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柳昇完) 감독의 2015년 블록버스터 < 베테랑 >의 후속작 < 베테랑2 >는 비질란테가 사적 제재를 가하는 과정에서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칸 영화제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류승완(Ryoo Seung-wan, 柳昇完)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조명하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는 연출 스타일을 보여 주는 감독이다. 특히 역동적인 액션 연출과 캐릭터 중심의 강렬한 서사가 돋보이며, 사회적 메시지와 오락성을 조화롭게 결합한다.
CJ ENM 제공
류승완 감독은 20년 넘게 한국 영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액션 영화로 유명한 그는 사회 문제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흥행 돌풍을 일으킨 < 밀수 >에서는 평화롭던 바닷가 마을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생계를 잃게 된 해녀들이 겪는 사건을 다루기도 했다.
올해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 베테랑 2 >는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개봉해 15일 만에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편 전작 < 베테랑 >은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9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한국 영화사상 다섯 번째로 높은 수익을 거둔 영화가 되었다. 그 인기는 국내를 넘어서, 2019년에는 유명 배우 살만 칸(Salman Khan) 주연으로 인도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만(Miachel Mann)이 또 다른 리메이크작을 준비 중이며,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 히트 2 > 가 완성되는 대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 베테랑 >은 2015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TIFF)를 통해 처음으로 해외에 선보였고, < 베테랑 2 >는 올해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받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그동안 칸 영화제에는 다수의 한국 영화가 공식 초청된 바 있다. 김지운(金知雲) 감독의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한재림(韓在林) 감독의 < 비상선언 >, 나홍진(羅泓軫) 감독의 < 황해 >, 박찬욱(朴贊郁) 감독의 < 아가씨 >, 윤종빈(尹鍾彬) 감독의 < 공작 >,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2019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봉준호(奉俊昊) 감독의 < 기생충 >이 있다. 류승완 감독은 2005년 권투 영화 < 주먹이 운다 >로 감독주간에 초청받아 칸 영화제에 데뷔했다. 지금은 유명 스타가 된 동생 류승범(柳昇範), 그리고 2004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박찬욱 감독의 < 올드보이 >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한국 영화의 아이콘 최민식(崔岷植)이 함께 출연한 작품이다.
류승완 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인 < 주먹이 운다(Crying Fist) >(2005)는 왕년의 복싱 스타이자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였던 주인공이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세련된 테크닉과 액션을 배제하고, 인물들의 내면과 감정에 중점을 둔 영화이다.
용필름(Yong Film) 제공
전편 < 베테랑 >에서는 황정민(黃晸玟)이 거침없고 화끈한 형사 역을 맡아, 부패하고 사디스트적인 재벌 3세를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아인(劉亞仁)이 재벌 3세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유머와 강렬한 액션, 사회적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 베테랑 2 >에서는 오달수(吳達秀), 장윤주(張允柱) 등 전편에서 감칠맛 나는 연기를 펼쳤던 배우들과 황정민이 다시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 정해인(丁海寅)이 강력 범죄 수사대에 새로운 멤버로 합류한다. SNS에서 범인의 정체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전 국민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가운데, 주인공 형사와 그의 팀원들은 수사 방법과 논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류승완의 최신작 <베테랑 2(I, The Executioner)>의 한 장면. 2024년 9월 개봉한 이 영화는 전국적으로 750만 명이 넘는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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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과 비교해 이번 칸 영화제 경험은 어땠는가?
19년 전에는 뤼미에르 대극장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웃사이더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때는 훨씬 더 어렸고, 모든 것이 신선하고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도 언젠가는 여기에서 내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인사이더가 되어, 내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 다른 의미 있는 변화는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이다. 19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객석이 꽉 차지도 않았고, 인터뷰 요청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액션 영화에 매료된 계기는 무엇인가?
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나는 충청남도 아산(牙山)이 고향인데, 대도시는 아니지만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홍콩 영화 등 아시아 작품까지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그 시절 나는 홍콩 무술 영화와 멋진 배우들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액션 배우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뼛속까지 영향을 주었고, 동작과 제스처를 포착하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액션에 대한 나의 접근법도 진화했다. 지금의 나에게 ‘액션’은 단순한 신체 동작이나 바디 랭귀지가 아니다. 캐릭터의 진화, 심리, 사건의 전개, 스토리에 따라 바뀌는 관객의 생각과 기분까지 담고 있는, 그 이상의 것이다.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짝패(The City of Violence)>(2006)는 무술 감독이자 액션 배우인 정두홍(Jung Doo-hong, 鄭斗洪)과 함께 감독 자신이 주연으로 직접 출연한 영화다. 와이어에 의존하지 않은 맨몸 액션의 효과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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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 >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9년이 지나 < 베테랑 >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든 이유가 궁금하다.
1편의 성공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고, 솔직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내 스타일에 충실한 장르 영화를 만들어 국내 관객들에게 탈출구 같은 재미있는 영화를 선보이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영화 속 사건과 유사한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 베테랑 >을 촬영하면서 인물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1편의 성공 때문에 같은 소재로 바로 뛰어들기가 쉽지 않았다. 1편에서는 선과 악에 대한 묘사가 너무 도식화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명료한 구분이 성공 요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피상적으로만 다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정의 실현 방식은 복잡한 현실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현실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 베테랑 >의 흥행 이후 그 뒤를 잇는 다양한 국내 영화와 드라마가 나오고 성공을 거두면서, 나는 전작을 답습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간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중에는 2021년 아카데미 영화상에 한국 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된 정치 스릴러 < 모가디슈 >도 있었다. 9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새로운 방식으로 < 베테랑 >을 다시 선보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개봉작 < 베를린(The Berlin File) >은 국제적인 음모에 휘말려 서로를 쫓은 이들의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완벽한 캐스팅과 창의적 액션, 밀도 높은 스토리 등으로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승완의 동생이기도 한 배우 류승범(Ryoo Seung-bum, 柳昇範)은 류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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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에서 논란이 된 ‘박선우’는 어떤 인물인가?
의도적으로 캐릭터와 스토리에 논란의 여지를 두었다. 어떤 반응이든 관객들이 그들 자신의 반응을 보여주길 바랐다. 관객들이 어떤 논란에 대해 개인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은 관객이 그 논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의도한 바가 바로 그것이다. 홍콩의 대표적인 영화 감독 조니 토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몰입감 있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굵고 짧게 대답했다. “주인공이 실수를 해야 한다”는 아주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사적 제재를 가하는 사람은 결국 벌을 받는다. 류승완의 영화에서는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듯하다.
흥미로운 지적이다. 내 영화에서 실제 주인공은 박선우가 아닌 서도철 형사다. 서도철이라는 인물의 장점이자 박선우와의 차이점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이 있더라도 자신의 임무에는 충실하다는 점이다. 범죄자라도 일단 목숨은 살리고 보는 인물이고, 그것이 서도철에게는 진정한 정의다.
박선우를 전통적인 빌런으로 묘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정의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개념, 그리고 그사이의 갈등을 탐색하고자 했을 뿐이다. 정의(正義)는 관점과 역사적 맥락, 적용 방식에 따라 다르게 정의(定義)된다. 따라서 절대적인 정의나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본다. 감독이 관객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관객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2편의 스토리는 어떻게 달라졌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옛날이 더 편하고 쉬웠고 현재가 제일 힘들다는 인식이 항상 있다. 자신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나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수월하고 다른 곳이 더 편안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결국 누구나 똑같다.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발전의 속도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베테랑 > 1편이 개인보다는 사회와 시스템 전체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편은 사회 전체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개인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예를 들어, 서도철의 아내가 베트남 여성과 아이들을 돕는 장면이 있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의 모습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사회에서도 한 사람만이라도 깨어 있고 자각하고 있다면, 희망의 씨앗은 이미 거기에 있다. 인류를 구하겠다며 말만 거창하게 늘어놓는 정치인보다는 가족, 친구, 동료를 돌보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이 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여론의 영향력이 바뀌었다고 보는가?
한국 사회에는 연대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만의 독특한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육로를 통해 다른 나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소 단절된 느낌이다. 한국인이 해외로 여행하려면 비행기나 배를 타야 하고,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어, 섬나라나 다름없이 고립되어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함께 뭉쳐야 했기 때문에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상황이 다르다. 인터넷과 SNS 덕분에 기성 세대에 비해 전 세계와 훨씬 더 많이 연결되어 있다. 해외에 있는 사람들과 쉽고 빠르게 소통할 수 있어 뛰어난 글로벌 감각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세대에서는 공동체 의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유대감은 여전히 강한 편이지만, 젊은 세대들의 글로벌 커뮤니티 참여가 확대되면서 변화하고 있다.
< 베테랑 3 > 제작 가능성은?
현재 첩보 액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파헤치는 남북한 비밀 요원들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 베테랑 3 >에 대해서는 배우들과 논의 중이다. < 베테랑 2 >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후속편 제작을 검토할 예정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 밀수(Smugglers) >(2023)는 밀수의 세계에 빠진 해녀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영화다. 몰입감 높은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시대 배경을 잘 살린 미술이 호평을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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