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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WINTER

가족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

낯선 도시에서 실패 없는 식사를 하려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라는 말도 있다. 어디로든 이동이 가능한 기사들은 곳곳에 위치한 가성비 좋은 음식점들을 훤히 꿰고 있을뿐더러 시간과 경험을 바탕으로 검증된 리스트이니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감나무집 기사식당’은 맛집에 밝은 기사들의 발길이 밤낮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감나무집 기사식당 주인 장윤수 씨가 손님상에 내 놓을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사식당은 말 그대로 기사, 그중에서도 택시 기사들을 위한 식당이다. 기사들을 주 고객으로 맞이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차를 댈 수 있는 넉넉한 주차 공간이 필요하다. 메뉴는 다양할수록 좋지만, 시간이 걸리면 곤란하다. 직업의 특성상, 새벽이나 밤중에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저렴한 가격, 푸짐한 양, 변함없는 맛이 더해져야 한다.

365일, 24시간 열려있는 식당

감나무집 기사식장의 주인인 장윤수(張倫秀) 씨의 하루의 시작은 매일 다르다.

“새벽부터 나올 때도 있고, 시장을 가는 날이면 좀 늦을 때도 있고. 시간을 정해두고 일을 하지는 않아요. 집에서 잠시 쉴 때도 모니터로 가게를 수시로 들여다봐요. 모니터링하다가 손님이 많다 싶으면 만사 제쳐두고 냅다 뛰어가죠.”

한국의 기사 식당은 주차장 구비, 푸짐한 한 상, 빠른 회전 등이 특징이다.

주차장, 식당, 살림집이 나란히 붙어 있는 구조다. 일과 휴식을 분리할 수 없는 이 구조는 장 씨에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집이 가까워야 통제가 돼요. 바쁘다고 호출하면 금방 갈 수 있으니까. 24시간 전천후지.”

한 번에 70여 명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은 점심식간이면 순식간에 만석이 된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 중인 감나무집이 문을 연 건 25년 전이다.

“다른 데서 한정식집도 하고, 갈빗집도 했는데 잘 안됐어요. 다 털어먹고 집으로 들어왔지. 여긴 우리 집이니까. 처음에는 함바집(건설 현장에 임시로 지어 놓은 식당)을 했어요. 일꾼들이 일을 일찍 시작하니까 우리도 새벽 장사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근처를 오가던 택시기 사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이 더 늦게까지 장사하면 좋겠다고 해서 24시간 문을 열기 시작한 거죠.”

언제 찾아가도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데다 값은 저렴하고 음식은 맛있다. 국과 반찬도 매일 바뀐다. 당연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근처에 기사식당이 많았는데 순댓국, 설렁탕 같은 단일 메뉴만 있었어요. 우리는 백반집이었지. 당시 기사들은 대부분 형편이 좋지 않고 맞벌이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일하다 보면 집에서 밥을 못 챙겨 먹으니까, 집밥이 그리웠겠죠. 사 먹는 음식은 혼자 먹기도 어렵고, 비싸기도 했으니까요. 여기 오면 미역국, 된장국, 콩나물국처럼 집에서 늘 먹는 국과 반찬이 있으니까 좋아하더라고요.”

집에서 먹던 음식 그대로

장윤수 씨의 고향은 충청도이다.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대가족 속에서 살았다. 농사를 크게 짓느라 집은 언제나 일꾼들과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할머니와 어머니는 늘 주방에서 밥을 짓고, 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무쳤다.

“맨날 다듬고 무치고, 그거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친구들이 놀러 오면 배추 뽑고 오이 따서 잘라보고 무쳐보고 짜다, 싱겁다, 이거 넣어보자, 저거 넣어보자면서 놀았죠. 국물 내고 밀가루 반죽해서 칼국수도 만들고…. 어른들이 먹어보고 맛있다고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어요. 엄마가 가서 공부하라고 혼내면 도망 다니고…. 재미있는 게 따로 있는데 공부가 되겠어요? 나는 요리사하고 음식 장사 하련다, 그거 하면서 재미있게 살련다, 생각했죠.”

집에서 해 먹던 음식 그대로 만들어 손님에게 내놓는다. 강원도에서 농사지은 콩으로 된장도 직접 담근다.

감나무집의 인기 메뉴인 돼지불백과 오징어볶음

“기사들에게 빨리 내놓을 수 있는 음식, 그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저렴하지만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뭘까 하고 연구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나온 게 돼지불백이죠.”

‘돼지불백’ 즉 ‘돼지불고기백반’은 이곳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이다. 메인 메뉴인 돼지불고기를 푸짐하게 쌈 싸 먹을 수 있게 상추, 배추같은 야채도 함께 낸다. 여기에 밑반찬 서너 가지와 계란프라이, 잔치 국수가 쟁반에 함께 나온다. 밥이 가득 담긴 밥솥이 식당 한쪽에 있어 추가로 주문하지 않아도 밥을 양껏 먹을 수 있다. 메인 메뉴인 돼지불고기를 제외한 나머지 반찬과 국 등도 리필할 수 있다. 식사 후에는 자판기의 무료 커피와 건빵으로 입가심도 할 수 있다. 연말에는 택시 안에 놓아둘 수 있는 작은 달력을 만들어 나눠준다.

“전에는 눈대중, 손대중으로 내가 간을 보면서 만들었는데, 우리 아들이 군대 가기 전에 내 레시피를 다 문서로 만들었어. 옛날 맛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거지.”

레시피와 일일 판매량은 ‘일급비밀’이다.

집 같은 식당, 가족 같은 손님

이전에는 감나무집을 찾는 손님은 단연 기사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일반인들의 비중이 훨씬 많다. 다양한 반찬을 맛볼 수 있는 백반집이 점점 사라져 있는 요즘,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가성비 있게 즐길 수 있어 젊은이들이나 아이가 있는 가족들도 많이 찾는다. 또 한국의 집밥을 체험해 보고자 하는 외국인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다.

장윤수 씨의 하루는 손님이 많은 때와 적은 때로 나뉜다. 매일 새벽 시장을 봐서 가게로 온다. 바쁜 아침 시간에는 식사를 거르고 손님이 뜸해지는 오후 두 시경에 점심을 먹는다. 세 시부터 일곱 시까지는 가능하면 휴식을 취한다. 휴대전화를 잠깐 들여다보고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주말 저녁 시간이 제일 바쁘다.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의 행렬이 새벽까지 이어진다. 주방과 홀을 오가며 손님들의 상을 살피면서 부족한 것은 채우고 필요한 것은 가져다준다. 어떤 걸 잘 먹는지, 무엇을 남기는지 체크하여 더하고 덜할 반찬을 정한다. 밤 열 시쯤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최근에는 택시기사뿐만 아니라 집밥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 한국의 집밥을 체험해보고자 하는 외국인 등 다양한 손님이 24시간 방문하고 있다.

평일에는 새벽 한 시쯤 식당을 나서지만 주말에는 새벽 서너 시가 되어서야 손을 털 수 있다. 남편은 함께 장을 보고 바쁜 시간이면 주차장도 관리한다. 엄마를 닮아 요리를 좋아하는 아들은 든든한 동지가 되어 함께 일한다. 일일 2교대 또는 3교대로 일하는 직원은 스무 명이 넘는데 십 년 넘게 일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모두가 가족이고 ‘한집에서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식구이다. 집밥을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돼지불백, 순두부찌개, 생선구이 세 가지로 시작한 메뉴는 이제 열 가지로 늘었다. 다양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기사들을 위해 줄기차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후회는 안 해요. 지금도 요리하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그렇게 행복해요. 여기에 밥 먹으러 오는 이들도 나한텐 식구나 다름없어요. 가족 밥 해 먹이는 일이 이렇게 좋아. 난 피곤한 줄도 모른다니까.”

“돼지불백 하나요!”

성미 급한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앉기도 전에 외친다. 장윤수 씨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번진다.

황경신(Hwang Kyung-shin 黃景信) 작가
한정현(Han Jung-hyun 韓鼎鉉) 사진가(Photo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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