화 예술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서촌에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도시형 한옥이 밀집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전통 한옥과 유사해 보이지만 형태와 재료, 구축 방식 등에서 차이가 난다. 유리와 벽돌, 타일, 함석 등 근대적 재료를 사용하는 한편 장식적 측면이 매우 강화되었다는 점이 도시형 한옥의 특징이다.
ⓒ 최태원(Choi Tae-won, 崔兌原)

전통 한옥의 미

상촌재는 오랫동안 방치된 경찰청 소유의 폐가를 종로구가 2013년에 매입해 복원한 후 2017년부터 일반에 개방한 공간이다. 19세기 말 전통 한옥 방식으로 조성된 이곳은 온돌 문화를 비롯해 한국 전통 가옥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안마당과 사랑마당이 지형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위계를 지니며, 이들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상촌재는 한옥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2017년에 국토교통부의 <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을, 2018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을 받았다.

상촌재는 장기간 방치된 한옥 폐가를 19세기 말 한옥 양식으로 복원한 공간이다. 전통 한옥 미학을 되살린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으며, 서촌의 대표적 공공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
ⓒ 종로문화재단(Jongno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상촌재의 매력은 건축물뿐 아니라 풍성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에도 있다. 이곳은 한옥·한복·전통 공예·세시 풍속과 관련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일회성 체험 행사뿐 아니라 전문 교육 프로그램도 탄탄하게 갖추고 있다. 또한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주기적으로 전시회도 개최한다. 상촌재는 시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기 때문에 연간 평균 약 2만 명이 방문하는 서촌의 인기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서촌의 공공 한옥 중 하나인 상촌재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사진은 그중 하나인 ‘전통 의식주 교육’ 현장으로, 한복을 갖춰 입은 어린이들이 예절 교육을 받고 있다.
ⓒ 종로문화재단(Jongno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근대적 절충 양식

1930년대 지어진 홍건익 가옥은 전통 방식과 근대적 양식이 절충된 민가 건축물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한옥 중 우물과 빙고(氷庫)까지 갖춘 몇 안 되는 집이다. 홍건익은 상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얕은 구릉 위에 지어진 이 집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등 각 건물을 독립적으로 배치했는데, 이러한 구조는 전통 한옥 양식의 전형적 특징이다. 반면에 대청에 설치한 유리문과 처마의 차양은 근대기 한옥의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홍건익 가옥은 2011년 서울시가 매입해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고, 2017년 공공 한옥으로 개방되었다. 이곳에서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중 서촌을 산책하며 곳곳에 자리한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조선 시대의 화가 정선(Jeong Seon)이 남긴 화첩 < 장동팔경첩(Album of Eight Scenic Sites of Jang-dong in Seoul) >의 배경을 방문해 과거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홍건익 가옥의 또 다른 매력은 시즌별 문화 행사다. 여름밤에는 전통차를 즐기는 다회를, 추석에는 송편을 빚는 행사를 운영하는 등 계절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침선, 옻칠, 도예 등 공예 프로그램은 지역 예술가나 크리에이터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진행된 홍건익 가옥 특별전 < 집의 사물들 - 삶의 품행 > 전시 모습. 오우르(OUWR) 등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예가들의 다양한 작업을 소개한 전시다.
ⓒ 홍건익 가옥, 오우르(OUWR)

전통과 현대의 연결

서촌라운지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한옥 정책의 일환으로 2023년 10월 오픈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한옥 내부를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 이곳은 기획 전시가 열리는 1층과 방문자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는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촌라운지는 회화, 공예, 건축 등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서촌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콘텐츠를 주로 제공한다. 특히 국가와 세대를 초월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개관 기념 전시 < 독일 바우하우스×전통 공예, 음미하는 서재(Bauhaus×Korea Craft Design) >는 바우하우스 양식을 대표하는 가구와 국내 공예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진 전시로, 이 공간의 성격과 지향점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올해에도 스위스 로잔예술대학 산업디자인과 학생들과 국내 조명 브랜드 아고(AGO)의 협업 전시가 열리는 등 국내와 해외,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이 꾸준히 개최되었다.

서촌라운지는 전시 프로그램 외에도 티 소믈리에와 함께하는‘계절 차[茶]회(Global Seasonal Tea-Talk)’가 유명하다. 우리나라 차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전통 차를 마시며 비교해 보는 시간도 있어, 예약이 금세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옥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구조와 형태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는 여전하다. 현대인의 삶과 문화에도 영감을 준다. 서촌의 공공 한옥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은 서촌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서촌라운지의 인기 프로그램인 계절 차회에서 한 참가자가 차를 음미하고 있다. 티 소믈리에의 설명을 들으며 차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외국인을 위한 차 모임이 따로 운영된다.
ⓒ 서촌라운지

박초롱(Park Cho-rong) 딴짓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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